소설리스트

고황 (992)화 (992/1,004)

992화 사지 않으면 북요인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배상할 수 있나요?"

호도고는 감히 북요가 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되물었다.

"우리는 상인이에요. 손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데, 양국이 싸우는 사이에 그 돈으로 돈을 배로 벌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녀는 배로 벌 수 있는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사후에 북요인들은 그녀를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군요!"

호도고는 심호흡을 했다. 전쟁 중에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자 금세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가요?"

북요가 이기든 지든 그들은 돈을 밑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리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북요 황제와 당신 배후의 사람들이 동의하면, 저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북요 황제는 반드시 동의할 것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곧, 그 부락 족장들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이길 자신이 없으면서 무슨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그리고 애써 그녀와 현음 공주를 북요에 잡아 두어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이변이 없이 북요 황제는 동의했다.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월령안과 호도고 두 상인보다 더 흥분해, 그들더러 어서 빨리 '북요 필승' 전쟁 표호를 찍어 내라고 끊임없이 재촉했다.

'북요 필승? 북요 황제의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생긴 거지?'

월령안은 입가를 실룩거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적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북요 황제가 기뻐하면 되었다. 아무튼 기뻐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른 족장들도 역시 너도나도 좋다고 했다.

그들 중 아무도 북요가 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낙풍 족장은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북요 황제와 여러 족장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가에서 맴도는 말을 억지로 삼켜 버렸다.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낙풍은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옆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낙풍은 곧 이 일을 뒷전으로 미루었다.

만약 그가 불길함을 느꼈다면…… 사지 않으면 되었다.

월령안이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그의 돈은 벌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는 그들 북요의 표호였다. 그들 북요에서 발행했기에 결과적으로 그들이 진다 해도 표호에서는 돈을 배상할 필요가 없었다. 돈도 북요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일이 벌어진다 해도 북요 내의 일이기에 크게 우려할 게 없었다.

* * *

북요 황제가 전력으로 독촉하는 바람에, 북요 필승 전쟁 표호는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찍혀 나오게 되었다.

어쩌면 풍자적인 일인지도 몰랐다.

북요 전쟁 표호가 정식으로 발행된 그 날은 바로 북요 황제가 원래 계획했던, 월령안과 야율헌일의 결혼식 날이었다.

백성들과 권력자들이 북요가 반드시 이길 것이고, 이 전쟁 표호는 반드시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 북요 황제는 곳곳에 사람을 보내 북요가 이 전쟁을 위해 얼마만큼 준비했는지 선전하게 했다.

또한 며칠 전에 전선에서 보내온 승전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

뿐만 아니라 표호가 발행된 그 날, 북요 황제는 앞장서서 백만 냥의 전쟁 표호를 샀다. 이로써 이번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

월령안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능한 상인이었다.

그녀는 즉시 호도고에게 이 소식을 크게 적어 가게 밖에 붙이라고 시켰다. 그리고 거리의 거지들을 써서 곳곳에서 이 소식을 널리 알리게 했다.

북요 황제의 긍정과 믿음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월령안은 북요 필승 전쟁 표호를 사는 것은 곧 북요를 지지하는 것으로, 북요에 자기의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선전하게 했다.

반대로 표호를 사지 않으면 곧 북요가 이길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으로 북요인이 아니라고 했다.

북요 황제마저 전쟁 표호를 사고, 사지 않으면 곧 북요인이 아니라는 등 일련의 선전을 거쳐, 북요 표호를 사는 것은 이제 더는 간단하게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이는 북요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되었다.

보통 백성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각 부락의 족장들은 월령안의 이 선전을 듣고 하마터면 욕을 퍼부을 뻔했다.

그들은 북요가 이길 것이라 믿지 않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그들의 돈은 그냥 던진 게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월령안은 전쟁 표호를 사는 것은 북요 군대를 지지하는 것이고, 사지 않으면 북요인이 아니라고 선전했다.

그들이 사지 않으면, 이는 북요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북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다.

어쩔 수 없이 부락 족장들은 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꼭 사지 않겠다고 작정했던 낙풍 족장도 억지로 몇천 냥 어치를 사게 되었다.

사지 않으면 북요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북요인이며, 북요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고 증명하기 위해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북요가 꼭 이기기를 바랐다. 아니면 본전마저 탈탈 털릴 것이다.

뭇 족장들은 거의 모두 샀다. 그리고 그들은 이걸 사기만 하면 월령안이 잠잠해질 줄 알았다.

부락 족장들이 대량으로 전쟁 표호를 사는 것을 자극하기 위해, 월령안은 '북요 필승', '사지 않으면 북요인이 아니다'라는 선전에 이어, 이번에는 구매 순위표를 만들어 냈다.

한 시진을 사이 두고, 시진마다 구매량 상위 백 명 명단을 발표했다.

각 부락 족장들은 당장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

'지금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거 아닌가?'

이 순위표가 발표되면 그들은 표호를 사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이 사서 적어도 백 명 안에 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북요 황제가 그들을 처리하지 않아도, 다른 부락 족장들이 가난하다고 얕잡아볼 것이었다.

"젠장, 끝이 없어!"

"간상배!"

"너무 뻔뻔해."

"주나라 사람은 역시 믿을 게 못 돼!"

뭇 족장들은 피를 토할 정도로 월령안에게 된통 당했다.

순위표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그들은 표호를 사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남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수시로 순위표를 주목해야 했다.

"어쩐지 일이 잘못된 것 같아.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몇몇 족장들이 한데 모였다. 누군가 생각할수록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을 꺼내자마자 괜히 심오한 척하던 한 족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음모가 있단 말인가. 이 일은…… 암만 계산해도 우리 역시 승자일 거야."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면 우리는 물론 이 할의 돈을 벌게 될 거야. 거 뭐던가…… 표호 배후에 당신도 한몫 있잖아. 이렇게 많은 돈이 모였으니 당신에게 가는 몫도 전쟁 표호를 산 돈보다는 더 많을 것이네."

북요가 이기면, 월령안만 그들을 위해 헛수고한 것이고, 그들은 앉아서 이 할의 수익을 벌면 되었다.

북요가 지더라도, 그들은 물주기 때문에 모두 다시 삼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그냥 돈을 버는 건가?"

"물론이지!"

누군가 기뻐서 소리 질렀다.

"그럼 우리가 출병할 필요가 있나. 그냥 자리에 앉아서 큰 몫을 챙기면 좋지 않은가."

"바보!"

심오한 척하던 족장은 손등으로 그의 뺨을 쳤다.

"이 정도 돈을 어떻게 풍요로운 주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가. 돈이 있으면 또 어떠한가. 당신들은 잊었단 말인가. 월씨 여인이 일개 상인으로서, 돈이 있어도 소금을 살 수 없게 만들지 않았던가. 우리가 주나라를 함락하고 그 지역을 점령하면 예쁜 여인, 아름다운 비단, 좋은 양식 모든 게 우리 것이 될 것일세. 이런 것들과 비하면, 먹지도 못하는 돈이 무슨 소용 있는가."

매를 맞은 사람은 원래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금세 흥분되어 '형의 말이 맞네' 하면서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로 가냐고 묻자, 그는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필승할 것이오. 설령 주나라를 함락해,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다고 해도, 돈 벌 기회가 있는데 벌지 않으면 멍청이라고 하지. 가서 전쟁 표호를 좀 더 사 둘 것이네."

그가 이렇게 외치자 다른 사람들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 덩달아 표호를 사러 갔다.

월령안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미처 수를 더 쓰기도 전에 북요 표호는 또 한차례 판매 최고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네요."

호도고는 월령안과 함께 표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금방 개업했을 때를 제외하고, 줄곧 손님으로 북적이는 것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진땀이 났다.

"오늘 얼마만큼 팔 수 있을까요? 일억 냥은 아니겠죠? 그렇게 큰돈은 어떤 장사도 감당이 안 됩니다. 너무 겁나는군요."

표호를 사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자 호도고는 점점 더 당황하고 불안해했다.

금액이 커질수록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이익배당금은 더욱 많았다.

전쟁을 기회로 삼아 돈을 벌기는 쉽다. 그러나 전쟁 시기에 사람들의 구매력 역시 제한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들이 어디 가서 돈을 구해 이 할의 이익배당금을 메운단 말인가.

"참 꿈도 야무진 생각이세요. 일억 냥이 그리 쉬운 줄 아세요? 오늘 하루 번 돈은 기껏해야 삼천만 냥 정도나 될 거예요."

호도고는 이 사람들이 다 돈방석에 앉아 있는 부자로 보인단 말인가.

그녀는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사러 오는 사람이 많지만, 사는 액수가 많지 않았다.

호도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북요인들은 정말 가난했다. 부락 족장들도 돈이 별로 없었다.

"삼천만 냥 팔았으니,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 환전할 때는 육백만 냥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죠. 맙소사. 우리 어디 가서 육백만 냥을 번단 말인가요?"

호도고는 놀라서 소리 질렀다. 계산대를 잡지 않았으면 그냥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게 싫으면 공고문을 붙이세요. 전쟁 표호가 백만 냥 남았으니, 이것만 팔면 없다고 하세요."

이는 원래 그녀가 마련한 비장의 마지막 패였다. 끝으로 얼마 남았다고 말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도 이 수를 쓰기는 하지만, 구매욕 자극용이 아니라 정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 내걸게요!"

호도고는 바삐 뛰어나가 공고문을 걸어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사려고 할까 두려워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가 외치자 표호 안으로 몰려드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하나같이 서로 다투어 빼앗는 것이 마치 수중의 것이 돈이 아닌 듯했다.

"이 사람들이 미쳤군."

호도고는 진땀을 닦아 냈다. 그나마 월령안이 한도를 두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정말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살 수 있었다.

"사기만 하면 이 할의 수익이 생겨요. 당신이라면 비록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겠어요?"

월령안은 호도고를 흘겨보았다.

호도고는 잠깐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이 할의 이익이 아니었다.

북요가 지면 그들이 육백만 냥을 배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삼천만 냥을 순이익으로 벌어들이는 것이었다.

짧디짧은 하루에 삼천만 냥이라는 거금이 생겼다. 무슨 전쟁을 하겠는가.

어느 한순간, 호도고는 수를 써서 북요를 패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는 이 미친 생각을 구중천으로 날려 버렸다.

그는 북요인이었다. 북요인으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었다. 당연히 북요가 이기기를 바라야 했다.

북요가 이기면 그는 주나라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북요인으로서 거대한 이익 앞에서도 북요가 패전하기를 원치 않았다.

월령안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주나라가 패전하기를 원할까.

호도고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월 낭자, 주나라가 지면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뭐 어떻게 할 게 있어요? 당연히 북요의 황후가 되어야죠."

월령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마치 그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호도고는 이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 말은 곧바로 북요 황제에게 전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