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6화 황후의 자리
하는 수 없이 북요 황제는 야율헌일더러 월령안의 반응을 사실대로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나 북요 황제는 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월령안은 다 읽고 난 뒤, 야율헌일에게 감사 인사를 한 것 말고는 다른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야율헌일도 궁금하지 않았다. 목적을 이룬 뒤, 그는 북요 황제에게 복명하러 입궁했다.
그러나 대전에 가까이하자마자 대전 안에서 크게 화난 북요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 월씨는 돈이 좀 있을 뿐이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모든 상인더러 북요에 소금을 운반하지 못하게 한 것이냐?
표호? 그까짓 망할 표호가 그리도 소용 있느냐? 그래, 북요의 표호도 곧 세워진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 상인들더러 짐의 말도 순순히 듣게 할 수 있지 않느냐? 월령안! 또 월령안이구나. 왜 어디를 가도 항상 월령안이 있는 것이냐!"
북요 황제의 분노한 고함 소리와 온화한 남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다만 그 소리는 작은 편인데다 야율헌일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해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목소리는 북요 황제를 위로하다가 또 뭔가를 묻는 듯했다.
그리고 야율헌일은 북요 황제가 후회막심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염광이 무너져서 당분간은 파낼 수 없고 염정(鹽井) 안에도 더러운 물건이 쏟아졌다고. 뭔지도 모를…… 검은 물체인데 불을 만나면 불이 붙는다고……. 그렇다면 소금을 채굴할 수가 없잖아. 소금을 채굴해내도 사용할 수가 없겠군."
이 소식을 들은 야율헌일은 월령안이 큰소리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
그녀는 정말로 북요가 소금 한 알도 사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심지어 상황은 그녀가 말한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그들은 소금을 한 알도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채굴할 수도 없었다.
야율헌일은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어떻게 뗄지도 몰랐다.
옆에 있던 내관이 그를 밀고 나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전 밖의 내관더러 자신은 복명하러 온 것이니 그를 대신해 보고해 달라고 했다.
야율헌일은 북요 황제가 지금 그를 만날 틈이 없다고 생각해 돌려보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곧 불려 들어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짧았다.
'부황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야율헌일은 마음속으로 불안해졌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부황……."
"됐다, 꿇을 것 없다."
북요 황제는 거칠게 야율헌일의 말을 자르며 갑갑한 얼굴로 말했다.
"가서 월령안에게 전하거라. 짐이 그녀에게 황후의 자리를 내줄 테니 그녀더러 북요에 남아서 북요의 황후가 되어도 된다고 하거라!"
"부, 부황……."
야율헌일은 너무 놀란 나머지 북요 황제 앞에서 겁먹은 척하는 것도 잊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북요 황제를 직시하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부황이 말을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부황이 월령안을 맞아들이겠다고? 부황이 미친 건 아니겠지?'
* * *
약한 자에게는 인권이 없는 법.
야율헌일은 북요 황제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놀라고 이해할 수 없었으며 경멸스러웠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태도와 생각은 그 어떤 현실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북요 황제가 그더러 가서 물어보라고 하면 그는 아무리 내키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물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야율헌일은 월령안에게서 온 뒤로 차도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또 말을 타고 월령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북요 황제의 말을 사실대로 월령안에게 전해 주었다.
"당신의 부황이 절 황후로 세우겠다고요?"
이 말을 들은 월령안도 황당함에 멍해지고 말았다.
'북요 황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부황의 원래 말씀은 북요 황후가 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라는 것이었어요. 아마도 같은 뜻이겠죠?"
그의 부황은 북요 황제였다. 부황의 아내만이 황후라 지칭할 자격이 있었다.
"당신 부황의 대비와 황후는 아직 안 죽었죠?"
그녀는 북요 황후와 북요 상장군 소영화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하던 육장봉의 말이 떠올랐다.
"소 황후는 잘 계시죠. 그녀가 죽어도 소씨 가문에서는 또 여식을 궁으로 보낼 수 있어요."
야율헌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저도 부황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는 거예요."
궁에서 나온 뒤에야 그는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의 부황이 월령안을 떠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월령안을 북요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떠보는 것이고 월령안은 순수하게 이익만 도모하는 상인인지 아니면 주나라의 조정을 위해 일하는 상인인지 떠보는 것이었다.
만약 전자라면 끌어들일 만했다.
월령안은 천하를 가질 만큼 부유한 북요 황제보다도 돈이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재산을 보아서라도 북요가 애써 끌어들일 만했다. 더구나 월령안에게는 돈을 버는 재주도 있었다.
만약 후자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월령안의 능력이 이렇게 큰데 그들은 월령안에게 주나라를 도와 자기들에게 대적할 기회를 줄 수 없었다.
"당신 부황이 절 황후로 세우겠다고 했을 때, 또 누가 있었나요?"
야율헌일조차 생각해낼 수 있는 일을 월령안이 어찌 짐작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떠보는 것이라면 그녀는 북요 황제의 소원을 이뤄 줄 생각이었다.
"낙풍 족장이오. 그는 부황의 명령으로 소금의 일을 알아보고 금방 복명하러 돌아왔어요."
야율헌일은 방안의 몇몇 하인들은 그의 부황이 월령안을 감시하라고 파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야율헌일은 자기가 들은 소식을 월령안에게 알려 주었다.
"그 몇몇 염광과 염정에서도 모두 안 좋은 소식이 들렸어요. 아마도 소금을 채굴하지 못할 것 같다네요."
"초원의 지혜로운 자라고 불리는 낙풍 족장인가요?"
'어쩐지 북요 황제 같은 거친 사내가 황후 자리로 날 떠볼 생각을 하나 했어. 낙풍 족장이 생각한 일이잖아.'
이건 놀라울 것이 못 되었다.
낙풍이라는 족장은 주먹밖에 쓸 줄 모르는 야만인들과 달랐다. 비하자면 그 낙풍 족장은 머리를 쓸 줄 알고 머리가 좋은 것이 주나라 사람들에 더욱 가까웠다.
사람은 소금을 떠나 살 수 없었다.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기운을 낼 수 없다.
그녀가 소문을 내지 않더라도 북요 백성들은 언젠가 소금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북요 내부는 분명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북요는 지금 주나라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내전이 일어나면 다른 부락의 족장들은 몰라도 북요 황제는 확실히 끝장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해결하기도 쉬웠다.
그녀를 북요에 끌어들여서 그녀의 이익과 북요의 이익을 한데 묶으면 모든 것이 스스로 풀릴 것이고 북요 황제의 실력도 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국의 황후 자리보다 더 여인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그녀가 허락한다면 그녀는 바로 북요의 황후가 되는 것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어 북요의 이익은 그녀의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거절한다면 그녀와 북요 사이의 원한은 풀 수 없다는 뜻이었다.
황후의 자리조차 그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북요 황제도 그녀에게 정력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북요에 소금이 부족한 일이 아직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 그녀를 전쟁터로 묶어 가서 그녀의 마지막 가치까지 쥐어짜려는 것이었다.
월령안을 이를 알아챈 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삼황자 전하께서 폐하께 전해 주세요. 저에게 북요의 황후가 될 기회를 주셔서 너무 영광이지만 북요 황제에게는 이미 황후가 있잖아요. 전 소씨 일족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요. 만약 가능하다면 폐하께서 저한테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남편으로 섬길 기회를 줄 수 있는지 여쭈어 주세요."
북요 황제가 그녀를 핍박해 선택을 하게 한다면 그녀도 북요 황제를 핍박해 선택을 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북요 황제가 그녀에게 황후 자리를 준다면 미래의 황후도 황후의 자리였다.
"저, 저…… 정말인가요?"
야율헌일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부황이 허락한다면 그는 벼락출세하는 것이 아닌가?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황자 전하께서 그대로 전해 주세요."
"부, 부황께서 허락하시면 어떡하실 건가요? 정, 정말 시집갈 건가요?"
야율헌일은 마구 뛰는 자기의 심장을 억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망할 심장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지금 너무나도 흥분되었다.
"물론이죠!"
'날 맞이할 수 있다면 말이지.'
"기다리세요. 지금 가서 부황을 찾을게요!"
야율헌일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권세라는 요물은 역시 매우 유혹적이었다. 그것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 *
야율헌일은 한달음에 황궁으로 뛰어왔다. 격렬한 달리기는 그가 침착해지게 했다.
입궁하기 전에 그는 이미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북요 황제 앞에서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위축되어 있었다.
"부황, 월령안이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야율헌일은 전전긍긍하며 월령안의 요구를 말했다.
예상대로 북요 황제는 버럭 화를 냈다.
"한 사람을 골라 남편으로 섬긴다고? 월령안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이냐? 감히 짐의 아들 중에서 고르겠다고 하다니!"
더욱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월령안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북요의 황제였다.
'월령안 이 천한 것이 감히 날 마다해?'
"폐하, 월령안이 고르고 싶다면 고르라고 하세요. 주나라의 여인은 시집가면 남편을 섬기죠. 그녀가 육씨 가문에 시집갔을 때, 육장봉을 위해 했던 일들을 보시면 주나라의 남자들이 주나라의 여인들을 얼마나 고분고분하게 길들였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아무리 날고 기는 상업계의 월씨 상사의 가주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죠."
낙풍은 차분하게 북요 황제를 설득했다. 그의 시선에는 은근한 교만의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몹시 잘 감추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폐하, 걱정하실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월령안이 시집오는 것이잖습니까. 우리 북요의 황자가 월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월령안이 시집오면 황실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니 모든 것이 폐하의 말씀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녀가 한 명 골라서 시집오게 할까?"
북요 황제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폐하께서 절 믿지 못하시겠으면 사람을 시켜 절 선생에게 물어보시지요. 그분은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낙풍 족장은 북요 황제에게 모사 절 선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낙풍 본인도 월진절을 몹시 추종했다.
북요 황제는 잠깐 생각하다가 응하고 사람을 시켜 월진절에게 물어보게 했다.
* * *
"월령안더러 북요 황실에 시집가게 한다고?"
월진절은 이 말을 들은 뒤,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건 누가 생각해낸 건데?"
'이것 참 재미있군. 난 왜 전에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이건 월령안에게 독을 써 벙어리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네.'
"낙 부락의 족장 낙풍의 생각입니다."
북요 황제 옆의 궁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좋아!"
워진절은 찬사를 보내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생각은 아주 좋아. 폐하께 전하거라. 난 월령안의 혼례를 몹시 기대한다고. 이 소식을 반드시 천하 사람들에게 알려 함께 즐기자고 폐하께 귀띔하거라."
그는 육장봉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