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3화 나라를 휘젓는 요물
"난 당신네 주나라 여인들이 명예와 절조를 가장 신경 쓴다는 것을 알고 있지. 만약 우리가 자네를 병영에 던져 군대의 기녀가 되게 한다면 자네 생각에는 자네의 그 육 대장군이 여전히 자네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나?"
북요 황제는 낙풍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낙풍의 말에 동의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월령안은 우습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전 또 낙풍 족장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줄 알았는데 마찬가지로 여인을 업신여기고 제 저력이 남자에 의해 생겼다고 여기시네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은 설마 제가 이토록 방자한 이유가 전부 육 대장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월령안은 사람들을 훑어보고 나서 놀란 얼굴로 말했다.
"설마요? 설마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거예요? 아직도 제가 남자에 기대 위세를 떨치며 나라를 휘젓는 요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됐네!"
북요 황제는 월령안이 점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굳은 얼굴로 말했다.
"월 가주가 취했나 보군. 여봐라. 월 가주를 데리고 가서 술을 깨게 하거라."
"전 오늘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술을 깰 필요는 없겠네요."
월령안은 일어서서 앞으로 다가오는 궁인들을 물리치고는 차가운 얼굴로 북요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 연회는 계속할 수 없겠네요. 전 이만 먼저 떠날게요. 참, 폐하, 북요에 있는 동안, 저는 주나라의 별궁에서 지내겠어요."
북요 황제는 냉소를 지었다.
"안……."
"저에게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
월령안은 사양하지 않고 북요 황제의 말을 잘랐다.
"오늘 밤, 저를 별궁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신다면 내일, 북요의 모든 부락의 유목민들은 전부 알게 될 거예요. 북요의 귀족들이 개인 이익을 위해 높은 가격으로 소금을 죄다 팔아서 북요 전체에 소금이 없다는 사실을요!"
월령안은 북요 황제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말했다.
"제가 큰소리친다고 말하지 마세요. 또 제가 못 해낼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서 돈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제 눈앞에 놓인 곤경 또한 대부분의 문제에 속해요.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께 충고 한마디 하죠. 절대 저희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상인들을 낮잡아 보지 마세요. 우리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상인들은 북요의 모든 부락을 드나들 수 있고 모든 부락의 유목민들과 다 잘 알고 있어요.
물론, 이것들은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인들의 눈에는 이익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그들 대다수는 자기의 이익밖에, 눈앞의 이익밖에 신경 쓰지 않죠.
제가 가격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마치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가격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상인들은 황국의 보물까지도 훔쳐서 팔 수 있죠."
말을 마친 월령안은 싸늘하게 북요 황제를 바라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북요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을 문지르며 오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몇몇 부락의 족장들은 월령안의 협박에 겁을 먹었는지 다급하게 아우성을 질렀다.
"폐하, 저년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저년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저년을 죽여서 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폐하, 모두 이 요녀(妖女)가 높은 가격으로 우리들의 소금을 사고 또 우리 백성들을 선동하여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폐하, 이 요녀는 나쁜 꿍꿍이가 가득합니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우리 북요에 큰 재난을 가져올 것입니다."
연회청에서 절반의 족장들이 일어서며 손을 잡고 북요 황제에게 월령안을 죽이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때, 그들은 이미 월령안으로 육장봉을 협박하려고 했던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들 중,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락의 소금을 높은 가격에 팔아 버렸다.
북요 황제가 모른다고 해도 그들은 부락에 저장된 소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월령안의 사람이 이 소식을 퍼뜨린다면 멍청한 유목민들은 분명 선동되어 필사적으로 소금을 저장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는 이미 소금이 없었다!
유목민들은 소금을 사지 못하면 공황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나라를 치기는커녕 유목민들의 폭동을 누를 수만 있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절대 사적으로 고가에 소금을 판 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잘못이 없으니 잘못한 사람은 월령안이었다.
잘못한 월령안을 없애 버린다면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월령안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들이 나서지 않았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으나 나서자 북요 황제는 모든 사실을 깨달았다.
북요 황제는 억지로 이 멍청이들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말했다.
"자네들의 손에 소금이 얼마나 있는가?"
"어……."
나서서 명을 청하던 족장들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그들은 자기네 손에 있는 소금이 월령안이 예상한 것보다도 적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 북요는 한 번도 소금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 소금이 부족하더라도 그들 귀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들이 소금을 저장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월 가주가 말한 것은 큰소리도 아니고 허풍 치며 하는 험한 말도 아니다. 이 뜻인가?"
북요 황제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툭, 불거져 나온 것이 몹시도 난폭하고 흉악해 보였다.
북요 황제의 수단을 본 적이 있는 몇몇 족장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다급한 와중에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월령안을 손가락질했다.
"폐하, 이것은 모두 저 천한 것의 잘못입니다. 우리 모두 그녀에게 속은 것입니다."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우리 모두 그녀에게 속았습니다. 우리가 어찌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속셈이 있을 줄 알았겠습니까?"
"그래요, 그래요. 폐하, 반드시 저 여인을 죽여서 우리를 위해 복수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북요 황제를 부추겨 월령안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책을 읽는 것은 참 중요하지요!"
오해가 아니었다. 월령안은 이 족장들을 무시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망신스러운 놈들!"
북요 황제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퍼붓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월 가주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네! 여봐라……. 아니, 됐다! 셋째야, 나오거라."
북요 황제는 손으로 구석에 웅크린 채,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있던 야율헌일을 가리켰다.
"셋째가 월 가주와 가장 친하다고 알고 있다. 이 시간 동안 너는 별궁에 남아서 짐을 대신해 월령안을 잘 접대하거라."
그는 감히 월령안을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홀로 별궁에 있는 것도 동의하지 못했다.
그는 무진 애를 쓰고 나서야 월령안을 북요로 불러왔다. 월령안 이 패를 아직 쓰기도 전에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네, 부황."
야율헌일은 공손하게 명령을 받았다.
북요 황제 앞에서 그는 말할 권리조차 없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전 폐하가 집안일을 처리하는 데 방해하지 않겠어요."
월령안은 북요 황제에게 공수해 보이고는 방자하게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폐하, 안 됩, 안 됩니다……."
"닥치거라!"
외부인인 월령안이 떠나가자 북요 황제도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탁자 위의 접시를 들고 월령안을 죽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아는 멍청이들에게 던졌다.
탁자 위의 접시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북요 황제는 한바탕 다 던졌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 아예 내려와 그 몇몇 족장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했다.
그 족장들은 스스로 잘못을 인지하고 있어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북요 황제가 때리게 내버려 두었다.
낙풍 족장은 진작에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자기까지 연루될까 두려웠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북요 황제가 체력이 부족하여 호흡이 가빠지고 나서야 앞으로 다가가 설득했다.
북요 황제는 늙어서 체력이 예전보다 못했다. 낙풍이 설득하자 황제도 자연스레 손을 거두었다. 낙풍은 맞고 있던 몇몇 족장의 감격까지 받았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북요 황제는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슬프게도 대전에 있는 백 명 넘는 사람들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북요 황제는 기운이 빠졌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낙풍 족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낙풍, 짐은 다른 사람을 모두 믿을 수 없네. 이 일은 자네에게 맡길 테니 조사해 보게."
"낙 부락은 절대 폐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낙풍 족장은 두 손을 겹쳐서 가슴 앞쪽에 놓고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낙풍 족장이 꽤 쓸모가 있는 것으로 봐서 북요 황제도 그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상냥하지 않았다.
"자네들에게는…… 자네들에게는 하룻밤의 시간을 줄 테니 부락에 남은 소금의 수량을 알아오게. 내일, 짐은 자세한 숫자를 보아야겠네."
북요 황제는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족장들이 말을 하기도 전에 떠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난 북요 황제는 발걸음을 빨리하며 급한 걸음으로 자기의 침소로 돌아왔다.
마치 뒤에서 악귀라도 쫓아오는 듯했다.
침소에 도착한 북요 황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약을 가져와. 짐의 약을 가져와! 어서 짐의 선약(仙藥)을 가져오거라!"
궁인들은 바로 약을 가져왔다. 북요 황제는 입을 벌리고 약을 삼켰다. 그러자 안색이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몽롱한 듯 눈이 풀렸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월령안이 상경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멋진 승부를 따냈다. 그녀는 북요 전체의 경계를 샀고 누구도 감히 그녀를 포로로 보지 못했다.
야율헌일은 월령안의 능력을 확인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마차에 오르자마자 월령안에게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바로 말을 잘랐다.
"삼황자 전하, 전 피곤해요."
"어……. 월 가주,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전 그저 월 가주에게 감탄하고 있을 뿐이에요. 월 가주가 북요에서까지 이토록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줄 몰랐거든요. 나서서 월 가주 역성을 들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월 가주께서는 제가 필요하지도 않으시더라고요."
여기까지 말한 야율헌일은 일부러 풀이 죽은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삼황자 전하의 호의를 받아들일게요."
'날 보호한다고? 야율헌일은 몇몇 금군마저도 통제하지 못하잖아. 내가 야율헌일이 북요 황제 앞에서 날 보호해 주기를 기대했더라면 몇 번이나 죽었을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