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화 고작 비천한 주나라 여인
"폐하께서 오해라고 하시면 오해겠죠."
월령안도 북요의 연회에서 북요의 족장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정도껏 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구나금은 언짢아서 욕설을 퍼부으며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월 가주는 무슨. 고작 비천한 주나라 여인일 뿐이지. 날 모시라고 한 것은 내가 높이 쳐 준 거야.
주나라 여인은 원래부터 우리 북요 남자의 노리개였어. 이 몇 년간, 내가 놀다가 죽인 주나라 여인이 천 명은 된다고. 주나라의 공주까지도 난……."
푸슉!
월령안은 금방 내려놓았던 칼을 다시 추켜들고 구나금의 목을 베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땅에 굴러떨어졌다. 선혈이 마구 샘솟았다.
구나금은 월령안이 이렇게 단호하고 깔끔하게 사람을 죽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의 입은 쩍 벌린 채로 말을 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지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피했다. 몸에 걸친 치마에는 피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미안해요, 손이 미끄러져서."
월령안은 칼을 들고 담담한 표정으로 북요 황제의 말투를 따라 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제가 며칠을 연이어서 자지 못했더니 눈이 안 좋아져서요. 이건 모두 오해예요. 폐하께서는 절 탓하지 않으시겠죠?"
"너……, 너……."
연회에 있던 다른 족장들은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떤 사람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어서 와서…… 저 여인을 끌어내거라. 저 여인을 끌어내거라."
시위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칼을 뽑아서 월령안에게 겨누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북요 황제가 저지했다.
"당황하기는. 월 가주가 오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폐하, 저 년이…… 저 주나라 여인이 구나금을 죽였습니다. 그녀는 이 죽음을 목숨으로 갚아야 합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족장들은 북요 황제가 이렇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화가 나 분분히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목숨으로 뭘 갚는다고요?"
월령안은 손에 든 칼을 던지며 손을 툭툭, 털었다.
"북요에서 사람을 죽이면 돈으로 배상하고 속죄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족장 하나를 죽이는 데 얼마인데요? 제가 두 배로 물면 될 거 아니에요?"
그녀는 사람을 마구 죽이지 않았다.
북요가 육장봉 손에서 패전당한 뒤, 북요 황제는 위신을 크게 잃었다. 조금 큰 부락은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몇몇 큰 부락의 족장들이 북요 황제의 자리를 대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녀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구나금이 있는 부락은 바로 북요 황제가 있는 부족 다음으로 큰 부락이었다. 북요 황제의 자리를 가장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또 그럴 기회가 가장 큰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이 족장을 죽인 일은 사실 북요 황제에게는 기뻐하기도 모자랄 일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녀의 죄를 묻겠는가?
그녀는 북요 황제를 위해 큰 골칫거리를 해결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또 북요 황제의 반응도 그녀의 추측을 입증했다.
그녀는 도박에서 이겼다.
"북요에서는 귀족들만 돈으로 속죄할 수 있다네. 자네는 외국의 여인인데 어떻게 그럴 권리가 있겠나?"
몇몇 부락의 족장들은 북요 황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난폭하게 협박했다.
"폐하, 이 외국의 여인이 폐하의 앞에서 구나금 족장을 참살했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해결 방법을 내놓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은 동정의 시선으로 북요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네 주나라 황제가 이미 충분히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북요 황제는 더욱 힘들었다.
이 북요의 족장들은 외부인인 그녀의 앞에서도 북요 황제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바로 협박했다. 이 부락의 족장들이 북요 황제를 정말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하게!"
북요 황제는 월령안의 그 시선에 화가 났다.
그는 탁자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월 가주는 월씨 상사의 가주일 뿐이 아니고 주나라 대장군의 여인이네. 우리 북요는 강자를 숭배하지. 그의 생모와 여인은 지금 모두 우리 북요에서 손님으로 있다네. 그녀들은 비록 우리 북요의 귀족은 아니나 우리 북요에서 귀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네."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군. 이 월 가주는 그 육씨의 여인이기도 하지.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육씨의 여인은 당연히 우리 북요의…… 귀한 손님이지요!"
누군가 북요 황제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크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더욱 많은 사람들은 북요 황제가 말한 다른 정보에 관심이 갔다.
"그 대장군이라는 사람은 주나라의 육장봉을 가리키는 건가? 그의 생모가 우리 북요에 있다고? 그게 누군데?"
월령안은 육장봉의 여인이라는 것을 자리에 있는 족장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이 소식보다 그들은 북요 황제가 말한 육장봉의 생모에 더욱 관심이 갔다.
월령안도 궁금해졌다.
월령안도 궁금해졌다. 현음 장공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도망쳤는지…….
그녀는 몰래 야율헌일을 힐끔 바라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야율헌일은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월령안은 시선을 거두고 티를 내지 않은 채, 북요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제왕에게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능이었다. 월령안은 북요 황제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바로 육장봉의 생모네. 그의 생모는 바로 우리 북요 있지. 또 여러분들도 모두 아는 사람이네."
북요 황제의 의기양양한 얼굴과 혼탁한 시선에 흥분의 빛이 감돌았다.
"여러분, 한번 맞춰 보게. 알아맞히면 짐은 후한 상을 내리겠네."
"현음 장공주입니다!"
맨 뒤에 앉은 야윈 체구의 족장이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현음 장공주? 어찌 그녀가?"
"하긴…… 우리가 모두 아는 사람은 주나라의 그 공주밖에 없잖아."
"그 육씨의 생모가 우리 북요에 시집온 주나라의 공주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하다니. 참 아쉽군. 만약 진작에 알았더라면 저번에 주나라와 전쟁할 때, 우리는 그 주나라 공주를 묶어서 전선으로 데려가 육씨더러 물러서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아쉽지 않아. 지금…… 육씨의 생모와 그의 여인이 모두 우리 북요에 있잖아.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어. 난 결정했어. 돌아가서 바로 출병하여 폐하와 함께 주나라를 함락하겠어."
"나도 출병하겠어!"
북요 황제의 확인도 필요 없이 낙풍(洛楓) 족장의 말이 나오자마자 여러 족장들은 그가 알아맞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북요에 있는 사람은 주나라에서 화친하러 온 그 공주밖에 없었다.
북요 황제가 설득할 필요도 없이 각 대부락의 족장들은 분분히 일어서며 출병하여 북요 황제를 도와 주나라를 함락시키겠다고 했다.
주나라의 병사들은 그들에게 만만하기 그지없는 존재여서 무서워할 가치도 없었다. 그들이 정말로 꺼려 하는 것은 주나라의 전신 육장봉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의 손에는 육장봉의 생모와 여인이 인질로 있었다. 육장봉의 약점을 꽉 잡고 있는데 그들이 뭐가 두렵겠는가?
특히 육장봉의 여인!
그들은 애초에 육장봉이 그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이 준 돈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여인이 북요에 있으니 육장봉은 군사와 양식의 공급이 끊길 것인데 어찌 그들과 싸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예전부터 부유한 주나라를 노리고 있었다. 사 년 전에 육장봉이 갑자기 나타나 병사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막아서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진작 주나라를 삼켰을 것이다.
지금 모두에게 떡고물을 나눌 기회가 있는데 그들이 어찌 이 기회를 놓치겠는가?
"좋아! 좋아! 좋아! 자네들의 요구를 짐이 모두 허락하지!"
북요 황제는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그는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냈다.
"역시 초원의 지혜로운 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낙풍이군. 여봐라, 짐이 금방 구한 그 비수를 낙풍 족장에게 전하거라."
"폐하, 하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낙풍 족장은 오른손을 주먹 쥐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허리를 약간 구부리는 것으로 경의를 표했다.
"좋아, 좋아, 좋아, 낙풍, 어서 앉게!"
북요 황제의 의기양양한 얼굴과 혼탁한 시선에는 교활한 빛이 번뜩였다. 얼굴의 살들도 한데 엉켜 흉악한 시선을 드러냈다. 야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월령안은 싸늘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냉소를 하였다.
'이 사람들은 참 쉽게도 선동되는군. 그들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와 현음 장공주를 이용해 육장봉을 물러나게 핍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육장봉은 주나라의 대장군이야. 그에게는 그의 직책과 고집이 있다고. 절대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적인 것을 잊지 않아.'
"참…… 짐이 기분이 좋아져 월 가주를 잊고 말았군. 월 가주, 어서 앉게. 오늘은 환영연이네. 특별히 월 가주 자네를 위해 준비한 것이지. 월 가주, 불만이 있다면 반드시 말하게."
북요 황제는 그제서야 월령안을 본 것처럼 손을 흔들어 월령안더러 앉게 했다. 그리고 또 궁인에게 바닥의 더러운 것들을 치우라고 분부했다.
북요 황제의 눈에는 횡사한 족장이 바로 더러운 것이었다.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치우면 그만이었다.
아까 튀어나와 횡사한 족장을 위해 불평하던 몇몇 족장들은 지금 마치 귀가 먹고 눈이 먼 것처럼 실실 웃으며 바닥의 시체를 못 본 척했다.
누군가 언짢게 여겨 나서서 '의로운 말'을 하려고 해도 옆의 사람들에게 억눌렸다.
월령안과 현음 장공주 모두 북요 황제의 손에 있었다. 그들은 북요 황제가 그들과 함께 주나라를 나누기를 바라는데 어찌 북요 황제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죽은 사람은 그들 부락의 사람도 아니었다. 정의를 호소하려 해도 그들의 일은 아니었다.
월령안의 시선은 족장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면서 월령안은 냉소를 하였다. 그리고 좌측 하단, 즉 횡사한 족장의 자리에 앉았다.
전체 연회청에서 빈자리라고는 그곳밖에 없었다.
북요 황제는 처음부터 월령안의 자리를 준비하지도 않았었다.
월령안은 그가 데려온 도구와 인질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의 중시를 받지 못했다.
"철수하고 새 연회석을 내오거라!"
인질이지만 월령안은 전혀 인질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녀는 앉자마자 엄한 소리로 명령을 내리며 주인공의 자태를 뽐냈다.
그녀 뒤에 있던 내관과 궁녀는 멍해졌다. 그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몰래 북요 황제를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위치는 북요 황제와 매우 가까웠다. 그녀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으니 황제는 분명 들었을 것이다.
그는 의아한 시선으로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곁눈질로 아직 깨끗하게 닦이지 못한 바닥의 피를 보고서는 눈빛을 반짝거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구나.'
감히 그의 연회에서 북요 부락 족장을 사람들 앞에서 죽인 여인이 어찌 남의 지배를 받는 인간일 수가 있겠는가?
이 여인은 그가 전에 만났던 연약하고, 남자에 기대어 살 줄밖에 모르던 주나라의 여인들과 달랐다.
그들 북요인들은 약한 자를 괴롭히지만 또 강한 자를 흠모하기도 했다.
그는 반드시 이 여인을 다시 보아야 했다. 또 이 여인에게 강자로서 받아야 할 존중을 주어야 했다.
북요 황제는 월령안을 난감하게 굴지 않고 궁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월 가주에게 새 연회석을 올리거라."
"네, 폐하!"
북요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야만적이고 저속했지만 궁중의 하인들은 몹시 잘 훈련되어 있었다.
궁인들은 곧 월령안에게 새 연회석을 내왔다. 바닥의 시체와 피 흔적도 말끔하게 치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