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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79)화 (979/1,004)

979화 칼을 내려놓으면 성불할 수 있다

북요 황제는 비록 말로는 대범한 척하며 월령안이 탄, 암기로 가득한 마차가 입궁하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사실 그는 몹시 두려웠다.

그는 비록 월령안을 밤새 기다렸지만 그 마차의 살상력을 알게 된 뒤로는 그녀를 만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월령안이 입궁한 뒤, 가장 외딴 궁전으로 거처가 정해졌다.

궁인들은 그녀와 월진절에게 먹을 것을 가져온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났다. 오직 그들을 지키는 금군밖에 남지 않았다.

"봐……. 사람들마다 모두 자기가 명주라고 생각하잖아. 북요 황제라는 명주는 나 같은 돌 부스러기에 와서 부딪히지도 못하잖아."

월령안은 북요인이 가져온 음식을 자세히 살핀 뒤,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먼저 월진절에게 먹였다.

"고모는 드디어 제가 줄곧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군요."

월진절은 배가 몹시 고팠다. 월령안이 입가까지 가져온 음식을 그는 두어 번 씹고 바로 삼켰다.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지."

월령안은 월진절에게 몇 번 먹인 뒤,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

이번 여정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그녀는 최대한 적게 먹고 적게 마셨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몹시 배가 고팠다.

"고모가 저에게 음식을 먹인 것을 봐서 고모에게 소식을 하나 알려 드리죠."

월진절은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 급하게 먹지 않고 기분 좋게 말했다.

"이변이 없는 한, 북요와 주나라는 이미 전쟁을 시작했을 거예요."

"오."

월령안은 국그릇을 들고 월진절에게 먹였다.

월진절은 입을 열자마자 마셨다. 고모와 조카 두 사람은 마치 수없이 여러 번 있어왔던 일인 것처럼 한 사람은 먹이고, 한 사람은 먹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고모는 놀랍지 않으세요?"

"시간문제였던 일인데 이상할 게 뭐가 있어?"

'나는 진작에 전쟁이 시작됐을 줄 알았는걸. 의외로 북요 황제는 꽤 신중한걸. 내가 상경에 도착해서야 전쟁을 일으킨 것을 보면.'

"하기는……. 북요가 주나라를 삼키고 싶어 하는 것만큼 주나라도 북요를 삼키고 싶어 하죠. 쌍방 모두 이번 전쟁을 오랫동안 기대했으니까요."

월진절은 이틀 동안 잔 덕에 정신이 꽤 맑은 상태였다. 또 음식까지 먹었으니 체력도 회복되어 조금 흥분해 있었다.

그는 생기발랄하게 물었다.

"고모, 북요와 주나라 중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주나라."

"아니, 아니, 아니! 고모는 너무 생각이 협소해요."

월진절은 마치 어른 앞에서 우쭐거리는 어린애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고모, 최후의 승자는 저예요."

"아니, 네가 협소한 거야. 네가 패배자야. 네가 약자한테 손을 쓰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넌 패배자야."

월령안은 손에 든 찐빵을 찢으며 조금씩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그 저택에서 월진절에 의해 폐인이 된 하인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선한 부류가 아니었고 원수를 대할 때도 충분히 독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고한 사람이나 약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고모, 불교에 이런 말이 있죠. 칼을 내려놓으면 성불할 수 있다. 제가 칼을 든 적도 없는데 또 어찌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월진절은 고모가 아직까지도 그를 포기하지 않고 순진하게 그가 회개하기를 바랄 줄 몰랐다.

그는 자기가 글렀다는 것을 월령안이 진작에 깨달았을 줄 알았다.

"알겠어."

월령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말없이 남은 음식을 월진절과 나누었다.

월진절은 원래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이렇게 바로 포기하자 순간 말할 흥미를 잃고 말없이 음식을 삼켰다.

마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월령안과 월진절 모두 이 고요함을 깨뜨릴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음식을 다 먹자,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물을 떠 오게 했다. 세수를 마친 뒤, 둘은 각자 휴식을 취했다.

월진절은 여전히 월령안의 품에 안긴 채, 떠나려는 생각이 없었다.

월령안도 전처럼 월진절을 안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차 안의 고요함은 따스함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월령안과 월진절 모두 이 따스함이 잠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여전히 원수일 것이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철천지원수…….

이튿날, 월령안은 여전히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야율헌일이 월령안에게 다가와 연회가 반 시진 뒤에 시작한다고 했다. 또 치장하고 준비하라는 북요 황제의 명령도 전했다.

"그러죠."

이번에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금군이 마차 위의 암기를 뜯어내고 또 금군이 마차에 쳐들어와 월진절을 구해내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금군이 그녀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그녀는 발을 들어 금군을 차 버렸다.

"나는! 네가 감히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고약한 년, 감히 나한테 손을 써!"

금군은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는 기어 일어나더니 월령안을 덮쳐 마차에서 끌어내려고 했다.

다른 금군들도 바로 칼을 뽑아 월령안을 겨냥했다. 야율헌일은 깜짝 놀랐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리고 금군을 막았다.

"너희들, 뭐 하는 짓이냐? 월 가주는 부황께서 모셔오신 손님이다. 너희들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월령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도 없었다.

"삼황자 전하, 비키시지요."

금군은 야율헌일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허튼 생각하지 마! 차라리 내 몸을 밟고 지나거라."

야율헌일은 뒤에 있는 월령안을 힐끔 보더니 이를 악물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시지요."

금군은 야율헌일을 잡고서 밀친 뒤, 다시 한번 월령안을 덮쳤다.

"그만둬!"

야율헌일은 조급해져서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금군이 곧 월령안을 다치게 할 것 같자, 금군에게 안겨 있던 월진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됐어! 잊지 마. 그녀는 나 월진절의 고모야."

금군은 제자리에 굳어진 채, 안색이 급변하며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야율헌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모, 나중에 다시 만나죠."

마차에서 내려온 월진절은 또 원래의 음울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는 바퀴 의자에 앉은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마차 안에서, 월령안의 품에 기댄 채, 월령안의 품을 그리워하던 소년은 이미 죽었다.

"안녕, 조카."

월령안은 소년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고 티 안 나게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야율헌일도 매우 눈치가 있었다. 월진절이 멀리 가고 나서야 월령안에게 귀띔했다.

"월 가주, 마차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삼황자 전하께 폐를 끼치네요."

월령안은 눈을 감고 씁쓸하면서도 복잡한 기분을 눌렀다. 그리고 야율헌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제가 월 가주를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야율헌일은 금군이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나섰다.

"고마워요."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지지가 필요한 야율헌일은 다른 사람에 비해 북요에서 그녀가 가장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야율헌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가장 좋은 증명이었다.

야율헌일도 월령안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비록 북요에서 예쁨을 받지 못하고 북요 황제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결국에는 황자인지라 궁에서도 자기의 세력이 있었다.

야율헌일의 보살핌을 받자 월령안은 쓸데없는 일에 부딪히지 않고 세수를 마칠 수 있었다.

길에서 오는 내내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며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다. 목욕은 더더욱 생각할 것도 없었다.

목욕을 마치자 월령안은 온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몹시 홀가분해졌다.

월령안이 세수를 마치고 나오자 야율헌일이 인삼탕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제가 직접 끓인 것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월령안은 구석에 놓여 있는 난로를 보고 감사를 표한 뒤, 따뜻한 인삼탕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마워요."

야율헌일은 그의 이 수가 먹혔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인삼탕 한 그릇이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목숨을 살리게 되리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월령안은 복요 황제가 연 이 연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씻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그녀가 정전(正殿)에 도착했을 때, 연회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북요에는 규칙이 많이 없었다. 좋게 말해 자유롭고 구속을 받지 않는 것이지, 주나라 사람이 볼 때는, 저속하고 야만적인 것이었다.

월령안이 연회에 도착했을 때, 부락의 족장들은 이미 마시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람마다 적어도 기녀 한 명씩 끌어안고 있었다.

무례한 사람은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기녀의 몸을 마구 더듬거리며 우쭐거렸다.

상인으로서 월령안은 크고 작은 연회에 많이 참가했었다. 그중에는 우아한 연회도 있었고 저속한 연회도 있었다. 그러나 북요에서처럼 상스럽고 저속한 연회는 정말 드물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한눈을 팔지 않고 야율헌일과 함께 대전 중앙으로 왔다.

상석에 앉아 있던 북요 황제는 월령안이 온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인들과 시시덕거리는 데 빠져 월령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부황, 월 가주께서 오셨습니다."

야율헌일은 북요 황제와 월령안이 모두 입을 열 생각이 없자 먼저 말했다.

"이 미인은 누구인가? 참 곱게도 생겼구나. 자, 자, 자, 여기로 와. 내 옆으로 와서 앉아!"

앞쪽에 앉은 한 부락의 족장은 음흉한 얼굴로 월령안에게 손을 뻗어 치마폭을 잡아끌려고 했다.

북요 황제는 미인이 먹여 주는 술을 삼키고 깔보는 말투로 말했다.

"그 뭐야……. 네가 가서 구나금(鳩那金) 족장을 모셔라."

"자, 자, 미인아 이리 와……. 내가 예뻐해 주마!"

구나금은 이 말을 듣고 순간 흥이 올라 술기운에 월령안을 덮치려 들었다.

월령안은 발끝을 돌리더니 크게 걸음을 떼어 피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시위의 칼을 뽑아 들고 구나금의 목에 겨누었다.

"난…… 죽은 사람을 모시기 좋아하는데 그래도 내가 모실까?"

"무, 무슨 일인가?"

술을 마시며 흥에 겨워 있던 각 부락의 족장들은 놀라서 술잔을 떨어뜨린 줄도 몰랐다.

월령안의 행동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은 월령안이 뭘 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다만 그녀가 칼을 들고 구나금의 목을 겨눈 것만 보았다.

연회청은 순간 매우 조용해졌다. 높은 무대에서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하던 무녀와 악사들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목이 그어져 핏자국이 나자 구나금은 온몸에 소름이 끼쳐 술이 확 깼다.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북요 황제에게 화를 냈다.

"폐하, 이게 무슨 뜻인가요?"

북요 황제는 머리가 새하얗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몸은 건장했다. 다만 욕정이 과하여 두 눈은 탁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잠깐 번뜩이는 시선이 지나간 것 같았지만 바로 또 시들시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옆에 있는 미인을 밀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짐이…… 술을 많이 마셨나 보군. 월씨 상사의 가주를 기녀로 보다니 말이야. 됐네, 이건 모두 오해네……. 월 가주, 칼을 내려놓고 앉게나."

북요 황제의 말투에는 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비록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월령안은 그의 말에서 거절할 수 없는 강경한 자세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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