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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77)화 (977/1,004)

977화 난 장식품이 되지 않을 거야

저녁 휴식 시간이 되어도 월령안과 월진절은 모두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시녀더러 옷을 갈아입거나 세수를 하는 시중을 들라고도 말하지 않고 오직 사사더러 죽 두 그릇을 가져오라고만 했다.

월령안은 심지어 소변이 마려울까 봐 물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사는 월령안이 그들에게 주인을 구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 가는 내내 눈도 깜빡이지 않았을 테니 마차에서 내려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령안의 요구에 대해 전혀 이의가 없었다.

사사가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자 월령안은 월진절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한마디만 했다.

"내려놓거라."

사사는 힐끔 보고 묵묵히 물러갔다.

월진절의 두 눈은 사물을 볼 수 없었고 소리를 내도 복부에만 기댔다. 그래서 그가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그가 지쳤다고만 생각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이상한 점을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그리고 월령안도 사사에게 자세히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죽 두 그릇을 전부 다 마셨다.

빈 그릇을 내간 뒤, 월령안은 마차에 기대어 짧은 휴식을 가졌다.

그녀는 감히 잠들지도 못했고 잠들 수도 없었다.

밖에는 온통 월진절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늦춰서 허점을 보인다면 그 사람들에게 뼈도 남지 못하게 갉아 먹힐 것이다.

그래서 월령안은 비록 몹시 피곤했으나 진짜로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졸림이 느껴지자 그녀는 모질게 자기를 꼬집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그녀가 이렇게 경계하는 것도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정 무렵, 월진절의 사사는 몰래 마차에 접근했다. 월령안이 경계를 늦추지 않았더라면 월진절은 그들에게 구해졌을 것이다.

"지쳤어."

사사를 돌려보낸 뒤, 월령안도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녀는 망연한 시선으로 마차에 기대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변경의 집으로, 노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노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북요에 온 뒤로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노인의 생사도 알 길이 없었다.

"수 오라버니의 일행이 순조롭기를."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며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앉자마자 고요한 병영에 갑자기 급박한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렸다.

"보고……."

월령안은 벌떡 일어나 앉은 뒤, 귀를 쫑긋하고 제대로 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월진절처럼 영민한 청각이 없었다. 보고하러 온 병사가 목소리를 매우 낮게 깐 탓에 그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수 오라버니 그들이 성공적으로 현음 장공주를 구해냈는지 모르겠어."

급히 보고하러 온 병사가 말을 마치자 병영은 또 고요함을 되찾았다. 병사가 출동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북요 군사들 중 월진절에게 일이 생겼다고 보고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월령안은 한참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자, 사사는 월령안과 월진절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 그리고 동시에 월령안에게 오늘은 전속으로 길을 재촉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 낭자, 폐하께서 내일 연회를 여시는데, 북요 각 부락의 족장들을 초대하셨습니다. 낭자께서는 귀한 손님이시니 우리는 반드시 연회가 열리기 전에 상경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월령안이 웃으며 반문했다.

사사는 급히 말을 잇지 않고 잠깐 기다렸다. 그는 월진절의 말을 듣지 못하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야 월 낭자께서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녀의 주변에는 모두 월진절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쓸 데 있는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고 또 추측할 생각도 없어서 직접 물었다.

"죄송……."

"말해!"

월진절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사는 입가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말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어젯밤에 주나라 무림맹주 수횡천이 사람을 데리고 현음 장공주를 구해 갔습니다."

"쓸데없는 놈들!"

여전히 월진절의 목소리였다.

"주인님께 용서를 빕니다."

사사는 즉각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며 감히 변명도 하지 못했다. 월진절의 위엄을 보아낼 수 있었다.

아니, 수하들이 월진절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꺼져!"

월령안은 월진절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어떻게 벌하는지 알지 못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은 법. 월령안은 두 글자만 얘기했다.

"감사합니다."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한 사사는 식은땀을 훔치며 일어났다. 가기 전에 그는 잊지 않고 월진절을 일깨워 주었다.

"주인님, 폐하 쪽에는……."

월령안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현음 장공주가 이미 구출되었으니 그녀도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은 월진절의 목소리를 흉내 낸 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길을 재촉한다!"

월진절의 명령이 있자 일행은 속도를 가해 앞으로 나아갔다.

마차가 속도를 가하자 몹시 덜컹거렸다. 월진절이 진작에 쓰러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월령안은 이렇게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월진절이 암기의 개폐기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이 때문에 장치를 작동시킨다면 그녀는 피를 토할 것이다.

월진절의 길을 재촉하라는 명령이 있자 일행은 길에서 멈추지 않았다. 점심 식사도 말 위에서 해결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상경에 도착했다.

* * *

삼황자 야율헌일은 수천 명의 금군을 거느리고 상경의 성문을 열었다. 그리고 북요 상경에서 월령안을 맞이했다.

야율헌일은 월령안이 월진절을 인질로 삼은 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제 부황께서 월 가주가 처음 북요로 오는 것이고 또 우리가 잘 아는 사이니 저더러 월 가주를 맞이하면 월 가주께서…… 그렇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절 대신하여 북요 황제 폐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려 주세요."

월령안은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멀뚱멀뚱 인사말을 건네며 야율헌일을 상냥하게 대하지 않았다.

야율헌일은 쓴웃음을 짓고 해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 주변의 사람을 보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월령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와 월령안이 만났을 때, 한 말과 행동 모두 이 사람들에 의해 부황의 앞까지 전해지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비록 북요 전체가 월령안이 몰래 그에게 자금을 대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특히 사람들이 그와 월령안 사이에서 월령안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낸다면 그에게도 몹시 불리한 일이었다.

월령안이 북요에 있으니 그는 언젠가 월령안에게 해명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야율헌일은 몰래 숨을 들이쉰 다음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월 가주, 부황께서 아직 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지금 입성합시다."

야율헌일은 금군더러 마차를 넘겨받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일행은 황성으로 향했다.

월진절이 데려온 대군은 입성하지 않았다. 월령안 일행과 함께 입성한 것은 월진절의 사사밖에 없었다.

마차가 입성한 뒤, 월령안은 월진절 정수리의 은침을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진절이 천천히 깨어났다.

"입성했나요?"

월진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의 귓가에는 마차와 말발굽 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월진절은 매우 빨리 자기의 처지를 알아챘다.

"응, 입성했어."

곧 북요 황제를 만나게 될 테니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월진절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허허……."

월진절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발버둥 치며 앉으려고 했으나 몸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월령안의 몸에 기대앉았다.

그는 몰래 월령안에게 몸을 툭, 부딪히고 불쾌한 듯한 소리를 냈다.

"현음 장공주가 구해졌나요?"

"응."

이것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월진절이 알고 싶다면 부하에게 묻기만 하면 바로 알 일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월진절의 총명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소년, 아쉽게 되었군.'

"고모는 역시 고모시네요. 조카인 제가 탄복합니다."

월진절은 비꼬고 나서 물었다.

"고모는 어떻게 복어로 발성할 줄 아시는 거예요?"

"너한테 고마워해야 해."

"네?"

"네 혀가 망가졌으니 난 네가 사람과 교류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나 알아보고 있었지."

"천목신교에는 이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그중 한 사람은 복어를 사용하는 데 능했는데 아이와 여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지."

"난 육장봉…… 그러니까 남상권에게 그 사람을 찾아오게 했어. 그자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데 능하지 않을까 봐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서 몇 마디 배웠어."

"강남의 일을 마치면 난 그를 청주로 보내서 널 가르치게 하려고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아마도 소용없게 된 것 같구나. 넌 복어를 아주 잘 사용하니 말이야."

월령안은 실망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사는 하늘의 뜻에 따르는 법. 그녀가 월진절을 위해 배운 복어는 결국 월진절을 대적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것 참…… 빌어먹을 우연이네요."

월진절은 월령안이 자기를 위해 선생을 찾아 복어를 가르치게 하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난 너의 소리를 따라 하려고 몰래 많이 연습했었어."

우연이 아니라 모든 것은 그녀가 노력한 결과였다.

그녀를 가르치는 사람은 어린애와 여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에만 능했다. 그녀는 월진절과 비슷한 소리를 내려고 감금된 기간 동안 매일 연습하면서 발성의 기교를 찾았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말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녀는 겨우 칠팔 할 정도만 흉내 낼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면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전 고모가 줄곧 언어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데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전 원래 상경에 들어서기 전에 고모의 목소리를 망가뜨릴 생각이었어요. 고모가 말을 못 하게 하여 북요에 있는 기간 동안에는 고분고분한 장식품으로 만들려고 했죠.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안 되겠네요."

월진절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월령안이 얼마나 끈질긴지 그도 알고 있었다. 월령안에게 입을 열 기회를 준다면 상황은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응, 소용없어. 내가 분부해야 할 것은 모두 분부했어. 난 장식품이 되지 않을 거야. 북요 전체에서도 감히 날 장식품으로 여길 사람은 없을 거야."

월령안은 월진절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며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모, 대체 뭘 준비해 둔 거예요?"

월진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내일 밤의 연회에서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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