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75)화 (975/1,004)

975화 또 다른 인질, 현음 장공주

수횡천 일행은 원래도 인수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뭉쳐 있는데다가 수횡천의 강한 전투력이 더해져 병사들의 포위를 뚫고 피로 길을 냈다.

이때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현음 장공주를 구하기 위해 그들과 반대의 방향으로 쳐들어가는 바람에 뒤를 지키는 사람이 반이나 줄었다. 수횡천 일행의 전투력은 순간 약해졌다. 수횡천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쳤다.

"이렇게 해서는 안 돼. 우리는 사람이 적어 반드시 한곳에 힘을 써야지 흩어져서는 안 돼."

육씨 가문 호위들이 사라지자 월씨 가문의 호위들만으로는 사면팔방에서 날아오는 긴 창을 막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북요 병사들의 손에는 방패가 있었다. 긴 창을 든 병사들은 방패 뒤에 숨어 있었는데 언제든지 귀신처럼 긴 창을 날렸다.

수시로 긴 창을 날리는 북요 병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은 한시도 신경을 늦출 수 없었다.

독단적인 싸움에서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자 육씨 가문의 호위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누구를 먼저 구하는 문제에서 논쟁이 생겼다.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먼저 현음 공주를 구하자고 했고 월씨 상사의 사람들은 먼저 월령안을 구하자고 했다.

"잊지 마세요. 수 맹주, 우리는 큰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수횡천이 없이는 그들만으로 중무장한 오천 명 병사들의 방어선을 뚫고 쳐들어올 수 없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먼저 현음 공주를 구해야 합니다. 이 일은 상의할 가치도 없습니다."

육씨 가문의 호위는 태도가 견결했다.

월령안은 마차 안에 있었다. 그들은 월령안이 상황을 볼 수 없었지만 현음 공주는 반라 상태로 북요의 개자식들에서 들린 채로 사람들 앞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현음 공주가 이런 치욕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이번에 큰아가씨를 구하러 온 것입니다!"

월씨 가문의 호위들은 월령안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시도 월령안이 북요인들의 손에 있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월 낭자의 손에는 인질이 있습니다. 그녀는 당분간 안전합니다."

육씨 가문의 호위는 도리를 따지려고 했다. 그러나 월씨 상사의 사람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현음 장공주는 신분이 고귀하여 북요인들도 감히 현음 장공주를 죽이지 못합니다."

현음 장공주는 황제의 친고모였다. 살아 있는 현음 장공주는 분명 북요를 위해 더 많은 이익을 바꿔 올 것이다.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북요인들이 현음 장공주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예상할 것이다.

"장공주께서는 수모를 당하셔서는 안 된다!"

"수모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현음 장공주를 북요에 보내 화친하게 하셨습니까?"

양쪽은 말하면서 다툼이 일어났고 점점 심한 말들이 오갔다. 사방에 강한 적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정말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마차 안에서, 월령안의 품에 기대 있던 월진절은 매우 기분 좋게 말했다.

"고모, 맞춰 보세요. 그들이 언제쯤 되어야 멈출까요?"

월령안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현음 장공주를 모셔 온 것이 단지 그들의 전투력을 흐트러뜨리려는 것은 아니지?"

그녀는 월진절이 자기를 협박하는 데 이용할 몇몇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유독 현음 장공주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음 장공주의 이름을 들은 월령안은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직 귀시 주인이었던 월진절은 현음 공주가 육장봉의 생모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음 장공주로 그녀를 협박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또 효과적이었다.

육장봉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든, 주나라의 백성이라서든, 황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월씨 가문의 가주이기 때문이든, 그녀는 반드시 현음 장공주의 안위를 첫 자리에 두고 현음 장공주에게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게 해야 했다.

월진절은 확실히 월령안의 약점을 잡았다.

"역시 고모가 절 알아 주시네요."

월진절은 대범하게 시인하고 미혹시키듯 말했다.

"고모, 조금 있다가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 함께 나가서 보지 않을래요? 물론, 제 눈알이 파여서 전 장님인 탓에 볼 수 없죠. 하지만 괜찮아요……. 앞으로의 연출은 제가 고모를 위해 성심껏 준비한 것이니 고모는 보시기만 하면 돼요."

"난 보고 싶지 않아!"

월령안은 월진절이 말했던 재미있는 연출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알아맞히고 싶지도 않았다.

월진절과 여러 번 겨룬 월령안은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월진절이 재미있다고 말한 것은 그녀에게 분명 재난이라는 것을…….

월령안과 월진절이 말하는 사이, 육씨 가문의 호위와 월씨 상사의 호위들은 수횡천의 설득을 듣고 쟁론을 멈췄다.

"현음 장공주를 먼저 구한다."

수횡천은 말을 마친 뒤, 또 빠르게 덧붙였다.

"현음 장공주를 구해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령안을 구해내도 그녀는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나오자 월씨 상사의 호위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돌아서서 수횡천의 뒤를 따라 함께 현음 장공주가 있는 방향으로 쳐들어갔다.

"고모의 수 오라버니는 참 고모를 잘 아네요."

월진절의 청각은 매우 뛰어났다. 시끄러운 밖의 소음 중에서도 그는 그중에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냈다.

월령안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월진절의 말에서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말을 잇지 않았다. 월진절도 고민하지 않고 화제를 다시 끌어냈다.

"고모, 정말 나가서 제가 준비한 연출을 보지 않으실 건가요?"

"잊지 마. 넌 지금 내 손에 있어."

월령안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일을 벌이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역시, 어린애들은 자고 있을 때가 가장 귀여웠다.

"고모가 설마 절 죽이기야 하겠어요?"

월진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월령안의 협박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그가 월령안 앞에서 무서운 것 없이 굴고 월령안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월령안을 함정에 빠뜨려 북요로 유인한 것은 바로 자기에 대한 월령안의 특별한 감정과 죄책감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가 월령안의 조카인 이상, 그가 지난날에 겪었던 일들이 사실인 이상, 그가 단칼에 월령안의 가슴팍을 찔러도 월령안은 되갚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그의 팔을 꺾어 자유를 없앨 뿐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월령안이고 그의 고모이며 월씨 가문의 가주와 후계자의 사랑을 받으며 큰 사람이었다.

그녀에게는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 있는 영특하고 이지적인 기질이 있으며 또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없는 감정이 있었다.

월령안이 자기의 고모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그는 월령안을 질투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야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감정을 되돌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는 모두 악의를 품고 있었으니 그가 되돌려 줄 수 있는 것도 악의밖에 없었다.

월령안을 제외하고 그는 이 세상의 호의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령안은 너무 늦게 나타났다.

그는 심연에 빠져 있었고 온몸은 죄악으로 가득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월령안은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운 줄 모르고 우쭐거리는 소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너도 날 핍박하지 마."

그녀는 월진절에 대해 마음을 모질게 먹었지만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그가 악행을 많이 했어도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하……."

월진절은 이상하게 웃고 높은 소리로 분부를 내렸다.

"밖에 있는 사람들더러 멈추라고 하거라. 수횡천 그들이 휴전하지 않으려고 하니 현음 장공주를 발가벗겨 내던지거라!"

월령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막 나가지 마!"

월진절은 비록 밑도 끝도 없이 일을 벌이지만 한 번도 쓸데없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월령안은 월진절이 그녀에게 보여 주겠다는 '재미있는 연출'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전 줄곧 막 나갔어요. 고모는 절 하루 이틀 보나요?"

월진절은 여전히 여유작작한 자태를 보이며 대수롭지 않게 명령을 내렸다.

"고모의 체면을 봐서 너희들은 수횡천에게 일주향의 시간을 주거라.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과 함께 현음 장공주의 재미있는 연출을 볼 거야."

"네."

마차 밖에서 사사가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휴전을 알리는 징이 울렸다.

징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사는 높은 소리로 월진절의 말을 반복했다.

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의 싸우는 소리가 멈췄다.

"너희들이 감히!"

사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씨 가문의 호위는 엄한 목소리로 분노했다.

"그럼 시도해 봐. 우리가 감히 할지 못 할지!"

월진절의 호위는 독하면서 말수가 적은 것이 월진절과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육씨 가문의 호위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러나 월진절에게서 수 차례 봉변을 당한 수횡천은 이 사람들이 정말 해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충동적인 육씨 가문 호위를 막았다.

"충동적으로 굴지 마. 현음 장공주는 아직 그들의 손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현음 장공주가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또 북요인들이 현음 장공주를 이토록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도 함부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정말 함부로 한다면 주나라의 보복을 감수하게 될 거야."

수횡천의 이 말은 육씨 가문의 호위에게 하는 말이자 월진절의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함부로 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 월진절은 수횡천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고모, 고모의 수 오라버니는 참 순진하네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악인들이 악행을 저지른 뒤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인계의 부귀를 누리는데요? 말로는 보복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실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어요? 보복한들 또 뭐해요? 보복해도 일이 끝난 다음에 보복하는 것이니 지금 받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고요."

"그러니 넌 현음 장공주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마. 너도 알다시피…… 난 수 오라버니가 아니야. 난 줄곧 바로 보복을 했어. 네가 감히 현음 장공주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너를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같은 협박이었지만 월령안의 말은 수횡천의 말보다 더욱 힘이 있었다.

"고모는 어떻게 저를 죽이고 본인도 죽겠다는 거예요? 같이 죽는 건가요? 고모가 그러실 수 있겠어요?

월진절은 도박했다. 그러자 그의 말에 월령안은 거칠게 월진절을 끌어당기는 것으로 대답했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나 난 너와 함께 죽을 수는 있지."

물론, 월령안은 지금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같이 죽어야 할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단지 월진절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잡아당기고 다시 도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진절은 몹시 놀랐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복어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는 떨림이 느껴졌다.

"미쳤어요?"

그가 사람을 시켜 장치한 암기는 그가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그들 두 사람 모두 다 끝장날 뻔했다.

죽어서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될 뻔했다.

그는 죽음보다 사는 게 더 고통스러운 삶을 두려워했다. 마치 지금처럼. 그는 매 순간마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느꼈다.

만약 암기를 작동시켰다면 그와 월령안 두 사람의 결과는 지금의 그보다 더 비참하게 됐을 것이다.

그는 지금 그나마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암기를 작동했다면 그와 월령안은 평생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할 것이다. 심지어 머리 말고는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고 스스로 죽지조차 못할 것이다.

"밖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길을 내서 수횡천 일행이 지나갈 수 있게 하라고. 그리고 수횡천에게 경거망동하지만 않는다면 너희들도 현음 장공주를 어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역시, 세상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월진절의 반응을 본 월령안은 월진절을 이 마차에 제압하고 암기를 장치한 것이 몹시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잠시는 이 극악무도한 소년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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