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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74)화 (974/1,004)

974화 날이 밝으면 선물을 줄게요

월진절이 대군을 움직인 뒤, 수횡천 일행은 비록 상경에 들어서기 전에 월령안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줄곧 어두운 곳에서 잠복해 있었다.

그들은 월령안이 월진절을 인질로 잡고 있어 상황이 순간 반전을 맞이한 것을 보자 기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건 길게 끌면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그날 밤에 수횡천은 사람을 데리고 쳐들어왔다.

월령안의 수중에 인질이 있어 월진절의 협박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횡천은 먼저 쳐들어갔다. 그리고 절묘한 무공을 앞세워 오천 대군을 피로 물들이며 길을 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월령안이 있는 마차로 쳐들어갔다.

"그들을 막거라!"

북요의 병사는 월령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 목숨을 걸고 수횡천을 덮치며 막으려고 했다.

"쏘아라!"

궁수들은 더더욱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끊임없이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역시 수횡천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수횡천 일행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쿵쿵쿵…….

중무장한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수횡천에게 접근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발걸음을 멈췄다.

"죽여라!"

병사들은 방패 뒤에 숨어서 끊임없이 활을 쏘았다.

그러나 수횡천의 무공은 매우 강했다. 북요 병사들에게 방패로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그들은 그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북요의 병사들은 수횡천의 발목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 목숨으로 시간을 끌었고, 그렇게 하고 나서야 겨우 그를 잡아 둘 수 있었다.

마차 밖에서는 사람이 죽으며 내는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마차 안에서는 바깥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던 월진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고모의 수하에 고모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참 부럽네요. 그리고 수 맹주 같은 의리도 있고 재주도 있는 오라버니가 있는 것도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상품은 바로 사람이야. 사람은 무한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거든. 월씨 가문은 줄곧 잠재력이 있는 사람에게 돈과 감정을 투자하기 좋아했지."

월령안은 바깥의 소리를 듣고 일순간 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오천 군사들의 손에서 그녀를 구해내려면 수횡천 일행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그녀는 그래도 그들이 최선을 다해 그녀를 구해내기를 빌었다.

비록 그녀는 상경에서도 준비를 해 두었지만 미리 구해질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이다. 누군들 미지의 일로 도박을 하겠는가?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목적이 있는 감정은 가식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바깥의 싸우는 소리를 들은 월진절은 보지 못하더라도 자기 측 사람의 피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월령안과 흥미진진하게 잡담을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이유 없이 상냥한 건 없어. 내가 널 살뜰히 대해 주는 것도 넌 내 오라버니의 혈육이기 때문이야. 네가 만약 내 조카가 아니었다면 넌 진작에 천 번도 더 죽었어."

월령안은 냉소를 하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도, 이익도 바라는 것이 없이 잘 대해 준다면, 만약 누군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널 잘 대해 준다면 넌 받아들일 수 있겠어?"

"고모는 항상 일리가 있는 말만 하죠."

월진절은 월령안의 품에 기대앉아 동네 단순한 소년처럼 고분고분했다.

"고모 생각에는 고모의 수 오라버니가 고모를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네가 다른 수를 꾸미지 않았다면 그들은 가능해."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심지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그녀를 구할 것이니까.

"고모는 역시 절 잘 아시네요."

월진절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었다.

"고모, 인내심 있게 날이 밝기까지 기다리세요. 날이 밝으면 커다란 선물을 줄 테니까요."

"날이 밝을 때……."

월령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월령안은 지금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고 날이 밝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맞아요, 날이 밝을 때까지예요. 고모의 수 오라버니가 날이 밝기 전에 고모를 구해 갈 수 있다면 전 하는 수 없죠. 그러나 그들이 날이 밝기 전에 고모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고모는 도망치지 못하고 순순히 저와 함께 상경에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월령안의 품은 월진절이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그는 월령안의 품에 기대앉아 느긋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온몸을 감돌던 우울한 기색이 다 사라지고 소년이 가질 만한 명랑함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령안은 보아내지 못했고 월진절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 기다리지."

육삼과 추수는 이미 수횡천에 의해 구해졌다.

월령안은 자세히 생각해 보았다. 이제 월진절의 손에는 그녀를 북요에 머무르게 할 그 어떤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 먼저 조금 잘게요. 날이 곧 밝으면 절 깨워 주세요."

월진절은 배불리 먹은 고양이 같았다. 목구멍으로부터 만족스러운 '갸르릉'소리가 들렸다.

그는 월령안의 품에서 편한 위치를 찾아 몸의 힘을 풀고 기대앉았다. 그는 월령안이 그가 잠든 틈에 그에게 나쁜 짓을 할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월진절처럼 온갖 학대와 고생을 당한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다. 또 자기가 믿지 못하는 사람 옆에서 무방비상태로 잠들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자더라도 눈을 뜨고 잘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 옆에서 그는 몹시 달콤하게 잠이 들었다.

월진절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 월령안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월령안이 있는 이상, 자신은 몹시 안전하고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시선을 내리깔고 잠자는 월진절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손은 마치 스스로 의식이 생긴 것처럼 월진절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월진절도 반항하지 않고 곧 고른 숨소리를 냈다.

월령안은 품 안에서 조용히 잠든 소년을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입꼬리는 반쯤 올라간 채, 멈춰 버렸고 긴 한숨으로 바뀌었다.

마차 안은 따스함이 넘쳤다.

마차 밖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북요의 병사들은 사람 목숨으로 수횡천의 발걸음을 잡았다.

수횡천의 발아래는 온통 어질러진 시체였다. 그러나 수횡천과 북요의 병사들은 모두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수횡천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차로 나아갔다.

더 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북요의 병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투입했다.

마찬가지로 앞쪽의 전투가 아무리 격렬하고 죽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마차 밖을 지키고 있는 기마병과 궁수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 든 긴 창과 화살들은 마차를 가리키고 있었다. 월령안이 마차에서 도망칠 흔적만 보인다면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손을 쓸 것이다.

월령안은 그녀를 남기려는 북요의 결심을 보아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녀는 월진절을 인질로 잡고 마차에서 내린 뒤, 수횡천과 만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수횡천이 빨리 방어선을 뚫고 월진절이 손을 쓸 기회를 주지 말라고 빌 뿐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이다.

월진절이 눈을 붙이자마자 변고가 생겼다!

다그닥다그닥…….

하늘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

월진절의 구원병이 도착했다.

소리만 듣고도 월령안은 천 명보다 적지 않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

"구원병이 아니에요!"

월령안의 품에 기대앉은 월진절이 깨어났다. 그는 월령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것처럼 먼저 입을 열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말한 고모더러 순순히 저와 함께 상경으로 가자던 이유예요."

날이 밝고 말고는 그가 대충 둘러댄 것뿐이었다.

수횡천 일행은 어두운 곳에 숨어 단념하지 않고 있는데 그가 어찌 다른 방법을 대지 않았겠는가.

그한테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의 이 고모는 너무 감정을 중히 여겼다. 조금도 월씨 가문 사람 답지 않고 약점이 수두룩해 상대하기 매우 쉬웠다.

월진절은 사람을 시켜 현음 공주를 들어 왔다!

말 그대로의 들고 온 것이었다.

여덟 장수는 백옥 침대 하나를 들고서 전차(戰車) 위에 서 있었다. 백옥 침대 둘레에 붉은색의 문발이 달려 있었는데 행렬을 따라 전진하자 문발은 보일 듯 말 듯, 무언의 유혹을 내비쳤다.

얇은 면사포를 쓰고 가슴을 살짝 드러낸 현음 공주는 기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정상적이지 않은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두 눈을 살짝 감은 것이 감출 수 없는 욕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일행은 몹시 우쭐거렸다. 손에 든 횃불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불빛이 먼저 보였다.

그들이 다가오자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높이 들린 채로, 백옥 침대에 누워 있는 현음 공주였다.

수횡천 일행은 등에 등을 맞댄 채로 모여 있었다. 수횡천을 등지고 있던 몇몇 호위들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침대를 바라보며 놀라운 시선을 금치 못했다.

"수 맹주,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북요의 기마병들은 계속해서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들었고 수횡천도 사람을 죽이는 데 지쳐 있었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구원병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은 한꺼번에 쳐들어오지 못할 거야. 너희들은 날 대신해 엄호해 줘. 내가 억지로 뚫고 쳐들어갈 수 있을지 볼게."

"현음 장공주예요. 저자들이…… 저자들이 장공주를 이렇게 대하다니!"

육씨 가문의 호위는 백옥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을 보고 눈에 불을 켜며 소리를 질렀다.

"썩을 놈들! 어서 장공주를 내려놓거라."

이때, 그들은 이미 월령안을 구할 생각을 버리고 돌아서서 현음 장공주가 있는 방향으로 쳐들어갔다.

"장공주를 풀어 주거라!"

"너희들…… 어서 장공주를 내려놓거라."

"현음 장공주?"

수횡천은 강호 사람으로서 조정의 사무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현음 장공주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잠깐 멍해졌다. 그는 현음 장공주가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잠깐의 멍해짐으로 포위망이 또 좁아졌다. 북요의 병사들은 이 기회를 틈타 몰려와 수횡천 일행을 단단히 포위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반대 방향, 즉 현음 공주의 방향으로 쳐들어갔다.

"가지 마, 위험해!"

월씨 가문 상사의 호위는 다급히 그들을 잡아끌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저분은 바로 현음 장공주란 말이다!"

육씨 가문의 호위는 눈이 벌게져서 멀지 않은 곳에서 화물처럼 들린 현음 공주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들은 용맹했으나 북요의 병사들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들의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 긴 창이 날아왔다.

푸욱…….

창 끝이 살을 파고들었다가 또 뽑혔다. 피가 잔뜩 튀었다.

수횡천이 그들을 위해 길을 내지 않자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둘러싸인 채, 몸이 베어지고 피를 보았다.

그러나 육씨 가문의 호위들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여전히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눈에는 백옥 침대에 누워 있는 현음 장공주밖에 없었다.

그들 주나라의 장공주는 이런 수모를 당하면 안 되었다. 그들은 반드시 현음 장공주를 구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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