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3화 너 지금 두렵구나?
"절 묶으신다면 고모도 도망치실 수 없어요."
월씨 가문의 그 사람들에게 발견된 뒤로 그는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한 적이 없었다. 쇠사슬에 묶여 자유를 잃자 그는 난폭해졌다.
그는 어렸을 때, 귀시의 사람들에게 쇠사슬로 목이 묶여 개처럼 땅에서 기며 혀로 음식을 핥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거의 잊어버리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이 착한 고모 덕분에 그는 그 기억이 또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또렷해졌다.
심지어 그 무기력함, 두려움, 서러움, 굶주림, 고통의 느낌까지도 떠올랐다.
몹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월진절은 입술을 꼭 악물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의 몸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
그는 월령안이 자기의 약점을 발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참으며 복어로 빨리 말했다.
"고모는 도망가고 싶으시죠? 제가 기회를 줄게요. 말 한 필 준비하라고 할 테니 절 데리고 도망가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라는 인질이 있는 한, 그들은 감히 고모를 뒤쫓지 못할 거예요. 고모만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한달음에 변방에 도착하실 수 있어요."
"여긴 북요야."
'월진절은 내가 멍청이로 보이는 건가?'
북요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었다. 이곳에서 상경까지 멀어도 이틀의 노정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서 변방까지 도망친다면 적어도 열흘에서 보름은 족히 걸렸다.
그동안 월진절에 의해 굶주린 것은 물론, 몸이 성하다고 해도 그녀의 작은 체구로는 한달음에 변방까지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처럼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길만 가고도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시도해 보지 않겠어요? 고모의 사람, 그리고 수횡천이…… 그들이 아직도 밖에 있을 텐데요. 고모가 도망만 친다면 고모를 맞이할 사람이 나올 거예요. 수횡천의 실력으로는 고모도 아시다시피…… 세상에서 육장봉 말고 그 누구도 그의 손에서 고모를 납치해 갈 수 없어요."
월진절은 최선을 다해 월령안은 현혹시켰다. 그러나 월령안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월진절이 말한 것처럼 지금 북요에서 그녀는 월진절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녀가 지금 도망치지 않는다면 밖에 있는 무장 병사들은 월진절이 그녀의 손에 있다는 이유로 무모하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약 정말로 도망친다면 그 병사들은 월진절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고모보다도 더 그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월령안, 저들이 고모를 가지고 뭘 할지 아세요?"
월진절은 한참이나 말했지만 월령안이 꿈쩍도 하지 않자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북요 황제는 고모를 가지고 북요 일흔두 개 부락의 족장더러 출병하게 설득할 거예요. 고모에 대한 육장봉의 마음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니 고모가 있는 이상, 북요 일흔두 개 부락의 족장들은 분명 마음이 움직일 거라고요. 월령안, 지금 도망치지 않는다면 육장봉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고 육장봉이 북요를 멸하는 데 걸림돌이 될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너 지금 두렵구나?"
월령안은 월진절의 몸이 몹시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두려움을 느낀 것처럼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몸이 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월진절의 몸은 매우 심하게 떨렸다. 월령안이 자세히 살펴보니 월진절은 몸이 불편하거나 발작이 난 것도 같지 않았다.
오히려 외상 후유증 같았다.
물론, 월진절은 연기를 하며 그녀를 속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먼저 말을 꺼내 좀 떠보려고 했다.
"그렇다면요? 절 풀어 주실 건가요?"
월진절은 월령안에게 자기의 약하고 무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묻자 그는 피할 수도 없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불공평함과 학대를 받을 때, 피하는 것은 소용없었다. 가해자가 선심을 베풀어 자기를 풀어 줄 것을 기도하는 것 또한 소용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힘을 모아 적극 반항하는 것이었다. 가해자의 목을 물어뜯어 그들이 더 이상 학대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같은 상황이면 넌 날 풀어 줄 거야?"
월진절의 반응이 점점 커졌다. 월령안은 월진절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어렸을 때 받은 상처의 영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월진절의 목을 둘렀던 쇠사슬을 살짝 풀어 주었다. 그러자 월진절의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월령안은 월진절의 몸이 정말 스스로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마음이 약해지게 연기를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월진절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수횡천의 전례가 있는지라 월령안은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아니요!"
월진절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더러 풀어 달라는 거지?"
월령안이 반문했다.
"고모는 제 고모니 절 보살피는 게 책임이자 의무잖아요. 아니에요?"
월진절은 조금만 좋아졌을 뿐, 몸은 여전히 덜덜 떨렸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맺혔다.
만약 그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목소리도 떨렸을 것이다.
그는 복어를 사용하는 탓에 몸이 심하게 떨려도 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월씨 가문에서는 자식을 늑대처럼 키운다는 것을 몰라?"
만약 월진절이 그녀의 앞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월진절이 선한 부류가 아니고 그녀에게 좋은 마음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원칙 없이 그를 보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월진절의 칼날에 그녀에게 휘둘러진 뒤라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고모가 저한테 빚진 거예요!"
월진절은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그의 머리는 매우 맑았다. 그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저한테 빚진 거예요. 이건 저한테 빚진 거예요. 월령안…….."
월진절은 갑자기 몸부림을 치더니 목에 둘렀던 쇠사슬이 순간 팽팽해졌다.
"읍……."
월진절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떨리던 몸이 웅크려졌다. 입으로는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읍읍……."
그가 움직이자 두 손과 목을 감았던 쇠사슬이 갑자기 팽팽해지며 그를 꽉 조였다. 그는 마치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입으로는 새끼 짐승이 부상을 입은 듯한 낮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팔은 월령안에게 꺾어졌고 손에는 쇠사슬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몸부림을 치며 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숨기려 했다.
그는 매우 두려웠고 또 매우 나약했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의 손은 머리보다 빨랐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납득하기 전에 이미 월진절의 목을 둘렀던 쇠사슬을 풀고 그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나야, 내가 여기 있어."
"엉엉엉……."
월령안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공포로 가득 찬 낮은 울음소리뿐이었다.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월령안은 월진절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 몸부림을 친 탓에 껍질이 벗겨진 손목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에는 고뇌의 흔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의 몸의 쇠사슬을 풀어 줄 수 없었다.
일단 풀어 준다면 그녀는 주도권을 놓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녀는 그가 일부러 목의 쇠사슬이 조이게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반응은 진실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의적인 것이기도 했다. 일부러 과격한 반응을 보여 그녀의 앞에서 고육지책을 쓴 것이었다.
월령안은 줄곧 자신에게 모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월진절이 자해를 마다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의 상처를 그녀의 앞에서 드러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조카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령안은 끊임없이 몸을 떠는 월진절을 바라보며 모질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월진절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난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난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월령안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꼈다.
그녀는 그를 풀어 줄 수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하하……."
월진절은 거칠게 숨을 쉬며 몸을 웅크린 채, 월령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월진절의 마음속 상처는 목의 속박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월령안이 그의 목에 있는 쇠사슬을 풀어 주자 월진절의 반응은 그렇게 과격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안고 다독여 주자 월진절은 천천히 평온함을 회복했고 웅크렸던 몸도 펴졌다.
"고모, 고모는 참 독해요!"
마음을 가라앉힌 월진절은 고개도 들지 않고 여전히 월령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난 월씨야."
'월씨 가문 사람은 다 독해.'
월령안의 목소리는 울먹거린 뒤의 갈라짐과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고모, 고모가 절 일찍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월진절은 아쉽다는 듯이 월령안의 품에서 나왔다.
그는 월령안 품속의 따뜻함이 그리웠다.
이건 그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으나 또 매우 갈망하는 따뜻함이었다.
그는 만약 자기의 어머니가 살아 있었더라면 어머니의 품이 이보다 더욱 따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어머니는 분명 월령안보다 마음이 약하리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월령안도 그에게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보다 더욱 살뜰하게 대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화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또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미웠다.
"미안해, 널 일찍 찾지 못해서."
월령안은 눈을 감으며 시선에 드리운 서글픔과 아쉬움을 지웠다.
짧은 따뜻한 정을 나눈 뒤, 그들 두 사람은 여전히 적수였다. 그녀는 잊지 않았고 잊을 수도 없었다.
"사과의 선물로 절 마차에서 내려 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고모를 굶기지도 목이 마르게도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
월진절은 월령안의 죄책감을 이용할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월령안은 비록 죄책감이 들었으나 여전히 굳세게 말했다.
"난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최선을 다해 보완했다. 그러나 그녀의 조카가 원하는 것은 보완이 아니었다.
그녀의 양보는 상대방의 핍박만 바꿔 올 뿐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가족의 정을 얘기할 때가 아니기도 했다.
상업계에서도 아버지와 자식도 없는 법인데 생사의 '큰 사업'을 얘기하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말로 하는 사과는……."
월진절은 비웃었다.
"고모는 역시 주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상인이네요. 역시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네요."
"그래서 좀 조용히 해. 더 이상 꼼수를 부리지 말고. 너도 알다시피 난 절대 무조건적으로 너에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아."
말을 하면서 월령안은 다시 한번 쇠사슬로 월진절의 목을 둘렀다.
그러나 전의 일로 월령안은 쇠사슬로 그의 목을 감지 않고 월진절더러 그녀에 기대앉게 했다. 그리고 쇠사슬을 그의 가슴팍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하니 월진절이 막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의 목은 속박당하는 느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하면 월령안도 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매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