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0화 함정에 빠진 수횡천
"하지만 넌……."
수횡천은 머뭇거렸다.
월령안의 이 조카는 미치광이였다. 그는 월령안이 이 미치광이의 손에 있다가는 고통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직접 월령안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 못한다면 시름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
"셋까지 세었어요, 수 맹주!"
월진절을 수를 세기 시작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떤가?
주도권은 그의 손에 있었다. 그가 어떻게 하고 싶으면 그러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수횡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입 모양으로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수횡천은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가겠다!"
말을 마친 수횡천은 돌아서서 훌쩍 뛰어오르더니 사라졌다.
"수 맹주의 무공은 정말 강하네요."
월진절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그는 바퀴 의자를 끌고 월령안 앞으로 와서 고개를 갸우뚱한 채,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제 두 손과 두 다리를 잘라 버린 사람이 저더러 근육과 뼈가 아주 좋다고 했어요. 무술을 연마하기 좋은 몸이라고 했죠. 고모, 제가 만약 고모의 곁에서 자랐더라면 수횡천의 제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그처럼 한번 날아올랐다 하면 십 척 밖이고, 고모가 위험에 처했을 때, 피로 길을 내면서 고모를 구하러 오지 않았을까요?"
"이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게 없어."
월령안은 눈앞의 이 소년이 마음을 공격하는 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우세를 몹시 잘 이용했다. 한 번, 또 한 번 그녀가 자책하게 하고 마음이 약해지게 하며 그녀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년이 일부러 언어로 마음을 공격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 월령안은 소년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만약 그녀의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년이 그녀의 곁에서 자랐더라면…….
그렇다면 모든 것이 참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만약이 없었고 눈앞의 궁핍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적밖에 될 수 없는 거예요. 고모와 저, 둘 중 한 사람만 살 수 있죠."
월진절은 천천히 곧게 앉았다. 그리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가자, 수 맹주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월진절은 바퀴 의자를 움직여 앞으로 두어 걸음 가다가 또 멈춰 섰다.
그가 멈추자 북요의 사사들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먼 곳에서 미풍이 살짝 불어왔다.
조용히 앉아 있는 월진절의 귀 끝이 살짝 움직였다. 월령안은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그러자 그녀의 귓가에 월진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 맹주, 신용을 지키지 않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전 멍청이에게 화를 내지는 않죠. 수 맹주, 잘 들으세요……. 상경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우리 고모를 구하러 온다면 전 그것도 당신에게서 받아낼 거예요. 한 번 구하러 오면 전 고모의 한쪽 눈알을 파낼 것이고 두 번째에는 전 고모의 코를 베어 버리고 입을 꿰맬 거예요. 세 번째로 오면 전 고모를 고기 절임으로 만들어서 항아리에 넣고 들고서 상경으로 갈 거예요. 아무튼, 전 고모가 살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먼 곳의 미풍이었다. 월진절의 귀 끝도 따라서 움직였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수횡천이 월진절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수횡천의 얕은수는 이렇게 드러나고 말았다.
"굴러들어온 멍청이 같으니라고!"
월진절은 매우 기분 좋게 바퀴 의자를 움직이며 앞으로 갔다.
수횡천 이 굴러들어온 호위가 있자 월진절은 더 이상 행적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길 가는 내내 그는 몹시 으스댔다. 오히려 월령안이 그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심지어 몇 번은 일부러 월령안을 객잔에 혼자 내버려 두기까지 했다.
뒤를 따르고 있던 수횡천은 월령안이 홀로 남겨진 것을 보자 속으로 구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월진절의 협박을 떠올리자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을 홀로 객잔에 남겨 둔 것은 분명 함정이었다. 그가 만약 손을 쓴다면 월진절 그 녀석에게 월령안을 해칠 수 있는 핑계를 주는 것이 되고 만다.
그는 손을 쓸 수 없었다!
"참 아쉽네요. 만약 당신이 손을 썼더라면 저한테는 고모의 눈알을 파낼 수 있는 이유가 생겼을 테니까요. 전 줄곧 그것을 맛보고 싶었다고요."
처음에 월진절은 아쉬운 얼굴로 이것은 그가 꾸민 함정이라고 것을 인정했다. 수횡천은 손을 쓰지 않은 것을 몹시 다행으로 여겼다.
두 번째로 월진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 맹주, 이번에 고모 옆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어요. 당신은 손만 뻗으면 데려갈 수 있었다고요. 아쉽게도 전 기회를 드렸는데 당신이 잡지 않았죠."
수횡천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심지어 그는 정말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월령안은 혈도가 눌려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수횡천이 그녀의 안배에 따라 여기서 월진절에게 농락당하지 말고 먼저 상경으로 가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세 번째로 월진절은 장난을 반복했다. 그는 월령안의 혈을 점한 뒤, 그녀를 홀로 객잔에 남겨 두었다. 그녀의 옆에는 사사가 한 명도 없었다.
월령안이 홀로 있는 것을 보고 수횡천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월령안을 구해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자마자 월진절은 사사들을 데리고 나타나 수횡천의 덜미를 잡았다.
이건 함정이었고 수횡천은 함정에 빠졌다.
"아쉽네요. 수 맹주가 너무 늦었네요. 한 걸음만 빨랐어도 고모를 구할 수 있는 건데."
사람을 죽이려면 먼저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 수횡천을 가지고 논 것으로 부족한지 월진절은 잊지 않고 수횡천을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수 맹주가 앞서 두 번이나 고모를 구해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손을 쓰지 않은 것을 봐서 이번에는 고모의 눈알을 파내지 않을게요. 그러나……."
월진절은 잠깐 멈췄다가 음산한 기운이 섞인 청아한 소년의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없어요. 만약 다음에 또 이런다면 당신이 무림 맹주라도 소용없어요."
'이렇게 멍청한 사람도 무림 맹주로 되는데 나는 왜 사람 같지도, 귀신 같지도 않게 사는 것일까.
이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다 망가지는 것이 좋겠어!'
"날…… 가지고 놀아?"
재차 농락당한 수횡천은 아들뻘인 이 소년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월진절은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역시 수 맹주답네요. 그 호두알만 한 머리에 들어찬 것은 분명 다 물일 거예요."
"너……."
수횡천은 화가 나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이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악독한 아이가 있다는 말인가!
월진절은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앞서 두 번은 정말 일이 생겨서 고모를 감시할 사사를 남기지 못했어요. 만약 수 맹주가 손을 썼더라면 분명 구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아쉽지만 기회를 놓쳤으니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
남은 길에서 기회가 생기더라도 수횡천은 더 이상 감히 월령안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그의 함정일까 두려워 다른 사람들도 월령안을 구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멍청이는 이렇게 다루기 쉬웠다.
수횡천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난 다시 너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이 소년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는 온통 꿍꿍이였다. 그는 소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 당신을 속이지 않았어요. 전에 두 번, 고모의 옆에는 정말 사사들이 없었어요. 수 맹주의 무공으로 제삼자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거예요."
월진절은 바른 자세로 앉은 순한 모습으로 말했다.
"기회를 손에까지 넣어 줬는데 당신이 스스로 잡지 않은 거죠. 제 고모가 만약 북요 황제에 의해 몸이 잘린 채, 북요에서 죽는다면 그건 분명 수 맹주 당신의 잘못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
수횡천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앞서 두 번 그는 확실히 월령안의 주변에서 제삼자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면 정말 그가 월령안을 구할 기회를 놓친 것인가?
"전 당신을 속일 필요가 없어요, 수 맹주."
말을 마친 월진절은 또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렇게 놓치다니."
수횡천은 번개라도 맞은 듯, 후회에 빠졌다.
"너, 날 속이는 거야."
"아니죠, 전 당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죠. 수 맹주, 다음에 한 번 더 시도해 보세요. 제 고모 옆에 정말로 지키는 사람이 없는지 아니면 가짜로 지키는 사람이 없는지. 맞힌다면 고모를 내어드리죠. 틀린다면 전 고모의 눈알을 파내 간식으로 먹을 거예요."
월진절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기분이 몹시 좋은 것이 틀림없었다.
말을 마친 그는 수횡천을 내버려 두고 바퀴 의자를 끌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오직 안색이 창백한 수횡천만이 제자리에서 멍해진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월령안은 사사에게 혈도가 눌려 침대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밖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수 오라버니는 너무 단순해. 이렇게 끌려다니다가는 월진절에게 당해 죽겠어.'
그녀는 수횡천을 북요로 불러 자기를 보호하라고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월진절에게 농락당해 의심이 들기 시작한 수횡천이 앞으로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은 길들일 수 있는 부류였다.
한번 뱀에게 물린 사람은 십 년 동안 뱀을 무서워한다. 월진절이 지금 하는 짓은 바로 수횡천을 길들이는 행위였다.
수횡천은 물론이고 그녀도 이렇게 여러 번 농락당한다면 길들여지지는 않더라도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예상대로 앞으로 길 가는 내내 수횡천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설령 북요 사사들이 방어를 소홀하게 해도 수횡천은 손을 쓰지 않았다. 또 월진절이 꾸민 함정일까 두려워서였다.
심지어 육장봉과 월씨 상사의 사람들이 월령안의 행적을 발견하고 월령안을 구하려고 할 때도 수횡천에 의해 저지당했다.
월령안은 월진절이 알려 줘서 이런 일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월진절이 좋은 마음으로 알려 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월령안에게 이 말을 한 것은 일부러 월령안을 자극하려는 것이었다.
"고모, 수횡천은 참 좋은 협력자예요. 그가 있으니 우리는 길을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잖아요. 심지어 얄미운 파리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들이 와도 너에게 목숨을 바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
월령안은 월진절이 다른 수를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노정에서 월진절은 신출귀몰했다. 그는 툭하면 사라졌다.
월령안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월진절이 사라질 때마다 그들은 성곽과 부락을 지날 때였다.
월령안은 담대하게 추측했다. 월진절은 현지의 주둔군, 수령과 만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래서 수횡천이 그녀를 구하려는 사람을 막는 것도 좋았다.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으니까.
비록 이 중에 몇 번은 정말 사사들이 소홀한 것일 수도 있으나 월진절 이 사람은 한번도 예상대로 행동한 적이 없어 언제 진짜고 언제 가짜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모험하며 떠보는 것보다 아예 전부 함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나았다. 월진절에게 농락당해 반복적으로 자기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월령안은 수횡천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시간 동안, 수횡천은 매일 배로 고통받으며 머뭇거리고 후회했다.
하는 수 없었다. 수횡천의 성격이 이러했다. 너무 감정을 중히 여기는 탓에 이지적이지 못하고 결단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래야 수횡천이었고 그녀가 아는 수 오라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