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67)화 (967/1,004)

966화 육장봉 네가 그녀를 택한 거야

"난 진작에 생각했어야 했어. 내가 북요를 이기고 그녀를 떳떳하게 주나라로 모셔올 수 있을 때, 그녀는 주나라로 돌아오시지 않으려고 했지. 그때 난 이미 생각했어야 했어. 그녀가 원하는 것은 주나라의 국력이 북요를 이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북요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녀는 그 누구도 희생시킬 수 있어. 나까지도!"

조계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장봉, 모든 사람은 다 고모를 질책할 수 있지만 너만은 그러면 안 된다고!"

"아니! 모든 사람은 그녀를 질책할 자격이 없지만 나만, 오직 나만 그녀를 질책할 수 있어."

육장봉은 비꼬는 말투로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그의 말투는 차가웠다.

조계안은 순간 화가 났다.

"현음 고모는 널 위해……."

"그녀는 날 위했던 적이 없어!"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을 잘랐다.

"그녀가 날 낳은 건 그녀의 감정을 위해서였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였어! 그녀는 날 고려한 적이 없었어. 날 한 번이라도 생각했었다면 그녀는 그때 날 낳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조계안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와 육장봉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네가 어떻게……."

"난 그래도 돼!"

육장봉의 조계안의 주먹을 잡았다.

"난 그녀가 날 낳았다고 탓해도 돼!"

육장봉은 힘껏 조계안을 물리쳤다. 조계안이 뛰어오는 순간, 그는 발을 들어 조계안의 복부를 막았다.

"넌 월령안 조카를 조사했으니 그 아이가 당한 일을 알겠지. 내 아버지는 비록 감정적이고 멍청하기는 해도 인간적인 면은 있어 나를 버리지 않았어. 또 명도 길어 죽지도 않았지. 그래서 그럭저럭 날 키운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난 또 다른 월령안의 조카가 되었을 거야. 알겠어?"

조계안은 온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육장봉은 발을 거두고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조계안, 난 어머니가 없어.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녀는 나 육장봉의 어머니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주나라의 현음 공주셨어."

"육장봉, 넌 현음 고모를 원망해서는 안 돼."

조계안은 변명할 수 없어 도리만 말해 주었다.

"넌 잘 알 거야. 이건 정말 좋은 시기야. 이런 시기에 북요로 출병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해. 북요가 원기를 회복한 뒤에 우리가 북요를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두 배, 세 배, 심지어 다섯 배, 열 배의 대가를 치러야 해. 한 사람으로 천만 명의 목숨을 바꿀 수 있어. 너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아니야?"

조계안은 애써 육장봉을 설득하고 있었다. 또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가 한 모든 일은 큰 국면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천하의 큰 국면 앞에서 그를 포함한 그 누구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는 마음속의 죄책감과 자책감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염 황숙께서 너희들을 저지하지 않은 이유야?"

육장봉은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피라도 흘릴 것 같았다.

그는 염 황숙이 왜 죽기로 마음먹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였어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염 황숙은 월령안을 십 년 동안 보호하며 월령안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 주었다. 그는 죽을 때가 되어서도 월령안을 생각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자, 황실은 월령안을 희생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두 눈 멀쩡히 뜨고 이 사람들이 한 걸음씩 월령안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요는 유목 민족이야. 그들이 병력을 집결해서 먼저 우리에게 출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없어. 이건 가장 좋은 방법이야."

주나라에서 먼저 북요로 출병하여 공격하려고 한다면 북요에서 소식을 받은 뒤, 초원으로 숨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들 주나라의 병사들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북요를 멸망시키자면 먼저 북요를 꼬드겨 출병시켜야 했다.

현음 공주는 북요에서 이십 년 지냈으나 그들보다 북요의 상황을 더 잘 알았다.

현음 공주는 지금이 바로 주나라가 북요를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북요가 출병하게만 이끈다면 주나라의 병력과 육장봉의 능력으로 그들은 국력을 흔들 필요 없이 손쉽게 북요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는 조금만 방심해도 지나가 버린다. 만약 놓친다면 다음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월령안은 그들이 내건 미끼였다. 또 이 미끼는 꽤 효과가 좋았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다.

조계안은 육장봉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는 굳센 어조로 말했다.

"육장봉, 만약 나 한 사람을 희생하여 천만 명을 살릴 수 있다면 난 전혀 지체하지 않고 날 희생할 거야. 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너도, 나도 가능한데 월령안이라고 왜 안 되겠어?"

조계안의 눈은 충혈되었고 옆에 늘어뜨린 손은 꽉 움켜쥐었다.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현음 고모는 자기가 그 미끼가 될 수 있다면 전혀 뜸 들이지 않고 미끼가 되겠다고 했어. 그러나 고모는 그럴 수 없어. 북요인들은 네가 오직 월령안에 대해서만 진심이라고 믿고 있어. 월령안을 손에 쥐어야만 널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육장봉, 우리가 월령안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운명이 그녀를 택한 거야."

'육장봉 네가 그녀를 택한 거야.'

"너희들은 내가 월령안을 위해 물러설까 두렵지는 않은 거야? 너희들은 월령안이 정말 나를 견제시켜 내가 월령안이 다치는 게 두려워 북요와 싸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 너희들은 내가 월령안을 위해 나라를 배신할까 봐 두렵지 않아?"

육장봉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등의 실핏줄이 불거져 나왔고 새빨간 피가 그의 손가락 틈에서 흘러나왔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월령안의 생사를 무시하고 북요의 위협에 끄떡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너희들은 내가 월령안을 위해 물러설까 두렵지는 않은 건가? 너희들은 월령안이 정말 나를 견제시켜 내가 월령안이 다치는 게 두려워 북요와 싸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 너희들은 내가 월령안을 위해 나라를 배신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

조계안이 대답하기 전에 육장봉은 또다시 물었다. 물어볼 때마다 그는 점차 앞으로 다가갔다. 마치 무형의 핍박 같았다.

그러나 그의 말투는 평소와 같아서 그냥 해보는 소리 같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조계안은 대충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육장봉이 덤덤할 정도로 평온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을 보면서 잠깐 침묵을 지켰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다고?"

육장봉이 비웃으며 되물었다.

자기 자신도 두려운데 이 사람들은 무슨 자신감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지?

"두렵지 않아!"

조계안은 육장봉의 두 눈을 피하며 힘차게 말했다.

"왜냐하면 넌 육장봉이기 때문이야! 주나라의 전신 육장봉!"

"허!"

육장봉은 잠깐 멈췄다가 곧이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난 주나라의 전신이지! 너희들은 정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러나 바로 육장봉의 얼굴은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너희들은! 참 비겁해!"

그들은 모든 수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를 이용했고, 월령안을 이용했다. 그러고도 그가 이 일로 목숨을 걸기를 바랐다.

정말 너무 염치가 없었다!

조계안의 두 눈에는 온통 씁쓸함뿐이었다. 그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전에 황형에게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도 황형을 비겁하다고 욕하면서 현음 공주의 계획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음 공주와 황형은 모두 그가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음 공주는 북요에서 삼십 년 있었다. 북요를 멸망시키기 위해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했다. 북요를 멸망시키는 것은 그녀의 심마(心魔)였다.

지금 기회가 생겼다. 현음 공주는 절대 그 누구 때문이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내 장군부에서 썩 꺼져.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마. 다시는 널 보고 싶지 않다."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소매를 걷고서 조계안을 내던졌다.

"장……."

조계안은 여러 걸음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땅에 넘어질 뻔했다.

"조왕 전하께서는 저를 대장군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을 사정없이 자르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손님 나가신다!"

서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이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지 못했으나 대장군의 명령이 들리자 가장 먼저 명령대로 집행했다. 그는 앞으로 가려는 조계안을 가로막았다.

"조왕 전하, 가시지요."

조계안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육장봉, 나한테 무슨 화풀이야! 이 모든 것은 네 어머니가 계획한 거야.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네 어머니를 찾아가."

'내가 주모자도 아니고. 심지어 난 설득하기까지 했다고. 나도 피해자라고.'

"걱정하지 마. 그러지 않아도 그럴 셈이니!"

주나라와 북요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조계안이 홧김에 말했을 뿐인데 육장봉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육장봉이 정말 자기의 말 때문에 현음 공주와 척을 질까 봐, 조계안은 불안하게 말했다.

"너…… 너 너무 선을 넘지 마. 현음 고모는……."

육장봉은 곁눈질로 그를 힐끗 흘겨보더니 육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육이는 몸을 써서 조계안을 밀어냈다.

"조왕 전하, 우리를 난감하게 굴지 말아 주세요."

"가라면 가지! 육장봉, 너 후회하지 마."

자꾸만 내쫓기자 조계안도 체면이 서는 것 같지 않자 옷소매를 떨치며 떠나갔다.

그래서 조계안은 육장봉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난 후회된다."

육장봉은 황제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약점을 보인 것을 후회했다. 그는 월령안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더 후회되는 것은 애초에 강경하게 현음 공주를 북요에서 데려오지 않은 것이었다.

* * *

비록 그는 조계안에게서 모든 진실을 알아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전쟁을 준비하는 일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다만 평소보다 더욱 과묵하고 차가울 뿐이었다.

전에 그는 적어도 하루에 몇 마디는 했으나 지금은 필요한 공무 외에는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장봉이 이럴수록 황제는 더욱 속이 켕기고 불안해졌다. 그는 육장봉이 뭔가 큰 수를 감추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몇 번이나 황제는 먼저 말을 꺼내 육장봉의 언짢음을 풀어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입을 열자마자 육장봉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 시선이 너무 차가워서 황제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짐은 자꾸 장봉이가 변한 것같이 느껴지는구나."

황제는 떠나가는 육장봉의 모습을 바라보며 낙담했다.

이반반은 속으로 괴로움을 부르짖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폐하, 대전이 금방이니 대장군의 어깨에 짓누른 짐이 무겁고 압력이 커서 그런 듯합니다. 말하기 싫어하시는 것도 정상입니다."

'폐하여, 대장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손을 대셨으면서 대장군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하길 바라시나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대장군은 물론이고 저 같은 내관조차도 그런 일은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냐?"

황제는 속으로 육장봉이 자기와 마음이 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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