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역시 그 사람이었군
월령안이 북요로 오게 하고 월령안을 미끼로 북요 황제가 황급히 출병하게 한 이 모든 계획이 다 현음 공주가 꾸민 일이었다.
주나라에서 이 일을 아는 사람은 황제, 조왕과 염 황숙을 제외하고 서 선생밖에 없었다.
서 선생은 육장봉을 바라보면서 수없이 그에게 월령안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이 그의 친어머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으나 입가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관계가 친밀한 사람을 이간질시킬 수 없었다.
현음 공주는 그래도 육장봉의 어머니였다.
"대장군, 령안이는 매우 쉽지 않아요. 절대…… 그녀를 속상하게 하지 마세요."
많은 말들이 결국 그저 한마디 당부로 끝나고 말았다.
육장봉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서 선생,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월령안을 실망시킨다 해도 저는 안 그럴 겁니다."
"령안이를 부탁드려요, 대장군."
서 선생은 육장봉에게 큰절을 올리고 육장봉이 말을 하기 전에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해야 할 말을 모두 마쳤다. 육장봉이 뭔가를 발견한다면 그건 월령안의 운이 좋은 것이었다.
만약 육장봉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월령안의 팔자였다.
육장봉은 서 선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선이 어두워졌다.
'서 선생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군!
서 선생은 생각을 해 본 뒤,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게 틀림없어.'
육장봉의 찌푸려진 눈썹이 곧바로 풀어졌다.
'됐어, 서 선생이 말하기 싫다면 나도 억지로 캐물을 필요가 없지. 뭔가를 알고 싶다면 스스로 조사하면 된다.'
* * *
육장봉은 염 황숙을 데리고 궁을 나서자마자 황제는 금군과 궁인을 파견하여 명월 산장에 보냈다.
명월 산장은 금군에 의해 안의 세 층, 밖의 세 층, 겹겹이 둘러싸였다. 산장 안의 하인들은 서 선생을 제외하고 전부 궁중의 내관과 궁녀로 바뀌었다.
염 황숙은 장소를 바꿨을 뿐, 다른 것은 궁에서와 다를 바 없었다.
염 황숙이 깨어나서 이 일을 알게 된 뒤, 그저 허약하게 웃기만 하고 겨우겨우 서 선생에게 분부했다.
"늙은이, 나중에 잊지 말고 육씨 그놈에게 전해 주게. 앞으로 폐하와 더는 다투지 말라고……. 난 지금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황제는 결국 황제였다. 육장봉이 황제를 자꾸 몰아붙여 양보를 받아낸다면 결국 군신 관계는 틀어지고 말 것이다. 황제는 육장봉을 어찌하지 못하기에 결국 고생하는 쪽은 월령안이었다.
살날이 며칠 남지 않은 그는 어떻게 살아도 마찬가지기에 이 며칠 때문에 살아갈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염 황숙은 몹시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황제의 행위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염 황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인과 영웅은 단명한다고 하는데 난…… 늙었어.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늙으니 소용이 없어졌다. 그 당시에는 위명이 대단하여 이름 하나만으로도 여러 나라를 겁에 질리게 했다. 주나라의 관리들은 감히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지금 그는 그저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이였다.
염 황숙은 눈을 감고 입으로 어렴풋하게 불러 보았다.
"령안아! 령안아……."
그는 아직 월령안이 북요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죽기 아쉬웠다!
* * *
육장봉은 대장군부로 돌아오자마자 육일을 불렀다.
"북요의 소식을 알아보거라. 네 사람을 시켜 알아보거라. 나는 북요의 첩자가 전해 온 소식을 알고 싶지 않다. 알겠느냐?"
월령안이 북요로 간 뒤, 북요의 첩자는 하루건너 북요에서 월령안의 소식을 주나라로 전했다.
열몇 날이 지나도록 그가 받은 소식은 모두 좋은 소식이었다.
그는 월령안이 미리 준비를 마친 데다가 월씨 가문의 표호까지 손에 들고 있어 북요의 그 사람들은 월령안을 해치고 싶어도 감히 월령안의 목숨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받자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서 선생이 말하려다가 머뭇거리는 표정과 또 월령안을 부탁하는 말 때문에 그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소식이 혹시 가짜는 아니겠지? 누군가 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소식인 것은 아니겠지? 내가 받은 소식대로 무사하고 순조롭기만 한 것이 맞을까?'
육일은 깜짝 놀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대장군, 그 말씀은……."
"맞아."
그는 북요의 정보망이 타인의 통제에 들어갔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전해 오는 소식이라면 모두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이 그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일 것이다.
"우리가 쓰는 사람은 우리 육씨 가문 자체의 첩자들인데 어떻게 그럴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육일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쓰는 사람은 현음 공주의 사람이 아니라 육씨 가문이 자체로 키운 첩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오로지 육씨 가문에만 충성했다.
"넌 북요의 육씨 가문 사람이 누군지 잊었느냐?"
그도 이렇게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나 서 선생의 심각하고 자책이 섞인 시선은 그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육일은 잠깐 멍해졌다가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이 일은 네가 직접 하거라! 북요에 도착한 뒤, 바로 월령안을 연락해 보거라. 그녀더러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내 어머……."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다가 호칭을 바꾸었다.
"절대 현음 공주와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거라!"
그는 어머니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주나라밖에 없었다. 주나라를 위해서 자신도 희생할 수 있는데 월령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네, 대……."
육일이 명령을 받고 있는데 서재의 문이 '쾅'하고 발에 걷어차여 열렸다.
"고모가 왜?"
조계안은 문틀에 기대 서서 얼굴의 상처를 가리는 반쪽짜리 가면을 쓰고 입에는 풀을 한 가닥 물고 있었다. 몹시 거들먹거리는 모양새였다.
"조왕?"
육일은 몸을 홱, 돌려 이를 악물며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또, 조왕이 또, 그들 장군부의 방어를 무시한 채, 사람이 없는 대장군의 서재로 들어갔다.
'너무하네!'
"먼저 내려가거라."
육장봉은 육일에게 눈치를 주어 그를 내보냈다.
"네, 대장군!"
육장봉의 명령이 떨어지자 육일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계안의 옆을 지날 때, 육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계안에게 공수했다.
"조왕 전하, 감사합니다. 또 한 번 우리 장군부로 오셔서 방어의 약한 점을 찾아내셨으니!"
조왕이 장군부에 쳐들어올 때마다 그는 모두 부족한 점을 찾아 보완했다. 한층 더 장군부의 방어를 강화해 조왕이 같은 곳을 통해 두 번째로 들어오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조왕이 장군부로 들어오는 횟수가 많을수록 장군부의 방어도 끊임없이 제고되었다. 심지어 황궁보다도 더 완벽했다.
육일은 더 이상 조계안이 장군부로 쳐들어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조왕은 또 한 번 그를 망신시켰다.
"고맙기는."
조계안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전혀 민망해하지 않았다. 육일이 간 뒤에야 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들어왔다.
"육일이 점점……."
"마침 잘 왔어. 내가 널 찾으려는 참이었으니!"
육장봉은 한 손으로 탁자를 짚고 가볍게 뛰어올라 조계안의 얼굴에 한 방 날랐다.
퍽!
육장봉의 이 주먹은 마침 가면을 쓴 조계안의 얼굴에 떨어졌다.
은으로 만든 가면은 육장봉의 주먹에 맞아 한쪽이 우그러졌다. 조계안은 얼굴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으악…… 육장봉, 너 미쳤어!"
"강남!"
육장봉은 차갑게 두 글자를 내뱉었다. 조계안은 뜨끔해져 멈칫했다. 그러자 육장봉의 두 번째 주먹이 또 날아왔다.
퍽!
여전히 조계안의 가면을 때렸다. 피가 가면에서 흘러나왔다. 조계안은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
육장봉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을 보고 조계안은 팔을 들어 막았다.
"육장봉, 그만 했으면 됐어. 그래, 난 널 한번 속였어. 그런데 나도 편치 않았어!"
조계안은 힘껏 육장봉을 뿌리치고 육장봉이 다시 손을 쓰기 전에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불에 탄 반쪽 얼굴이 드러났다.
"육장봉, 잘 봐! 난 많은 대가를 치렀어. 난 월령안의 이득을 보지 않았어!"
조계안은 힘껏 자기의 얼굴을 찔렀다. 매번 힘을 줘서 찌른 탓에 겨우 딱지가 앉은 상처가 또다시 터져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네가 자초한 것이니 널 동정할 사람은 없을 거다."
육장봉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자초한 거야. 그런데 네가 나보다 나은 게 뭐야?"
조계안은 비꼬듯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월령안에게 한 말이 사실이 아니야? 내가 과장해서 모든 잘못을 너한테만 덮어씌웠어?"
"난 안 그랬어!"
조계안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난 월령안 앞에서 너의 나쁜 얘기를 조금도 한 적이 없어. 난 그저 사실을 월령안에게 알려 줬을 뿐이야."
조계안은 가면을 밟고 서 있었다. 피가 묻은 얼굴은 더욱 일그러져 보였다.
"내 말이 틀렸어? 그때 네가 굳이 북요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거잖아? 네가 북요로 가지 않았다면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아니야?"
"닥쳐!"
육장봉은 또다시 조계안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조계안이 막아내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육장봉의 다리가 조계안에게 날아갔다.
조계안은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의 손은 빠르고도 강해서 조계안이 아무리 요리조리 피해도 결국 육장봉에게 여러 번 맞고 말았다. 그는 아파서 욕설을 퍼부었다.
"육장봉, 적당히 해! 두어 번 때리게 하니 아주 기운이 넘치는군."
육장봉은 기운이 넘칠 뿐만 아니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세게 나왔다.
"월령안이 북요로 갔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은 조계안의 코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조계안은 코피를 줄줄 흘렸다.
"너희들의 핍박에 못 이겨 북요로 갔다고!"
"만약 그녀가 북요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절대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손이 조계안에게 막힌 육장봉은 다리를 들어 조계안의 종아리를 공격했다. 조계안은 정강이가 차이자 휘청거리며 연속 뒤로 물러섰다.
"우리?"
조계안은 벽에 부딪혀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고개를 든 뒤,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는 없어?"
"그래서 현음 공주냐?"
육장봉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그는 중앙에 서서 싸늘하게 조계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계안의 안색이 변했다.
"지금 날 떠보는 거야?"
"역시 그 사람이었군."
추측이 확신이 되었지만 육장봉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서글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