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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63)화 (963/1,004)

963화 인내심의 한계

육장봉이 갑자기 황제에게 손을 쓰자 황제뿐만 아니라 난각의 궁인들도 멍해졌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황제와 가장 가깝게 있던 이반반은 육장봉이 넘어진 황제를 들고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폐하……."

이반반은 급히 앞으로 다가갔지만 육장봉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하고 육장봉에게 뿌리쳐졌다.

"꺼져!"

이반반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질렀다.

"대장군, 이것은…… 하극상을 범하는 것입니다!"

퍽…….

문밖에 있던 시위들이 기척을 듣고 가장 먼저 쳐들어왔다. 그들은 대장군이 황제를 병아리 들 듯이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창을 쥔 손을 멈춘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호들갑을 떨기는. 짐이 넘어져서 대장군이 일으키는 것이다."

황제는 얼굴 한쪽이 멍들었고 입가가 헤진 채, 입을 열자 피가 흘러나왔다. 시위는 힐끔 보고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육장봉은 차갑게 웃더니 황제를 풀어 주고 뒤로 물러섰다.

황제는 육장봉을 매섭게 노려보며 흉한 안색으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나가거라! 짐의 명령이 없이는 누구도 들어오지 말거라!"

"네, 폐하."

시위는 이상함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세라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그것도 아주 멀리 물러갔다.

"너희들도 꺼지거라!""

시위가 떠나간 뒤, 황제는 이반반 등 사람들이 아직 있는 것을 보고 또 호통쳤다.

"폐하……."

이반반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불안하게 불러 보았지만 오히려 황제의 냉혹한 호통만 들을 수 있었다.

"꺼지라고!"

이반반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육장봉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육장봉을 잡아먹을 듯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반반 등 사람들이 나간 뒤, 황제가 '장봉'이라고 부르지도 못했는데 육장봉이 또 황제를 한 번 더 때렸다.

황제는 다시 바닥에 고꾸라진 채, 고통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는 배를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문 채,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어?!"

"미쳐도 폐하 때문에 미친 것입니다."

육장봉은 앞으로 다가가 황제를 잡아 일으키고 또 황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아오……."

황제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려다가 난각 밖에 아직도 시위가 있는 것을 떠올리고 다급히 목소리를 깔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장봉, 너무 선을 넘지 마! 짐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한 번 때리는 것은 괜찮아도 두 번, 세 번…….

'장봉은 한두 번은 괜찮아도 세 번은 안 된다는 도리를 모르는 것인가? 내가 그래도 황제인데 장봉은 내가 화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황제의 말은 육장봉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황제의 복부를 또 여러 번 때렸다.

황제는 아파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반격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협박할 뿐이었다.

"짐이…… 사람…… 을…… 부르겠다……!"

"제가 무서워할 것 같습니까?"

육장봉은 황제의 옷깃을 잡은 손을 풀고 한 번에 황제를 나가떨어지게 팼다.

퍽…….

황제는 다시 한번 바닥에 넘어져서 고통에 신음만 흘렸다.

육장봉은 이번에 황제를 잡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황제의 초라한 몰골을 감상했다. 감상을 다 한 뒤,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는 순간, 황제에게 발목이 잡혔다.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어서 짐을 부축하지 않고."

육장봉은 발을 움직이며 황제를 차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

"맞은 게 부족한가 봅니다?"

더 이상 형제 사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 형제가 쓸모없으니 그는 버릴 것이다.

황제는 화가 나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월령안 일의 전말을 듣고 싶지 않느냐?"

"쓸 데 있는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겁니다."

육장봉은 돌아서서 황제를 잡아 일으켰다.

"짐은 바로 설 수 없다."

황제는 울긋불긋 멍든 얼굴을 하고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

'장봉은 참 형제도 아니야. 때릴 때,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다니. 아파 죽겠네.'

"허."

육장봉은 코웃음을 치고 황제를 부축할 생각이 없었다.

황제는 하는 수 없이 고통을 꾹 참고 벽을 짚은 채, 바닥에 앉았다.

황제는 옆의 빈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앉아 보거라. 우리 형제끼리 얘기를 잘 해 보자. 아니면, 짐이 널 용서해도 짐 얼굴의 상처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장봉도 무슨 바람이 분거야? 싸울 때 싸우더라도 얼굴을 겨냥해서 치다니. 장봉이는 내가 황제인 것을 아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조정 대신을 만나야 한다고!'

황제를 구타하는 것은 목을 쳐도 과하지 않은 죄였다.

그가 이 얼굴로 조정 대신들을 만나러 간다면 그가 육장봉과 따지지 않아도 대신들이 육장봉을 놔두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도 별말 없이 옷을 들더니 황제의 옆자리에 앉았다.

"월령안을 꼭 죽여야 할 정도로 그렇게 거슬리셨습니까?"

"장롱에 약이 있다. 먼저 짐에게 약을 발라 다오."

황제가 입을 크게 벌리자 얼굴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그는 아파서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조계안이 자주 부상을 당한 채로 돌아왔다. 그가 어의들에게 진료받기 싫어해서 황제는 난각에 약을 준비해 두고 조계안이 바르기 편하게 했다.

육장봉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도 조계안을 적지 않게 때렸었다. 조계안을 때린 뒤, 약을 발라 빨리 낫게 한다면 다음에 또 때리기 쉬웠다.

육장봉은 금방 황제에게 필요한 약을 찾아냈다. 그리고 약병을 황제에게 던져 주었다.

황제는 얼굴의 상처를 볼 수 없어 약을 얼굴에 마구 문질렀다. 그러면서 고통에 못 이겨 이를 드러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좀 짐에게 약을 발라 주면 안 되냐? 상처가 얼굴에 있어 짐이 볼 수 없다."

육장봉은 비수를 황제에게 던져 주었다.

"짐을 때린 것도 모자라 짐이 스스로 약을 바르게 하다니. 육장봉, 사람 좀 되거라."

황제는 육장봉을 노려보고 비수를 들고 뽑았다. 매끈하고 반짝이는 비수를 거울삼아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말을 잇지 않았다.

"참 재미없어."

황제는 퉁명스럽게 코웃음을 치고 두어 번 만에 약을 다 바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봉, 짐이 꼭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란다. 짐은 그녀에게 기회를 줬어."

"듣고 있습니다."

육장봉은 대충 대답하고 황제더러 계속해서 말하라고 했다.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묻지 마. 물으면 화가 나니까. 그래도 내가 황제인데 내 체면을 좀 봐줄 수는 없는 건가? 당당한 황제인 내가 특별히 해명하고 있는데 장봉이는 이런 반응이라는 말인가?'

"계속하시죠."

황제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육장봉은 재촉했다.

"넌 참 독하다!"

황제는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가 얼굴의 상처를 만져 보고는 또 묵묵히 겁을 먹었다.

'장봉이는 이번에 폭탄이라도 먹은 것처럼 모질고도 빠르게,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손을 썼지. 장봉이를 건드려 또 한 번 손을 쓰게 한다면 봉변을 당하는 사람은 황제인 나잖아.'

그가 육장봉에게 두어 번 맞는 것은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핑계를 대 이 사실을 숨겨야 했다. 대신들이 육장봉의 트집을 잡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라는 황제는 참…… 너무 갑갑해.'

황제는 길게 숨을 내쉬고 육장봉에게 해명했다.

"월씨 가문 표호가 무엇인지 짐이 알 수 있다면 관성에 있었던 너는 더 잘 알겠지. 짐은 월령안에게 기회를 줬었다. 소연지더러 월령안을 찾아가게 했지. 그런데 월령안은 어떻게 했느냐? 넌 보지 않았느냐?"

재간을 믿고 안하무인이고, 거만하며 잘난 체하고 조금도 황제인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는 쓸 수 없었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황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황제는 원래부터 월령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방 또 월령안 때문에 육장봉에게 흠씬 맞고 나니 더더욱 화가 났다.

"정말 짐이 월령안을 겨냥하는 것도, 월령안을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월령안 그 인간은…… 태어나기를 반골이라 뼛속부터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녀와 그녀 뒤의 월씨 가문은 입으로 짐과 황실을 위해 충성한다고 말하면서 뭘 했느냐?

그들은 청주에서 사적으로 황금 이십만 냥을 저장했고 해외의 금광을 숨겼다. 그들은 철광을 발견하고도 보고하지 않고 사적으로 철광을 채굴하여 사적으로 병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다의 그 해적들과 관성의 떠들썩한 월씨 가문 표호를 보아도 그렇다. 이 사건들을 보면 월씨 가문이 도대체 뭘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냐?"

황제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이 말했다.

"넌 월씨 가문이 이렇게 해서 결국 짐이 이득을 본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짐이 원하는 것은 이득이냐? 아니다!"

황제의 목소리는 힘이 넘치고 기세가 왕성했다.

"짐이 원하는 것은 충성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짐이 원했던 것은 월씨 가문, 월령안의 충성심이었다! 짐은 월령안에게 여러 번 말했었다. 짐에게 솔직히 말하고 짐에게 충성하라고. 그런데 월씨 가문과 월령안은 어떻게 했느냐? 그들은 도처에 사심을 숨기고 해 놓은 일은 전부 자기를 위해서였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짐에게 충성한 적이 없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멍든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의로우면 장사를 행하지 않고, 의리가 있으면 재산을 지킬 수 없으며, 자애로우면 병사들을 장악할 수 없고, 우유부단하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법. 그들이 먼저 충성하지 않았는데 짐이 왜 그들과 의리를 지켜야 하느냐?"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는 엄숙한 얼굴로 위엄을 나타냈다.

"장봉, 짐이 그녀를 놔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죽을 길을 택한 것이다. 그녀를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은 짐뿐만이 아니다. 그들 월씨 가문 사람들도 그녀를 용납하지 못하지 않느냐. 생각해 보거라…… 그녀의 조카마저도 그녀의 목숨을 취하려고 한다. 그녀가 얼마나 실패한 인생을 살았는지 보거라."

그는 월령안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또 월령안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육장봉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는 모두 육장봉과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육장봉이 자기를 이해하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육장봉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폐하, 월씨 가문은 황실의 명을 받고 돈을 벌고 해마다 황실의 요구대로 충분한 돈을 바칩니다. 백 년 동안, 한 번도 돈을 적게 바친 적이 없었지요. 그 황금 이십만 냥은 월씨 가문이 실력대로 번 것인데 왜 남기면 안 되는 겁니까?

범씨 가문이 월씨 가문을 대체한 최근 십 년 동안, 그들도 황실을 위해 돈을 벌면서 바치는 돈 말고도 남긴 돈이 적지 않습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왜 범씨 가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월씨 가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월씨 가문이 뭘 잘못했나요?"

육장봉이 물었다. 그리고 황제가 입을 열기 전에 스스로 대답했다.

"그들이 능력이 강한 것이요?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요? 그런데 폐하께서 월씨 가문 사람들이 장사하고 돈을 버는 능력을 중히 여기신 게 아닌가요?"

"장봉……."

황제는 직감적으로 잘못된 것을 깨닫고 육장봉의 말을 자르려고 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고개를 젓고 계속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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