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화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거야
"참 재미있네요. 아니에요."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한 탓에 잔머리가 흘러내려 그의 눈매를 가렸다. 그러자 좀 순진해 보였다.
"주나라와 북요의 전쟁은 네가 일으킨 거야?"
월령안이 물었다.
"고모는 역시 절 잘 아시네요."
소년의 입가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어찌 보아도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소년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월령안은 오히려 믿을 수 없었다.
이 아이가 아무리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아무리 선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왜 불가능하겠어요?"
소년이 되물었다. 그는 월령안이 대답하기 전에 또 먼저 소리를 냈다.
"북요 황제는 제 손 안의 개에 불과해요. 그는 제가 뭘 하라고 해도 그대로 해야 해요. 다만 주나라로 출병하는 것뿐이잖아요. 놀랄 것이 뭐가 있어요?"
"너, 약을 쓰는 데 능하구나?"
월령안은 가마에 앉은 채, 기절하기 전에 발견한 것이 떠올랐다.
"재미있지 않나요?
소년은 월령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즐겁게 손짓을 했다.
"북요와 주나라가 전쟁을 마친 뒤, 전 금나라가 스스로 싸우게 할 거예요. 다 싸우고 난 뒤, 전 또 금나라와 북요를 붙여 놓을 거예요. 금나라와 북요에서 한 나라만 남겨 두어 그 나라가 또 주나라와 싸우게 할 거예요. 오, 서하도 있죠. 또 그들도 참여시켜야죠. 다 같이 싸우는 거예요. 쉬지 않고, 전부 죽어 버릴 때까지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래, 재미있구나."
월령안은 갑자기 침착해졌다. 또는 이미 절망하고,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더 이상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이 소년은 그녀의 조카일 뿐만 아니라 양국 대전을 주도하는 미치광이였다.
예전에 어땠는지는 모르나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소년은 미치광이였다. 강대하고, 총명하며 능력이 비범한 미치광이였다.
그녀는 포로로서 자기의 눈알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를 동정하고 가엾게 여기겠는가.
소년과 비교했을 때, 그녀야말로 약자였다.
그녀가 혼이 빠졌던 것이었다.
마치 육장봉이 말한 것처럼,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에 연관된 일과 사람이라면 그녀는 침착해질 수 없었다. 그녀는 쉽게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 잡혔다.
이번에 소년이 그녀를 북요로 유인하고 잘린 손과 귀로 그녀를 고녕성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약점을 잡았기 때문이지 않는가.
분명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결국 왔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오라버니가 신경 쓰였고,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이 신경 쓰였다.
그러나 사실상 신경 쓰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고모의 기분이 좋아졌네요. 들어 보니 기분이 좋을 때, 눈은 촉촉해진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쉽네요. 오늘은 아직 고모의 눈알을 파낼 수 없어요."
소년의 눈은 비록 보지 않았으나 감각이 더욱 뛰어났다. 그래서 월령안의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그의 '법안(法眼)'을 벗어나지 못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거야."
화제의 전환이 무척 빨랐지만 월령안은 적응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소년의 바퀴 의자를 밀었다.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했지? 들어가자!"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반드시 내려놓아야 했다.
지나간 일은 이미 바꿀 수 없었다. 소녀의 마음가짐도 되돌릴 수 없었다. 고모인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이 끝난 뒤, 단단한 감옥을 지어 그를 가두는 것이었다.
그의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고모로서 그를 위해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먼저 죽는다면 하는 수 없었다.
"고모, 제가 무섭지 않아졌나요?"
'방금 전까지 무서워 벌벌 떨었으면서. 인간은 참 재미있어. 연약함과 강대함이 동시에 존재하니 말이야.'
"넌 월씨 가문의 표호를 원하지. 월씨 가문의 표호를 가지기 전에는 날 죽이지 않을 텐데 내가 왜 널 무서워하겠어?"
소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월령안은 더 이상 전처럼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방금 전에 너한테서 역겨움을 느꼈어. 넌 방금 전, 네가 얼마나 역겨웠는지 모르지?"
"월씨 가문의 표호가 없었다면 좋았겠네요. 표호가 없었다면 전 고모도 제가 그때 당했던 모든 것을 느끼게 해 줬을 테니까요."
소년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그는 월령안이 하는 모진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하고 너의 과거 얘기를 꺼내지 마. 난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테니. 너의 눈이 파이고 혀가 뽑히고 다리가 잘린 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렇게 한 거야? 아니면 내가 널 낳고 널 상관하지 않았어? 탓하려면 네 생모나 탓해. 널 낳고도 키우지 않은 것을 탓하고 예전에 널 다치게 한 사람을 탓해."
월령안의 말투는 무척 강경한 것이 전혀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
지옥은 텅 비었고 악귀는 인간계에 있었다.
그녀의 조카는 악귀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조카는 악귀가 되어 있었다.
악귀를 상대할 때는,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었다.
스스로에게 월진절이라고 이름을 지은 소년은 자기가 과거에 당했던 불행으로 잔인하고 진실한 모습을 드러냈으나 고모인 월령안을 자극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고모가 이미 그에게 실망했고 그의 일은 이제 그녀가 이성을 잃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아쉬웠으나 크게 안타깝지는 않았다.
전에 그는 자기가 예전에 당한 수모와 나약한 모습으로 월령안에게 골탕을 먹였었다. 월령안의 성격으로 같은 곳에 두 번 넘어질 가능성은 너무 낮았다.
그러나 괜찮았다. 그가 안 된다면 다른 사람도 있었다.
그는 월령안이 계속 이렇게 정신이 또렷하고 이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 소년은 일부러 월령안을 북요로 불러온 데에는 황제의 도움도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황제와 합의까지 보았다고 했다. 월령안이 영원히 주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요에 남게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죽은 채로!
황제는 월령안이 북요에서 죽기를 바랐다.
월령안이 일순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되었는지 소년은 무척 세심하게 일깨워 주었다.
"북요 황제 말고요, 고모가 충성하는 주나라 황제예요. 고모와 당신네 월씨 가문이 조씨 가문에 백 년이나 넘게 충성했으나 그는 고모가 북요에서 죽기를 바라죠. 참 재미있지 않나요?"
그러나 이 소식은 여전히 월령안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식사를 하고 가끔씩 소년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응, 재미있네."
월령안의 화를 돋우지 못하자 월진절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그리 쉽게 이성을 잃는다면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월씨 가문 상사를 오랫동안 감당한 가주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월진절은 비록 김이 빠졌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고모, 고모가 이렇게 총명하니 월씨 가문의 표호가 뭘 대표하는지 모르지는 않겠죠? 전 정말 궁금해요. 고모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월씨 가문 표호를 만들어낸 건지? 죽고 싶은 마음인가요?"
일개 상인이 일국의 경제 명맥을 좌우지하려고 드니 황제라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월령안은 도대체 얼마나 죽고 싶어야 월씨 가문의 표호를 만들어냈겠는가?
"내가 네 손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바로 나한테 월씨 가문 표호가 있기 때문이잖아?"
월령안은 전처럼 대충 넘기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노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을 황제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월령안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를 북요로 유인하기까지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녀가 죽기를 바랄 거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소년 앞에서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녀가 북요에서 죽는 걸 바란다는 소년의 말을 듣자 그녀는 그래도 속으로 서글퍼졌다. 심지어 말할 수 없는 분노까지 치밀었다.
그녀가 소년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황제가 파견해 온 소연지 때문이었다.
소연지는 그때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책임지고 폐하를 설득할 테니까요."
소연지가 이렇게 말한 것은 황제에게서 어떤 암시를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황제가 이런 약속을 했다는 것은 이미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의 소원은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고모가 살아도 월씨 가문 표호 때문이고, 죽어도 월씨 가문 표호 때문이라는 거예요."
소년은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의 소리는 복어로 낸 것이어서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그는 스스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고모, 돈 때문에 죽으면 아쉽나요?"
"노루가 누구의 손에서 죽는지는 알 수 없는 법. 네가 어떻게 죽는 사람이…… 네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확신하느냐?"
월령안은 오라버니와 닮은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죽을지 안 죽을지는 몰라도 고모는 분명 죽을 거예요."
월령안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소년은 월령안이 살아서 북요를 떠날까 봐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고모, 고모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육장봉도 안될 거예요. 고모가 충성했던 황제는 그에게 고모를 구하러 올 시간을 주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비록 월씨 가문의 표호를 몹시 가지고 싶지만 고모가 도망치려고 한다면 저는 고모를 먼저 죽일 수 있어요. 이 세상을 없애 버릴 수 없다면 고모를 없애 버려도 전 두어 날은 기쁠 테니까요."
소년은 말하다가 또 기계적이면서도 기괴한 소리를 냈다. 의기양양한 것 같기도 하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기다릴게."
월령안은 수저를 들고 계속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소년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는 살아서 북요를 떠나려면 배불리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말로서 월령안을 자극하지 못한 월진절은 이것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월진절은 월령안을 데리고 지하 감옥으로 와 갇힌 추수와 육삼을 보여 주었다.
추수와 육삼 두 사람은 십자형 틀에 묶여 있었는데 몸에 쇠사슬을 한 층, 또 한 층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고문을 당해 얼굴을 제외한 몸에는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추수는 팔 한쪽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저들을 풀어 줄 거야?"
월령안은 자기가 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와 소년의 겨루기에서 그녀는 졌다.
그녀는 소년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었고 약점이 있었다.
"허허허……."
소년은 또다시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전 또 고모가 아버지를 아주 신경 쓰는 줄 알았죠. 예상 밖으로 고모의 마음속에서 한낱 시녀도 조카인 저보다 중요하네요."
"난 상인이야. 지출과 수익을 따지지. 내가 널 잘 대해 줬지만 넌 날 어떻게 대하고 있어?"
그녀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뒤, 또다시 그를 잘 대해 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