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화 고녕성(古寧城)
그러나 아쉽게도 월령안이 결정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았다.
"제가 행선지를 바꾼다고 말한 것은 당신들에게 한 통보입니다. 의논하려는 게 아니에요."
월령안의 태도는 무척이나 확고했다.
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차분하게 두 사람을 훑어보고 도도하게 말했다.
"제가 이번에 북요로 온 것은 목적이 하나예요. 저한테 누구와 거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건 조건이 제 마음에 드는 것이에요. 제가 미리 소식을 전했잖아요. 그런데…… 당신들의 능력은 저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네요."
'내가 이토록 수동적인 위치에 놓인 게 누구 때문인데?'
북요 황제와 호도고가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들을 미리 알아냈더라면 그녀는 지금처럼 코가 꿴 채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호도고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는 별 시답잖은 얘기를 꺼냈다.
"함정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뛰어들려고 하다니. 이건 간이 큰 게 아니라 아둔한 거예요. 전 줄곧 월 가주가 우수한 상인인 줄 알았는데. 우수한 상인은 당연히 이해득실을 따질 줄 알죠. 그러나 월 가주는 절 너무 실망시키네요."
야율헌일도 협박에 나섰다.
"월령안, 제 부황은 북요 황제예요. 당신도 그를 희롱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겠죠!"
"허!"
월령안은 냉소를 지었다.
"주나라의 황제가 육장봉을 파견해 저더러 조건을 마음대로 내걸어도 좋으니 월씨 가문의 표호를 조정에 넘기라더군요. 삼황자 전하, 제가 한마디 올리죠. 협력에 대한 주도권은 저한테 있어요. 북요 황제께서 월씨 가문의 표호를 원하신다면 성의를 보이세요. 절 협박해도 소용없어요."
수하의 사람마저 믿지 못하는 그녀인데 야율헌일이 무슨 낯짝으로 그녀를 협박한다는 말인가?
말을 마친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호도고를 바라보았다.
"같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게요. 호도고, 전 미리 당신에게 말을 전했어요. 그러나 당신의 세력은 충분히 강하지 않았죠. 적어도 절 만족시킬 정도는 못 되었어요."
월령안은 야율헌일과 호도고의 미움을 살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 셋은 이익 때문에 만난 것이었다. 이익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끈이었다. 그들이 취할 이익이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도 그녀와 같은 편에 설 것이다.
"하루의 시간을 주세요!"
야율헌일의 안색은 난감해졌다.
호도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야율헌일을 힐끔 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한테는 반나절의 시간만 주세요. 그동안 소식이 없으면 월 가주의 뜻대로 합시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월령안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위더러 짐을 챙겨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야율헌일은 막고 싶었으나 호도고에게 저지당했다.
"내일 날이 저물기 전까지 쓸만한 소식을 알아내거나 월령안이 찾는 사람을 찾아내야만 그녀는 우리와 함께 상경으로 갈 겁니다. 지금 막아도 소용없을 거예요. 제가 전하라면 지금 당장 폐하께 편지를 써서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쭐 거예요. 왜 그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고 계획대로 일을 행하지 않는지."
북요의 제일 상인으로서 호도고는 자신만의 정보망이 있었다.
월령안이 미리 전해온 소식으로 호도고는 북요의 월씨 가문 사람을 알아냈고 또 그 월씨 가문 사람들이 북요 황제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심지어 그는 그 사람들이 월씨 가문 소공자를 인질로 잡고 월령안을 핍박해 북요로 오게 한 것도 북요 황제의 명령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들은 이미 통제에서 벗어났다.
"지금 바로 상경에 편지를 써야겠군."
야율헌일은 어두운 얼굴로 월령안이 사람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빠른 속도로 상경에 편지를 보냈다.
월령안은 길에서 편지를 전하는 매가 막사로부터 날아가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
"역시, 사람들은 모두 간사하다니까. 핍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니."
월령안은 돌아가지도, 제자리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편지에 쓴 대로 말을 타고 떠나갔다. 야심한 밤이 되어서야 말에서 내려 천막을 쳤다.
다음날 아침, 월령안이 깨어나자마자 호위는 편지를 가져왔다.
"큰아가씨, 이 편지가 갑자기 소인의 말 등에 나타났어요."
월령안은 급히 편지를 뜯지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어젯밤, 당직을 선 사람들에게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느냐?"
한 번, 또 한 번, 소리 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전했다. 이것은 실력을 뽐는 것이며, 협박이기도 했다.
그들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편지를 그녀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녀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들이 손을 쓰지 않은 것은 그녀 스스로 목적지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호위는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두운 곳에 있었고 월령안은 밝은 곳에 있었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전혀 어찌하지 못했다.
"됐어, 기운을 차리자고."
월령안은 호위를 탓하지 않고 편지를 열었다.
이번에는 정상적인 편지였다.
편지는 여전히 노선도였다. 길이 세 갈래밖에 없는 노선도였는데 그녀에게 한 방향을 표시해 주어 그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유도했다.
"가자."
월령안은 편지를 호위에게 넘겨주고 먼저 말에 올랐다. 그리고 지도에서 표시한 대로 길을 갔다.
그날 점심, 월령안은 호도고가 전해온 편지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사람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요. 상경에서 기다릴 테니 계속해서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월령안은 편지를 덮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그녀는 계속해서 길을 재촉했다.
그날 저녁, 월령안은 또 야율헌일이 보내온 소식을 받았다.
상경에서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경으로 가서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월령안은 여전히 말없이 편지를 거두었다.
그 뒤로, 그녀는 더 이상 갑작스러운 편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교차로에 들어설 때마다 그들은 모두 눈에 띄는 곳에서 방향을 표시한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미리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호도고의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은 상대방의 통제 안에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코가 꿰인 채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북요 황제까지도 그들에게 이용당했다.
월령안은 분노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도리어 그녀는 몹시 침착했다.
북요로 오는 것을 선택한 뒤로 그녀는 코가 꿰인 채로 끌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점점 침착해졌다. 또 자연스레 과묵해졌다.
"큰아가씨, 앞쪽이 바로 북요의 중경(中京), 고녕성(古寧城)입니다."
호위들은 월령안이 왜 점점 과묵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북요의 중경 고녕성은 그때 그들 월씨 가문의 옛 주인과 대공자가 참변을 당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월령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이미 며칠 전부터 상대방이 그녀를 고녕성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또 그녀의 조카가 무사하다는 확신도 들었다.
시월 조직의 월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죽이고 싶어할 뿐, 어디서 죽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의 조카만이 갖은 머리를 써서 그녀를 고녕성까지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적어도 그녀는 그 손 두 개와 귀가 그 아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입성한다."
월령안은 도망치지 않고 먼저 말을 몰아 성으로 들어갔다.
호위는 입을 벙긋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성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통관 문서도 꺼내지 못했는데 자태가 매혹적인 미모의 소녀들이 가마를 들고 왔다.
"월 낭자를 뵙습니다. 소인들은 주인의 명령을 받고 월 낭자를 맞이하러 왔습니다!"
성문 입구의 병사는 눈이 먼 것처럼 아예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녕성은 진작에 상대방의 통제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고소해졌다.
'북요 황제는 이번에 좀 크게 당했군.'
"당신의 주인이 참 세심하시네요."
월령안은 태연자약하게 소녀들의 가마를 탔다.
호위는 월령안의 명령에 감히 의구심을 품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미모의 소녀들에게 가로막혔다.
"저희 주인께서는 월 낭자만 초대하셨습니다."
호위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칼을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괜찮다, 성 밖에서 기다리거라."
그녀에게는 충분한 저력이 있었다. 이 저력은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월씨 가문 표호가 있었다. 그녀의 조카가 무진 애를 써서 그녀를 고녕성으로 불러 단칼에 찔러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이 가마를 타자마자 미모의 소녀들은 가마를 들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가마가 날아오르는 순간, 매혹적인 향이 얼굴을 덮쳤다.
월령안은 이상함을 느끼고 숨을 참으려고 했다. 그러나 향기는 모든 구멍을 뚫고 들어왔다. 가마가 허공까지 올랐을 때, 월령안은 고개를 떨군 채, 기절했다.
기절하는 순간, 월령안은 묵묵히 속으로 생각했다.
'독과 장치에 능하군.'
"큰아가씨!"
호위는 가마가 제자리에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다급히 쫓아갔다.
이번에는 그들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똑같이 소용없었다.
두 다리로 뛰면서 어찌 나는 것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들이 죽을 둥, 살 둥 뒤쫓았지만 가마의 뒤꽁무니도 잡지 못했다. 그들은 멍하니 서서 가마가 날아오르더니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없어졌어!"
호위들은 성안에서 한참 뒤쫓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하나같이 풀이 죽었다.
그들은 큰아가씨를 보호하러 온 것인데 큰아가씨를 놓쳤으니 어떻게 보호하라는 말인가?
"지금 어떡하지?"
몇몇 호위들은 서로서로 마주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같이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누구도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바로 이때, 한 검은 그림자가 구석에서 뛰어나왔다.
"성을 나간다!"
검은 그림자는 육씨 가문을 대표하는 영패를 꺼냈다.
"암위?"
호위들은 손을 칼집에 놓았지만 영패를 보고 칼을 뽑지 않았다.
암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패를 거두었다.
"성안은 그들의 지역이다. 우리 먼저 성을 나가서 소식을 기다리자."
호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지만 더 좋은 수가 없어 마지못해 응했다.
일행은 바로 성을 나갔다. 그들은 막는 사람도, 그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호위들은 이상하게 불안해졌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