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8화 육장봉이 가진 비장의 패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방 안의 분위기는 잠깐 무거워졌다.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탁자 위의 알껍데기를 치웠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탁자 위의 껍데기를 줍고 정연하게 겹쳐 놓았다. 그들의 동작은 세심하고도 느렸다. 그러나 껍데기 몇 개뿐이었다. 아무리 천천히 움직이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탁자 위를 깨끗하게 거둔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월령안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육장봉이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월씨 가문 호위를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이 떠날 때가 되었소."
"네."
해야 할 말을 어제 모두 마쳤다. 월령안은 정중하게 육장봉과 약속했다.
"무사하게 돌아올게요."
"문제가 생긴다면 이걸 가지고 북요의 북부(北府) 재상을 만나러 가시오."
육장봉은 옥패를 떼서 월령안의 손에 넣어 주었다.
"북부 재상이오?"
옥패를 쥔 월령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겠지?'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월령안의 눈은 놀라움에 휘둥그레지고 입술도 동그랗게 벌려지더니 한참이나 다물지 못했다.
'북요 북부의 재상이라니! 육장봉은 하늘을 거스르려는 것인가?'
"놀랄 것 없소. 육씨 가문이 북요에서 오랫동안 판을 짰는데 아무것도 없을 수는 없지 않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게 내가 놀랐다고 탓할 일인가? 분명 육장봉이 가진 비장의 패가 너무 놀라운 것인데.'
북요는 주나라와 달랐다. 북요에는 남, 북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남원의 관직은 대다수 한인(漢人)들이 담당했고 주요하게 주나라의 사무를 관리했다. 관직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사실상 북요에서 별로 실권이 없었다.
그러나 북원의 관직은 모두 북요인들이었다. 북원의 관리들은 하나같이 실권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북요 황제의 심복이기도 했다.
육장봉이 그녀에게 북요의 북부 재상이 자기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건 마치 북요인이 그녀에게 최 승상이 바로 그들 북요의 첩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일국의 대권을 움켜쥔 재상이 적국의 사람이라니. 이 소식이 전해진다면 북요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녀가 꾹 참고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히 침착한 것이었다.
북요 북원의 재상이 육장봉의 사람이라니!
월씨 가문의 서원에서 화본을 쓰는 사람도 이런 건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정말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월령안은 마치 구름을 밟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눈앞의 모든 것이 진실되어 보이지 않고 환상으로 보였다.
도마관을 나갈 때, 관 밖의 찬바람을 맞고 나서야 월령안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북원의 재상이 육장봉의 사람이라는 것뿐이잖아. 내가 당황할 게 뭐가 있어! 북원 재상이 첩자라면 주나라, 북요의 전쟁에서 우리 주나라가 필승할 거야. 나에게도 보험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월령안은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채찍을 휘두르며 불타오르는 투지로 소리 높여 고함을 질렀다.
"나를 따르라! 이번에 가서 북요를 정복하자!"
"크, 큰아가씨…… 괜찮으세요?"
함께 길을 가던 호위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우리 큰아가씨는 길에서 줄곧 멍하니 있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것은 그렇다고 해도 왜 갑자기…… 미친 거지?'
몇몇은 서로 마주 보며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의아해할 때가 아니었다. 호위들은 눈 깜짝할 새에 저 앞까지 달려간 월령안을 보더니 다급히 말을 몰아 뒤쫓아갔다.
간신히 월령안을 따라잡은 호위들은 월령안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영문을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월령안이 다시 한번 속도를 내며 질주했다.
"어서. 우리는 오시(午時) 전에 북요로 진입한다."
"네, 큰아가씨."
호위들은 무척 궁금했지만 말을 물을 시기를 찾지 못하자 속도를 가하며 월령안의 뒤를 바짝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미친 듯이 질주하여 오시 전에 변방에 도착했다.
북요 경내에 도착하자 삼 황자 야율헌일이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삼 황자를 제외하고 거란족(契丹族)의 차림을 한 장수도 한 명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월령안을 보자 먼저 앞으로 다가왔다.
안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야율헌일은 나무함을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이 함이 제 머리맡에 있었어요.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하더군요."
"감사해요!"
질주해서 한달음에 북요 경내로 들어온 월령안은 이미 침착해져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함을 열었다. 안에 피투성이의 손이 있는 것을 보자 월령안은 안색을 살짝 굳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을 옆에 있는 호위에게 건네주었다.
"괜…… 괜찮으세요?"
야율헌일은 나무함을 가리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함 안의 피투성이 손이 그녀 조카의 것이 맞는지 아닌지 누구도 몰랐다.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 지레 당황해서는 안 된다.
"북요 황제께서 상경에서 절 기다리고 계시죠? 갑시다."
야율헌일의 옆에 서 있던 거란족 차림의 중년 남자가 월령안에게 공수했다.
"월 가주, 역시 상인다우십니다. 이런 시기에도 상경으로 가 거래를 논할 정도로 냉정할 수 있으시다니."
월령안이 왜 온 것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 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월령안이 옮겨온 구원병이었다.
월령안이 반문했다.
"제가 왜 냉정하면 안 되는 거죠? 손에 돈이 있다면 세상의 구 할 정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되게 되어 있는데. 아닌가요?"
그녀는 북요 황제가 얼마나 개입되었는지 떠보고 싶었다.
"월 가주께서 정곡을 찌르시네요. 제가 괜히 걱정했어요."
거란 남자는 호쾌하게 웃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했다.
"별말씀을요. 특별히 오셨는데 제가 아직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했네요."
거란족 차림을 한 남자는 이름이 호도고(胡都古)였고 북요에서 가장 큰 상인이었다. 북요의 사대 부락 중 하나인 여진족(女真族) 출신이었다.
그는 줄곧 북요의 각 부락에서 장사를 하는 탓에 거란족 차림에 익숙해졌다.
"상인은 말이죠,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면 뭐든 해요. 이 정도 수고 따위야 뭐 대수겠어요?"
호도고는 월씨 가문의 표호 때문에 온 것이었다. 또 월령안이 선택한 협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월씨 가문 표호를 전부 감당할 수 없었다. 다만 월령안과 협력하여 북요의 각 부락에 표호를 개설해 금은을 대신하여 사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호도고는 월령안이 골칫덩이인 것을 알면서도 온 것이다.
폭리를 취할 수 있는데 이까짓 골칫거리가 무슨 대수겠는가?
양측이 모두 원하는 바가 있어 골머리를 앓으며 떠볼 필요도 없었다.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시 출발하여 북요 상경의 임황부(臨潢府)로 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월령안은 또 나무함을 하나 받았다. 그 안에는 똑같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이 들어있었다.
손 말고도 편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넌 길을 잘못 들었어!
편지의 글은 피로 쓴 것이었다. 글자에는 모두 길게 피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불빛 아래서 그 글씨는 매우 눈을 찔렀다.
편지를 움켜쥔 월령안의 얼굴은 빛을 등지고 있었는데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그녀는 북요 황제를 높이 보았고 또 월씨 가문 사람들은 낮잡아 보았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야율헌일은 월령안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참 머뭇거리다가 불렀다.
"월령안?"
"전 괜찮아요."
월령안은 차갑게 야율헌일을 바라보았다.
"삼 황자 전하, 주변의 사람을 잘 단속하셔야겠네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손에 든 편지를 구겨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화륵" 하고 불길은 날름 종이 뭉치를 집어삼켰다.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야율헌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변명하려고 했으나 월령안은 이미 일어나 손에 든 나무 함을 호위에게 넘겨준 채, 성큼성큼 막사로 걸어갔다.
한쪽에 앉아 있던 북요 대상인 호도고도 일어났다.
그는 야율헌일의 옆까지 와서 발걸음을 멈췄다.
"삼황자, 자기의 사람마저 잘 단속하지 못하다니. 그다지 좋은 협력 상대는 아니네요."
월령안은 그들에게 실망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거래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야율헌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실수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랄게요."
호도고는 야율헌일의 어깨를 다독였다. 삼 황자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야율헌일 얼굴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호도고가 막사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는 분노에 찬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알아내거라! 당장 알아내거라! 이 두 함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그러나 야율헌일이 문제를 아직 알아내지 못한 다음 날 아침, 월령안은 세 번째 나무함을 받았다.
이번에 나무함에 든 것은 피가 흥건한 귀였다. 똑같이 피로 쓴 편지가 있었다.
알아맞혀 봐. 그의 몸에서 베어낼 것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글자 말고도 구석에는 피로 그린 노선도가 있었다.
방향이 하나밖에 없어서 월령안은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방이 원하는 곳이 상경과 반대 방향인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월령안은 손에 든 편지를 노려보며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사람들이 감히 다가가지 못할 만큼 어두운 분위기가 그녀 주변을 감쌌다.
뛰는 그녀 위에 나는 그놈이 있었다. 그녀가 진 것이다.
"큰아가씨……."
야율헌일은 이미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월령안의 호위는 걱정스럽게 월령안을 불러 보았다. 월령안이 이성을 잃을까 겁이 났다.
"행선지를 바꾼다!"
월령안은 이성을 잃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북요에서 북요 황제마저 상대방을 타협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져도 억울하지 않았다.
"월 가주, 행선지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지금 일부러 가주를 유도하는 거예요. 가주가 행선지를 바꾼다면 그들의 뜻대로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거예요."
북요 상인 호도고는 절박하게 귀띔했다.
월령안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와 월령안의 협력은 끝장날 것이다.
월씨 가문의 표호 일을 따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가 북요의 제일 상인이라고 해도 각 부락에서 더는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야율헌일도 정신을 차리고 월령안을 설득했다.
"호도고의 말이 맞아요. 그들은 당신이 상경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이런 시기에 당신은 더욱 우리와 함께 상경으로 가야 해요."
'월령안이 행선지를 바꿔 상경으로 가지 않고, 부황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내가 황위를 쟁탈할 패가 늘어나겠어?
월령안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가야 해."
"맞아요! 그들이 이렇게 목을 조인다는 건 분명 가주가 상경으로 가는 것이 두렵다는 의미일 겁니다. 가주가 행선지를 바꾼다면 그들에게 끌려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주도권은 가주의 손에 없게 되는 거라고요."
호도고는 월령안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비장의 패를 꺼냈다.
"제 상인 대오가 북요의 각 부락에 분포되어 있어요. 전 이미 그들더러 소식을 알아보라고 했어요. 절 믿으세요. 곧 월씨 가문 소공자의 소식이 있을 거예요."
야율헌일도 질세라 말했다.
"월령안, 북요는 우리가 제일 잘 압니다. 제 부황이 계시는 한, 당신의 조카는 틀림없이 무사할 거예요. 반대로, 당신이 그들과 함께 가서 그들 손에 걸려든다면 당신의 조카를 구하기는커녕 당신도 위험해질 겁니다."
야율헌일과 호도고는 모두 자신만의 속내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목적은 같았다. 그들은 월령안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위험에 빠지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