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화 그 꿈속에 내가 있기를
그러나 괴로운 것은 괴로운 것이고 육장봉은 그래도 월령안을 차마 내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육장봉은 월령안을 품에 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좋은 꿈을 꾸기 바라오. 그 꿈속에 내가 있기를."
말을 마친 뒤, 육장봉도 눈을 감았다.
그의 품에서 곤히 자던 월령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방 밖에서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소리를 냈다. 윙윙 부는 찬바람은 겨울의 매서움을 담고 있었다.
방안에서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 밖에서 찬바람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방안의 따스함을 깨뜨릴 수 없었다.
날이 밝기 전에 방 밖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육장봉은 번쩍,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밀려가고 여느 때처럼 날이 밝아졌다.
월령안은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풀어 주고 침대에서 내린 뒤, 나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전체 과정에서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고 동작이 깔끔했다.
바로 육장봉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던 월령안이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은 몹시 맑았다.
육장봉이 나가면서 가볍게 문을 닫는 것을 보고 그녀의 시선에는 따뜻함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 그녀는 더욱 곤히 잠들었다.
육장봉이 방에서 나가자 암위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대장군!"
육장봉은 암위 앞을 가로막고 손을 들어 그를 눌렀다. 그리고 목소리를 깔고서 말했다.
"앞으로 가서 말하지."
암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은 중의(中衣)를 입고 나와서 나오자마자 그의 시선을 가리고 그가 작은 집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어젯밤에 대장군과 월 낭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설마 우리에게 도련님이 생기려는 건가?'
암위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수없이 고개를 돌려 보고 싶었다. 대장군이 그더러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며, 나오자마자 그를 멀리 내쫓은 작은 집을…….
방 안에 분명 뭔가가 있다고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암위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선명하게 구겨진 옷을 입고 앞에서 걷고 있는 대장군을 보자 그는 마음속의 갈망을 억지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록 방 안의 '뭔가'가 궁금했지만 죽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대장군이 반드시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숨이 중요하지.'
암위는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서 걷던 대장군이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암위는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대장군에게 자신이 금방 받은 소식을 보고했다.
"대장군, 북요의 상장군 소영화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그는 시월 조직의 사람들이 청주에 있는 정탐꾼들을 움직여 월씨 가문의 소공자를 납치해 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누가 이 일을 꾸몄는지는 그도 알아낼 수 없었답니다. 시월 조직의 사람은 북요 황제만 위해서 일을 하고 북요 황제의 말만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요에서도 몹시 신비스러워 소영화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짧아 소영화는 잠시 소공자의 행방을 찾지 못해 그가 안전한지도, 시월 조직과 연관되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두머리는 월 낭자의 숙부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
육장봉은 짧게 대답했다. 그의 안색은 살짝 어두웠다. 그는 암위더러 계속해서 말하라고 했다.
암위는 잠깐 멈칫하더니 조금 불안하게 말했다.
"대장군, 시간이 너무 부족해 우리의 사람이 북요에서 알아낸 소식은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납치 사건이 소공자가 월 낭자를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꾸민 일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육장봉의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계속해서 북요를 지켜보거라. 소식이 있다면 바로 보고하고. 중점적으로 월씨 가문의 그 소공자를 눈여겨보거라!"
하룻밤의 시간 동안뿐이었으니 육장봉도 북요의 정탐꾼이 무슨 크나큰 소식을 알아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결국 월령안의 조카가 진짜로 위험한지, 가짜로 위험한지 알아낼 수 없었다. 이는 육장봉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다.
'월령안의 그 조카는 참…… 머리가 아프군!'
월령안의 조카는 그가 만난 아이 중에서 가장 총명하고 영악한 아이는 아니었으나 그가 만난 것 중에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너무 특별하고 또 너무 독했다.
월령안의 조카가 진짜로 위험한지 가짜로 위험한지 확신하지 못하자 그는 월령안을 저지할 명분이 없었다.
북요로 간다!
그렇다!
지금까지 육장봉은 줄곧 월령안이 북요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월령안이 북요로 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시도했다.
다만 월령안의 그 말을 들은 뒤, 육장봉은 그녀를 억지로 남기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와 도리를 따지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룻밤의 시간은 그가 월령안이 북요로 가지 못하게 막기 위한 '도리'를 찾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월령안더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방법을 생각해내기 전에 암위가 또 말을 이었다.
"대장군, 폐하께서 암부를 통해 저희에게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북요, 금나라, 서하에 모든 군사를 움직인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대장군이 바로 변경으로 돌아가시기를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부탁' 두 글자를 말할 때, 훈련이 잘되어있던 암위도 말을 더듬었다.
당당한 제왕이 신하에게 '부탁'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 황제의 분노와 부득이함을 보아 낼 수 있었다. 또 대장군의 오만함도 보아 낼 수 있었다.
그들의 대장군이 조금이라도 황제의 말을 듣기만 했어도 황제는 '부탁' 두 글자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글자를 내뱉는다면 대장군을 불에 올려놓고 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알겠다."
육장봉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고요하기만 했다. 황제의 말로 인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모두 그의 결정을 흔들 수 없었다.
육장봉은 황제의 말에 언제 변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암위더러 북요의 암탐(暗探)에게 통지하여 최선을 다해 월령안 조카의 일을 조사하게 했다. 동시에 시월 조직의 사람도 최선을 다해 격살하라고 했다.
"북요의 암탐에게 이르거라. 무슨 일이든 반드시 월령안의 안위를 위주로 생각하라고. 필요하다면 모든 사람이 노출되어도 된다. 암탐 수령마저도. 알겠느냐?"
주나라 북요에 심은 암탐 수령의 신분은 특별했다. 육장봉은 암탐 수령을 강조하면서 짙은 경고의 뜻을 밝혔다.
암위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월령안의 중요 등급을 또 묵묵히 한층 더 올렸다. 그 순위는 대장군보다 높았다.
그때, 대장군이 북요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도 암탐 수령더러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지금 월 낭자를 위해 암탐 수령을 노출시키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으니 월 낭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아 낼 수 있었다.
암위를 보낸 뒤, 육장봉은 급히 돌아가지 않고 산으로 갔다. 거기서 월령안에게 줄 열매와 꿩의 알을 구한 뒤에야 비로소 돌아갔다.
육장봉이 돌아왔을 때, 월령안은 이미 깨어 있었다. 육장봉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월령안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일어나서 육장봉을 맞이했다.
"오셨어요?"
육장봉은 잠깐 멈칫했다. 차갑게 굳은 얼굴에 옅은 따뜻함이 흘렀다.
"응, 돌아왔소."
월령안이 한 말에서나 그녀의 동작에서나 모두 집에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신혼 부부 사이의 느낌이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열매가 있다니. 제가 맛있는지 한 번 먹어볼게요."
월령안은 육장봉 손에서 열매를 받고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월령안은 잠깐 멈칫하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맛있어요. 드셔 보실래요?"
월령안은 한 입 베어 문 열매를 육장봉에게 건네주었다. 육장봉은 웃더니 월령안이 문 자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윽……."
순간, 육장봉의 준수한 얼굴이 찌푸려지더니 힘겹게 삼켰다.
"역시…… 아주 맛이 좋소!"
"하하하하……."
월령안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열매는 당신이 딴 거잖아요."
겨울에도 나무에 남아 있는 과일은 새조차도 먹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맛이 없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열매는 먹지 말고 이걸 먹으시오."
입안의 쓰고 떫은 열매를 간신히 삼킨 뒤, 육장봉은 또 꿩 알을 하나 꺼내 껍데기를 깐 뒤,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월령안은 받지 않고 육장봉의 손의 것을 덥석 물었다.
"맛있네요."
육장봉은 남은 것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그럼 하나 더 드실래요?"
월령안도 꿩 알 하나를 발라서 육장봉에게 건네주었다. 육장봉은 한입에 다 먹어 버렸다.
월령안은 빈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손을 바라보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한테 남겨 주지도 않나요?"
"내 부인이 날 위해 깐 꿩 알을 왜 남겨 줘야 하오?"
육장봉은 두어 번 만에 입 안의 알을 다 삼켜 버렸다. 그는 비록 웃음을 머금고 있었으나 말투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남자는 입만 열지 않으면 얼마나 얄미운지 알 수 없다니까.'
"당신 말이 맞아요."
월령안은 또 꿩 알을 두 개 발랐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육장봉의 입가로 가져갔다.
"자, 하나 더 드세요."
'이걸 다 먹고 다음에도 또 있어. 이렇게 연이어 먹는다면 육장봉이 어떻게 삼키는지 봐야지.'
"당신이 먼저 먹으시오."
이번에 육장봉은 한 번에 삼키지 않고 받은 뒤에 월령안의 입가로 가져갔다.
월령안이 거절하려는 순간, 낮게 말하는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노른자를 싫어하지."
월령안은 그만 멍해졌다. 그녀는 시선을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온통 놀라움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냈던가?
육장봉이 나한테 꿩 알을 한 번만 먹이고도 내가 노른자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인가?'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것 없소. 당신이 노른자를 씹었을 때, 미간을 찌푸렸소."
"사실, 전 편식하지 않아요."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입을 벌려 가볍게 베어 물었다.
"응, 우리 령안이는 착한 아이요, 편식도 하지 않고."
육장봉은 노른자를 먹은 뒤, 나머지 흰자를 월령안에게 먹였다.
월령안이 목이 멜까 걱정되어 그는 또 월령안에게 물을 따른 뒤, 손에서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가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월령안은 절반 마신 뒤, 나머지를 육장봉에게 남겨 주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서로 나눠 먹으며 아침 식사를 마쳤다. 두 사람은 쓰고 떫은 열매 몇 알까지도 다 먹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