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화 저 대신 폐하를 때려 주세요
그러나 노인은 두려워했다!
노인은 그녀에게 골칫거리를 안겨 줄까 두려웠다.
"당신은 그분을 모르세요. 그분은 저와 만나지 않으실 거예요. 특히 궁 밖에서는요."
월령안은 냉소했다. 그녀는 반은 자조적이고 반은 서글프게 말했다.
"제가 변경으로 돌아가서 폐하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영감님은 절 만나지 않으실 거예요."
월령안은 잠깐 멈췄다가 우는 것보다 더 흉한 미소를 지었다.
"영감님은 줄곧 자신만의 방법으로 절 지켜 주셨어요. 영감님은 절대 저를 만나지 않으실 거예요. 설령 그게 마지막 순간이라고 해도."
노인이 마지막에 궁으로 돌아간 것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설령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가 황제의 의심을 사지 않게 보호하던 노인이 또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성공을 앞두고 실패하겠는가?
"당신은 영감님을 명월 산장까지 모시면 충분해요. 명월 산장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남겼어요. 영감님이 보신다면 알게 되실 거예요."
월령안은 힘껏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도 깜박여서 없애 버리고 애써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손에서 술 항아리를 빼앗아 와 벌컥벌컥 들이켰다.
"콜록콜록…… 전 괜찮아요."
너무 빨리, 급히 마신 탓에 월령안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육장봉의 불만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월령안은 육장봉을 밀치고 책상에 엎드렸다.
"육장봉, 당신은…… 그들이 청주에서 제 조카를 납치해 간 걸 폐하께서 모르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울먹였고 서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밖에서 괴롭힘당하고 돌아와 일러 바치는 아이처럼 낮은 소리로, 또 한없이 억울하게 말했다.
"청주는 주나라의 청주예요. 청주는 이미 예전의 청주가 아니에요. 조의박 삼형제도 청주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어요. 폐하께서는 알고 계세요. 폐하께서는 모두 알고 계세요. 조계안이 청주에 심은 첩자가 제 조카를 납치해 가는 것을 막지 못했더라도 전혀 소식을 받지 못했을 리는 없어요. 그런데……."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처량했다.
"육장봉, 우리는 미리 소식을 받았나요?"
육장봉이 입을 열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아니요! 우리는 소식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어떤 일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고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취하지 않았는가? 취기는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들었다. 불만과 응어리를 모두 숨길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육장봉, 당신은 저보다 더 잘 알지요. 제가 변경으로 가서 영감님을 만나는 것이 싫은 사람은 북요인들뿐만이 아니죠. 영감님도 그러하시고 폐하께서도 그러하시죠!"
'폐하'이 두 글자를 월령안은 무척 강조했다!
"폐하께서는 제가 변경으로 돌아가는 게 싫으시고 제가 영감님을 만나는 게 싫으시다고요. 알겠어요?"
황제는 그녀가 노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것을 싫어했다. 또 노인은 절대로 그녀와 만나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그녀를 의심하지 않도록.
심지어 만날 수 없게 더욱 부추길 것이다!
"육장봉, 아세요? 그때 제가 관성에 있을 때, 영감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영감님이 보낸 사람을 만났어요. 그들은 저를 못 돌아가게 가로막았어요. 제가 그저 돌아가려고 하기만 하면 절 막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신은 제가 왜 전혀 망설이지 않고 변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는지, 영감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않기로 했는지 아세요? 영감님이 사람을 보내 절 막을까 겁이 나서였어요.
그래요, 영감님에게는 사람이 있고 비장의 패도 있어요. 그러나 마지막 남은 사람들일 뿐이에요. 영감님은 이 사람들로 저와 서 아저씨를 보호하려는 것이에요. 그들이 한 번이라도 더 나타난다면 노출될 위험도 더 커져요.
그들이 만약 노출된다면 영감님의 심혈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아요. 폐하께서는 원래부터 저와 영감님을 믿지 않으셨어요. 만약 그들이 나타난다면 폐하께서는 충분히 저와 노인이 뭔가를 더 숨겼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설령 우리가 전부를 내놓는다고 해도 폐하께서는 믿지 않으실 거라고요! 폐하께서는 평생 저를 감시하실 거예요. 이건 영감님이 바라시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변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감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은 제 선택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제가 그 선택을 하게 몰아붙였다고요. 저를 변경으로 못 돌아가게 하려고 폐하께서는 심지어 그 사람들이 청주에서 제 조카를 데려갈 수 있게 암묵적으로 동의하셨어요. 육장봉…… 모두가 저를 괴롭혀요. 전 북요로 가기 싫지만 안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은 저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까요."
또 그녀만이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알겠소."
육장봉은 낮게 한숨을 쉬고 앞으로 다가와 월령안을 살짝 안고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이번에는 내가 있겠소!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월령안이 말한 이것들을 그가 모르겠는가?
그는 알고 있었다.
청주에는 조계안의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육삼도 청주에서 월령안의 조카와 추수라고 하는 시녀와 함께 실종되었다.
그가 알고 있기 때문에 월령안이 북요로 가는 것을 막았다.
이건 함정이었다. 월령안을 겨냥한 함정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가지 않는다면 평생 양심적으로 불안해할 것이며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령안은……
감정과 의리를 중히 여겼다!
그의 령안은……
친척을 나 몰라라 할 정도로 매정하지 못했다.
그의 령안은……
아무리 총명하고 능력이 있어도 여전히 가족들의 즐거움에 기뻐하고 가족들의 슬픔에 슬퍼하는 소녀였다.
"그럼 당신이 돌아가서 저 대신 폐하를 두드려 패 주세요."
육장봉에게서는 시원한 대나무의 향이 났다.
월령안은 그의 품에 안겨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육장봉이 볼 수 없는 데서 그녀의 눈은 또렷했다. 흐릿한 취기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취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이 매우 맑았다.
그러나 어떤 말은 취기를 빌려서야만 말할 수 있었다.
"좋소."
육장봉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월령안은 더욱 큰 것을 요구했다.
"꼭 얼굴을 때려야 해요."
누구도 보아 내지 못한다면 금의야행과 다를 것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좋소."
월령안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지만 육장봉은 여전히 정중하게 대답했다.
월령안이 정말 취했든, 아니면 가짜로 취했든, 그가 월령안과 약속한 일은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래서…… 양식 가격은 낮출 수 없어요. 그러나 예약금을 적게 받을 수 있죠. 예약금을 절반만 받을게요."
육장봉이 이토록 그녀에게 협조하는 것을 봐서 그녀도 육장봉에게 이익을 약간 양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신, 말하지 마세요……. 절대 소문내지 마세요. 말하려면 제가 당신께 드린 것으로 말해야 해요.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저한테 양식과 돈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스럽지 않을 테니까요."
"좋소."
육장봉의 목소리에 옅은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기뻤다.
그녀의 눈에 오직 그만 가장 특별한 것이 기뻤다!
"아 참, 때리는 것은 괜찮은데 반드시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이유를 찾고 때리세요. 폐하께서 뭐라 말씀하시지 못하게."
바로 지금의 그녀처럼 말이다.
북요로 가는 것은 그녀의 선택인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모두 그녀를 핍박하고 있었다.
그녀는 북요로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약점이 있었고 심지어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억지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알았소."
육장봉은 나지막하게 대답하고 머릿속으로 무슨 핑계를 대서 황제를 때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폐하 말고 조계안도 있어요. 하는 김에 그도 한번 손봐 주세요."
월령안은 일러바치는데 재미를 들렸다. 황제를 일러바친 뒤, 이번에는 또 조계안을 고자질하기 시작했다.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종알종알 끝없이 말했다.
또 육장봉도 매우 인내심 있게 그녀의 말을 들었다. 가끔 두어 마디 맞장구를 치면서 월령안과 함께 분노했다.
얼핏 들으면 주정뱅이를 달래는 말 같았지만 월령안이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면 그 자신조차도 모르는 애틋함과 안쓰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바삐 보내고 또 육장봉을 한참이나 경계한 월령안은 무척 지쳐 있었다.
육장봉의 품에 기대 육장봉 특유의 냉죽향을 맡으며 가슴팍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던 월령안은 몸의 긴장이 점점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졸음이 몰려왔을 때, 그녀는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지쳤고 또 졸렸다.
육장봉은 그녀가 안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말을 하다가 육장봉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육장봉이 눈치챘을 때, 월령안은 이미 곤하게 잠이 든 뒤였다. 무의식 중에 두 손으로 그의 허리춤을 잡고 있는 것이 매우 귀여워 보였다.
"령안."
육장봉이 가볍게 부르자 월령안이 옹알거리며 예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잠을 깨우는 게 싫은 듯했다.
"당신은 참……. 나를 참 잘 알고 있소. 내가 당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육장봉이 어떻게 월령안은 깨울 수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월령안을 안아서 침대로 갔다.
월령안이 편하게 자지 못할까 걱정된 육장봉은 또 월령안을 얼러서 겉옷을 벗겼다.
육장봉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정말로 취한' 탓에 육장봉이 그녀더러 옷을 벗고 자라고 말해도 그녀는 눈까풀을 들지 않고 손을 내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육장봉더러 옷을 벗겨달라는 뜻이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육중한 솜옷을 입고 자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한쪽은 추운데 한쪽이 더우면 감기에 걸릴까 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한참 애를 쓰고 나서야 월령안의 겉옷을 벗길 수 있었다. 이때, 월령안이 돌아누우며 어깨가 살짝 드러났다. 그녀는 이불을 몸에 감고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무척 고생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그는 땀으로 온몸이 흥건해졌다.
지친 걸로 치자면 육장봉의 하루가 월령안보다 훨씬 힘들었다.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음 때문에 그는 잠들기는커녕 앉아 있지도 못했다.
육장봉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뛰어나가 찬바람을 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마침 겨울철이었다. 낮에는 해가 있어 그나마 따뜻하나 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관성의 밤은 유난히 추웠다.
육장봉이 나가자 몸 안의 뜨거움이 밖의 찬바람에 거의 식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급히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두막 주변을 백 바퀴 가까이 뛰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정력까지 전부 발산하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육장봉은 이미 몹시 지쳐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서 다른 생각이 없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생각이 있어도 그는 이미 그럴 기운이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뒤, 육장봉은 급히 자지 않고 잠깐 제자리에 서 있었다. 몸의 한기가 거의 물러간 뒤에야 겉옷을 벗고 월령안의 곁에 누웠다.
육장봉이 눕자 그녀는 낯선 인기척이라 생각해 긴장으로 굳었다.
"나요. 내가 왔소."
육장봉이 소리를 내며 또 월령안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네."
월령안이 대답했다. 긴장으로 굳어졌던 몸이 바로 나른해졌다. 그녀는 돌아누워서 육장봉의 품 안에 웅크린 채로 계속해서 잠을 잤다.
육장봉은 자기의 품에 웅크린 채, 곤히 자고 있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품에 안겨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잔인한 괴롭힘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