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화 제 조건은 이것밖에 없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한테 양식이 좀 있소. 난 당신이 이 양식을 전선까지 옮겨 주었으면 하오. 그것 말고…… 당신이 여기서 고기도 좀 사 주시오. 소, 양, 돼지고기. 다 상관없으니."
"시세가로 계산할 거예요! 그리고 월씨 가문 표호만 받을 거고요. 미리 준비해 주세요."
월령안은 술 단지를 들고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육장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군께서 돈이 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육장봉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애정을 듬뿍 담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협조적으로 술 단지를 들고 월령안 수중의 술 단지에 가볍게 부딪히며 물었다.
"당신은 척연이 변경에 보내는 그 돈이 가지고 싶은 거요?"
"국고에 들어가면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말하기 어렵죠. 그러나 당신이 돈을 낸다면 우리 월씨 가문 상사는 신용을 지키니까요. 당신이 원하는 화물은 반드시 제때 도착할 거예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술 단지에 가볍게 건배하고 먹는 체했다.
그저 입술만 적셨을 뿐, 술맛도 보지 않고 월령안은 단지를 내려놓았다.
"전쟁이 나면 양식, 고기들은 전부 미친 듯이 가격이 오를 거예요. 당신이 지금 돈을 지불한다면 전 지금의 가격 그대로 물건을 주문해 드릴 수 있어요. 늦는다면 전 그때 시세대로 받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돈을 지불한다면 지금의 시세가로 쳐 주겠다고?"
육장봉은 눈빛을 반짝이며 묵묵히 월령안에게 함정을 팠다.
월령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모르는 척했다.
"맞아요! 전액을 지불하는 그때의 시세가로 계산할 거예요. 우리 월씨 가문 상사는 당신들에게 협조하여 필요한 시간에 맞게 물건을 배달할 수 있어요."
'나한테 함정을 파려고 하다니. 육장봉도 날 너무 낮잡아 보는걸. 내가 정말 취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건 적은 돈이 아니오. 조정은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지 못할 수도 있소."
육장봉은 술 단지를 들고 월령안의 단지와 가볍게 부딪히고는 천천히 마셨다.
월령안은 내내 경계하고 있었다. 육장봉이 단지를 들 때마다 따라 마셨지만 절대 많이 마시지 않고 입술만 축이는 정도로 그쳤다. 심지어 목구멍까지 삼키지도 않았다.
이 술이 매우 독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육백만 냥의 돈은 당신의 병사들이 오육 년 먹기에 충분해요."
월령안은 군사용 물자를 제공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어 육장봉 수하의 군사들이 일 년에 어느 정도 먹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삼십만의 대군을 끼니마다 고기와 쌀이 있게 배불리 먹인다면 일 년에 대략 칠십만에서 백만 냥가량 필요했다. 물론, 육장봉에게 돈이 있다면 더욱 많이 쓸 수 있었다. 먹는 음식에는 싼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었다. 육장봉이 어떻게 선택하는지 보아야 했다.
"내 수하의 병사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육장봉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두 나라가 전면적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되오. 나라 전체의 전쟁이오!"
주나라의 백만 대군은 모두 반드시 전선에 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 그는 월령안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전 한 잎도 그는 반드시 칼날에 써야 했다.
이번 전쟁은 규모로나, 기한으로나 모두 전의 전쟁보다 크고 길 것이다. 육장봉은 준비를 충분히 마쳤다. 그러나 전쟁의 일은 순식간에 변하기 마련이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다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준비를 충분히 해도 부족하고 아무리 비용이 많아도 모자랐다.
가장 싼 가격에 가장 많은 양식과 육류를 사기 위해 육장봉은 머리를 쥐어짜며 월령안과 담판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이득을 양보하게 하기 위해 심지어 그는 월령안에게 술까지 먹였다. 월령안을 취하게 하는 치졸한 수까지 쓰게 될 뻔했다.
쓰게 될 뻔했다고 말한 것은 육장봉이 이 수를 쓰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술이 부족했다!
그는 술 한 단지를 다 마셨지만 월령안에게서는 취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상냥하게 자기 손에 있는 술까지 그에게 주었다.
월령안의 손에서 술 단지를 받아 든 육장봉은 그제서야 월령안의 술이 거의 줄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두 사람이 술 단지를 부딪힌 횟수가 적어도 열 번은 되었고, 매번 그는 월령안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술은 진작이 동이 났지만 월령안의 이 술은…….
월령안이 그와 술 단지를 부딪힐 때마다 기껏해야 입술이나 적신 것이 분명했다.
'이건 나를 경계하는 거였군.'
육장봉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는 월령안을 취하게 한 뒤, 월령안의 정신이 흐릿한 틈을 타 가격을 상의하려는 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는 수 없이 이 방법을 포기하고 그는 사실대로 도리를 따져 월령안더러 가격을 낮추게 하려고 했다.
이때, 육장봉은 황제가 조운을 직접 월령안에게 넘겨주지 않고 월령안에게 조운을 잠시 다룰 권리만 준 것을 몹시 다행으로 여겼다.
육장봉은 조운을 빌미로 월령안더러 원가에서 가격을 삼 할 낮추어달라고 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다면 양식은 가장 비싼 것이 된다. 월령안이 현재의 가격대로 양식을 판다면 그녀는 양식에서 돈을 벌 수 없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미리 이 돈을 그녀에게 준다면 그녀는 이 돈으로 다른 곳에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육장봉은 또 그녀더러 가격을 낮추기까지 해 달라고 했다. 월령안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다면 조운은 반드시 전선에 먼저 공급할 거예요. 전 이득을 볼 수 없어요."
'나는 이 사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 육장봉은 내가 주나라를 사랑한다고, 북요를 멸망시키고 싶어 한다고 해서 날 괴롭혀서는 안 되지.'
그녀는 주나라를 사랑했다. 그래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다. 육장봉이 그녀더러 주나라를 위해 돈과 양식을 기부하기 원한다면 그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업이었다!
사업은 사업다워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손해 보는 것은 또 뭐람?
이건 기부가 아니었다. 그녀가 손해 본다고 해도 명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업계에서 진 것은 바로 진 것이었다. 누구도 그녀더러 착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녀가 멍청하다고 말할 것이고 심지어 그녀가 만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모든 일은 처음이 있으면 두 번째가 있는 법. 일단 그녀가 육장봉에게서 시작을 떼서 육장봉에게 이득을 양보했다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빌미로 그녀더러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핍박할 것이다.
그녀가 응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응한다면 매 거래에서 보는 손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어떻게 그 사람들이 모두가 육장봉처럼 나라를 몹시 사랑한다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해도 왜 그녀의 돈으로 저들의 명성을 바꾸려는 것인가?
그럴 돈이 있으면 그녀가 스스로 조정에 기부하여 좋은 명성을 따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월령안은 몹시 단호했고 전혀 타협하지도, 협상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원칙 그대로였다. 조정이 힘들다면 그녀가 돈과 물품을 기부할 수는 있겠지만 거래에서 손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더욱 야박한 조건을 걸며 입을 열었다.
"그럼 원가대로 하되, 난 먼저 예약금으로 삼 할 내고 나머지 돈은 전쟁이 끝난 뒤에 지불하겠소."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군, 거래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이 담판은 결렬되는 방향으로 가는 건가?'
"당신은 응하게 될 것이오."
육장봉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월령안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내가 염 황숙을 모시고 궁에서 나와 당신과 만나게 하겠소!"
그는 이미 자기의 매력만으로 협상 자리에서 월령안의 양보를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비장의 패를 쓸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잠깐 굳어졌다가 조심스럽고도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
"확실해요?"
'해낼 수 있으시겠어요?'
"종묘사직에 연관된 일이니 폐하께서도…… 고개를 숙이셔야 할 것이오."
평소라면 분명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은 특별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도리는 월령안도 알 것이다.
"좋아요!"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응했다. 전혀 머뭇거리는 기색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보여 준 영리함과 전혀 양보하지 않던 굳센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육장봉이 월령안 마음속에 자리한 염 황숙의 위치를 부러워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당신이 영감님을 모시고 절 만나러 올 필요는 없어요. 영감님을 궁에서 내온 뒤, 명월 산장으로 모시세요."
육장봉은 대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빛 아래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애써 웃고 있는 월령안을 결국 속일 수 없었다.
"이건 조건 안에 없소. 이번 일이 없더라도 난 염 황숙을 명월 산장으로 모셨을 것이오."
염 황숙은 황궁을 싫어했다. 한시도 황궁에 있기 싫어했다. 도저히 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염 황숙은 절대 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염 황숙을 잘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만약 변경에서 염 황숙이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얘기한다면 명월 산장밖에 없었다.
명월 산장은 처음부터 염 황숙의 거처였다. 그 안의 풀 한 포기, 꽃 한 떨기까지 모두 염 황숙의 취향대로 장식한 것이었다. 특히 염 황숙은 십 리나 이어져 있는 배나무숲을 가장 좋아했다.
월령안은 명월 산장을 가진 뒤, 더욱 정성 들여 가꾸고 곳곳을 정비했다. 지금의 명월 산장은 염 황숙의 마음에 더욱 쏙 들 것이다.
염 황숙이 자기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 명월 산장에 있을 수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반드시 무척 기뻐할 것이다.
이 점은 월령안뿐만 아니라, 육장봉도 염 황숙을 위해 생각했었다.
육장봉은 부모 인연이 없고 윗사람 인연이 없었다. 월령안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염 황숙은 월령안이 신경 쓰고 존중하는 어른이었다. 월령안이 염 황숙을 신경 쓰니 그도 당연히 월령안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염 황숙을 모시고 궁에서 나가 명월 산장으로 가는 것은 그가 월령안을 대신하여 염 황숙에게 효도하는 것이지 조건이 아니었다.
"제 조건은 이것밖에 없어요!"
그녀는 육장봉이 자기를 배려하여 후회가 없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노인의 몸이 장거리를 견딜 수 없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노인의 신분도 황제를 피해 사적으로 그녀를 만나기에 무리였다.
노인이 왜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녀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황제는 지금까지 노인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줄곧 노인에게 비장의 패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인이 이 비장의 패를 그녀에게 줄까 봐 늘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궁 밖에서 노인과 만난다면 전 과정 황실의 암위가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황제의 의심 많은 성격상, 그녀와 노인이 암위를 피해 몰래 뭔가를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번거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