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4화 애는 낳지 못하오
반 시진 뒤, 육장봉은 술과 통닭구이, 그리고 건빵을 들고 돌아왔다.
육장봉은 통닭구이를 월령안에게 넘겨주고 딱딱한 건빵은 자신이 가져갔다. 또 술 한 주전자를 들어 월령안에게 건넸다.
"밤이 추우니 술을 마셔 몸을 녹이시오."
통닭구이는 아직도 따뜻했다. 월령안은 자기와 큰 차이가 나는 육장봉 손에 든 건빵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닭고기를 찢었다. 잘게 찢은 닭고기를 기름종이에 놓은 뒤, 육장봉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뭐라고?"
육장봉은 딱딱한 건빵을 손으로 끊이고 있던 참이었다. 월령안의 말을 들은 그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건빵요!"
월령안은 손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도마관의 건빵은 딱딱하고 거칠어서 당신이 먹기 힘들 것이오."
"당신이 제가 아닌데 어떻게 제가 먹기 힘들 것이라고 단정 지어요?"
월령안이 반문했다. 그리고 육장봉이 대답하기도 전에 또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제가 도마관에 온 적도, 도마관의 건빵을 먹어 본 적도 없다고 단정 짓나요?"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다가 거칠고 누렇게 된 건빵을 월령안에게 주었다.
"되었소? 나는 당신을 말로 이길 수 없겠군."
'월령안이 먹어 보면 이것이 사람이 먹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알 거다.'
월령안은 건빵을 받아 들고 바로 먹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낸 뒤, 건빵을 얇게 썰었다.
"좋군!"
육장봉은 월령안이 손가락 절반만큼 두껍던 건빵을 두께가 비슷한 수십 장으로 써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찬사를 보냈다.
"조각하는 얕은 수법일 뿐이에요. 대장군께서 이렇게 칭찬하실 바가 못 되어요."
월령안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날렵하게 비수를 움직였다.
비수는 월령안의 손끝에서 움직였다. 칼날이 수시로 월령안의 손끝을 스쳐 지나갔지만 손가락을 찌르려고 할 때마다 월령안은 손쉽게 비수를 움직여 갔다. 아슬아슬하면서도 자극적이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일부러 묘기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협조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 묘기는 정말 멋지군. 속도도 빠르고 기술도 좋소. 하지만 아쉽게도…… 묘기에 지나지 않아."
보기에만 좋을 뿐,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저 장난치는 거예요. 겉보기에 좋으면 되죠."
월령안은 비수를 거두었다.
"건빵을 모두 주세요."
"내가 하겠소!"
육장봉이 거절했다. 그는 월령안더러 비수를 달라고 했다.
월령안은 비수를 육장봉에게 건네주고 농담을 하듯 말했다.
"대장군의 칼 다루는 솜씨가 매우 기대되는데요."
육장봉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여우처럼 영리하게 웃자, 그 앞에서 그는 심한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애정을 듬뿍 담은 말투로 말했다.
"난 게으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니오."
'날 비웃는 게 그닥 쉽지 않을 것이오.'
"그거야……."
'모르죠.'
월령안이 뒤의 세 글자를 채 말하지 않았는데 육장봉이 비수를 잡더니 날렵하게 건빵을 수십 층으로 깎는 것이 보였다. 매 층마다 두께가 똑같았다.
마지막에 세어 보니 월령안이 깎은 것보다 이 할 많았다.
"당신이 못 하는 것은 없나요?"
놀림거리를 잃은 월령안은 시무룩해졌다.
"애는 낳지 못하오."
육장봉은 진지하게 말했다. 얼굴에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지금 진지하게 자기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장난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이 화제는 남녀 둘이서 야심한 밤에 논의하기 적합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듣지 못한 척, 육장봉에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 탁자에서 한 층, 한 층 깎은 얇은 건빵에 찢은 닭고기를 쌌다.
먹으려고 하던 월령안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저한테 양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월령안은 초원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월령안은 북요로 간 적은 없었으나 금나라로 간 적이 있었다. 북요와 금나라의 식습관은 매우 흡사했다. 다 각종 구운 양고기였는데 소금 말고는 다른 양념을 거의 넣지 않았다.
한두 끼 그렇게 먹는 것은 괜찮으나 끼니마다 그렇게 먹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길을 떠나기 전에 많은 양념을 챙겼다. 꺼내기 편하게 하기 위해, 몸에도 약간 지녔다.
오늘 밤, 드디어 쓸 곳이 생긴 것이다.
월령안은 얇은 건빵을 들고 닭고기를 감싼 뒤, 양념에 찍어 매우 맛있게 먹었다.
육장봉도 건빵을 깎은 뒤, 하나 집어서 월령안이 먹는 대로 고기에 싸서 양념에 찍어 먹었다. 한 입만 먹고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도마관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는 한 끼요."
"월씨 가문 상사에 양념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 있는데 대장군께서 미리 군수품으로 구매하시겠어요?"
월령안은 농담을 하듯 말했다.
군수품의 사업에 대해 그녀는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제는 그 고리타분한 머리로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상인이 간악하여 그들이 개입한다면 변방의 장병들이 미음도 제대로 못 먹을 것이라고 했다.
조정에서는 규칙과 기준을 정하여 상인이 군대 측의 요구대로 물품을 납품하되, 요구에 부합되지 못하면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아예 이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상인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은 맞으나 조정에서 규칙만 잘 정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질 나쁜 물건을 납품하지 않을 것이다.
"구매하겠소!"
월령안이 농담을 한 것뿐인데 육장봉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심지어 먹던 것도 멈추고 진지하게 월령안과 군용품의 사업에 대해 얘기를 했다.
월령안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농담을 한 것뿐인데 육장봉이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게다가 진지하게 나와 군수품에 대해 논의하고?'
그러나 상인으로서 문 앞까지 찾아온 장사를 안 한다는 도리는 없었다. 육장봉이 그녀와 장사의 얘기를 한다면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먼저 다 먹고 잘 얘기해요."
장사는 장사고 월령안은 자신을 힘들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 음식은 조금만 지나도 차가워진다. 월령안은 차가운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았고 주린 배로 하룻밤을 새고 싶지도 않았다.
아까 육장봉이 떠난 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육장봉은 참 곳을 잘 고른다니까. 여기는 참 공허하군.'
그녀에게 말을 한 필 줘도 그녀는 이 밤에 어느 방향으로 도망갈지 모를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하룻밤의 시간이 있었다. 육장봉도 문득 지금 급히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월령안과 함께 건빵과 통닭구이를 다 먹고 난 뒤, 두 사람은 그가 가져온 술을 마시며 진지하게 군용품의 사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업 얘기를 하기 전에 육장봉이 먼저 물었다.
"내가 밖에서 전쟁을 치르는 삼 년 동안, 마지막 두 해의 군사 양식은 당신이 홀로 준비한 것이 맞소?"
"맞아요."
이것은 숨길 일이 아니었다.
"어쩐지 차이가 많이 난다 했소. 난 또 조정의 그 인간들이 드디어 마음 쓰는 줄 알았소."
육장봉의 차갑고 굳은 눈매에 조소와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조정에는 돈이 없어요!'
월령안은 조정 대신들을 위해 변명하려고 했으나 그때 군대의 관리들이 층층이 착취하던 것이 떠올라 입가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 버렸다.
조정에 돈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밖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연속 몇 차례 이기자 조정의 관리들은 몹시 기뻐했다. 국고가 풍족하지 못해도 호부의 관리들은 갖은 방법으로 돈을 모아 전선으로 보냈다.
그러나 세상에는 탐욕스럽고 우매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위에서 내려온 군량이 적지 않은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손을 댔다.
군량은 돈과 달랐다. 길에서 소모가 많았다고 일 할만 소모량을 더 보고하고 아래, 위로 입만 맞추면 누구도 문제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도 많지 않은 양식이 층층이 뜯어먹히자 장병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더욱 적어졌다.
변방의 장병들은 끼니마다 고기를 먹기는커녕 배불리 먹기도 힘들었다.
월령안은 안방에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싸우고 상대방을 이기려면 실력뿐만 아니라 배불리,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요의 군사는 왜 강한가?
그들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북요에서는 소와 양을 기르고 있어 먹을 고기가 많았다. 북요의 장병들이 하나같이 훤칠한 것은 바로 잘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때, 다른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남에게 있는 것은 육장봉에게도 있기 바랐다.
북요의 군사들이 고기를 먹는다면 육장봉의 군사들도 고기를 먹어야 했다.
아래 관리들이 층층이 군량을 뜯어 먹는다는 것을 깨닫고 월령안은 육장봉의 군량을 도맡기로 했다.
이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물심양면으로 돕는다고 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일로 암살을 당하거나 군량에 독을 타는 것으로 음해할 수 있었다.
사람의 재물을 끊어 버리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대군을 위해 군수 용품 일을 도맡자 그 관리들은 돈을 뜯어낼 수 없었다. 그러면 이 원수를 그녀에게 갚으려고 들 것이 뻔했다.
바로 그때, 그녀는 육씨 가문의 명의로 황제에게 상주서를 올렸었다. 황제더러 군수용 물자의 일을 상인에게 맡기라고 건의했다.
그녀는 그때 다 계획해 두었다. 황제가 얼마를 주든지 그녀는 이 일을 모두 맡을 것이고, 잘 해낼 것이라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의 지지가 있는 데다 그녀가 또 상인들을 끌어들인다면, 그 관리들은 그녀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 모든 원한을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돈을 써 군수용 물자에 자주 손을 대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였다. 그들이 그녀에게 앙심을 품어 손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지난 일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과 하소연하고 싶지 않았다.
하소연은 동정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위해 나서기 바랄 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일이 지난 뒤, 그녀는 해야 할 복수를 다 했다.
검은 마수를 뻗고, 뇌물을 요구하던 관리들은 하나같이 파직될 사람은 파직되고, 하옥될 사람은 하옥되었다. 봉변을 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더러 계속해서 당신에게 군사용 양식을 제공하라는 건가요?"
월령안은 술병을 잡은 채, 많이 마시지 않았다.
사업 얘기를 한다면 그녀는 침착한 정신을 유지해야 했다. 그녀와 사업 얘기를 하는 사람이 육장봉이라 절대 그녀를 속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뭐든 처음이 있다면 두 번째도 있는 법. 그녀가 오늘 육장봉 앞에서 경계를 늦춘다면 내일 다른 사람 앞에서도 경계를 늦추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편이지."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