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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53)화 (953/1,004)

953화 당신을 북요까지 데려다주겠소

육장봉은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지 않고 내내 묵묵히 월령안을 외딴 저택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 변경으로 돌아갑시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 조카 그쪽은 북요 상장군 소영화에게 전갈을 보내 그더러 예의 주시하라고 할 것이오. 문제가 없을 것이오."

"더 이상 의논할 여지가 없나요?"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안겨 말에서 내리고 집 안까지 들어갔다.

그녀가 막 움직이려고 하자 육장봉은 손을 써서 그녀의 혈도를 막았다.

그녀는 구들에 굳어진 채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내 말을 들을 거요?"

'아니요.'

월령안은 침묵했다.

"공교롭게도 나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오. 보시오. 우리가 어떻게 의논할 수가 있단 말이오?"

육장봉은 말하면서 집 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월령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문을 뗐다.

"제 조카가 선량한 사람이 아니며 저에 대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번 일도 그가 자신을 미끼로 저를 북요로 유인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만에 하나는요?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월령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짜 놓은 판인 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번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영감님이 변경에서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것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이번에 북요로 간다면 살아서 돌아오더라도 영감님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와 시월(弒月) 조직의 사람들이 한패가 아니면요? 만약 그가 정말로 시월 조직 사람들에게 잡혀간 것이라면요? 그는 비록 선한 부류는 아니에요. 그러나 그의 몸이 허약한 것도 사실이고 불구가 된 것도 사실이에요.

그는 마음이 아주 강해요. 그러나 그의 몸은 정말로 약해요. 이건 위장할 수 없어요. 사의 문수가 잘 알 거예요.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도리를 당신은 모르지 않을 거예요. 만약 누군가 정말 그에게 손을 쓴 것이라면, 살짝 힘만 주어도 그를 죽여 버릴 수 있죠."

월령안은 혈도가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눈동자를 굴릴 수 있고 입술만 벌릴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한 채, 슬픔과 자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을 바라보았지만 또 육장봉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이 죽은 듯한 고요함뿐이었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자조와 석연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녀는 비록 당사자지만 멍청하지 않다고, 감정에 눈이 멀어 기본적인 판단이 흐려지지 않았다고,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다고 소리 없이 육장봉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들 어떡하리?

그녀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육장봉, 그것 아세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아주 가볍고 부드러웠으나 또 아주 침착했다.

"그는 제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이에요. 그가 저한테 악의로 가득하고 착한 아이가 아닌 것은 물론, 설사 그가 살인하고 방화하고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해도 전 그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 없어요. 아시겠어요?

제가 이번에 북요로 가는 것은 월씨 가문 사람들과 마무리를 하자는 것이고 또 이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이에요.

전 그의 고모이자 유일한 가족이에요. 제 오라버니는 저 때문에 죽은 건데 저한테도 그를 지킬 책임이 있어요. 만약 제가 북요로 가지 않아 그가 죽는다면 전 평생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고 안심하지 못할 것이에요. 만약 그가 절 속인 것이라면……."

월령안은 가볍게 미소 짓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전 여전히 그를 지켜 줄 거예요. 제가 그의 고모인 것을 어떡해요? 이건 제가 그한테 빚진 거예요."

같은 '지키다'였지만 앞에서 말한 것은 힘이 가득 넘쳤으나 후에 말한 것은 약간의 자조가 담겨 있어 미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육장봉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월령안은 너무나 총명했고 세상 이치에 훤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똑똑하고 세상 이치에 훤한 사람은 또 상처를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자식이 좀 멍청하더라도 풍파 없이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비록 아이를 키워 본 적은 없었지만 월령안에 대한 마음은 이와 같았다.

그는 월령안이 월씨 가문 상사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주름잡고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돌도 금으로 만드는 대상인 월령안보다는 제멋대로 할 수 있고 사랑받아 버릇없는 월씨 가문 큰아가씨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육씨 가문 부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나타났다!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고 보호가 필요할 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월령안은 고난을 겪고 성장했고 그녀의 옆을 지킨 사람은 염 황숙밖에 없었다.

염 황숙도 똑같이 세상 이치에 훤하고 지혜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염 황숙은 자신의 건강으로나, 신분으로나 모두 월령안을 평생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아낄 수 있었고 지킬 수 있었으나 월령안을 채찍질해야 했다. 그녀가 성장하게 강요하고 그녀가 스스로를 의지하게 핍박했다. 염 황숙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부실한 자기가 월령안과 오래오래 함께하지도, 월령안을 오래오래 지켜 주지도 못할 것을. 월령안을 위해 아무리 안타깝더라도 그녀를 핍박해 빠르게 성장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는 늦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때문에 월령안은 가시밭길에 오르게 되었다.

육장봉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가볍게 안고 그녀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당신을 북요까지 데려다주겠소."

그가 지금 월령안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월령안과 함께 북요로 갈 수 없었다.

북요와 주나라는 곧 전쟁을 시작한다. 지금 시기에 그는 반드시 주나라에 있어야 하고 반드시 병사를 거느리고 변방으로 가야 하며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했다.

그게 아니면 월령안은 물론, 그의 뒤에 있는 주나라마저 지키지 못할 것이다.

북요를 무너뜨리고 떳떳하게 어머니를 북요에서 데려오는 것은 그가 월령안을 만나기 전의 유일한 인생 목표였다.

북요를 멸망시키는 것은 그가 월령안에게 약속했던 일이었다.

그의 뒤에 있는 백성을 위해서든, 월령안과 어머니를 위해서든 지금 그는 반드시 주나라에 남아서 앞으로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주나라를 버려둘 수도, 자기 뒤에 있는 백성들을 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는 월령안을 위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를 북요까지 바래다주면 충분해요. 절 믿으셔야 해요. 전 그 누구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해요. 전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예요. 제가 돌아왔을 때, 당신이 절 맞이하고 싶다면 우리…… 영감님 앞에서 혼인해요."

육장봉에게 납치되었을 때, 월령안은 울지 않았다.

육장봉에게 혈도가 눌려서 꼼짝하지 못했을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물은 육장봉 가슴팍의 옷섶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당신의 말을 기억했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꽉 끌어안았다가 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혈도를 풀었다.

월령안은 잠깐 굳어졌다가 자유를 회복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월령안은 발을 들어 육장봉을 걷어찼다.

"한 번만 더 제 혈도를 누르면 전 당신에게 몽혼약을 먹여 꼼짝 못 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게 할 거예요."

무방비 상태던 육장봉은 정강이가 제대로 걷어차이자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쿵"하고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놀란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채 흩어지지 않은 감정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이 섞여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나긋나긋하게 그더러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인하자고 말하던 여인이 바로 그를 걷어찼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여인은 모두 이렇게 변덕스럽나?'

"놀라워요? 황당하세요? 참 공교롭네요. 당신이 절 들고 올 때, 저도 몹시 놀랍고 황당했어요."

월령안은 벌떡 일어나 손발을 움직였다. 그녀의 눈가에 남아 있는 물기는 불빛의 반사를 받아 반짝거렸다.

"당신은 역시 변덕스럽고도 옹졸하오."

육장봉은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손목에 힘을 주더니 껑충 뛰어올라 월령안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기교 있게 그녀의 손으로 자신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원수를 당장 갚다니……. 그러나, 당장 갚아서 다행이오. 아니면 곤히 자고 있을 때, 당신에게 걷어차여 침대서 떨어질 뻔했소. 그거야말로 봉변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밖의 돌판을 보셨죠? 오늘 밤, 당신이 묵을 거처예요!"

월령안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익살맞게 농담 두어 마디 한다고 해서 싫다는 나를 억지로 둘러메고 온 일을 잊으리라 생각하지 말라고. 만약 하룻밤 늦게 간 것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난 육장봉을 죽여 버릴지도 몰라.'

월령안과 육장봉이 잠시 묵는 이 집은 반경 십 리 안에 인적이 드물었다. 육장봉도 월령안이 몰래 도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혈도를 푼 뒤, 육장봉은 그녀를 홀로 방에 둔 채, 말을 타고 월령안에게 줄 먹을 것을 찾으러 떠났다.

"기다리시오."

육장봉은 가볍게 월령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애를 달래는 듯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하지도,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앉은 채로 육장봉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육장봉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월령안은 시선을 거두고 자조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제가 또 뭘 할 수 있겠어요? 반경 십 리 안에 인적도 없는데. 사람이 있어서 제가 오늘 간다고 해도 오늘 밤 관문을 열 수는 없는데."

그녀는 육장봉이 아니었다. 그래서 야밤에 관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도 육장봉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육장봉이 그녀가 북요로 가는 것을 허락했으니 내일 반드시 그녀를 풀어 줄 것이다.

"다만 오늘 밤에 가지 않은 것이 상대의 화를 돋운 것이 아니었으면."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칠흑같이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침울했다.

육장봉은 집을 나선 뒤, 가장 먼저 월령안에게 줄 먹을 것을 찾으러 가지 않고 낮은 집으로 왔다.

육장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범한 외모의 중년 부부가 바로 일어서서 육장봉에게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육장봉은 상대방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소영화에게 이르거라. 내일 날이 밝기 전에 나는 월씨 가문 그 작은 공자의 일을 알아야겠다고!"

"네, 대장군."

중년 부부가 입을 열자 영기가 넘쳤다. 그들의 평범한 외모와는 전혀 달랐다.

육장봉은 시선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명령했다.

"또 소영화에게 월령안을 보호하는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시키는 일이라는 것도 이르거라."

"네, 대장군."

중년 부부도 똑같이 시선을 들지 않고 낮은 소리로 명령을 받았다.

육장봉은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 뒤, 육장봉은 낮은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훌쩍, 뛰어오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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