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50)화 (950/1,004)

950화 자네에게 맡기겠네

줄곧 나는 듯이 달리다가 날이 어두워 길을 갈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일행은 야외에서 주둔했다.

"큰아가씨, 오늘 밤은 아쉬운 대로 참고 지내야겠네요."

이번에 월령안을 호송하여 도마관으로 가는 이들은 바로 강남에서 그녀를 호송해 관성으로 갔던 이들이었다.

강남에서 관성으로 오는 동안, 육장봉의 보살핌을 받아, 설령 야외에 주둔해도 월령안은 추위에 전혀 시달리지 않았고, 건빵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날씨가 추운데다 그들은 신선하고 더운 음식을 마련할 능력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건빵을 구워 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천막을 가지고 있어 월령안이 추위에 시달리게 하지는 않았다.

"밤에 경계심을 높여라."

월령안은 뭘 먹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곰팡이가 낀 음식도 먹어 보고 산해진미도 먹어 보았다. 그녀에게 있어 먹을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교대로 지킬 겁니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함께하지 않기에,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월령안은 그들이 분수를 지키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건빵을 먹은 뒤, 불에 옷 그리고 손발을 따듯하게 한 다음, 장막으로 돌아갔다.

내일 또 하루 동안 바쁘게 길을 재촉해야 했다. 설령 지금 조금도 졸리지 않는다 해도 오늘 밤은 꼭 잠을 잘 자야 했다.

눈을 감으면 뇌리에는 온통 노인이 바퀴 의자에 앉아 문가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그녀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해도, 그녀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해야 했다.

투둑……. 후두둑…….

눈물이 꼭 감긴 그녀의 눈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녀는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잠이 들었다.

* * *

만운산!

육장봉은 척 수비의 구조 요청 신호를 받고 최대한 빠르게 군대를 이끌고 만운산으로 달려갔다.

육장봉이 제때 지원했기에, 척연 일행은 비록 사상이 막심하고 현금도 사전에 매복해 있던 강도들에게 몇 상자를 빼앗겼지만, 가장 중요한 패인 금나라 황제 완안유는 폭로되지 않고 흠집 하나 없이 그들 수중에 그대로 둘 수 있었다.

육장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자 강도떼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육장봉의 지휘하에 두 대오는 한 덩어리가 되었고 전투력이 배가되어 파죽지세로 강도 무리들을 밀어냈다.

강도떼들은 재빨리 참패했고 빼앗은 현금도 가져갈 새 없이 하나같이 허겁지겁 도망쳐 버렸다.

"추격!"

육장봉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앞장서서 병사를 이끌고 쫓아갔다.

척연은 그 광경에 피가 끓어 넘쳐 역시 함께 추격하려 했다. 이때 육장봉이 일갈했다.

"상대방의 유인책을 조심하라."

척연은 얼굴빛이 급변하더니 궁색하게 말했다.

"내가…… 실수했군."

군대를 이끄는 장령으로서 일 처리가 충동적이고 정세를 읽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이도 육장봉보다 위이고 출신도 심지어 더 나은 편이지만, 육장봉은 천하 군대를 장악한 대장군으로 성장했지만, 그는 관성의 그저 그런 수비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시 육장봉과 견줄 수가 없었다.

척연은 좌절감을 느꼈다.

육장봉은 척연을 위로하지 않고 말을 몰아 떠나갔다.

그의 인솔 하에 변방 요새의 병사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패기 넘치게 싸웠다.

그들은 강도들을 추격해 수십 리를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고, 길을 막고 현금을 강탈하던 강도들을 전부 만운산에서 참살했다. 놈들을 결코 살려 돌려보내지 않았다.

다른 한편, 육장봉이 가자마자, 산속에 숨어 있던 강도떼들이 뛰쳐나와 쉽게 이익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사전에 준비해 놓고 있었다.

척연 수하의 병사들을 제외하고도,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 한 무리 병사를 남겨 두었다. 강도떼들이 뛰쳐나오기를 기다려 독 안에 든 쥐를 잡으려 한 것이다.

그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고서야 척연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육장봉이 굳이 현금을 약탈한 강도들을 쫓아간 목적은, 비단 강도들을 전부 참살해 일벌백계함으로써 암암리에 현금을 노리며 강도 계획을 하는 강도를 겁내려는 것도 있었지만, 또한 몰래 숨어 있는 강도들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적을 아군이 유리한 곳으로 유인해 가고,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하며, 상대를 덫으로 유인하고, 놈들이 이욕을 탐해 눈멀었을 때 뒤에서 덮치며…… 사전에 어떤 정보도 받지 않고, 전쟁터의 상황과 변화만 가지고도 장봉은 정확하게 예측했군."

척연은 이번 작은 싸움에서 육장봉이 사용한 병법을 떠올리자 마음속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학문은 책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결국 실천과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병법에 대해서 그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육장봉보다 더 능숙하게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응용에서 그는 기계적인 모방만 했을 뿐, 육장봉처럼 병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역시 육장봉보다 못했다.

이번은 좌절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탄복과 인정이었다.

그러나 척연에게 높이 떠받들리며, 승리하고 돌아온 육장봉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의 암위가 울화통이 터지는 소식을 전해 왔던 것이다.

월령안의 조카에게 일이 생겨, 그녀는 북요에 갔다고 했다.

"월령안 바보 아니야? 그 조카는 비록 눈도 멀고 말도 못 하고, 다리도 불구여서 어떻게 봐도 가련한 애지만 그건 어디까지 겉모습일 뿐이다. 그 애는 그냥 독사야. 그것도 위장에 능한 독사. 하지만 아무리 위장에 능한 먹잇감도 사냥꾼에게는 허점이 보이지. 나는 한눈에 보아냈단 말이다. 월령안이 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설령 보아내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분명 일깨워 줬으니 속으로 다 알고 있을 거 아니야. 함정이고, 죽음으로 몰아가려고 짠 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가겠다는 거야. 정말 능력이 있어서 담대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육장봉은 지나치게 크게 화가 나서 주체를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월령안이 없지만 암위를 상대로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암위는 아래쪽에 서서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당장 자신을 작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는 일이 분명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영명하고 용맹한 대장군은 마님과 관련된 일을 만나기만 하면 비정상적으로 변했다.

그저께 밤에도 그는 대장군이 '정말 황위라도 찬탈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당시 늦은 밤이고 그도 졸음이 막 쏟아지는 상황에다, 대장군이 작은 목소리로 말해 그는 한동안 자신이 잘못 들은 줄로 알았다.

이제 보니, 그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대장군이 그를 가리키며 마님을 '어리석다'고 욕하는 행위로 미루어 보아, 몰래 혼자 '황제 자리 찬탈'을 중얼거리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육장봉은 한바탕 욕을 하고 나서, 울화가 살짝 가라앉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는 암위를 보자, 금방 좋아졌던 얼굴빛이 또 어두워졌다.

"바로 서지도 못해? 암위영은 너희들을 이딴 식으로 훈련시킨 것이냐?"

암위는 냉가슴을 앓았다. 하지만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죄를 청했다.

"소인이 직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대장군께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일 년간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때에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죄를 청하면 되었다.

"스스로 암위영에 가서 벌을 받아라!"

육장봉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네, 대장군!"

암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는 극히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바로 죄를 청하는 게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장봉은 상벌이 분명했다. 육일, 육이 그들처럼 화를 자초하지 않으면 얻어맞지 않을 수 있었다.

육장봉은 손을 저어 암위를 물러가게 했다.

"척 수비를 모셔오라."

"네, 대장군!"

암위는 일어나서 아무 표정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얼마 안 되어 척연이 들어왔다.

"대장군!"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지금 두 사람은 모두 공무 중이었다. 척연은 육장봉과의 교분을 턱 대고 무엄하게 굴지 않고 들어오자마자 공경하게 예를 올렸다. 설령 그곳에 제삼자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뒤처리는 너에게 맡긴다. 나는 도마관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월령안이 관성에서 북요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은 도마관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속도가 빨라 월령안이 북요에 들어가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다음 당연히 그녀가 북요로 가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만일 저지할 수 없다면, 그녀를 억지로 메고라도 올 것이다.

"북요에서 움직임이 있는 거야?"

척연은 변방 요새에 있었다. 북요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면 그는 당연히 알 수 있었다.

육장봉이 도마관에 간다고 하자, 그는 우선 먼저 국경 지대의 불안정을 떠올렸다.

"개인적인 일이다."

육장봉은 간단하게 대답해서 일을 대충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가 월령안에게 얘기했듯이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설령 황제가 신경 쓴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척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적인 일? 월령안 때문이야?"

그가 월령안 쪽으로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육장봉과 십몇 년간 우정을 다져온 사이라,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을 만나기 전에 육장봉은 전적으로 공적인 일과 싸우는 것밖에 몰랐다. 전체적으로 냉동 인간처럼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을 만난 뒤로는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육장봉이 여전히 싸움에 능하니 망정이지, 아니면 사람이 바뀐 게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음."

육장봉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척연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척연이 입을 열기 전에 한발 앞서 말했다.

"이곳은 너에게 맡길게.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없지?"

"아니……."

척연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말을 뱉는 순간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너 지금 도마관에 가려는 것이야? 우리 지금 공무 중이잖아."

'육장봉, 너, 정신 차리자!'

인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모르며 오직 싸움할 줄밖에 모르는 육장봉이었다.

어찌 여인을 위해, 공무를 팽개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육장봉답지가 않았다.

육장봉은 냉소를 터뜨렸다.

"내가 한마디 일깨워 줄게. 현금과 완안유를 변경에 가져가야 할 사람은 너다. 여기서 공무 중인 사람은 너 혼자라는 말이다. 나는 네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고, 잠깐 도와준 것뿐이야. 내가 도와준 것은 정 때문이고, 너를 도와주지 않아도 마땅한 거다. 척 수비, 말해 봐. 그런 게 아닌가?"

육장봉은 말투가 매우 느렸다. 특히 마지막에 척연을 '척 수비'라고 부를 때는 화려하게 말을 꺾으면서 끝말을 길게 끌어 짙은 조소가 담겨 있었다.

척연은 흠칫 떨며 거수경례를 했다.

"네, 대장군!"

"이제, 아직도 문제 있는가? 척 수비!"

육장봉의 말투는 '부드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척연은 여전히 더 바르게 서서, 더 크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럼 이곳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척 수비."

육장봉은 손에 쥔 정교한 구리 군령(軍令)을 척연에게 던져 주었다.

이는 그가 관성의 군대를 집결시킬 때 온조에게서 받아 온 군령이었다. 지금 그는 사람들을 척연에게 넘겨주었기에, 물론 군령도 넘겨주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