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9화 어린애는 집이나 잘 봐
월령안은 홀가분한 척하며 말했다.
"당신네 대장군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수 맹주에게 편지를 보내 직접 저를 보호하게 할 거예요. 그리고 무림맹에 띄울 거예요……."
월령안은 잠깐 뜸을 들이고 시선을 내려 그 속의 날카로움을 감추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냉담하게 느껴졌다.
"무림맹에 시월 조직의 모든 구성원을 죽이라는 임무를 발표할 거예요."
그녀는 진작 이렇게 해야 했다.
육장봉이 그녀에게 시월 조직의 존재에 대해 알려 주었을 때부터 진작 이렇게 해야 했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고충(蠱蟲)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싸움을 알았고, 또 어쩌면 집안싸움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 역시 월씨 가문 사람이었다. 그녀는 월씨 가문 사람들의 뼛속에 녹아 있는 잔인함이 싫다고 해서 억지로 동족을 죽이려는 생각을 억압하며 정상인인 척할 필요가 없었다.
월씨 가문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을 키워 내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기기만을 하지 말아야 했었다.
월령안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보잘것없는 암위가 그녀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암위는 감히 설득하지 못하고 복명할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시샘도 나고 부럽기도 해서 월령안을 보호하는 암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부럽다. 마님 곁에 있으니까 편하고 걱정 같은 거 없잖아. 어디 우리처럼…… 대장군 주변에는 모두 잘난 사람들뿐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얻어맞아야 한단 말이야."
"저 아이를 보았어?"
월령안을 보호하는 암위가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눈총을 주었다. 그러고는 땅에 죽어 있는 아이 모양의 살수를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
육장봉의 암위는 눈을 부릅뜨며 연신 뒷걸음질했다.
"미친 거 아니야. 어린아이까지 죽이면 어떻게 해!"
"난쟁이 살수야!"
월령안을 보호하는 암위는 또다시 상대방에게 눈총을 쏘았다.
"바로 전에 이 아이가 하마터면 마님을 다치게 할 뻔했어."
'만약 월 낭자가 세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내일 아침 해를 못 봤을 거란 말이다.'
육장봉의 암위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여 숭배하듯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단하네! 너는 이런 것도 간파할 수 있어! 역시 암위의 일인자답군. 그 실력은…… 난 두 손 들었어. 너에 비하면 난 정말 너무 뒤처져. 나는 마님을 잘 보호할 것 같지 못해. 난 그냥 대장군께 편지를 전하러 갈게."
육장봉에게 한바탕 두들겨 맞으면 되는 일이었다. 평소에 육일, 육이 그들도 종종 얻어맞지만 어디 고장 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으음……."
월령안을 보호하는 암위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원래 상대방에게 말해 주려 했다. 방금 전에 월령안이 세심하지 않았으면 그도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고 말이다. 그래야 상대방이 월령안을 보호하는 일이 그의 일에 비해 더 나은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방이 오해한 이상,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쩌면 아름다운 오해이기도 하니까.
* * *
월령안은 암위를 시켜 육장봉에게 수횡천을 청해 그와 함께 북요로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갈을 보냈다.
그러나 무림맹과 관성은 천 리 길이나 떨어져 있으므로 수횡천이 오기를 기다려 북요로 갈 수는 없었다. 북요 그 사람들도 그녀를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힘들게 이 기회를 잡았다. 두 나라가 곧 전쟁을 시작하기에 육장봉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는 판이라, 그녀에게 정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상천은 되돌아와서 월령안에게 육장봉이 먼저 출성해서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외에, 편지 한 통도 가져다주었다.
편지에는 여전히 한마디뿐이었다.
'내일 밤, 도마관(倒馬關)."
도마관은 관성과 북요가 국경이 맞닿아 있는 관문이었다.
도마관을 지나면 바로 북요의 지역이었다.
관성에서 도마관까지 가려면 말을 탄다 해도 하루 밤낮이 걸렸다.
그녀는 지금 출발하면, 내일 도마관 관문이 닫히기 전에 통과할 수 있었다.
"큰아가씨……"
상천은 월령안이 편지를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자 걱정스럽게 불렀다.
"난 괜찮아."
변경으로 돌아가 노인의 임종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만 하면, 월령안은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설령 그녀 마음속으로 이는 함정이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는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에 관련된 일이기에 함정이 아니라 칼산, 불바다라도 꼭 다녀와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그 애가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는 평생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은 편지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멀거니 변경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영감님, 죄송해요. 몸이 허락한다면 저를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안 된다면…… 제가 살아온 다음, 다시 영감님께 죄를 청할게요.'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켜 마음속의 슬픔을 억누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
"준비해라. 반 시진 뒤에…… 도마관으로 출발한다."
"큰아가씨……."
상천이 놀라서 외쳤다.
"지금 북요로 가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북요에서 저희 세력은 아직 그렇게 강대하지 못합니다."
월씨 가문의 북요에서의 세력은 그때 당시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횡사하면서 거의 말끔하게 척결되었다.
최근 몇 년간 그들은 끊임없이 북요에 사람을 심고 현지인을 매수했다. 하지만 애로 사항이 많아 북요에서 그들의 세력은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북요로 가기에는 너무 일렀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꼭 나를 지금 오라고 하잖느냐."
월령안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서 준비하면 된다. 다른 것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북요에서 월씨 가문의 세력은 작지만, 월령안의 세력은 제법 세다고 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북요에서 병권을 장악한 남원대왕과 또 반은 한인 혈통인, 이모 사촌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삼 황자 야율헌일이 있었다. 그리고 암암리에는 육장봉에게 수복된 북요 상장군 소영화가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녀는 육장봉의 어머니, 현음 공주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현음 공주는 북요에서 이십여 년간 있었다. 세력이 결코 약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의 체면을 봐서라도 현음 공주는 조금이라도 그녀를 도와줄 것이다.
때문에 이번 여정은 위험하지만 전혀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방이 그녀에게 준 시간은 빡빡했다. 그녀가 사람을 부르거나 다른 준비를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는 앞서 육장봉와 함께 변경에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관성의 장사를 모두 상천에게 넘겨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심지어 수중의 사무를 인계할 시간조차 없었다.
반 시진이 지난 뒤 월령안은 호위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상천은 관성에 남아 월씨 가문 표호를 지키기로 했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표호와 월씨 가문 상사를 모두 서 아저씨께 건네라. 서 아저씨더러 월씨 가문 표호와 월씨 가문 상사로 서씨 가문의 억울함을 씻는 것과 바꾸라고 전해라."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형세가 이 정도로 심각해졌단 말인가.
상천은 멍해서 입을 벙긋거리며 말하려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분부했다.
"넌 추수와 함께 무림맹으로 가거라. 무림맹은 너희 둘에게 남겨 주는 것이다. 너희 둘에게 너무 적게 남겼다고 섭섭해하지 마. 많이 남기면 너희들이 지키기 힘들까 두려워서 그런 거니까."
월령안은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은 조정의 통제를 받지만 강호는 결국 강호이다. 조정의 손이 뻗기는 해도, 많이 간섭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와 추수가 조정에 큰 약점이 잡히지 않는 한, 권세가 하늘까지 치솟지는 못하더라도 평생 부귀영화는 누릴 수 있을 거야."
가장 빈틈없는 준비를 하는 동시에 가장 나쁜 타산도 해야 했다.
월씨 가문의 장사는 워낙 광범위했고 그녀의 손에 들어온 후 배 이상 커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 그녀는 더욱더 급속히 확장했다.
월씨 가문의 상업 판도는 주나라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만약 가게 주인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는 지도자가 없으면, 월씨 가문 상사는 재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잠식당할 것이다. 남에게 이익을 주느니, 차라리 자기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게 나았다.
상천과 추수는 그녀를 평생 따랐다. 그녀도 그들을 위해 계획을 세워야 했다.
"큰아가씨!"
상천이 실성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월령안의 말을 잡아채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장 피했다.
"상천, 상단을 따라 외출할 때 규칙을 잊은 것이냐?"
상인들은 돈을 많이 벌기는 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위험도 컸다. 특히 상단을 거느리고 타 지방으로 갈 경우 위험이 더 컸다.
매번 상단을 거느리고 나갈 때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았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상인들은 집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겨 처리할 일들을 처리했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 사고가 생긴 후 집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큰아가씨……."
상천은 눈이 빨갛게 되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는 장사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가지 말라고 권하고 싶었다. 심지어는 그녀에게 자신이 대신해 가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됐다. 여자도 아니고 웬 눈물 바람이냐…… 그냥 전처럼 관례에 따라 분부하는 거야. 정말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고. 나는 열몇 살 때부터 나다니며 장사하기 시작해서 서역, 사막, 심지어 설산까지 다 가 보았다. 내가 언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적이 있었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월령안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차분함과 느긋함에 상천은 평온해질 수 있었다.
상천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을 문지르고는 고개를 죽이고 잘못을 인정했다.
"큰아가씨, 제가 실례했습니다."
상인은 길한 기운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그는 월령안이 출발하기 전에 눈물을 보였다. 너무나 불길한 징조였다.
"괜찮아. 아직 어린애잖아. 추태를 부릴 권리가 있어."
월령안은 상천을 탓하지 않고 웃으며 농을 쳤다.
"하하하하……."
동행하는 호위들과, 그들을 배웅하던 하인들이 삽시에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이별의 슬픔과 불분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멀리 쫓아 버렸다.
"큰아가씨, 저는 아닌데요……"
상천의 잘생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됐어. 어린애는 집이나 잘 봐."
월령안은 웃으며 채찍을 휘둘러 떠나갔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출발!"
"이랴!"
그녀 등 뒤로는 열두 명의 호위가 양쪽으로 나뉘어 좌우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일행은 말에 채찍질해 출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