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8화 다른 중요한 일
"염 황숙의 몸이 안 좋소. 황궁에서 전해온 소문에 따르면 길어야 이번 달이 한계일 거라 하더군."
"뭐라고요?"
월령안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빨리 일어난 탓에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이 옷소매에 딸려 넘어졌다. 그녀는 찻물을 흠뻑 맞았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육장봉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 황숙께서는 이미 가망이 없으시오. 약이든, 침이든 다 안 된다오."
염 황숙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월령안이었다. 하지만 월씨 가문 표호가 생기고 돈을 끌어 모으는 능력 또한 뛰어나자, 그는 월령안을 도와 그녀의 소원인 월씨 가문의 자유를 되찾는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이 일이 성사되면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염 황숙 생명의 불길도 다한 것이었다.
"변경으로 돌아갈 거예요."
월령안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울먹였다.
"적어도 그분 앞에서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마디 해드리고 싶어요. 십일 년 전, 북요에서 있던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 일 때문에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해 드리고 싶어요."
관성의 장사가 아무리 중요해도 노인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노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그녀는 반드시 서둘러 변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 * *
월령안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을 거두고 기운을 차린 다음, 관성의 모든 사무를 상천에게 맡기고 육장봉과 함께 변경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출발하려던 그날, 그녀는 북요의 월씨 가문에서 보내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에는 단 한마디밖에 없었다.
'당신의 유일한 혈육이 북요에 있다. 우리는 당신의 선택을 기대한다. 월령안!'
인장도 없고, 다른 아무 단서도 없었다.
딱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한마디에 월령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녀의 동족들이 그녀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
월령안의 편지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뚫어지게 편지를 보면서 크게 분노했다.
그녀는 왜 매번 자신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동족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가장 큰 소망은 동족들이 자유의 몸을 회복하고, 더는 집안싸움의 비극을 재연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동족의 손에 죽었다.
그녀가 이번에 변경으로 가는 것은 노인을 보기 위한 것 외에도, 황제와 담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월씨 가문 표호로 월씨 가문 동족들의 자유를 바꾸려 했다.
이 점에 대해서 육장봉도 알아챌 수 있는 것만큼, 그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월씨 가문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때 그녀가 변경으로 가는 것을 막는 사람은 바로 월씨 가문 동족이었다.
그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동족, 나아가 후손들의 자유를 위해 노력할 때,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이는 상업계 동료들이나, 지어는 황제도 아닌, 그들 월씨 가문 사람들이었다.
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큰아가씨, 이 편지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편지는 상천이 월령안에게 건넨 것이었다. 월령안이 감정을 다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상천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 문제도 없다."
월령안은 이를 갈며 손에 든 편지를 마구 구겨서 바닥에 내쳤다.
"대장군께 말씀 좀 전해라.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 해결해야 하니 먼저 떠나라고."
상천이 걱정스러워하며 불렀다.
"큰아가씨……."
"어서 전해!"
월령안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말투는 오히려 강경해 거절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천은 깜짝 놀라 연신 대답하며 월령안을 위해 준비한 말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떠나갔다.
월령안은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말을 타고 멀어져 가는 상천을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들이 무정하면 그녀 또한 의리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에 장장 십 년을 품었던 육장봉마저도 포기했다. 하물며 만나 보지도 못하고, 지어는 피맺힌 원수지간인 동족들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들이 먼저 공격해 왔으니 그녀가 지나치게 반격했다고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천은 곧 거리 끝으로 사라졌다. 월령안도 눈길을 거두고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두어 걸음을 떼었을까, 붉은색 작은 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길모퉁이에서 달려왔다.
아이는 손에 편지 한 통을 들고서 앳된 목소리로 외쳤다.
"누나, 누나……"
월령안은 발길을 멈추고 화난 얼굴빛을 거둬들이고는 그런대로 예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곧 월령안 앞에 다가서더니 편지를 내밀었다.
"누나, 어떤 꼬마 형이 이걸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내게?"
월령안의 눈길은 아이의 손에 든 편지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이가 뛰어올 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누……!"
아이가 편지를 들고 다시 월령안에게 달려가려 하자, 그녀의 동작이 아이보다 훨씬 더 빨랐다.
"잡아라!"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수중의 암기를 쏘았다.
거의 동시에,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암위가 뛰쳐나와 아이의 손을 뒤로 하여 땅바닥에 내리눌렀다.
아이는 암기에 맞고, 또 암위에 눌러져 꼼짝달싹 못 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실수를 한 거지?"
아이는 고개를 번쩍 들고, 앳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진 기운이 서린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의 목소리도 아이의 앳됨이 사라지고, 마치 남에게 목이 졸린 것 같은 날카로움을 띠었다.
"네 손이 너무 못생겼잖아."
월령안이 편지를 쥔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어떤 실수도 보이지 않았어. 심지어 나한테 다가올 때까지도 난 아무 이상한 점도 보아내지 못했지. 그러다가 네가 편지를 건네는 순간, 손이 드러났고,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거야."
"내 손이 뭐가 문제야?"
아이는 얼굴색과 마찬가지로 하얀 손을 힐끗 보고는 목소리가 더 날카로워졌다.
"네 얼굴은 말이야…… 보름달같이 둥글고, 희고 포동포동하지. 하지만 다시 네 손을 봐."
월령안이 한 걸음 다가서서 비웃는 눈빛을 보냈다.
"네 손도 물론 희지. 하지만 너무 야위었잖아."
월령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땅바닥에 눌린 사람이 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그녀에게 타격을 받아 고통스럽고도 분노했지만, 어찌하지 못하자 속이 어지간히 내려갔다.
역시 적들이 불쾌해야, 그녀는 숨통이 틔었다.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월령안은 계속 차갑게 비웃었다.
"아이는 말이야, 특별히 마르지 않으면 손도 토실토실하지. 하지만 널 봐…… 몸이나 얼굴은 토실토실한데 양손은 닭발처럼 앙상하잖아. 이렇게 훤히 보이는 허점도 보지 못하면 나야말로 눈뜬 소경이지."
그녀는 또 한 걸음 다가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살수가 너처럼 하면 정말 실패한 거야. 황금당이 전멸된 뒤에, 너희 시해 조직에 이제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야? 오죽했으면 너 같은 바보까지 내보냈을까?"
그녀는 까칠하게 말했다.
"그들이 널 파견한 건, 나한테 웃음을 주려는 거지?"
"월령안!"
아이같이 생긴 살수는 자신의 앙상한 손을 흘끔 보았다.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월령안을 바라보더니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경솔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오늘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야."
웃음소리가 끝나자마자 아이 얼굴을 한 살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월령안,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서! 막아라!"
'흐억!'
"젠장!"
암위가 한발 늦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월 낭자, 맹독 견혈봉후입니다."
그러니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의 반응은 상당히 빨랐다.
"그 사람 손에 든 편지를 한 번 검사해 보세요. 독이 없으면 저를 주세요."
월령안은 냉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살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를 해치려던 사람이 죽었으면 죽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눈물을 두어 방울 흘려 선량한 척할 수는 없었다.
"편지에는 독이 없습니다."
암위가 편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봉투를 찢어 편지를 꺼내 펼쳤다.
편지에는 여전히 한마디만 씌어 있었다.
'네 선택에 상당히 만족한다. 네가 관성의 오만 명을 구한 것이다.'
"흥, 건방진 것들."
월령안은 편지를 암위에게 던져 주었다.
"당신네 대장군께 보내세요. 관성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전하세요."
암위가 편지를 들고 가려는 순간, 육장봉 옆에 있던 암위가 소리 없이 나타나 월령안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마님, 척 수비가 만운산(萬雲山)에서 강도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저희 대장군께서는 한발 앞서 병사를 거느리고 지원하러 갔습니다.
대장군께서는 저희 두 사람에게 마님을 만운산에 모시라고 했습니다."
"참 공교롭군요."
월령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갈 수 없어요."
이렇게 빈틈없이 이가 딱딱 맞물리는 것을 보면 그녀는 북요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그녀에게 선택지를 준다 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시종일관 그녀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해 조직에서 제 오라버니 유일한 핏줄인 조카를 납치해 갔어요. 저는 북요에 한번 다녀와야 해요."
이 일은 그녀의 귀여운 조카가 그녀에게 죽음의 올가미를 던진 것일 수도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녀는 이번 한 번만큼은 다녀와야 했다.
이는 그녀가 오라버니에게 빚진 것이었다.
일의 발단은 북요에서 시작되었다. 당연히 북요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이다.
그때 당시,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북요에 갔었다. 이제 그녀가 조카를 위해 북요로 갈 차례가 되었다.
오라버니는 세상을 등져서, 그녀는 빚을 갚을 수가 없었다. 이제 오라버니 대신 조카에게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다면, 그녀는 아마 노인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은 코가 시큰해 하마터면 눈물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았다.
그녀는 남에게 자신의 약한 면을 보여 주기 싫었다. 그녀는 몰래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내리떴다. 눈에는 곧 평온한 기운이 깃들었다.
"당신네 대장군께 전해 주세요. 나 대신 염 황숙께 제가 한 번도 그분을 탓한 적 없다고, 그리고 제가 변경에 돌아가면 꼭 찾아뵐 거라고 전해 달라고 하세요."
그녀는 이번에 북요에 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때 북요에서 죽었다. 조카가 그녀에게 보복한다면, 반드시 그녀를 살아 돌아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노인이 그녀를 보지 못하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눈 감기 직전까지 그녀 때문에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님……!"
암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육장봉은 그들더러 월령안을 만운산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달랑 말 한마디만 전하고 월령안이 북요로 가는 것을 뻔히 보기만 한다면, 육장봉은 정말로 그들을 때려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육장봉은 회통 전장의 소주 소연지를 된통 두들겨 주었다.
소씨는 아마 석 달 동안은 침대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당신네 대장군은 이해하실 거예요."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이는 그녀의 선택이므로, 그녀 자신이 알면 되었다.
육장봉이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녀가 북요에서 살아온 다음, 다시 결판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