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6화 황위 찬탈을 해야 하나
소연지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의 미소는 우는 것보다 더 보기 흉했다.
월령안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우세를 차지했다 해서 득의양양해하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소 공자께서 소주의 신분으로 저와 거래를 하겠다고 하니, 우리 실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그럼 진지하게 거래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월령안은 몇 마디로 조정에서 월씨 가문 표호를 사는 것이지, 그녀가 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먼저 물었다.
"소 공자께서는 무엇으로 우리 집 표호를 사려는 것입니까?"
"제가 사는 게 아니고, 조정에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조정을 대표해서 월 가주와 이번 거래를 하는 것이고요."
비록 이미 실패했지만, 소연지는 계속 무진 애를 썼다.
어쨌든, 그는 조정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흔쾌히 말을 바꿨다.
"좋아요. 그럼 조정에서는 무엇으로 저희 가문의 표호를 가져가려는 것입니까?"
"월 가주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나요?"
소연지는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아차 하면 자기 비장의 패가 폭로될까 두려웠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했다.
"소 공자,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네요. 지금은 당신들이 저희 표호를 사려는 것입니다. 제가 팔려는 게 아니라고요. 제가 값을 부를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월 가주께서는 표호를 팔 생각이 없다는 얘기인가요?"
만약 월령안이 감히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는 당장 변경으로 달려가 황제 앞에서 그녀를 고자질할 것이다.
"상인은 이익을 좇습니다. 조정에서 내놓는 가격이 제 마음을 움직이면 그게 월씨 가문 표호가 아니라, 월씨 가문 상사라도 저는 팔 것입니다."
그녀의 표호를 가져가려면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물론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인의는 저버리지 말아야 하죠. 조정에서 내놓은 가격이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소 공자께서도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 상인입니다. 억지로 사고파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죠."
황제가 감히 그녀의 표호를 강제로 징수하고, 감히 헐값으로 내놓게 핍박한다면, 그녀는 감히 월씨 가문 표호를 망가뜨려 황제가 빈 껍질만 징수해 거추장스러운 짐을 떠안게 할 것이다.
반나절이나 에둘러 말해도, 월령안은 여전히 아무 실질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고 그더러 먼저 조건을 말하라고 했다. 소연지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그는 입을 벌름거리다가 결국 꾹 다물고 말았다.
월령안은 진작 그를 간파했다. 그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연지는 아예 자포자기하고 마지막 패를 꺼냈다.
"폐하께서는 어떤 패를 내놓아야 월 가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 저를 보내 담판하게 하신 겁니다. 저는 조정을 대표해 담판하는 것이지만,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다만 말을 전할 따름입니다. 월 가주께서 원하는 패를 내놓으시면 제가 폐하께 보고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아뢰기만 할 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어떤 조건이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소연지가 약한 모습을 보여도, 월령안은 결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협상 자리에서 형세가 불리할 때, 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이며 마지막 패를 내보이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다. 그녀는 애당초 육장봉에게 이 수를 수차례 사용했고 매번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폐하께서는 월 가주더러 조건을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황제가 그에게 맡긴 임무였다.
그는 월령안이 조건 없이 월씨 가문 표호를 황제에게 헌납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 만약 이것마저 못 해낸다면 황제는 틀림없이 사람을 바꿔 보낼 것이다.
"이럴 수가……."
월령안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폐하께 월씨 가문 표호는 제 혼수라고 전해 주세요."
소연지는 멍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표호를 가지려면 저를 황후 자리에 올려달란 말이에요."
월령안은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순진하고 선한 미소를 떠올렸다.
"당신, 정말인가요?"
소연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튕겨 일어나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월령안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 것인가.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쁜 의도가 다분히 묻어나오는 웃음이었다.
"폐하께서 저를 황후로 세워 주신다면, 저는 월씨 가문 표호뿐만 아니라 월씨 가문 상사도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육 대장군은요? 그분은 어떡하십니까? 그분 아니면 시집가지 않는다고 한 거 아닙니까?"
설령 육장봉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연지는 왠지 목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가 만약 이 말을 황제에게 전하면, 황제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나, 육장봉은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몇 년 전의 너무 오래된 소식이에요. 당신네 소씨 가문 소식이 이렇게 늦지는 않겠죠?"
월령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듯이 월 가주는 육 대장군과 한 쌍이 아닙니까. 지금, 당신……."
'맙소사. 내가 도대체 무슨 시비에 휘말린 거지? 나는 그냥 거래하러 온 것뿐인데?'
그는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언제부터 육장봉과 한 쌍이었나요? 그분이 저와 결혼했나요, 아니면 약혼했나요?"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더니, 소연지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또 말했다.
"당신은 말을 전하는 사람이니,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시면 됩니다."
"정말 전하라는 말입니까? 만약 폐하께서 정말로 당신을 황후로 세운다면 어떡할 겁니까? 정말로 시집갈 건가요?"
소연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왠지 월령안이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것만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함정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야죠. 왜 안 가겠어요."
황제는 후궁을 모두 버리려는 생각이 아닌 이상, 결코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가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의 목소리와 함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완전히 묻혀 버렸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빛 옷으로 온몸을 휘감은 육장봉이 빛을 등지고, 기세등등하게 화청으로 걸어 들어왔다.
"시집가지 않는다고. 폐하께서 황후로 세워 준다고 해도 시집가지 않을 것이다."
"대, 대장군!"
소연지는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리려 했다. 하지만 육장봉의 위압감에 그는 당황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겁이 나서 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가서 폐하께 전해라. 월령안이 시집가지 않을 거니까, 좀 넘보지 말라고 일러라."
육장봉은 먼저 화가 나서 월령안을 노려보더니 곧이어 차가운 눈빛으로 소연지를 노려보았다.
"알겠느냐?"
"네, 네…… 알겠습니다."
소연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자신이 무엇을 승낙했는지 전혀 모른 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꺼지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육장봉은 먹물을 뒤집어쓴 듯이 얼굴이 시커메서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소연지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설 힘도 없었다.
육장봉의 살기 어린 시선 앞에서 그는 겨우겨우 억지로 버티며 일어섰다.
"꺼, 꺼지, 지금 당장 꺼지겠습니다."
소연지는 한시도 더 지체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당신은 나한테 할 말이 없는 것이오?"
자리에 아무도 없자, 육장봉은 분노를 숨기지 않고 이를 갈며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다행히 그가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좀만 늦었다면, 그의 대장군 부인이 황후가 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가 월령안과 결혼하려면, 우선 먼저 황위를 찬탈해야 하잖는가.
육장봉은 음침한 얼굴에 눈동자가 새빨개서 온몸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기운을 내뿜었다. 월령안은 이런 모습의 육장봉을 보고 머리가 아파 이마를 짚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육장봉이 돌아온 시기는 공교롭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이제 막 일을 벌이려는데 육장봉이 마침 나타난 것이다.
만약 그녀가 문득 순간적으로 황제를 괴롭힐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육장봉과 소연지가 결탁해 함정을 파 그녀를 빠뜨리려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물론 육장봉은 절대 그녀에게 손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두워진 육장봉의 얼굴은 여전히 무서웠다. 특히 그의 두 눈은 서슬이 퍼렇게 서 있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다면, 그녀는 자신이 수천 번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령안은 얼른 일어나 다급하게 위로했다.
"이 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나는 지금 매우 차분하오."
육장봉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으나, 얼굴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온몸의 한기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월령안을 흘겨보고는 소연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말해도 되오. 나는 시간이 많거든. 전혀 급하지 않소."
육장봉은 엄숙하게 앉아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다리를 약간 벌린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어두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에, 서슬 퍼런 눈초리로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육장봉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게 만약 월령안의 요구라면 말이다.
월령안은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우선 먼저 육장봉에게 차 한 잔을 따라 주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당신이 왔을 때는, 말의 뒷부분만 들은 거예요. 문제의 시작은 폐하께서 제 월씨 가문 표호를 가지려고 하시면서 아무 이익도 주지 않고, 기어코 저더러 원하는 걸 먼저 요구하라고 하는 거예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
"제가 무슨 요구를 할 수 있겠어요? 요구가 높으면 폐하께서는 제가 욕심이 많다고 하시면서 대외적으로 공포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에게 제가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알리려고 말이에요. 하지만 요구가 낮으면, 제가 너무 억울하게 손해 보잖아요. 그래서 소연지에게 월씨 가문 표호는 제 혼수니까, 폐하께서 월씨 가문 표호를 가지려면, 저를 황후로 세워야 한다고 말해 주었어요."
"당신을 황후를 세운다? 당신은 이 요구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오?"
그러니까, 결국 월령안 자신이 먼저 제기한 것이었다.
육장봉은 무릎에 얹은 두 손을 조용히 주먹 쥐었다.
사람을 때리고 싶지만, 누굴 때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월령안은 절대 안 되었다. 황제는 멀리 변경에서 있어서 안 되고, 소연지는 이미 도망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