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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45)화 (945/1,004)

945화 거대한 용, 월령안

황제는 이전처럼 구두 약속만 하면 월령안이 월씨 가문 표호를 순순히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황제가 너무나 천진한 것이었다.

월씨 가문 표호는 월령안 이전의 산업과는 달랐다.

월령안 이전의 산업들은 아무리 잘해도 돈을 얼마나 버는가의 문제였다. 설령 황제가 모든 것을 없앤다 해도 월령안만 손해 볼 뿐이었다. 하지만 월씨 가문 표호는 달랐다.

월씨 가문 표호는 관성 무역지역에서 근 일억 냥의 돈을 끌어들인 뒤, 신속하게 성장해 이미 주나라 경제의 명맥을 좌우하는 거대한 용이 되었다.

황제가 쉽게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산서 회통 전장의 소주 소연지가 황제를 대표해 월령안과 담판하러 왔다.

소연지는 처음 월령안을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월령안이 에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고 축하 인사를 건넨 다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공이 있는 신하들을 누구든지 섭섭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월 가주께서 조정을 위해 공을 세웠으니 폐하께서는 반드시 후한 상을 내릴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월 가주께서 무슨 요구든지 마음껏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조정에서는 양껏 만족시킬 것입니다."

"소 공자께서 농담을 하시는군요. 저는 어떤 공로도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께 감히 상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월령안은 빙그레 웃으며 소연지와 빙빙 에둘러 말했다. 그리고 그가 건넨 화두를 받지 않았다.

공로가 있다는 한마디로 그녀의 월씨 가문 표호를 빼앗으려 하다니. 황제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황제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여전히 육장봉에게 버림받아도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산업을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여인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

소연지는 월령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지 않고 붙임성 있게 권했다.

"월 가주, 폐하께서 왜 저를 보내셨는지 아실 겁니다. 우리 모두 에둘러 말하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이라 저도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월씨 가문 표호는 아주 중차대한 일이라 조정에서는 절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월씨 가문 표호는 월 가주께서 내놓고 싶지 않아도 내놓아야 합니다. 만약 자발적으로 내놓으면 폐하께서는 당신의 공을 기억하고 물론 푸대접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황제는 월령안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그는 월령안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녀가 관성에서 한 거동을 보면 그녀 또한 민심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해 훤히 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발적으로요?"

월령안은 웃으며 되물었다.

"소 공자, 지금 농담하는 것이죠?"

아무런 이점도 주지 않고 단지 푸대접하지 않을 거라는 한마디로 월씨 가문 표호를 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는 과연 소연지가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황제가 어리석은 것인가.

소연지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 말을 이었다.

"월씨 가문 표장의 현금 출납부를 저에게 건네주면, 조정에 건네주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월씨 가문 표장의 모든 사람이 월령안의 사람이므로 그녀가 가짜 장부를 만들려 하면 아주 손쉬웠다.

"소 공자, 괜한 생각을 하시는군요. 저 월령안은 장사를 하면서 여태껏 신용을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월씨 가문 표장의 현금 출납부를 점검하는 것은 우리가 애당초 했던 약속입니다. 저는 약속대로 일 처리 했을 뿐입니다."

월령안은 빈틈없이 거절했다.

너무 먼저 달려드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문전까지 억지로 가져다주는 물건은 값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다. 쫓아다니며 사 달라고 할수록 구매자는 난색을 표하며 가격을 더 낮추려 할 것이다.

그녀는 함정을 파 누군가 뛰어들기를 기다릴 수는 있지만, 절대로 먼저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월 가주, 지금 담판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월령안이 거듭 거절하자 소연지도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월령안이 전에는 협조를 잘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처럼 상대하기 어려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월령안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쪽에 있던 차를 들어 이따금 한 모금씩 홀짝였다.

먼저 찾아와 거래하려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소연지였다. 소연지가 먼저 찾아왔는데 그녀가 자발적으로 월씨 가문 표호를 내놓을 수 있겠는가. 혹여 조정을 등에 업고 황제를 내세우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소연지는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위협했다.

"보아하니, 좀 권위가 높은 분을 모셔서 월 가주와 의논해야 할 것 같군요."

월령안은 찻잔을 내려놓고 팔을 벌려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럼 소 공자를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월령안!"

소연지는 화가 나서 형상 같은 것을 생각할 새도 없이 직접 월령안의 이름을 불렀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오면 절대 저처럼 이렇게 말이 쉽게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확실히 다른 사람을 바꿔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이 임무를 그에게 맡겼었다. 그가 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해낸다면, 황제는 앞으로 그를 중용하지 않을 게 뻔했다.

월령안은 적정선에서 멈추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 공자는 지금 관아의 신분으로 와서 저에게 통지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회통 전장 소주의 신분으로 저와 거래하려는 건가요?"

"관아의 신분이면 어떻고, 회통 전장 소주의 신분이면 또 어떤가요?"

소연지는 좀 전처럼 함부로 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전에 두 사람이 교제할 때, 월령안은 아주 말이 잘 통했다. 줄곧 봄 햇살처럼 따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령안과 장사 거래를 하면, 그는 늘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이 서로 친한 친구처럼 한담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거래가 성사되고는 했다.

그러했기에 그는 오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친구 사이에 말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월령안은 그 어느 때보다 공적인 일을 원칙적으로 처리하려 했다.

그는 하마터면 큰코다칠 뻔했다.

"만약 관아의 신분이라면, 저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이 월씨 가문 표호를 받아 가면 됩니다. 하사품에 대해서는?"

월령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질책이든 포상이든 모두 폐하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입니다. 폐하께서 우리 가문의 표호를 눈에 들어 하시면 그것 또한 저의 영광이죠. 제가 어찌 감히 하사품을 요구하겠습니까."

"당신 의견을 묻지 않으면요. 월 가주께서 월씨 가문 표호가 월씨 가문 상사와 아무 상관도 없다는 한마디만 하면 월씨 가문 표호는 폐기될 것입니다."

월씨 가문 표호가 성사될 수 있는 것은 월씨 가문 백 년간의 상업적 신용, 즉 월령안의 신용에 기댄 것이었다.

상인들이 월씨 가문 표호를 믿는다기보다는 월령안과 월씨 가문 상사를 믿었다.

신용이라는 것은 구축하기 어렵지만, 실추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조정에서 강경하게 월씨 가문 표호를 회수한다면, 월령안이 살짝 암시만 하거나 월씨 가문 상사에서 표호로 거래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으면, 월씨 가문 표호는 폐지 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표호를 지닌 상인들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표호를 은표, 혹은 현금으로 바꿀 것이다.

만약 상인들에게 환전해 주지 않는다면 표호의 신용이 실추될 뿐만 아니라 산서 전장의 신용마저도 실추될 것이다.

하지만 환전할 거라면, 그들이 월령안 수중에서 월씨 가문 표호를 가져가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가장 주요한 것은 이 일을 겪고 나서, 앞으로 어떤 표호가 나타나든지 상인들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지어는 전장에 대해서도 믿음이 떨어져 모두들 금, 은으로만 거래할 수도 있었다.

이는 황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징수해 가면 월씨 가문 표호는 당연히 월씨 가문 상사와 아무 관련이 없죠. 소 공자, 아시죠?"

월령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연지를 바라보았다.

"내 월씨 가문 표호를 징수해 가서, 그것으로 돈을 벌면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월씨 가문 상사에 잘못을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겠죠?"

월령안은 일부러 '내'라는 글자를 강조했다. 표정 또한 아주 과장되어 얼굴에 '당신, 이렇게 뻔뻔한 거야?'를 써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소연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은근히 찔렸다.

사실 황제는 원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은 실현 불가능했다. 이에 대해 그는 월령안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찌 그렇게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일을 한단 말인가. 황제가 월령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패를 내놓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조정에서 월씨 가문 표호를 관리하면서 일이 생기면 월령안과 월씨 가문 상사에서 책임져야 한다. 이는 월씨 가문이 황실의 은상(隱商) 노릇하는 것보다 더 비참했다. 황제를 위해 일하는 것은 물론, 남을 대신해 덤터기까지 써야 한다니.

그가 월령안이라면, 차라리 스스로 월씨 가문 표호를 망가뜨리더라도, 이 억울함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연지는 이 계획이 실천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미소를 지으며 자존심을 만회하려 했다.

"조정에서 정말 억지로 징수하려 했다면 저를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 말은 그 자신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소 공자께서는 지금 회통 전장 소주의 신분으로 저와 거래하려는 건가요?"

월령안은 소연지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먼저 단정 지어 버렸다.

소연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감히 고개를 흔들기만 하면 이 일은 이대로 끝이 날 것이다.

소연지는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자신이 회통 전장 소주의 신분으로 월령안과 표호에 대해 상의한다고 해도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지가 따로 없었다.

월령안은 실제 행동으로 그에게 안면을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상업계에서는 부자지간, 아니 우정이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와서야 그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기 전에 왜서 수차례 경고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월령안을 상업계의 선배로 여겨야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멍청하게 동년배로 여겨 속마음을 나누다가는 언제 팔려갈지도 모를 거라고 했다.

앞서 몇 차례 합작에서, 월령안은 통쾌하고 대범했다. 돈 벌 기회가 있으면 여럿이 함께 벌었고 한 번도 그를 함정에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는 얼마 안 되어 경계심을 내려놓고 그녀를 동년배로 보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남의 집 아이를 칭찬하고 자기 집 아이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는 아버지의 당부가 틀림없이 피눈물과 바꾼 교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그가 이미 기선 제압에서 패했기에 월령안의 방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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