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화 이대로는 안 된다
"내가 무얼 알아야 하는데?"
온조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그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웃기는 소리. 몇백만 냥 현금이 수중에 있는데 공로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이제 완안유를 완벽하게 변경으로 보내기만 하면, 황제조차도 그의 공로를 빼앗아 갈 수가 없었다. 그가 조급해할 게 뭐가 있는가.
"관성 곳곳에서 태수부에 백만 냥 현금이 있다고들 하고 있어. 너 몰랐어?"
척연이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지. 관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단 말이야. 너 어엿한 태수가 돼서는 아직 모른단 말이야?"
"뭐? 관성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온조는 깜짝 놀라 튀어 일어나더니 탁상을 치며 분노했다.
"누구냐? 내 수중에 이백육십팔만 냥 현금이 있다는 비밀을 누가 폭로했어?"
"백만 냥을 넘어? 이백여만 냥씩이나?"
척연도 깜짝 놀랐다.
"돈이 그렇게 많아? 모두 월령안이 보내온 거야? 같지도 않은 무역지역에서 사흘 동안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단 말이야?"
'아니, 은 이백여만 냥이라니!'
그 돈을 만약 모두 그에게 준다면, 그의 수하 병사들은 새로운 장비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면 혹 육장봉의 육가군과 비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누가 소식을 흘렸냐고?"
온조는 간장을 태웠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
소식이 새 나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현금을 약탈하려 들지 상상할 수가 있었다.
"누가 소식을 흘렸다고 그래……. 월씨 가문에서 현금을 보내올 때, 전혀 숨기지 않았어. 무역지역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다 알고 있어. 무역지역은 조정의 것으로 월씨 가문은 그냥 손을 거친다 뿐이지, 돈은 벌지 않으며 무역지역 수수료에서 큰 몫은 조정에서 가져간다는 것을 말이야.
전에 월령안이 암살당한 사건이 있었잖아. 월씨 상사에서 현금을 상사에 두면 안전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전부 태수부로 보내왔다고 그래. 관성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 누가 정보를 누설할 필요도 없단 말이야."
척연은 백치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온조를 바라보았다. 아니꼬운 표정이었다.
"월령안, 또…… 또 나를 함정에 빠뜨렸군!"
온조는 심장을 부여잡고 슬프게 울부짖었다.
"내가 또 월령안에게 한 방 먹었단 말이야! 월령안을 대신해 방패막이가 됐단 말이다. 너무 비참하군."
'아, 퉤!'
월씨 가문이 돈을 벌지 못한다니.
그는 월씨 가문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몰랐다. 하지만 소연지가 월령안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면, 그는 월령안이 버는 돈이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을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북요, 금나라, 서하 그리고 서역의 상인들이 월령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뼈다귀를 본 개처럼 환장한 눈빛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온조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탁상을 치며 화를 냈다.
"안 돼. 이 억울함을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어. 월령안이 나한테 해명을 하지 않으면 꼭 끝까지 해낼 거야."
자객에, 현금 백만 냥에, 온조는 어지간히 당한 게 아니었다.
척연은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겨났다. 그는 몸을 일으켜 온조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됐어. 장봉의 체면을 봐줘야 하잖아."
"아, 퉤! 육장봉의 체면도 이제는 안 돼."
온조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척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월령안이 금나라 새로운 황제 완안유까지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면 그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 것이다.
"그럼 돈을 봐서라도?"
척연은 온조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거 뭐야…… 내 비상금, 빨리 줘. 나중에 우리 마누라가 오면 그 돈은 내 손에 들어올 수가 없단 말이야."
"척소연. 내가 이렇게 비참한데도 넌 아직 네 그 비상금이나 걱정하고 있어. 너, 너무한 거 아니야?"
온조가 허리를 짚고서 고함을 질렀다. 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슨 비상금인가요? 당신들이 비상금을 숨겨 두었어요?"
온 부인과 척 부인도 월령안이 온조에게 돈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가문의 몫을 계산하러 달려왔다. 그런데 뜻밖에 문턱을 넘자마자 이런 중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 부인……."
척연과 온조는 자신들의 아내를 바라보며 멍해졌다.
"비상금? 어이구, 당신 비상금까지 숨기셨어요?"
척연의 부인은 무장 명문 출신이라 움직임이 빨랐다. 척연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달려들어 그의 귀를 낚아챘다.
"말해 보세요. 비상금을 얼마나 숨겼어요?"
"부, 부인, 좀 살살……."
척연은 아파서 꽥꽥 소리를 질렀지만 감히 몸부림치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온조의 부인은 훨씬 부드러웠다. 그녀는 사뿐사뿐 들어와서, 상석에 앉더니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온화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도 비상금을 숨겼나요?"
온 대인, 온 태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었다.
"부인, 내가 잘못했소."
온 태수와 척 수비는 비상금을 숨긴 일을 그들의 아내에게 들켰다. 그들이 아내들을 달래서 보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해 월령안을 찾아가 결판을 낼 힘이 없었다.
온 부인과 척 부인은 손잡고 남편의 비상금을 탈탈 털어낸 다음, 몰래 후한 예물을 준비해 월령안에게 감사 선물을 보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있는 한, 온씨와 척씨는 월령안을 괴롭힐 겨를이 없을 것이므로, 월령안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월령안은 답례 선물을 받고 웃었다.
역시 어린 아가씨들이건, 부인들이건 모두 너무 귀여웠다.
* * *
지금 관성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은 월령안이 암살당한 일이 아니라, 무역지역에서 개업한 첫 사흘 동안 조정에서 수백만 냥을 벌어들인 일이었다.
"내가 현금을 실은 마차를 보았다니까. 아니 글쎄…… 차바퀴가 눌려서 굽었어. 나는 처음에 또 돌을 나르는 줄 알았지. 그런데 글쎄 현금을 나르는 거였어. 살면서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돈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당신이 진짜 본 거야? 반짝반짝 빛나는 은 맞아?"
"상자! 현금이 든 상자야! 내가 세어 보니 여든 개가 넘었어. 그렇게 큰 상자에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수백만 냥이라고 하지 않았어. 바로 태수부에 있대. 용기가 있으면 담벼락을 타고 훔쳐 보든가."
"수백만 냥이야! 몽땅 반짝반짝 빛나는 은이라고. 그게 만약 내 돈이라면…… 완전 대박 난 거지. 열몇 대까지 먹고 마시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잖아."
"무슨 꿈같은 소리. 그건 조정의 돈이라네."
"뭐 내가 꿈꾸는 것까지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해?"
일반 백성들은 이 일을 꺼내면 그냥 두어 마디 흰소리를 치고 그 돈이 자기 것이면 하는 상상이나 할 정도였다.
하지만 강도나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은 이 일을 듣고 암암리에 모의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강도질을 생업으로 하는 강도 무리들이 직접 한곳에 모였다.
"믿을 만한 소식인가?"
"태수부의 호위가 전한 소식으로, 직접 본 바에 의하면 현금이 족히 이백만 냥은 된다고 합니다."
"돈이 아직도 태수부에 있는가?"
"내일…… 마적 떼들이 달려들어 우리를 도와 관성의 군대를 견제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들이 현금을 관성에서 내보내지 못하게 예의 주시하기만 하면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쪽에 우리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움직임도 우리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금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돈을 노리는 사람은 한 패거리만이 아니었다. 이 패거리들이 어떻게 현금을 약탈할 것인지 모의한, 그날 밤에 여러 패거리가 태수부에 쳐들어가 대놓고 약탈하려 했다.
척연은 거의 쉬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우며 지켰다. 돈을 약탈하러 온 무리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섰으며, 한밤중에는 세 무리가 동시에 덮쳤다.
그가 거느린 군대가 충분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태수부의 방어선을 뚫고 현금을 약탈해 갔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밤을 새운 척연은 얼굴이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거메졌고 눈에는 핏발이 벌겋게 서서 완전 폭발 직전이었다.
"관성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수중에 수백만 냥의 현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우리 이곳은 북요, 금나라, 서하와 인접해 있어 원래부터 강도나 도둑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 하루빨리 현금을 변경에 보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 잠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해."
첫날에 달려든 놈들은 모두 상황 파악을 위해 내던진 미끼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대처하는 데만 해도 그들은 한참 들볶여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현금의 양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양이 많았다.
특히 소식이 빨라, 현금의 실제 액수를 아는 강도들은 더욱 미쳐 날뛰었다.
"내보내면 안전할 줄 알아?"
온조도 상태가 별로였다. 그는 수비 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태수부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젯밤, 그는 줄곧 은표가 든 상자를 안고서 전혀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눈을 감는 순간, 수중의 은표를 빼앗길까 두려웠다.
사실 그 상자의 은표가 밖에 여든 상자의 현금보다 더 값어치 있었다.
"산서 전장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그들에게 현금을 어떻게 운송하는지 물어서 우리도 좀 배우자고."
척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거쳐 월령안을 원망하려던 말들은 그대로 삼켜 버렸다.
둘 다 안 좋은 상황에서 손실이 적은 쪽을 취하는 게 맞았다.
온조의 손에 금나라 새로운 황제 완안유라는 인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척연은 월령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액의 현금이라는 미끼를 던져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현금에 쏠리게 되면, 그들이 아무리 큰 움직임을 보여도 모두 합리적인 것으로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산서 전장에서 돈을 운송할 때는 이렇게 떠들썩하지도 않고 액수가 이렇게 많지 않아. 그들이 매번 운송하는 현금은 기껏해야 십여만 냥 정도일 뿐이야. 소리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운송한단 말이다.
그리고 산서 전장들은 평소에 여러 녹림 인사들에게 적지 않게 뇌물을 주지. 이익을 취한 녹림 인사들이 산서 전장의 체면을 봐주겠지만, 너의 체면은 봐줄 거 같아? 네 체면이 이백만 냥 보다 더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온조는 가소롭다는 듯이 척연을 흘겨보며 비웃었다.
이백만 냥 현금은커녕, 평소 삼십만 내지 오십만 냥의 세은(稅銀)도 노리는 사람이 가득했다. 때문에 매번 세은을 변경으로 호송하는 일은 자칫하면 목이 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척연은 가슴이 답답해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월령안을 찾아갈게. 일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좀 냉정하시지. 돈을 봐서라도."
온조가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