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1화 또 나를 이용하려 하나?
온조는 그러고도 모자라 한마디 덧붙였다.
"저분의 목에 난 상처는 대장군의 검에 베인 듯 보입니다."
"자네 말은……."
이반반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서 연신 뒤로 물러섰다.
'아니지. 아닐 거야. 대장군께서 어찌 이리 물불을 가리지 못한단 말인가.'
남들은 몰라도 육장봉은 북요에서 일찍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주나라와 전쟁을 치르려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지금 시기에 금나라 황제에게 손쓰다니. 대장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온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 저분이 자신의 신분을 폭로하며 월령안에게 손쓸 수 있겠습니까?"
이반반은 말없이 얼굴이 굳어졌다.
온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금나라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금나라의 새로운 황제 완안유는 월령안이 전적으로 밀어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도 완안유는 금나라에서 여전히 월령안의 지지가 필요하고, 그녀의 이익과 매우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황제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전에는 월령안에게 손쓸 수가 없었다.
만약 육장봉이 먼저 완안유에게 손써 죽일 뻔했다면, 완안유가 육장봉에게는 보복하지 못하고 월령안에게 손썼다는 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세상에서 무릇 육장봉을 아는 사람이면 모두 월령안이 육장봉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모두 육장봉이 그녀를 얼마만큼 신경 쓰고 심지어 그녀를 위해 황명도 거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을 잡기만 하면, 육장봉의 명줄을 잡은 것과 같았다.
월령안이 육장봉의 명줄이고, 월령안을 잡는 것은 육장봉의 명줄을 잡은 것과 다름없다면, 육장봉은 이반반의 천적이었다.
온조가 육장봉을 내세우자, 이반반은 금세 풀이 죽어 목소리까지 가라앉았다.
"그럼, 지금 그럼…… 어떡하지? 저분을 우리가 아무래도 잘 처리해야 할 것 같군."
"물론 잘 처리해야 합니다. 저분이 우리 손에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죠."
온조는 완안유를 떠넘기면서, 이반반이 이 골칫거리를 넘겨받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이반반처럼 황궁에서 자라 온몸이 속셈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어떻게 멍청하게 완안유를 인계할 수 있겠는가. 그가 완안유를 떠넘기려 했던 것은 그냥 이반반도 이 일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이제 이반반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였고 이반반의 풀도 꺾였다.
온조는 더는 그를 난감하게 하지 않고 진지하게 분석했다.
"이반반, 대장군의 성질은 당신도 알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중요한 일에 발이 묶여 아직까지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관성에 하루라도 더 두면 그만큼 위험이 높아지죠. 눈앞의 급선무는 사람을 어서 빨리 변경에 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낼 건가? 우리 인력으로 변경으로 돌아가기는커녕 관성을 벗어날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구먼."
이반반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금나라 사람들이 완안유가 그들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설령 금나라에서 알았다고 해도 그들은 완안유의 소식을 꽁꽁 숨겨야 했다. 금나라의 사람들이 완안유을 찾게 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금나라에서 증거를 찾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지 않고, 일이 폭로되어 세상 사람들이 주나라에서 금나라 황제를 납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설령 완안유가 사사로이 관성에 온 것이 잘못이라고 해도 주나라가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냥 사람을 놓아준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 나라 제왕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은 그들이 위험을 무릅쓸 만했다.
황제를 사로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것도 완안유가 나이가 어려 월령안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다른 황제를 보라. 모두 깊은 황궁에 있으면서 누군가 죽이려 달려들까 무서워 옆에는 호위하는 사람들을 가득 두었다.
전에 전쟁터를 누비며 전공으로 명성을 날린 북요 황제도 제위에 오른 뒤에는 사람들이 틈을 타서 손쓸까 두려워 웬만해서는 궁궐을 떠나지 않았다.
"이반반의 말씀이 맞습니다. 관성에서 변경까지 길은 너무 멀지요. 우리 재간으로 아무도 놀래지 않고 사람을 변경까지 보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모두 그 죄를 감당하기 어렵고요."
온조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이반반의 바라보는 눈빛은 온통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이반반이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말한 것 같았다.
어느 한순간, 이반반은 왠지 모를 우월감이 들었다. 온조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약간 거만해졌다. 하지만 그가 온조에게 당해서 한배에 올랐다는 것을 떠올리자 금세 정신을 차리고 경계 어린 말투로 말했다.
"무슨 계획이 있는가? 사람을 관성에 두었다가 육 대장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할 것인가?"
"이반반, 늦으면 이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장군께서 언제 돌아올지 모릅니다. 만약 금나라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우리가 기선 제압을 못 한다면 일은 더 처리하게 어렵게 됩니다."
온조는 진심 어린 얼굴로 계속해 이반반을 위한 함정을 팠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이반반께서 사람을 데리고 당장 변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큰 모험을 해야 하고, 아마 이반반을 힘들게……."
온조는 적당히 이반반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반반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의 경계심도 많이 풀리고 마음속으로는 심지어 자신이 온조를 오해한 것이 아닌지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온조도 그리 음흉한 건 아니군. 그래도 나를 무척 신경 쓰잖아.'
하지만 곧이어 온조가 말했다.
"이반반은 폐하의 신임을 얻는 분이고, 폐하의 수족과 다름없는 분이시죠. 만약 이반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폐하께서는 반드시 저희 죄를 물을 것입니다. 만약 이반반께서 북요 사사에게 암살당할 뻔하면, 척 수비는 병사를 거느리고 이반반을 변경까지 호송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완안유를 변경으로 보내는 일은 정말로 처리하기 어려웠다. 자칫하면 일을 그르치고 덤터기를 뒤집어쓸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처리하면 그의 능력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그가 월령안을 지켜 주는 것은 확실히 육장봉의 체면을 봐주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월령안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온전히 그녀의 인정 빚을 갚으려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골칫거리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준 것이기도 했다.
이 일을 잘 처리하면 황제 앞에 이름을 올려, 그는 더는 가문의 견제를 받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변경 온씨 가문의 사람들도 앞으로는 그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반반은 온조가 한참 동안 말한 것이 결국은 그를 함정에 더 깊숙이 빠뜨리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흙 두어 움큼을 뿌려 놓고는 밟아 주기까지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반반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온조를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온씨! 또 나를 이용하려 하나?"
온조는 한발 물러서서 이반반의 침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반반께서 이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여기시면 사람을 그냥 관성에 남겨 두어야 합니다. 다만…… 관성은 금나라 국경과 불과 사흘 내지 닷새의 노정밖에 안 됩니다. 때가 되어 무슨 이변이라도 생기면 소인은 폐하께 사실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금나라 황제를 당장 변경으로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반반이 싫어해서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자네, 자네, 자네……."
이반반은 온조를 가리키며 울화통이 터진 나머지 말도 할 수 없었다.
황제의 말이 지당했다. 관리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속셈 덩어리로 그같이 정직한 사람은 그들의 상대가 절대 안 되었다.
온조는 진지하게 제안했다.
"이반반께서 이 방법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시면, 사람을 데리고 성안에서 좀 구경도 하고 그러세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반반께서 암살당하면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이 더욱 진실해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이반반과 월령안의 두 암살 사건을 함께 처리하면서 모든 것을 북요인들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 그러면 상인들도 관성이 불안정하고 태수라는 사람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북요인들은 항상 미쳐 날뛰므로 무슨 일이든지 저지를 수 있었다.
북요인들이 월령안과 이반반을 암살했다면, 그것은 태수가 무능한 것도, 관성이 불안정한 것도 아니었다.
이반반은 화가 치밀어 올라 눈동자가 빨갛게 되었으며 몇 번이고 피를 토할 뻔했다. 그는 억지로 가슴속 울화를 억누르고 이를 갈며 한마디 했다.
"온씨! 내 자네를 기억하겠네."
그러고는 소매를 홱 젖히더니 떠나갔다.
"반반께서 기억해 주신다니 소인의 영광입니다."
온조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이반반의 뒷모습에 읍까지 했다.
이반반은 뒤돌아보다가 마침 그 장면을 보게 되었고, 걸음이 꼬여 하마터면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그는 겨우 몸을 가누고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고서는 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떴다.
온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성에서 온 사람들은 다 약하단 말이야!"
그는 옷소매에 없는 먼지를 툭툭 털고는 진중하고도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무역지역에 가서 월 가주에게 전갈을 보내라. 이제 골칫거리는 내가 보내 버렸으니, 어서 정신을 차리고…… 장부를 결산해서 보내라고 일러라."
무역지역에는 그가 사적으로 투입한 돈도 있었다. 만약 무역지역이 대박이 났다면, 그의 비상금도 확실하게 많아질 것이다.
온조는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유유히 되돌아갔다.
* * *
월령안이 온조가 보낸 전갈을 받고, 다음 순간 이반반이 관성에서 암살 시도에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월령안은 어이가 없었다.
'온 태수는 정말로 돈이 어지간히 그리운 모양이군. 한시도 기다리지 못하네.'
월령안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곧장 상천을 불러 조정의 수익을 계산해 온 태수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물론 온 태수가 몰래 투자한 돈까지 함께 가져가라고 했다.
온 태수가 일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처리했으니, 두 번 재촉하게 할 수 없었다.
"큰아가씨, 조정의 몫은 반 할로 은 육백육십여만 냥은 족히 됩니다."
상천은 무역지역의 사흘간 거래량을 재빨리 계산했다.
첫날은 일억 냥, 이튿날은 십만 냥으로 떨어졌지만, 사흗날에는 다시 올라가 거래량이 무려 삼천만 냥에 달했다.
계산한 결과, 사흘 동안 조정의 수익은 육백여만 냥이 되었다. 이는 조정의 반년 세수(稅收)와 맞먹는 수치였다.
"회통 전장의 은표로 바꿔서 보내라."
일억 냥에 달하는 유동자금을 장악하고 있는 월령안으로서는 육백여 냥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정에서 이 돈을 받으면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녀는 어쩐지 황제의 반응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