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38)화 (938/1,004)

938화 육장봉이 바로 남상권인 거지?

무역지역에서 연이어 사흘 동안 큰 시장이 열렸다. 월령안은 그동안 줄곧 무역지역에 머물면서 거처로 돌아가지 않았다.

상천과 무역지역의 당일 장부를 확인한 뒤, 월령안은 처소로 돌아와 씻고 쉬려 했다. 그녀가 얹은머리를 풀자마자 방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활짝 열렸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보았다. 그녀가 묻기도 전에 그자는 어두운 얼굴로 걸어 들어오더니 이를 갈며 소리 질렀다.

"월령안!"

"완안유?"

월령안은 들어온 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여기 있죠?"

도리대로라면 금나라의 새로운 황제 완안유가 관성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상처를 지닌 채 그녀의 처소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월령안은 완안유가 관성에 나타난 원인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큰아가씨……."

호위가 바싹 뒤쫓아 왔다.

월령안은 완안유가 입을 열기 전에, 황급히 호위와 시녀를 내보냈다.

완안유는 거의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마치 그녀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금나라와 북요 간에 동맹을 맺은 것에다가, 또 육장봉이 관성에 머물며 떠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완안유가 왜 찾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호위와 시녀가 나가자마자, 완안유는 사나운 표정으로 캐물었다.

"월령안, 육장봉이 바로 남상권인 거지?"

완안유가 가까이 다가오자, 월령안은 그의 목에 난, 피가 낭자한 상처 자국을 보게 되었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쓴 사람은 완안유의 목숨을 앗아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정도 봐준 것도 아니었다.

완안유는 상처도 처리하지 않고, 그녀를 찾아왔다.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모양이었다.

월령안은 잠깐 망설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궁리했다.

그러나 완안유는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다가서며 캐물었다.

"월령안, 육장봉이 바로 남상권이지?"

월령안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이미 알고 있잖습니까."

완안유는 수중의 약병을 '탕' 소리 나게 땅에 메쳤다.

"너 역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어."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달려들어 월령안의 목을 졸랐다.

"너나 육장봉은 모두 한통속이야. 짐과 금나라 전체를 지들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잖아. 그래서 지금 우쭐거리는 거야."

"헉……!"

월령안은 피하지 못하고 완안유에게 제대로 잡혔다. 그녀의 동공은 수축되고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거지 같은 것들. 하나같이 겁쟁이잖아. 그냥 만만한 나를 찾아와 지랄들이지.'

"이거…… 놔!"

월령안은 완안유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뜻밖에도 완안유는 힘을 더했다. 그녀는 마치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픈 나머지 얼굴이 일그러졌고,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젠장, 완안유가 완전히 미쳤군.'

"허……!"

완안유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코앞까지 확 끌어당겼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월령안은 가까이에서 완안유 눈 속에 드리운 노기와 광기를 환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순간 공포감이 몰려왔다.

육장봉이 완안유를 칼로 베는 동시에,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완안유가 이렇게 미쳐서 날뛰는 거지?

"얼마, 얼마 전에……."

완안유가 묻는 틈을 타서, 그녀는 간신히 그의 손을 밀치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제 좀 살겠군!'

"사기꾼, 너 또 날 속였어!"

완안유는 다시 힘을 더해 그녀의 목덜미를 졸랐다. 그녀는 변명하려고 해도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오직 완안유의 화난 울부짖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네가 일찍부터 육장봉이 남상권인 줄 몰랐다면, 어떻게 남상권이 금나라에서 사람을 죽이자마자 달려가서 그를 구할 수가 있어. 월령안 이 사기꾼! 너하고 육장봉은 한통속이야. 너희들이 손잡고 날 속였어!"

"내가 남상권을 구한 것은, 남상권도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완안유가 말하는 동안 월령안은 억지로 그의 손을 잡아떼었다.

다행히도 완안유는 정말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월령안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자, 손의 힘을 약간 빼 그녀가 숨을 쉴 수 있게 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완안유는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 눈에는 온통 포악함뿐이었다. 촛불 아래에서 그의 모습은 사악하면서도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내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월령안은 그제야 조금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반지를 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려 완안유의 목을 겨냥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기 전에 한발 앞서 '슈욱' 하고 빙침을 쏘았다.

"뭐야……."

완안유는 민첩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빙침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있었다. 빙침은 곧바로 완안유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는 순간 몸이 굳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재빨리 물러서서 발로 그의 얼굴을 걷어차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난 소용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녀는 방자하고 매섭게 쏘아붙였다.

"월령안!"

완안유는 땅바닥에 엎어졌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놀라는 동시에 분노했다.

"월령안, 너, 뭘 한 거야."

"역시 소용이 있죠. 금나라 황제 폐하, 아닌가요?"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가 또 한 번 더 걷어차 완안유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고는 그의 목덜미를 밟고서 말했다.

"내 목을 조르니까 재미있던가요?"

그녀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목 주위가 검푸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 양쪽 뼈가 모두 부러졌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한 글자를 내뱉을 때마다 숨을 한껏 들이켜야만 했다.

촛불 아래에서 월령안은 음험하고 흉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에는 노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완안유는 자신이 월령안의 발길질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높이 외쳤다.

"월령안, 나는 금나라의 황제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를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월령안이 감히 그를 죽으면 함께 순장 당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 애당초 경시당하고 출신마저 분명치 않던 십육 나리가 아니었다. 그는 금나라의 새로운 황제였다.

월령안은 감히 그를 건드릴 수도 없고, 건드려서도 안 되었다.

"당신이 죽으면, 그냥 금나라에서 황제를 바꾸면 돼요. 제가 감히 할까요, 못 할까요?"

월령안은 완안유의 상처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완안유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그는 무진 애를 쓰며 입을 열었다.

"삼…… 삼 황자! 서금(西金)…… 그의 야심은…… 주나라에…… 불리해."

"내가 빨리 움직여 삼 황자가 눈치채기 전에 새로운 황제를 먼저 자리에 앉히면, 금나라가 강을 사이 두고 나뉘는 국면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허리를 굽혔다. 풀어헤친 긴 머리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아래로 쏟아져 내리며 얼굴을 반 넘게 가리는 동시에 촛불 빛도 반 넘게 가렸다.

어렴풋한 불빛은 그녀의 얼굴을 푸르게 비추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귀신같았다.

완안유는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너…… 너 감히 나를 건드리면, 내 사람들이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았어도, 당신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완안유 목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월령안의 꽃신은 피로 물든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차가운 눈초리로 완안유를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당신에게 칼을 휘두르자, 그는 어찌할 수 없으니 대신 나한테 화풀이를 한 거잖아요. 완안유, 제가 금나라에서 일으킨 풍파가 작아서 당신에게 제 힘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보는 건가요?"

"난 그저…… 네 이유를 듣고 싶었을 뿐이야. 너를 어쩌려는 게 아니었어."

그렇지 않으면, 그도 혼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

월령안은 가타부타 말없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옷깃을 열어 목덜미 부분의 졸린 흔적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조금 더 힘을 주었더라면 제 목이 끊어질 뻔했어요. 폐하께서는 참 이유를 힘 있게 요구하시는군요."

월령안은 비웃는 표정을 짓고서 발끝으로 완안유의 상처를 짓이겼다.

"왜 인정하기 싫나요? 마음에 들지 않나요? 아니면 방금 전에 조금만 더 힘을 주지 않은 걸 후회하는가요? 안타깝게도, 당신에게는 이제 기회가 없어요."

월령안은 옷깃을 여미고, 완안유의 목덜미를 밟고 있던 발을 거두고 뒤돌아서 소리쳤다.

"여봐라!"

그러나 문밖에는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풀었다.

그녀와 완안유가 손쓸 때 낸 소리가 낮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들어와서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 밖에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하, 내 사람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완안유는 땅바닥에 누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굴의 미소는 득의양양함과 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혼자 주나라에 올 수 있겠는가.

그의 호위들은 육장봉과는 싸워서 이기지 못하지만, 월령안의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월령안, 너 끝장이야."

완안유는 의기양양하고도 방자하게 웃었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그 눈빛은 마치 '네 힘이 아무리 큰들 어찌할 건데, 누구도 너를 구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완안유는 곧 실망했다. 월령안은 그가 바라던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비웃듯이 그를 흘겨보았다.

"무슨 좋은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싸우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싸움이 아직 제 처소까지 닿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당신의 사람들이 뛰어올 때까지 나는 당신을 수백 번 죽일 수 있어요."

월령안은 콧방귀를 뀌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내뱉었다.

"끝장나도 당신이 먼저 끝장날 거라고요."

"네…… 네가 감히."

완안유는 동공이 갑자기 수축되더니, 속으로는 무서우면서도 겉으로는 노기에 차서 소리 질렀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에요."

월령안은 완안유와 말로 실랑이질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완안유에게 암기를 쏘았다.

"살아 있는 당신이 더 가치가 있거든요!"

푸욱!

완안유에게 암기가 내리꽂혔다. 그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달갑지 않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침대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허리춤의 인장을 끌러 침대 머리 부분의 옴폭한 홈에 넣어 눌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판이 움직이더니 침대 밑에 숨겨져 있던 밀실이 드러났다.

월령안은 암실을 열어 놓고, 다시 돌아와 완안유의 발을 잡아끌어 밀실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또 옷 두 벌을 더 던져 넣고, 탁상 위에 등잔을 잡아 기름을 침대 휘장에 쏟았다.

침대 휘장이 등잔 기름에 흠뻑 젖자 불씨가 달라붙으며 신속하게 타올랐다.

월령안은 한 번 쓱 보고는 밀실로 뛰어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월령안이 내려가자, 침대 판은 움직인 흔적도 없이 빠르게 원상복귀 되었다.

그 순간, 실내의 불길이 끊임없이 퍼지면서, 바람이 불자 곧이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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