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2화 기적을 만들어 낸 여자
태수부에서 나가자, 월령안은 이반반의 말을 까맣게 잊었다.
우선 북요와 금나라 간의 동맹 사실 때문에 육장봉은 절대 이 시간에 관성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설령 그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녀는 육장봉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무슨 일을 할 수 없는지를 그 자신이 모를 수 있겠는가.
그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변경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을 위해서라는 말은?
강남에서 관성까지 쫓아온 것은 틀림없이 그녀를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 그녀는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이 관성에 머물며 돌아가지 않는 것은 절대 그녀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육장봉을 미인을 위해 사직을 돌보지 않는 바보로 치부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정말로 어리석었다면, 그는 주나라에서 처음으로 병권을 장악하고도 황제에게 의심과 경계를 받지 않는 대장군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중에는 육장봉과 황제의 어릴 적 친분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권세와 이익 앞에서, 어린 시절의 친분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다시 말해서, 황제에게는 사촌 형제도, 신세가 기구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사촌 형제도 적지 않았다.
육장봉 본인이 능력이 뛰어나 주나라에서 대체 불가한 대장군 내지 황제의 유력한 조력자가 되지 못했다면 그 역시 황제의 여러 사촌 형제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심지어…….
월령안은 말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장봉이 그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황제까지 노하게 하는 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황제에게 그의 '약점'을 보여 주려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물으면 안 되었다.
육장봉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렇게 물음을 바꿔야 할 것이다.
'육장봉이 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데는 얼마만큼의 진심과 이해타산이 섞여 있을까?'
쌩쌩 찬 바람이 불어왔다. 월령안은 흠칫 떨었다. 머리도 좀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옷깃을 여미고는 씁쓸하고 외로운 웃음을 떠올렸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사람은 생각을 적게 해야 좀 더 행복하다.
그녀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은,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큰아가씨."
하인이 앞으로 다가와 월령안을 부축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어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 버렸다. 그러고는 하인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월령안은 마차 안에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정말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모양이었다.
* * *
월령안은 돌아간 뒤, 관성의 무역지역 일 때문에 바삐 보냈다.
북요와 금나라가 관성 무역지역에서 접촉해 동맹을 맺으려 한다고 해서, 골머리를 앓거나 당황하고 긴장하지도 않았다.
곧 관성 무역지역이 개업하는 날이 왔다.
전날, 월령안은 상천에게 각국 상단을 예의 주시하라고 일깨워 주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한마디였다. 어느 자리에 있으면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조정의 사람이 있고, 월씨 상사는 주력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일만 잘하고 다른 나라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되었다.
월령안은 아침 일찍 단장한 다음, 차에 앉아 무역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황무지 한복판에 세워진 성곽이 눈에 띄었다. 마치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월령안이 무역지역을 계획했다. 하지만 금방 시작할 때를 제외하고, 그녀는 다시 오지 못했다.
며칠 전에 관성에 도착했지만 너무 바쁘고, 또한 무역지역이 관성 중심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설령 그녀가 와 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사막 위에 우뚝 솟은 성곽을 보자 월령안도 깜짝 놀랐다.
"큰아가씨, 놀라셨나 봐요?"
상천이 다가서더니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며칠 전에 온 태수께서 오셨는데 그분은 깜짝 놀라 펄쩍 뛰었어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으신지 저에게 몇 번이고 재확인했어요. 이게 관성 무역지역이 맞는가 하고요. 제가 여러 차례 반복해서 확인시켜 드려서야 그분은 눈앞의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셨어요."
"아주 잘했어."
그녀는 온조의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역지역은 그녀가 설계했다. 하지만 실제로 건설해서 이 같은 황무지에 성곽 하나가 '자라난' 것을 보자 그녀 역시 경이로움을 느꼈다.
무역지역은 산을 따라 세워졌다.
애당초 위치를 선정할 때 방어 문제를 고려해 천궁각 대가 공숙무는 관성의 국경지대를 한 바퀴 둘러보고 운선산 뒤쪽 단독으로 튀어나온 작은 산봉우리를 선택했다.
무역지역은 바로 작은 산 정상에 건설되었다. 뒤쪽은 운선산이고 앞쪽은 가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무역지역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은 마치 관성에 박힌 진주 같았다.
무역지역 외부가 경이로운 것만큼 내부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시커멓고 압박감이 가득한 성벽이 보였다.
성벽 위에는 갑옷을 입고 변방의 관문을 지키는 장병들이 서 있었다.
장병들은 긴 창을 들고 횃불같이 밝은 눈빛을 하고 있어 왠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좀도둑들도 쉽사리 딴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성문이 열리면 쌍두마차가 달릴 수 있는 청석 거리가 한눈에 안겨 왔다.
때마침 상천이 월령안에게 청석 거리를 소개했다.
"성안 모든 길은 운선산에서 캔 돌을 깔아 만든 것입니다. 모든 길을 쌍두마차가 다닐 수 있고, 간혹 무거운 물건을 싣고 달린다 해도 길이 망가질 염려는 없습니다."
성안의 길이 종횡으로 교차되어 매우 정연했다. 십자 교차로에는 또 각각 주나라, 북요, 금나라, 서하의 언어로 된 도로 표지가 적혀 있었다.
설령 처음으로 입성하는 사람들도 표지판에 따라 찾으려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성안에는 열여섯 개 대로가 있습니다. 같은 거리의 가게는 모두 똑같은 물건을 팔 겁니다. 그러면 상인들이 물건 찾기도 쉽고 가격 대비하기도 편리합니다. 왼쪽 이 거리는 전부 가죽과 털을 파는 가게들이고, 오른쪽은 비단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입니다. 거리마다 스무 개 이상의 가게가 있습니다. 구매하는 상인이 여러 개 가게를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하며 천천히 고를 수 있을 겁니다……."
거리 양쪽에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모두 삼 층짜리 작은 건물로, 큰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이 매우 넓어 가게에서 견본품, 작은 물건이나 귀중하고 쉽게 깨지는 물건을 간수하는 데 편리했다.
"가게에는 견본품만 전시하고, 모든 상품은 서성(西城)에서 들여옵니다. 서성 그쪽은 모두 창고로 각종 크기의 창고가 있습니다. 전문 일꾼이 지키고 있으며 상인들은 자기 물건이 얼마 되는가에 따라 크기가 다른 창고를 임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창고를 임대하는 사람은 우리가 운송, 보관을 책임지며, 사고가 나면 우리가 보상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도 특별히 큰 창고를 하나 더 지었습니다. 그 창고는 지키는 사람이 없고 약간의 돈만 내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건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장소만 제공하며 손실은 자체로 부담해야 합니다."
상천의 소개와 함께 일행은 얼마 안 되어 성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상천은 성 가운데 가장 큰 원형 건축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큰아가씨, 한복판은 거래중심입니다. 우리 상사 사람들이 이미 도착했습니다. 요 며칠 동안 날마다 수십 번씩 예행 연습하고 있습니다. 개업시간까지 한 시진이 남았습니다. 한 번 더 연습해 볼까요?"
"가 보자."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무역지역에 들어섰다.
무역지역의 거래 절차는 상천이 직접 제정한 것이었다.
월령안이 심사한 결과 거래 절차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지금은 구체적인 조작만 보면 되었다.
무역지역은 새로운 업무였다.
월씨 가문의 가게 주인과 심부름꾼들이 무역지역 거래 절차에 숙련되지 않아 각종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으며 외래 상인들은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업 첫날이라고 해도, 그들은 모든 것에 익숙해야 하고,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어야 했다.
관성 무역지역에서 모든 거래는 월씨 가문 표호로만 결산할 수 있었다!
물건을 사고 싶으면, 먼저 은전을 표호로 바꿔야 무역지역에서 거래할 수 있었다.
판매자가 화물을 판 뒤에 받는 것도 표호였다.
표호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월씨 가문 표장(票莊)에 가서 각자 수요에 따라 각국 전장(錢莊) 은표로 바꿀 수 있었다.
물론, 무거워도 괜찮다면 월씨 가문 표장에서 은과 금으로 바꿔도 되었다.
원래라면 전장에서 은표로 은전을 바꿀 때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은표 백 냥에 은전 아흔아홉 냥을 바꿀 수 있으면 후한 전장이었다.
하지만 월씨 가문 표장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월씨 가문 표장에서는 은표 백 냥에 은전 백 냥을 바꿔 주며 동전 한 푼도 더 받지 않았다.
월씨 가문 표장의 믿음성에 대해서?
표호를 가지고 환전이 안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할 것 없었다.
주나라에서 가장 큰 전장인 회통(匯通) 전장이 월씨 가문 표호를 배서(背書)했다. 회통 전장은 월씨 가문 표호를 가지고 주나라 경내 어느 전장이든지 은표나 은전으로 바꿀 수 있으며 회통 전장에서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약속했다.
월씨 가문 표호가 은표보다 더 쓰기 편했다. 게다가 보증까지 있으니 겁낼 게 뭐가 있는가.
이 밖에 월씨 가문 표호는 또 하나의 아주 좋은 용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이 부족하면 물건을 월씨 가문 표장에 저당 잡힐 수 있었다. 월씨 가문 표장은 화물의 칠 할 가격에 따라 먼저 표호를 인출해 주었다.
규정된 시간 내에 표호를 되돌려주거나 같은 금액의 은전을 갚는다면 월씨 가문 표장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상환기한이 지나면 약정된 이자에 따라 지불하면 되었다. 만약 상환 시간이 지나면 화물은 월씨 가문 표장이 소유하며 월씨 가문 표장에 처리할 권리가 있었다.
즉 상인은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었다. 팔 수 있건 없건 간에, 다른 물건을 살 돈이 있었다. 그러므로 물건을 가져와서 팔지 못해 도로 가져가면 어쩌지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월씨 가문 표장은 모든 측면을 다 염두에 두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상인들이 절대로 헛걸음하게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