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1화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영롱각, 혈진주."
"대장군께서 봉관을 만들어 달라고 저한테 부탁했어요. 비록 사이가 틀어졌지만 찾아온 돈 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 같은 소상인은 대장군과 같은 손님에게 미움을 살 수 없어요."
"하하!"
이반반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월령안과 대장군의 관계를 몰랐다면, 그는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목적을 드러낸 이상, 이반반도 더는 돌려 말하지 않고 아예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비장의 무기까지 보여 주었다.
"월 가주, 우리 돌려 말하지 맙시다. 폐하께서 변경에서 대장군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월 가주가 나서서 대장군께 가능한 한 빨리 변경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요, 약속할게요.
내년 월씨 가문의 차는 반드시 궁중 연회에 선보일 것이며 폐하의 탁상에도 오를 겁니다. 그리고 관성 무역지역 개업하는 날에, 제가 폐하를 대신해 직접 현장에 가서 폐하께서 얼마나 관성 무역지역을 중시하는지 보여 줄 겁니다. 어떤가요?"
월령안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오랫동안 궁리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전부 내놓았다.
그는 원래 두 가지 중에서 하나면 선택해 말하려 했으나, 월령안이 바보인 척하는 재간이 일품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두 가지 좋은 점을 모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만 해도 많은 좋은 점을 얻을 수 있고, 그하고 좋은 인연까지 맺을 수 있기에 그는 월령안이 틀림없이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믿어 마지않았다.
이반반은 말을 마치고 자신만만하게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반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월령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반반에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대장군과 연락이 닿지 않네요."
월령안은 거절했다.
이는 이반반이 내놓은 이익이 부족하거나 그녀가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이익은 챙길 수 있어도 챙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락이 안 된다고요? 진짜 연락이 안 되는 건가요, 아니면 연락하지 않으려는 건가요?"
거듭 거절당하자 이반반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탁 두드리며 일어섰다.
"월령안, 꼭 내 앞에서 바보인 척해야겠습니까?"
이반반의 움직임이 커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찻주전자가 '탕' 하고 땅에 떨어졌다.
찻주전자는 산산조각이 나고 뜨거운 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몇 방울은 월령안의 발에 떨어졌다.
월령안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물러섰다.
"이반반. 제가 바보인 척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저를 난감하게 하는 거예요."
발등이 살짝 따끔거렸다. 월령안은 예쁜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말투에도 불쾌함이 묻어났다.
"당신을 난감하게 한다고? 도대체 우리 둘 중 누가 누구를 난감하게 구는 건가요?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닌가요?"
이반반도 화가 났다.
그가 관성에 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무역지역을 위해 온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장봉을 변경에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관성에 온 지 사흘이나 되었지만 육장봉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어떻게 변경으로 소환한단 말인가.
유일하게 육장봉과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월령안이었다. 월령안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는 이미 최대의 성의를 보여 주었다. 월령안은 도대체 어쩌려는 것인가?
"대장군의 일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월령안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하나같이 만만한 사람을 골라 닦달했다. 그녀가 만만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육장봉을 어찌할 수 없으니 모두들 그녀를 찾아 괴롭히려 하다니. 그녀가 정말 그리 만만한 줄 안단 말인가.
이반반의 얼굴에 난처함이 스쳐 지나갔다. 말투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이러는 것도 당신을 위해서예요. 폐하께서는 변경에서 오랫동안 대장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장군께서는 월 가주를 위해 줄곧 변경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대장군은 폐하와 감정이 깊어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월 가주는요? 폐하께서 원래부터 당신에게 불만이 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폐하께서는 당신을 더 미워하실 겁니다."
사실상 황제는 월령안에게 불만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이미 변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소식을 받았다.
염 황숙이 조계안을 그토록 들볶은 것은 월령안을 대신해 화풀이해 준 것이었다.
주나라 전체에서 오직 염 황숙만이 황제를 강요해 조계안을 처벌할 수 있었다. 조계안이 벌을 받은 데 대해 황제는 염 황숙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뒤끝은 월령안에게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이반반, 그분은 대장군입니다. 주나라의 전신(戰神)이라고요. 그분이 제 말을 들을 것 같나요?"
이반반이 한 걸음 물러서자, 월령안은 두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온통 씁쓸함과 무기력함이었다.
"이반반은 정말로 대장군께서 저를 위해 관성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라면, 또 무슨 이유가 있나요?"
이반반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며 되물었다.
육장봉은 변경에서 강남까지, 다시 강남에서 관성까지 쫓아왔다. 만약 월령안을 위해서 변경에 돌아가는 것을 거절한 게 아니라면 그는 자기 손목을 걸고 내기할 수 있었다.
"이반반, 상단은 최고의 첩자예요."
월령안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신비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관성 무역지역이 열리면 각국의 상단들이 모두 올 거예요. 북요, 서하 그리고 금나라 모두 상단을 무역지역에 보내올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가요?"
제왕의 심복으로서 이반반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월령안이 한마디만 내뱉어도 그는 많은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에게 속임을 당할까 두려웠다.
월령안이 후궁에서 후궁 사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는 분명히 보았다.
힘을 빌려 적수를 무너뜨리고 분리와 통합을 거듭하면서 하나씩 격파했다.
월령안은 병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 이미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는 월령안을 상대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는 북요와 동맹을 맺고 싶어 해요. 그들은 이번에 무역지역 개업을 틈타 서로 만나서 맹약을 체결하려고 한다고 하네요."
그녀는 자기가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완안유는 저희 월씨 가문과 동맹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금나라 황궁에는 저희 월씨 가문 비밀 연락원이 있어요."
"정말인가요?"
이반반은 돌 탁자에 얹어 두었던 손을 흠칫 떨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받은 소식에 의하면 그래요."
"그럼 뭘 더 기다리나요? 당장 무역지역을 닫아야죠. 무역지역을 취소하고 절대 그들이 맹약을 맺을 수 없게 해야 해요."
이반반은 마치 강적을 만난 것처럼 급히 명령을 내렸다.
"미안하지만, 무역지역은 문을 닫지 않을 겁니다. 또한 예정대로 영업을 시작할 거예요."
월령안은 조금도 끌지 않고 깔끔하게 거절했다.
어떤 일들은 상의할 수 있다. 하지만 원칙에 관한 문제는 절대 상의할 수 없었다.
"무역지역을 닫고 개업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명령이에요. 당신은 거절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반반은 급한 나머지 말투가 사나웠다.
"죄송하지만, 무역지역은 제가 개인적으로 건설한 겁니다. 조정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기 전까지 무역지역의 모든 것은 제가 결정합니다."
월령안은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말했다.
"상인들은 신용을 중히 여깁니다. 관성 무역지역의 개업 날짜는 진작 공표되었고요.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떨어져 관성 무역지역을 불태워 버리지 않는 한, 칼 비가 내린다고 해도 예정대로 개업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북요와 금나라의 첩자가 무역지역에서 접선하게 내버려 두겠다는 말인가요? 월령안, 지금 나라를 배신하려는 건가?"
그는 나라를 배신하려는 거냐는 말에 월령안이 버텨 낼 수 없다고 믿었다.
월령안이 냉소하며 말했다.
"관성 무역지역이 없으면 북요와 금나라의 첩자가 만날 수 없나요? 두 나라가 동맹을 맺지 않나요?"
'이반반은 아이에게 겁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이반반이 말하기 전에 월령안은 또 말했다.
"북요와 금나라가 일찍부터 동맹을 맺고 싶어 했어요. 쌍방은 오래전에 여러 차례 만났고 이번에 접촉하는 것은 서로의 성의를 보여 주는 것뿐이에요.
제가 무역지역을 닫아, 그들이 관성 무역지역에서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 가서 만나지 않을 거 같나요? 양국 첩자들이 우리 눈앞에서 만나지 않고, 그들이 금나라 또는 북요, 더 나아가 서하까지 가서 만나는 게 우리에게 더 좋은가요?"
이반반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월령안에게 설득당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나요? 그들 동맹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반반은 약간 어색해서 물었다.
그가 월령안보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이미 소식을 접했고, 그는 방금 전에 소식을 접했다. 갑자기 이렇게 큰일을 알게 되었으므로 생각이 미비한 것은 정상적인 일이었다.
월령안은 화가 나서 웃었다.
"이반반, 어떤 위치에 있으면 그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대장군, 척 대인, 온 대인 그들이 있고, 게다가 당신도 무역지역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제가 그런 일을 어찌 결정할 수 있겠나요."
주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 북요와 금나라 간의 동맹을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그녀가 한다면, 그녀는 절대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는 꼭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좋은 사람이 될 생각도 없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너무나 어렵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좋은 사람이 더더욱 어렵다.
일단 그 위치에 올려놓으면 물론 영광도 많이 얻겠지만 그만큼 짊어질 책임도 무거워질 것이다.
일이 생기면 결국 맨 먼저 희생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는 정의롭고 사심 없이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영예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이반반은 거듭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순간 호기가 하늘을 찔렀다.
"당신 말이 맞네요. 내가 있는 한, 절대 북요와 금나라가 동맹을 맺지 못하게 할 겁니다."
월령안은 그 틈에 타 요청했다.
"북요와 금나라의 대표는 상단으로 가장하여 무역지역에 올 겁니다. 그들은 반드시 무역지역에 들어갈 거예요. 이반반께서 일 처리하시는 데 편하시도록 개업하는 날, 제가 이반반을 위해 자리를 남겨 둘게요. 이반반께서 조정과 폐하를 대표해 무역지역에서 진을 치고 계시면 어떨까요?"
"당신 말대로 합시다."
이반반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내가 무역지역에 가서 진을 치고 있을 거예요."
"이 자리에서, 이반반께서 좋은 업적을 거두실 것을 미리 축하합니다."
월령안은 이반반에게 읍했다.
"만약 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돌아가서 준비할게요."
"가세요."
사태가 엄중하기에 이반반은 월령안을 더 잡지 않고 어서 가서 일을 보라고 했다.
월령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월령안이 떠난 뒤 이반반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욕을 퍼부었다.
"간상배!"
월령안은 결국 그에게 아무것도 승낙하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월령안의 무역지역 명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찾아가서 진을 치겠다고 대답했다.
당당한 황궁 대태감이 월령안에게 코가 꿰어 끌려다닌 것은 물론이고, 월령안에게 당하고서도 그녀를 도와 돈을 센 셈이 되었다.
이렇게 그를 속이다니. 월령안은 양심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