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화 이반반께서는 모르셨나요?
게다가 북요와 주나라는 사이가 나빴다.
월령안은 척연과 온조의 수하들이 자태가 거만해 무역지역에 온 상인들을 아랫사람 취급하며 마구 질책할까 두려웠다.
관아의 사람들과 상대하면 상인들은 찍소리도 못 하고 그들이 욕설을 퍼붓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과 장사 거래를 하지 않거나 이곳의 물건을 사지 않고 혹은 여럿이 손잡고 가격을 낮추어 현지의 경제가 활발해지지 못하면, 결국 고통을 받게 될 사람은 현지의 백성들이었다.
관성 무역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실패하면, 척연과 온조는 일정하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배경이 있어 나중에 다른 곳으로 가서 사오 년간 머물다가 일이 잊히면 다시 기용될 수 있었다.
그녀는 돈을 많이 밑지겠지만 월씨 가문의 경제 기반이 두텁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가 다시 시작하면 되었다.
하지만 관성 현지의 백성들은 더 이상 부유해질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 척연과 온조는 현명한 관리이고 백성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두말없이 승낙했다.
척연은 자발적으로 말했다.
"개업할 때,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무역지역 밖에서 몇 번 더 순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수하들이 성깔이 사납게 손찌검을 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볼게요."
월령안은 웃으며 일어나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면 척 대인께 폐를 끼치겠습니다."
일을 다 말하고 나서 월령안은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관성 무역지역이 개업하면서 각국 상인들이 관성으로 몰려들었다.
정탐꾼, 첩자들도 뒤섞여서 몰려올 것이다.
척연과 온조도 바쁘다 보니 월령안을 한번 만나 보는 것도 힘든 가운데 짬을 낸 것이었다.
두 사람은 월령안을 잡지 않고 집사더러 월령안을 배웅하게 했다.
반쯤 걸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월령안을 불러 세웠다.
"월 낭자, 잠깐만요. 저희 집 대인께서 청하십니다."
"대인?"
월령안은 고개를 갸웃하고 상대방을 흘끔 바라보았다.
여기는 태수부(太守府)가 아닌가?
태수부 안에서 척연과 온조 외에 또 누가 대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변경에서 오신 이 대태감입니다."
찾아온 이가 예의를 차려서 대답했다.
"아, 이반반이었군요."
월령안은 문득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럼 길을 안내해 주세요."
이반반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자에서 월령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자 밖에는 시위 네 명이 지키고 서서 월령안과 함께 온 온씨 저택 집사를 막았다.
월령안은 온씨 저택의 집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안심시키고는 정자로 걸어 들어갔다.
"이반반!"
"월 낭자, 예의를 차리시는군요."
이반반은 손을 드는 척하며 월령안의 예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말투에는 불만이 섞여 있었다.
"낭자께서는 제가 왜 찾는지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대강 짐작할 수야 있겠지만 그녀가 왜 먼저 알아맞히겠는가.
영리한 것을 뽐내려 해도, 이렇게 뽐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반반는 입가를 끌어당겨 거짓 미소를 지었다.
"월 가주께서는 참 귀인이라 사사로운 것은 기억하지 않으시나 보군요. 그럼 제가 일깨워 드리죠. 영롱각, 세상에 드문 혈진주."
"왜요? 이반반께서는 제 진주가 마음에 드시나요?"
월령안 일부러 멍청한 척했다.
"그건 안 돼요. 제가 봉관을 만들기로 했기에 이반반께는 드릴 수 없군요."
이반반이 혈진주를 조사해 낼 수 있다면 물론 육장봉까지 조사해 냈을 것이다. 그녀가 바친다 해도 이반반은 감히 받지 못할 것이다.
"월 가주께서는 왜 바보인 척하시는 겁니까. 제가 왜 관성에 왔는지, 월 가주는 아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월 가주께서 관성에 수많은 돈과 인맥을 쏟아부었으니, 생각건대 관성 무역지역의 결실을 남이 채 가는 것이 싫을 것이고, 마지막 고비만 남겨 둔 일에 이변이 생기기를 바라지는 않으실 테죠."
이반반은 돌의자에 걸터앉으며, 월령안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월 가주, 우리 좀 잘 이야기해 봅시다. 어떤가요?"
이것은 위협이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지만, 그녀의 일을 망칠 수는 있었다.
장사해서 돈을 벌기는 하지만, 정말 힘들 때도 많았다.
장사하는 사람, 특히 월령안과 같은 대상인은 매 거래에서 연관되는 사람과 일이 아주 많았다. 상인으로서 이것저것 빈틈없이 돌봐야 하고 여러 방면의 사람들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언제 누군가에 밉보여, 배후에서 거래를 망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사를 성사시키기는 매우 어렵지만, 망치기는 무척이나 쉬웠다.
이를테면 이반반과 같은 경우였다. 그는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만약 그에게 밉보여 그가 거래를 그르치려고 들면 골치 머리가 아플 것이다.
이반반이 이 정도 말했으니 월령안인들 어찌하겠는가.
월령안은 의미심장하게 이반반을 바라보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반반, 이야기해 보세요."
"급하지 않습니다."
이반반는 빙그레 웃으며 빨간 진흙으로 빗어진 작은 화로에 올려놓은 보라색 찻주전자를 들어 월령안에게 따라 주었다.
"월 가주, 이 차 맛이 어떤지 한번 맛보시지요."
"칠 년 묵은 백차. 좋은 차군요."
월령안은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백차 삼 년, 차 칠 년, 약 십 년짜리는 보배라고 하지만,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후미진 곳에서는 이 정도 차밖에 없네요. 월 가주께서 좋아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반면 이반반은 음미하며 마셨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을 겹쳐 가지런히 내려두고 조용히 이반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반반이 먼저 수를 쓰기를 기다렸다.
이반반은 연이어 차를 여러 잔 마셨다. 물배를 가득 채웠는데도 월령안이 입을 열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부유한 늙은이를 업신여길지언정 가난한 젊은이를 업신여겨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누군들 알았으랴. 당시 도처에 도움을 부탁하고, 곳곳에서 난관에 봉착했던, 그의 수하 어린 내관마저도 침을 뱉을 수 있었던 어린 소녀가 이렇게 변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금 그녀는 황궁 대태감이 으름장을 놓아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그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
이반반은 참지 못하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곧 후회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한숨만 쉬면 복도 다 날아갈 것이다
어쩐지 그가 관성으로 온 다음, 일들이 순조롭지 않더라니. 틀림없이 그가 한숨을 너무 많이 쉰 탓일 것이다.
이반반은 고개를 돌리고 몰래 몇 번이고 침을 뱉고 나서야 몸을 돌리고 상투적인 미소를 지었다.
"월 가주는 녹차를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명년 초봄이면 해차가 곧 나올 텐데요. 제가 그 해차를 맛볼 행운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월령안의 수중에는 다원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가장 좋은 다원 몇 곳에서 생산하는 차는 모두 대외적으로 팔지 않았다.
몇몇 월령안과 가까운 사람들이 좋은 차를 선물 받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은 볼 수만 있었다.
전하건대 월령안은 차를 쏟아 던질지언정 좋은 차를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이 높아 실거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변경의 고관과 귀인들은 모두 월령안에게서 받은 차를 자랑으로 여겼다. 차를 받은 사람은 특별히 차 연회를 열어 친구들과 함께 맛보기도 했다.
물론, 주요하게는 자신이 월씨 가문의 해차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이반반께서 제 체면을 봐서 한번 맛봐 주신다면 저에게는 영광이죠."
월령안은 이반반의 목적이 결코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입을 연 이상, 차는 틀림없이 선물해야 했다.
이 차는 남에게는 귀할지 모르나, 이반반에게는 그리 귀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신변에서 잘나가는 심복으로 어찌 그 정도 물건이 없겠는가.
이반반은 월령안이 호응하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신비롭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늘 백차를 마십니다. 하지만 꼭 백차여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월령안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월령안은 겹쳐서 잡고 있던 손이 잠깐 굳어졌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폐하께서는 천자이십니다. 천하의 모든 차를 마음대로 고르셔도 되죠."
이반반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하기만 하면 내년, 황제가 마실 진상품 차는 틀림없이 월씨 가문의 차일 것이다.
황제의 명성이 붙여지면, 월씨 가문의 차, 특히 황제가 마시는 차는 더욱 귀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남에게 선물해도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이반반 사이는, 비록 적지 않은 교제를 했지만, 정말로 친하지는 않았다.
이반반이 그녀에게 이처럼 큰 이익을 가져다주면 그 바라는 바가 더욱 클 것이다. 이반반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그녀는 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큰 미끼를 던졌는데도 월령안은 받아 주지 않았다. 이반반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그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월 가주께서는 아직도 이렇게 신중하군요. 감히 가주를 속이려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상업계의 동업자들이 체면을 봐주는 정도예요."
그녀는 얼마 전에 강남에서 하마터면 강남의 상인들에게 당해 본전마저 탈탈 털릴 뻔했다.
이반반은 아직도 상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상인들은 이익만 추구하므로 이익이 충분하면, 그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강남의 소금 상인과 조방에 매수된 관리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소금 상인과 조방의 사람들이 조정의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위법인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조방의 사람들이 살수를 사 조계안을 죽이면 구족을 멸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일들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절대로 상인의 담력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 또한 뒷배가 있다고 해서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월령안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신중함과 본분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이익이 클수록 더욱 조심하고 특히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했다.
세상에서 공짜는 없다.
월령안은 담담하게 웃었다. 마치 정말 이반반과 한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반반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다. 그가 아무리 확실히 밝히든, 암시하든 월령안은 계속해 모르는 척하며 받아 주지 않았다.
이반반은 울화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월 가주께서는 대장군과 연락이 닿고 있으시죠?"
월령안은 일부러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저와 대장군은 사이가 틀어졌어요. 이반반께서는 모르셨나요?"
역시 육장봉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반반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