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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29)화 (929/1,004)

929화 당신을 위해 북요를 멸하겠소

육장봉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향혈해 수중에 있던 양식은 삼십만 대군이 삼 년 남짓 먹을 수 있는 양이오. 천목신교가 몇 해 동안 모은 돈은 대군을 오 년간 지탱하기에 충분하오. 이번에 내가 북요를 멸시킬 것이오. 당신을 위해서."

마지막 말을 육장봉은 강조해서 또박또박 내뱉었다.

월령안을 위해 북요를 멸하겠다는 말은 그녀를 달래는 감언이설이 아니라 그의 맹세였다.

그전까지 그는 북요를 멸하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북요를 확실하게 이겨 그의 어머니를 주나라로 맞이해 오고 북요인들이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북요를 멸하려고 했다.

월령안을 위해 신비로운 조직 '시월'을 비호해 준 북요를 멸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목숨을 잃게 한 북요를 멸하려 했다.

"염 황숙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살해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놓아주지 않겠다고 말했잖소. 마찬가지로 나도 당신을 슬프게 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육장봉은 월령안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 대부분이 어둠에 묻혀 있어 신비롭고 깊이가 있어 보였다.

그는 월령안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빛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일찍, 나는 충성심을 폐하께 드리고, 목숨을 전쟁터에 주었으며, 의리를 형제들에게 주고, 영광을 육씨 가문에 주었소. 앞으로 내 충성심, 목숨, 의리, 영광 모두 오직 당신에게만 속할 것이오. 북요를 멸한 다음, 당신 마음대로 나를 처리하시오."

월령안은 멍하니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입은 딱 벌려 동그라미 모양이 되었으며 얼이 나간 모습이었다.

'육장봉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나? 북요를 멸하다니.'

한 나라를 멸하는 전쟁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었다. 과거의 어떤 전쟁과도 달랐다.

육장봉이 북요를 멸할 전쟁을 벌이면, 북요는 반드시 전국의 힘을 모아 대항해 나설 것이다.

육장봉 이전에, 주나라는 북요를 이길 수도 없었다.

지금 북요를 멸한다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월령안은 너무나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녀가 입을 열 필요도 없이 육장봉이 말했다.

"나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소. 나를 믿어 주시오. 나는 할 수 있소."

그때 당시, 그는 대전을 위한 준비했었지만 월령안의 개입으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에 마침 쓰면 되었다.

게다가 향혈해의 양식까지 더해져, 그는 북요를 멸할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소. 당신이 할 일은 북요가 망한 다음, 당신을 놓아 주는 것뿐이오."

월령안이 스스로를 놓아 주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번 전쟁은 강산도, 백성도, 군왕도, 천하도 위하지 않고, 오직 미인, 오직 월령안을 위해 진행할 것이다.

"당신…… 미쳤어요."

월령안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말로 이 순간의 육장봉을 형용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미쳤다. 무섭게 미쳤다.

그는 어떻게 '오늘 밤 달빛이 괜찮군'이라고 말하는 가벼운 말투로 북요를 멸하겠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북요였다.

육장봉 이전에 번마다 주나라를 패하게 하고, 막아낼 힘이 없어 주나라 사람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얼굴빛이 변했던 북요였다.

그러나 육장봉은 지금 그녀에게 북요를 멸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그녀를 위하여 말이다.

'이거 미친 거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지금처럼 정신이 또렷한 적이 없었소."

또한 지금처럼 이렇게 목표가 확실했던 적도 없었다.

설령 월령안이 스스로를 놓아 주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북요를 멸하려 했다. 하물며…….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화근이 되지는 않을 것이오. 북요를 멸하는 것은 주나라의 이익에도 부합하오."

육장봉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는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의 지금 표정은 너무나 생동하고 재미있었다.

그녀의 지금 표정은 얼굴에 '내가 바로 화근'이라고 써 붙이기만 했다.

"북요를 멸하는 것은 주나라의 이익에도, 국책에도 걸맞지 않아요.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국민을 혹사시키고 물자를 낭비하며, 호전적으로 무력을 휘두르고, 무력을 남용하며…… 됐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월령안은 너무 빨리, 급하게 말하다가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육장봉, 당신은 정말 모르나요. 당신의 이런 생각을 문관들이 알게 되면, 그들은 당신이 침에 묻혀 죽을 정도로 욕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질책하게 욕할 것이며 전쟁을 진행할 수 없게 욕할 것이에요."

육장봉의 이런 생각은 주나라 관리들이 신봉하는 예의인지신(禮義仁智信)과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육장봉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그 문관들에게 있어서, 북요를 대패하고, 북요를 주나라의 부속국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북요를 멸한다?

그들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육장봉이 이렇게 하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나라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다른 나라를 멸하는 전쟁은 백성을 고생시키고 재물을 낭비할 것이므로 대량의 청장년들이 전쟁터에서 사망하게 되어 주나라의 경작과 세수(稅收)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는 주나라의 문관들이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보건대, 북요를 멸해서 가져다주는 이익은 나쁜 점보다 훨씬 적었다.

"그들이 모르게 하면 되오. 북요를 멸하고 나면, 그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받아들여야만 하오."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계안은 못하는 게 없는 암황이잖소. 암황으로서 소식 몇 개를 깔아 두고 전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오."

그는 여태껏 그 문관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정말 그들을 의식한다면 그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조왕 전하께서는 확실히 좀 한가한 거 같더군요."

월령안이 냉소 지으며 말했다.

"그에게 일거리를 찾아 주어야 해요. 괜히 날마다 나만 지켜보지 말게 말이에요."

육장봉은 월령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강남에서 있은 일은 내가 다 알고 있소. 걱정하지 마시오…… 뒤처리를 아주 깔끔하게 해두었으니 조계안이 증거를 찾지 못할 것이오."

월령안이 어떻게 했는지, 그조차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수단은…… 정말이지 황제와 조계안이 월령안을 도적처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가볍게 탄식했다.

"내가 소홀했던 탓이에요. 강남의 관료 사회가 그렇게 난장판이 되어 있는데 조계안이 저를 지켜볼 겨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나 조계안이 그녀를 물고 늘어지는 끈질김으로 볼 때, 그녀가 언제 손쓰던지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조계안은 앞으로 그렇게 한가할 겨를이 없을 것이오."

육장봉은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 눈에는 위험한 빛이 반짝였다.

"폐하께서는 많은 이들 앞에서 조왕을 종인부에 감금하고 뉘우치라고 벌주었소. 신하인 우리가 종인부에 찾아가 조왕 전하가 잘 뉘우치고 있는지 찾아가 봐 주어야 하지 않겠소?"

월령안은 기쁜 표정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뻔뻔스럽기로 하면 육장봉이 가장 뻔뻔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면도 그녀는 좋았다.

* * *

육장봉은 북요를 멸할 계획에 대해 가볍게 말했던 것을 월령안은 한동안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 침대 머리맡에 놓인 비단 주머니를 보지 못했다면,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 마치 구름처럼 흩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비단 주머니에 든,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붉은 진주는 그녀에게 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것이 진짜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육장봉은 정말 대대적으로 토벌하고 수를 써서 북요를 멸할 생각이었다.

"정말 미치광이야."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입으로는 싫어하는 듯했지만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입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 예쁜 호선을 그렸다.

육장봉의 이 계획은 미친 듯했지만 그녀는 기뻤다.

그녀는 그때 전심전력으로 심혈을 기울여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정의 늙은 여우들을 상대했던 것은 모두 육장봉이 뒷근심 없이 모든 정력을 북요와 싸움에 쏟아부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육장봉이 북요를 멸하려 한다. 그녀가 어찌 지지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비록 육장봉은 이번에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친형제가, 싸움터에 나가려면 부자간이 좋다고 했다.

남이 있는 것은 그녀의 육 대장군도 있어야 하고, 남이 없는 것도 그녀의 육 대장군은 있어야 했다.

게다가 조력자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이길 확률도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녀가 어찌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육장봉 혼자서 싸움에 응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반드시 돈을 많이 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수횡천을 설득해 천목신교와 협력하게 하고, 그더러 육장봉을 도와 천목신교를 관리하고 후방을 지키게 할 것이다.

월령안은 간단하게 단장한 다음, 탁자 위에 놓인 비단 주머니를 보고 잠깐 망설이다가 하인에게 진주를 변경에 있는 영롱각(玲瓏閣)으로 보내라고 분부했다.

"봉관을 만들라고 해라. 모자라는 재료는 내 동의를 거칠 필요 없이 직접 가져가면 된다. 그리고 모든 비용은 내 사적 장부에서 지불해라."

육장봉은 이 진주들로 봉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면 만들면 되었다.

그 봉관을 쓸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하늘에 뜻에 달린 것이었다.

"네, 큰아가씨."

하인은 조심조심 진주를 받쳐 들고 물러갔다.

월령안은 화장대 앞에서 잠깐 넋을 잃고 있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관성 무역지역의 개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언제 감상에 젖어 있을 새가 있는가.

그녀는 곧 이 일을 잊어버리고, 긴장하고 바쁜 업무에 몰두했다.

그 사이, 수비 척연과 태수 온조는 사람을 보내 무역지역의 진척에 대해 물으면서 도움이 필요한지도 물어보았다.

월령안도 사양하지 않았다. 직접 찾아와서 두 대인더러 관병을 파견해 무역지역 밖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병을 제외하고도, 월령안은 또 온조에게 약간의 포졸을 파견해 무역지역 내에서 상인들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상인들에게 무역지역을 소개하고 상인들을 이끌고 거래하는 것 같은 일들은 월씨 가문의 심부름꾼과 관리인들도 할 줄 알았다. 온조가 보내온 사람들도 그냥 잔심부름을 하면 되었다.

혹시라도 척연과 온조가 군인 나리들을 보내올까 봐, 월령안은 두 사람에게 성격이 좋은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특별히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사흘 전에 보내 일을 좀 배우게 하라고 했다.

물론 이런 도와주는 사람들은 무상으로 돕는 게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월씨 가문에서 보수의 두 배를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그들이 성질을 죽여 욕지거리를 하거나 상인에게 손찌검하지 말기를 바랐다.

"주나라의 장병들이 북요, 금나라, 서하 상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장병들이 냉담해도 되고 지어는 안하무인격으로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될수록 무역지역 내의 상인들에게 욕지거리를 하지 말고, 사람을 때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단 손찌검이 나면 거래를 할 수가 없어요.

뿐만 아니라, 무역지역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예요. 일단 평판이 나빠 다른 나라의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않으면 장사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따라서 돈도 못 벌죠."

상인은 지위가 낮았다. 설령 돈방석에 앉은 대상인이라 하더라도 병정들을 만나면 웃는 얼굴을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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