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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24)화 (924/1,004)

924화 잘못을 인정해야 하잖아요

조계안은 궁전에 돌아와 미처 겉옷을 벗지도 못한 채, 내관이 달려와서 보고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황제가 그더러 당장 염 황숙의 궁전으로 달려오라고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

조계안은 본능적으로 질문했다.

"전하께서 떠난 지 얼마 안 돼, 염 황숙께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손 신의가 진단한 바에 의하면 황숙께서는 노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폐를 상하셨다고 합니다. 길어도 반년 정도의 시간만 남으셨다고 합니다."

어린 내관은 황제의 사람이었다. 조계안이 자세히 묻기도 전에 낱낱이 털어놓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조계안은 거의 얼이 나갈 정도였다.

"내가 떠난 뒤에, 황숙께서 노기 때문에 의식을 잃었고 그래서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황숙이 혼절한 게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는 가서 죄를 청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서둘러 달려갔다. 황제는 그가 입도 뻥긋하기 전에 무릎을 꿇으라고 명했다.

"황형……."

조계안이 변명하려고 한마디 부르자마자 황제가 말을 끊어 버렸다.

"황숙께서 쓰러진 게 너와 상관없다는 말은 하지 마라. 짐이 낮에 황숙과 함께 식사까지 했거든. 낮에는 멀쩡하셨어. 그리고 저녁에도 너를 제외하고 만난 사람이 없어."

조계안은 억울해서 말했다.

"황형, 저는 정말 황숙을 화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말대로라면, 황숙께서 스스로 화가 나서 기절했다는 것이냐?"

황제조차 조계안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더욱 믿지 않았다. 모두 질타하는 눈초리로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황숙을 반주검이 되도록 화나게 하고서도 인정하지 않다니. 정말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계안은 갑갑하기만 했다.

"황형,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형께서 믿지 못하겠으면 황숙께서 깨어나시면 물어보세요."

황제는 한스러워하며 말했다.

"너 지금 폐까지 끼치려고……."

서 선생이 바로 그때 나왔다.

"폐하, 황숙께서 깨셨습니다. 황숙께서는 소인더러 폐하께 알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황숙께서 노기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은 조왕 전하와는 무관하다고 했습니다. 조왕 전하께서는 황숙과 한담만 했을 뿐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본인이 옹졸하고 도량이 넓지 못해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노기가 일어서 의식을 잃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절대 조왕 전하를 탓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정말로 조왕 전하와 전혀 상관없습니다."

조계안은 서 선생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서 선생이 나와서 자신을 위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형도 들으셨죠. 황숙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화나게 한 게 아니라고. 황숙 스스로……."

"입 다물어!"

황제는 조계안을 노려봤다.

"황숙께서 너를 위해 사정하는 건, 그분이 아량이 있어서야. 너 정말로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한테 왜 이렇게 바보 같은 동생이 있을까? 황숙이 어떤 분이신데?'

염 황숙은 황제 세 명을 모시면서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지나온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람이 일시에 꽁한 생각에 스스로 의식을 잃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서 선생의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 것인가. 염 황숙은 조계안을 만나본 다음, 옹졸하고 도량이 넓지 못해 스스로 화나서 쓰러졌다고 했다.

"궁전 밖에 나가 무릎을 꿇고 있어라. 황숙께서 용서해 줄 때까지 일어나지 마. 만약 황숙께서 용서해 주지 않으시면 죽을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황제는 조계안을 가리키며 서 선생을 곁눈질해 보았다. 이 말은 서 선생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조계안이 염 황숙의 화를 돋워 쓰러지게 하고 염 황숙의 수명을 단축시킨 데에 황제가 화가 난 것도 분명했다. 화난 나머지 조계안을 실컷 두들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조계안이 얼굴이 훼손되고 중상을 입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황제는 조계안에게 벌을 주기 싫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 선생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염 황숙을 핍박해 조계안에게 가벼운 벌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계안이 무릎을 꿇기도 전에 서 선생이 막았다.

"폐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황숙께서는 본인이 조왕의 삼촌일 뿐만 아니라 조왕의 스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조왕의 잘못이 아니고, 본인의 잘못인데 폐하께서 기어코 벌하시려면 황숙께 벌을 내리시라고 했습니다."

하루라도 스승으로 섬기면, 평생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또한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했다.

황제는 서 선생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들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남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말이 밖으로 전해지면 조계안의 죄는 염 황숙을 화나게 해서 쓰러뜨린 것만큼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는 스승을 업신여긴 죄까지 더 짊어지게 될 것이다.

황제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염 황숙이 지금 그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기어코 조계안에게 중벌을 내리게 하려는 듯했다.

황제는 창백한 낯빛으로 거만한 표정을 짓고 조계안을 곁눈질하고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굴복하려 하지 않다니.'

황제는 조계안에게 어서 잘못을 인정하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조계안은 하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얼굴을 홱 돌렸다. 더할 나위 없이 거만한 태도였다.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이 바보, 미련한 놈!'

황제는 마음속 노기를 억누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숙께서 깨셨으니, 짐은 먼저 황숙부터 만나 보겠다."

서 선생은 막지 않고 황제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한 걸음 비켜섰다. 황제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 다음, 서 선생은 돌아서서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조왕 전하, 소인은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황숙은 역시 황숙답군요. 이번에 계안이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촛불이 비추는 가운데, 조계안의 겉에 드러난 반쪽 얼굴은 음침하고 무서웠으며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번 수를 제가 받죠."

서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황숙, 기다려 주십시오……."

조계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전, 전하……."

그를 뒤따르던 어린 내관은 무서워서 흠칫 떨며 감히 가까이하지 못했다.

"꺼져!"

조계안은 옷소매를 떨치더니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그러고는 홀로 궁전 밖에 걸어 나가 무릎을 꿇었다.

'까짓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이 조계안이 받아들여야지.'

조계안이 무릎을 꿇은 것은 곧 그가 염 황숙을 화나게 해서 기절시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그가 무릎을 꿇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염 황숙을 화나게 해 쓰러뜨렸다는 죄명을 조계안은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그나마 책임감이라도 있어 보일 것이다.

염 황숙은 금방 깨어나 기운이 없었다. 황제는 방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일각도 안 되어 나왔다.

조계안이 궁전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염 황숙은 깨어나자마자 조계안을 위해 해명했다. 사실은 조계안과 무관하다고 했다.

그 자신이 십일 년 전, 북요에서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돌아가서 조계안과 육장봉을 도우라고 명했다가 결국 두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 떠올라, 일시에 마음이 불안해지며 울화가 올라 의심을 잃었던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조계안에게 쌤통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는 황숙이 별일 없이 왜 월령안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조계안이 입을 함부로 놀려 월령안이 그때 당시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에 염 황숙, 조계안, 육장봉이 모두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황제는 돌아가는 길에 궁전 밖에 무릎을 꿇고 있는 조계안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재난은 피할 수 있지만, 자기가 만든 재난은 피할 수가 없다.

"황형, 사람을 시켜 궁궐 밖으로 소식을 전하세요. 염 황숙께서 제가 강남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수사해 황성사의 명성을 더럽혔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 쓰러졌다고 말해 주세요."

조계안은 손을 내밀어 가려는 황제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너……."

이것은 먼저 손을 써서 대신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비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인가.

당당한 조왕이 강남에서 일 처리가 신중하지 못해 염 황숙에게 중벌을 받았다. 염 황숙이 이미 처벌했는데, 조정 대신들이 한사코 물고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염 황숙이 일을 불공정하게 처리했다고 탓하는 게 되었다.

단 한 수로 조정 대신과 황제 사이의 모순이 조정 대신과 염 황숙 간의 모순으로 바뀌었다.

조계안의 이 수는 무척 악랄했다.

물론 유용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황제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황형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달빛이 비추는 가운데, 조계안은 반쪽 얼굴을 어둠 속에 숨기고, 반쪽 얼굴을 불빛 아래 드러내었다. 눈꼬리를 위로 치켜뜬 모습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흘렀다.

"아니다. 참 좋아."

황제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다만 조계안이 고생을 좀 해야 했다. 그는 상처를 입은 채 밤새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나도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조계안은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아마 황숙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염 황숙은 그에게 자신을 화나게 해 쓰러뜨렸다는 커다란 죄명을 들씌웠다. 생각건대 염 황숙은 말 못 할 손해를 입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는 다만 이 일을 빌려 강남에서 저지른 황성사의 잘못을 무마하려는 것뿐이었다.

염 황숙은 그의 숙부일 뿐만 아니라 스승이기도 했다.

제자가 이처럼 청출어람으로 뛰어났으나 스승으로서 염 황숙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다.

조계안이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염 황숙은 빠르고 맹렬하게 반격했다.

염 황숙은 피를 토하고 또다시 기절했다.

황제는 할 말이 없었다. 염 황숙의 신체는 너무나 사람을 속상하게 했다. 어의가 염 황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진단하지 않았다면, 그는 황숙이 조계안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자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계안, 그냥 무릎을 꿇을 것이냐?"

조계안이 한 번 오자 염 황숙이 화가 나서 기절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벌을 받자, 염 황숙은 그냥 피를 토했다.

아무리 봐도, 염 황숙이 조계안을 무릎 꿇린 것 같지가 않았다.

조계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서 반짝이던 투지도 한풀 꺾였다.

"꿇어야죠. 어쨌든 잘못을 인정해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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