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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22)화 (922/1,004)

922화 신출귀몰

월령안은 역참으로 돌아가 즉시 행장을 갖춰 출발하라고 명했다.

함께 따라온 호위들은 월령안의 낯빛이 흐린 것을 보고는 누구도 감히 아침 식사를 하자는 말을 못 했다. 그들은 역참에서 건빵을 얼마간 사서 챙기고 바로 말에 올라탔다.

일행은 관성으로 나는 듯이 달려갔다.

끊임없이 두 시진을 달려 수원(水源)을 만나자 일행은 내려서 쉬면서 식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잡아서 말끔하게 씻기까지 한 사냥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그들 앞에 떨어졌다.

동행한 호위들은 깜짝 놀라, 곧바로 칼을 뽑아 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곧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온 얼굴을 나무껍질로 감싸고 두 눈만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옷차림과 몸매는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 특히 온몸으로 내뿜는 차갑고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인상 깊었다.

"큰아가씨, 육 대장군입니다."

아침에 육장봉을 봤던 호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즉시 나무껍질 가면을 가리켰다. 마치 말없이 그녀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어이가 없었다.

'참 짜증나.'

월령안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갔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그녀가 움직이자 육장봉은 슬쩍 솟구치더니 수림 속으로 몸을 숨기고 사라져 버렸다.

월령안은 잠깐 멍해졌다.

'더 짜증난다고.'

그러나 월령안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왔다.

이미 가 버렸는데 그녀인들 어쩌겠는가?

"큰아가씨, 이것들은…… 어떡하죠?"

호위는 땅바닥에 놓인 말끔하게 다듬은 사냥감을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지금 월령안과 육장봉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육장봉이 겁쟁이처럼 구석에 숨어서 감히 월령안을 만나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살갑게 그들을 위해 사냥감을 준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먹고 싶었다.

사냥감을 가져다준 사람은 주나라의 초품 대장군이자 주나라의 전신(戰神)으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저기 구름 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통한 신분 상승은커녕,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나라의 전신이자 신선과도 같은 인물이 직접 그들을 위해 사냥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마 황제도 이런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꿈에서조차도 생각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아마 화본을 쓰는 사람들도 아무리 담대해도 감히 이렇게 쓰지는 못할 것이다.

"너희들끼리 먹거라!"

그녀는 육장봉에게 화났다. 하지만 사냥감이 잘못한 것은 아니므로, 그녀는 음식을 가지고 실랑이질하고 싶지 않았다.

"네, 큰아가씨."

호위들은 사냥할 필요도 없이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또 주나라의 전신이 직접 준비해 준 것이기도 했다.

호위들은 흥분과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불쾌해하기에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한쪽에 숨어서 조용히 먹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고 생기가 돌았다. 모르는 이가 보면 그들이 무슨 대단히 맛있는 요리를 먹는 줄 알 것이다.

육장봉은 적지 않은 동물을 사냥했다. 이는 분명 호위들의 몫도 준비한 것으로 월령안의 호위들에게마저 비위를 맞추려는 모양이었다.

육일 그들이 봤으면 어찌 같은 사람인데 이리 명이 다르냐고 한탄했을 것이다.

그들은 육장봉을 따라 수년간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육장봉이 직접 사냥하고 직접 손질한 사냥감을 먹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월령안의 호위들은 그녀의 체면 하나로 육장봉이 직접 손질까지 한 사냥감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시샘이 나 죽을 지경일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월령안 일행은 조금 쉬고 다시 출발했다.

밤에 일행은 묵을 곳을 놓쳐 수림에서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수림에 들어서는 순간, 앞에는 이미 지펴 놓은 불더미가 있었다. 그리고 불더미 위에 얹어 굽고 있는 고기도 보였다.

물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육장봉도 눈에 띄었다.

"큰아가씨, 이건……."

점심때 이미 한 끼를 단단히 먹어 두었기에 호위들은 육장봉이 준비해 둔 저녁거리를 보고 얼마쯤은 자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점심때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빛 속의 갈망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마음속에서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고삐를 조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장봉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직접 실제 행동으로 그녀가 만나려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알려 주었다.

월령안은 화난 복어처럼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호위는 그 모습을 보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큰아가씨, 우리가 사전에 조사했습니다. 이 수림에만 수원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치면 사방 십 리에 다른 수원은 없습니다."

대장군이 잡아다 준 한 끼를 이미 먹었지만, 대장군이 직접 준비한 사냥감은 아무리 많아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쉬어 가자."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화낼 수 있지만, 호위들도 고려해야 했다.

수원을 멀리 떠나 사전에 탐사도 안 한 곳에서 쉰다는 것은 호위의 부담만 더해 줄 뿐이었다.

그녀는 월씨 가문의 가주였다. 그녀는 부모의 응석받이로 자란 딸이 아니기에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네, 큰아가씨!"

호위들은 자제하려 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여전히 호위들의 감출 수 없는 기쁨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길을 달렸다. 누구인들 잘 먹고 잘 마시며 쉬고 싶지 않겠는가.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육장봉이 준비한 야생 요리는 모두 호위들의 배에 들어갔다. 월령안은 뜨겁게 끓인 건빵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호위들은 모두 노천에서 쉬었다. 월령안 혼자만이 장막에서 잤다.

때문에 월령안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잠든 뒤, 사라졌던 육장봉이 다시 나타나 그녀의 장막 밖에 서서 밤새워 지켰다.

남의 신세를 지면 반쯤 눈을 감아 주어야 한다. 육장봉이 직접 잡은 사냥감을 먹은 호위들은 모두 그를 못 본 척하거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대신해서 밤을 지켜 주니, 그들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호위들이 육장봉의 거동을 숨겨 주자 월령안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호위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고 고기죽까지 끓여 놓고 있었다.

다만 고기죽을 호위가 끓였는지, 육장봉이 끓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월령안도 물어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어서 육장봉이 끓였다고 하면 그녀가 안 먹을 수 있겠는가.

조금 정리하고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육장봉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는 내내 그들 일행은 날씨가 추우면 옷이 생기고, 비가 오면 우산이 생기고 식사 시간만 되면 고기가 있고 노숙하면 숙영지가 생겼다.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역참에 가면 역참 책임자는 더욱 친절했다. 진작 더운물과 음식을 준비해 놓을 뿐만 아니라 이 계절에 찾기 힘든 과일도 가져다주었다.

월령안은 묻지 않고도 이 모든 게 육장봉이 준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달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그와 관련된 사람이나 일들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싶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내내 신출귀몰하면서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월령안은 갑갑한 것이 마음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미는 것 같았지만 어디에 쏟아낼 수가 없었다. 다만 관성으로 가는 속도를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황제의 옹졸한 성격에 육장봉이 그녀를 쫓아 국경지대로 갔다는 것을 알면 결코 앉아서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황제는 반드시 육장봉을 불러들일 것이었다.

* * *

황제는 확실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뭍에 오르자마자 월령안을 뒤쫓아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육장봉이 관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성지를 내려보내 육장봉더러 즉각 변경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육장봉은 내내 신출귀몰했기에 황제의 사람은 전혀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데 성지를 어떻게 전하겠는가.

"관성으로 간다. 성지를 가지고 관성에 가서 기다려라! 짐은 관성에서도 장봉을 막을 수 없다고 믿을 수가 없어! 월령안이 경영하는 무역지역이 개업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마침 잘 되었다. 짐이 사람을 보내 진을 치고 지키게 할 것이다. 괜히 월령안이 제멋대로 설치지 못하게 말이다."

관성 무역지역은 중차대한 사안이므로 황제는 마음 놓고 남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특별히 이반반더러 한번 다녀오라고 보냈다.

이반반은 명령을 받고 하마터면 황제에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폐하께서는 나를 심복으로 생각하시는 건가, 아니면 원수로 생각하시는 건가?'

그더러 관성에 가서 육장봉을 불러오고, 월령안을 감시하라고 명령했다. 둘 중 어느 것도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황제는 지금 그더러 이런 두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하라고 했다. 그가 살아 돌아올 수나 있겠는가.

그는 왠지 자신의 명이 너무 길어 황제가 그를 더 일찍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반반은 우거지상을 하고서 황제의 곁을 떠나기 싫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짐은 이반반이 짐을 두고 떠나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관성 무역지역은 중대한 사안이다. 짐은 오직 너만 믿을 수가 있구나."

강남의 일에서도 그랬다. 황제가 직접 파견한 흠차 대신마저 그쪽 상인들에게 협박, 매수당하게 되었다. 오직 이익만 챙길 줄 모르는 상인들이 무슨 일을 못 저지르겠는가.

"폐하…… 소인은 반드시 폐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황제에게서 이렇듯 신임을 받고 있는데 이반반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눈물을 머금고 황제의 은혜에 머리를 조아려 감사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반반은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머금은 채 보자기를 메고서 종종걸음으로 연신 뒤돌아보며 황궁을 떠났다.

매번 고개를 돌릴 때마다, 이반반은 뒤에서 황제가 자신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황궁을 벗어나도록 황제가 불러들이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

"내 팔자도 참 사납군."

이반반은 바람을 맞받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손수건을 들고 묵묵히 눈물을 닦았다.

한참을 울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자, 이반반은 절망에 빠져 손수건을 거두었다. 그는 시위의 재촉 하에 결연한 모습으로 떠나갔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어린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반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께서 나를 아껴 다시 돌아오라고 하신 건 아닐까?'

이반반은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의 풀쩍 뛰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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