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21)화 (921/1,004)

921화 사람은 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그 이후는요?'

물론 최일이 말한 대로 그 후의 그는 알고 있었다.

조사할 필요도 없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만 알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는 월씨 가문 부자를 만난 게 우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모든 우연의 일치는 모두 인위적인 것이었고, 염 황숙이 짜 놓은 판이었다.

월씨 가문 부자는 월씨 가문의 사람들 손에 죽었지만, 동시에 그와 조계안을 위해 죽은 것이기도 했다.

그와 조계안이 없었더라면, 월씨 가문 부자는 진작 북요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 그뿐만 아니라 염 황숙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염 황숙이 어찌 수십 년간 이름을 감추고 월령안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가 자랄 때까지 지켜 주었겠는가.

그들은 이 일들을 다 알고 있지만 밝힐 수 없었다. 일단 밝혀지면 다시는 원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월령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염 황숙이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마음의 가책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왜 가책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월령안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또한 깊게 생각하기도 싫었다. 일단 물어보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녀는 더는 염 황숙을 마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너무 아꼈다. 염 황숙이 월령안의 감정을 신경 쓰는 것처럼, 육장봉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그녀의 감정에 신경이 쓰였다.

두 사람은 월령안이 다시 마음을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와 염 황숙은 그때 당시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살해한 진범을 찾는 것을 줄곧 포기하지 않았다. 진범을 찾아냄으로써 월령안 마음속의 간극과 원한을 풀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일이 조금 진척되자마자, 조계안 그 얼간이가 다짜고짜 사실을 밝혔다.

사실이 밝혀진 이상, 누구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월령안도, 염 황숙도, 그 역시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월령안의 질문에 육장봉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월령안, 나는 육씨 가문의 계승자요."

그가 직접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직접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조계안은 폐하의 친동생이자 주나라의 조왕이오."

"하……."

월령안은 차갑게 웃었다.

"그다음은요?"

그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육장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월씨 가문의 가주로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죽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오. 당신은 그들 매 사람을 다 기억하고 있소?"

육장봉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허!"

월령안은 다시 한번 냉소를 지었다. 육장봉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육장봉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음을 끓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게 여전히 냉정한 말투로 설득했다.

"월령안, 당신도 알고 있잖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오."

같은 상위자(上位者)로서 그는 월령안이 이 도리를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맞아요.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불공평하죠. 당신 말은 정말 도리가 있네요. 하지만 그분들은 제 아버지이고 오라버니세요. 그들이 제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당신이 비길 바가 아니에요."

만약 지금 손에 칼이 있다면 그녀는 주저 없이 육장봉의 가슴에 꽂았을 것이다.

육장봉은 밤새 쫓고 아침 일찍 문 앞에 서 있던 것이, 결국 그녀에게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불평등하니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라고 한마디 하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육장봉은 월령안이 자신의 뜻을 오해하자 서둘러 말했다.

"령안, 내 뜻은 그게 아니라……."

"그만 하세요."

월령안은 사정없이 육장봉의 말을 끊어 버렸다.

"제가 물은 것은 그때 당시 상황이 아니에요. 그때 당시에는 당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믿어요. 제가 지금 묻는 것은…… 그 뒤에 당신이 모든 것을 안 다음, 왜 먼저 저에게 알려 주지 않았는가예요. 왜 그랬어요?"

"나는 당신이…… 지금처럼 분노하고, 멀리하려고만 하며 나를 거부할까 두려웠소."

월령안이 자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에 대해 얼마나 감정이 깊은지는 그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그의 냉담함과 무정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그를 십 년 동안 좇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체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 한 가지 일을 그녀는 십 년 동안 기억했다. 만약 월령안이 애당초 그는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체를 가져다줄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그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면, 월령안이 여전히 전처럼 그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혹여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는 도박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감히 말하지 못했고 또 말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번거로움은 이미 충분했다. 그는 일단 말하면 월령안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밀어낼까 두려웠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가 알고 있는 월령안이라면 그리할 수 있었다.

"보세요. 당신도 제가 화내고, 분노하며, 심지어 슬퍼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잘못했다는 그 한마디는 하면 어디 덧나나요? 스스로 대범하게 그때 당신, 자신이 무능해서 애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인정하면 죽냐고요?"

월령안은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지더니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뭐,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불공평해! 당신은 출신이 고귀해 장공주의 아들이자 육씨 가문의 후계자라서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헛되이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예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눈동자에는 온통 살기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월령안은 자신의 감정이 격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한껏 들이켜 가까스로 북받치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무진 애를 썼다.

"당신 말이 맞아요. 지금까지 저를 보호하기 위해 죽은 호위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그 모든 사람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가족과 자식들을 후하게 대했어요. 그들이 저를 보호하기 위해 죽은 만큼, 저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가족과 처자를 보호했어요. 그런데……. 당신들은요?"

월령안은 손가락으로 육장봉의 가슴을 쿡 찌르며 말했다.

"당신과 조계안은요?"

월령안은 한 번, 또 한 번 육장봉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명을 받고 당신과 조계안을 보호했어요. 그들은 희생되었고 북요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분들은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 죽었다고요. 하지만 당신과 조계안은 어떻게 했나요? 당신들은 그들의 가족을 어떻게 대했나요?"

월령안은 눈물을 머금은 채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당신들은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당신들은 그들 가문이 망하고, 그들의 처자식, 어머니와 여동생이 남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어요."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당신은 제 조카가 속셈이 많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죠.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월령안은 눈물범벅이 되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그렇게 어린 것이…… 누군가 눈알을 빼냈고 몸에는 온통 상처투성이예요. 손발도 반복적으로 때려서 부러진 흔적이 있고요. 오장육부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어요……. 그렇게 어린애가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당신들은 생각이나 해 보셨나요?"

'당신들은 고아와 과부가 막대한 가산을 지키면서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다면,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일개 여자로서 많은 이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밖에서 장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나요?'

그녀는 몇 번이고 밖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양심 없는 상인들의 더러운 수단에 걸려 하마터면 몸을 잃을 뻔했다.

몇 번이고 울고 싶어도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괴로웠다.

그녀의 마음속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녀는 줄곧 노인이 자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고 자신에게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노인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르는 척하면서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당시 일에 육장봉도 관련되어 있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육장봉과 조계안이 북요에서 위험에 부닥쳐,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노인의 명을 받고 돌아가서 그들을 구했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왜 꼭 노인과 육장봉이 있어야 하는가.

왜 하늘은 이처럼 그녀에게 잔인하고, 약간의 정조차 남겨 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월령안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옹송그린 채 남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울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육장봉은 칼로 가슴을 에는 것처럼 아팠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월령안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을 가장 깊게 상처 준 사람은 결국 그 자신이었다.

육장봉은 눈빛 가운데 자책감을 숨기고 월령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그녀를 툭툭 건드렸다.

"령안, 내가……."

"건드리지 마세요."

육장봉이 잘못을 시인하기도 전에 월령안은 힘껏 그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지금 당신을 거들떠보기도 싫어요. 당신의 변명을 듣는 것 더 싫고요. 알고 있어요. 그때 당시의 일은 당신이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사후에 저한테 말하지 않은 것도, 감히 말하지 못한 것도, 제가 슬퍼할까 두렵고, 제가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랬단 다른 것도……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초리는 마치 부모를 여읜 새끼 늑대처럼 매서웠다.

"하지만 소용없어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속상하고 슬프며 분노하고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눈물에 씻긴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투명했다.

두 사람이 가까이 있었기에, 육장봉은 그녀의 눈망울에서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월령안은 영리하고 황소고집이었다. 그녀가 결정한 일은 옆에서 아무리 권해도 소용없었다.

"육장봉, 제발 부탁해요……. 제발, 한동안 제 눈앞에 얼씬도 하지 마세요. 저는 당분간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 얼굴을 보면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산산조각이 난 시신과 자해로 세상 뜬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고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일어서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그녀의 말한 것처럼, 지금 그녀는 육장봉을 보기만 해도 귀찮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육장봉을 탓하지만, 자기 자신을 더 탓했다. 심지어 그녀는 육장봉을 더 탓하는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살해한 육장봉을 좋아하는 자신을 더 탓하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 얼굴이 보고 싶지 않은 거요?"

육장봉은 월령안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알겠소."

그의 얼굴만 보고 싶지 않다면, 그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가거나, 월령안 앞에 나타나지 않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그가 여기서 정말 돌아간다면 아마 평생 다시는 월령안을 보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