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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19)화 (919/1,004)

919화 큰형, 수고가 많으십니다

육장봉이 사람을 거느리고 출항해 해적을 섬멸하고 돌아왔다.

최일은 부모관으로서 당연히 육장봉을 맞이하러 나왔다. 또한 겸사겸사 육장봉과 인수인계도 했다.

"대장군, 가시지 않습니까?"

최일의 사람은 이미 흉터 그들이 가져온 노획물을 집계해 국고에 넣었다.

흉터 일행은 배에서 내려 관졸의 안내로 일단 역참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최일이 뒤돌아보니 육장봉은 여전히 부두에 서 있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최일은 어쨌든 한마디 물어봐야 했다.

"음."

육장봉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서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부두에 오가는 사람들을 수시로 훑으며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최일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대장군께서는 령안을 기다리고 있는가요?"

육장봉은 드디어 최일을 제대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 눈빛은 마치 바보를 바라보는 듯했다.

'알면서 왜 물어.'

최일은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령안은 성 밖 별장에 있습니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나."

육장봉은 또 최일에게 차갑게 눈총을 쏘고서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에 뛰어올라 달려갔다.

"성 밖 별장은 부두와 가깝지 않지만 한 시진이면 넉넉히 올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아직 오지 않은 걸 보면 당신을 만날 시간이 없거나, 그렇게 급하게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최일은 육장봉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채 뱉지 못한 말들을 끝까지 쏟아냈다.

물론 그 자신 외에는 듣는 사람이 없었다.

* * *

부두에서 한 시진이나 지체한 육장봉이 말을 타고 별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황혼이 깃들었다.

육장봉은 줄곧 달려오다가 말이 속도를 줄이기도 전에 말 등에서 재빨리 뛰어 별장 밖에 사뿐히 내려섰다.

별장의 하인들은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왔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먼저 손을 들어 보이고 익숙하게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남이 아니었다.

하인은 그 모습을 보고 급급히 뒤쫓아 갔다.

"대, 대…… 장군…… 저, 저희 큰아가씨께서는……."

"됐다. 알겠다."

육장봉은 뒤돌아 이미 안뜰로 걸어 들어갔다.

"대장군……."

하인들이 계속해 쫓아가려 하자 육일, 육이, 육사, 육오가 가로막았다.

"우리 대장군께서는 남이 아니다. 큰아가씨께서는 너희들이 직무에 태만했다고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별장의 하인은 급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저희 큰아가씨께서는…… 이미 두 시진 전에 떠나셨습니다."

"뭐? 떠났다고?"

육사, 육오는 잠깐 멍해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캐물었다.

"떠났다는 게 무슨 말이냐? 부두에 우리 대장군을 마중하러 간 것이냐? 아니면 입성한 것이냐? 혹시 우리와 길에서 엇갈린 것이냐?"

육일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별장의 하인은 급해 소리쳤다.

"저희 큰아가씨는 두 시진 전에 관성으로 떠났습니다."

"와 씨, 큰일 났다."

육일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뒤돌아 쫓아갔다.

그 시각, 육장봉은 이미 월령안의 서재 밖에 이르렀다.

월령안의 서재를 눈앞에 두고 육장봉은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걸었던 주머니를 끌러 손에 쥐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위로 끌어올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령안이 이것을 좋아했으면 좋겠군.'

곧, 육장봉은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안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령안이 서재에 없다니?'

육장봉은 눈썹을 찌푸리며 되돌아 밖으로 걸어갔다.

"대장군, 대장군……."

육일이 땀범벅이 된 채 달려왔다.

"대장군, 마님께서 두 시진 전에…… 관성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관성에 갔다고?"

육장봉은 주머니를 쥔 손을 다잡았다.

"두 시진 전에?"

육일은 긴장해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장군, 힘을 주지 마십시오…… 좀 가볍게…… 대장군 손에 쥔 것은 쉽게 깨지는 진주입니다."

육장봉은 많은 노력을 들여서야 둥글며 티가 없고, 게다가 하나같이 크기가 비둘기 알만 한 진주 열여덟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진홍색의 혈진주(血珍珠)였다.

하나같이 동글동글하고 윤기가 돌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

흉터 그들은 설령 오랫동안 바다에서 생활하던 그들이라 해도 이 같은 최상급의 혈진주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육장봉이 이런 혈진주를 열여덟 개나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보통 행운은 아니었다.

그런 혈진주를 깨뜨리고 같은 질의 진주를 다시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두 시진 전에 령안이 관성에 갔다고?"

육장봉은 주머니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육일에게 다가갔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강남에 전해진 다음이라는 말이냐?"

육일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곧게 바로 서서 육장봉의 '죽음의 응시'를 받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맞다고 대답했다.

"사전에 내가 돌아왔다고 마님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단 말이냐?"

육장봉은 목소리가 차분하고 말투가 느리며 말끝을 살짝 올렸다. 이는 귀족 특유의 화려한 말투와 도도함 그리고 차가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육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육장봉은 매우 불쾌했다.

말투나 눈빛이나 모두 그가 화내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만약 평소에 월령안과 만나지 못했더라면, 육장봉은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에게는 아직 남을 날들이 많으니까.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다음번에 만나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다.

그는 바다에서 찾은 진주를 가지고 월령안과 함께 새로운 봉관을 만드는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

월령안은 일찍 그해 그와 결혼할 때, 그녀의 봉관에는 비둘기 알만 한 남해 진주 아흔아홉 개가 박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은 뒤에 줄곧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었다. 꼭 같거나 더 좋은 질의 진주를 찾아 월령안을 위해 새로운 봉관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고품질의 진주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는 일 년 넘게 찾았지만 만족할 만한 진주는 한두 개밖에 찾지 못했다.

이번에 바다로 나갔을 때, 그는 운이 좋아서 비둘기 알만 한 크기의 혈진주를 열여덟 개나 찾아냈다.

동해 진주는 서해 진주보다 못하고, 서해 진주는 남해 진주보다 못하며, 남해 진주는 심해 혈진주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가 이번에 찾아낸 심해 혈진주는 비록 양이 많지는 않지만 색상이 좋고 알마다 옹골지고 단단하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월령안이 보면 반드시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가 혈진주를 가지고 찾아왔지만 월령안은 떠나고 없었다.

그것도 그의 수하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육장봉은 육일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온몸으로 내뿜는 그의 차가운 기운에 사람이 얼 정도였다.

육일은 벽에 부딪쳐 기절하고 싶었다.

그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도 혼쭐이 나야만 했다.

'왜 매번 나만 이런 죽음의 선택에 직면해야 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속도! 이 빌어먹을 반응 능력!'

육일은 결국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그가 지나치게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매번 가장 앞에 서서 육장봉의 노기에 직면해야 했다.

'참 너무 어려워!'

육일은 울먹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육일이 대답하지 않아도 육장봉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육장봉은 수중의 주머니를 매만지며 다시 캐물었다.

"혹시 네가 편지를 보내 마님께서 내가 오늘 돌아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일부러 내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떠난 것 아니겠지?"

이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월령안은 그가 황제의 명을 받고 강남에 와서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일 처리를 마친 다음, 그는 강남에서 며칠도 머물지 못하고 변경으로 돌아가 복명해야 했다.

그리고 월령안도 단시일 내에는 쉽게 변경에 가지 않을 것이었다.

한동안 바쁠 그들이 그 전에 만날 유일한 기회는 바로 강남이었다.

월령안이 그가 돌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서둘러 떠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어찌 한 번 만나 볼 시간도 없겠는가.

그러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육일의 잘못이었다.

철퍼덕!

육일은 아무 망설임 없이 곧게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순간, 육일은 아픈 나머지 입을 일그러뜨렸다.

'어이쿠, 아파!'

그는 무릎뼈가 부서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작은 일이었다. 눈앞에 가장 급한 것은 대장군의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일순간 육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덤터기를 자신이 쓰기로 선택하고 먼저 죄를 청했다.

"소인이 직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대장군께서 벌하여 주십시오."

물론 그는 자기 사람이 실수할 리 만무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시간을 따져 보면, 월령안은 틀림없이 떠나기 전에 육장봉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는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일단 그가 말하는 순간, 그에게는 더 혹독한 처벌이 떨어질 것이었다.

"변경에 돌아간 다음, 스스로 집법당(執法堂)에서 가서 벌을 받아라."

육장봉은 차갑게 한마디 내뱉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육일이 너무 빨리 죄를 청했기에, 육장봉은 아예 마음속 분노를 토해낼 기회가 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가면서 온몸으로 차가운 냉기를 내뿜었다.

별장의 하인이든 호위병이든 누구도 감히 그에게 다가가 사실을 알릴 엄두를 못 냈다.

"귀성한다!"

육장봉은 별장을 나서자 호위병들이 따라서기도 전에 말 등에 뛰어올라 귀성했다.

육이, 육사, 육오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육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묻지도 않고 급급히 뒤를 따랐다.

성안에 들어서자마자 육장봉은 최일의 초청을 받았다.

육이, 육사, 육오는 그제야 비로소 기회를 찾아 육일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물었다.

죽으면 모두 함께 죽고 덤터기를 혼자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육일은 조금도 숨김없이 사건의 전말을 모두 털어놓았다.

육이, 육사, 육오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진실은 월…… 아니 마님께서 대장군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관성으로 떠났다는 거죠?"

육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관성 무역지역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세 사람이 또 물었다.

육일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오기 전에 물어봤어. 마님께서는 요 며칠 관성 소식을 받은 적이 없대. 출발하기 전에는 우리 대장군이 돌아온다는 소식밖에 받은 게 없다고 했어."

"그럼 마님께서는 왜 서둘러 떠났나요? 대장군을 한번 만나 볼 시간도 없었다는 말인가요?"

육이, 육사, 육오 세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육일은 화가 나서 세 사람을 흘겨보았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육일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큰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덤터기를 쓴 건가요?"

육일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내가 그걸 안 쓰면 어쩐단 말인가?'

육이는 한숨을 내쉬며 육일의 어깨를 다독였다.

"큰형, 수고가 많으십니다."

"큰형, 참 힘드시겠네요."

육사가 다른 한쪽 어깨를 다독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육오는 육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탄복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큰형답군요. 책임감이 정말 강하네요. 형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우리 셋이 비참해질 뻔했어요."

'이 말들이 왜 이리 귀에 거슬리지?'

육일은 두 손을 주먹 쥐고 딱딱 소리를 내었다.

정말 확 두드려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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