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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14)화 (914/1,004)

914화 자고로 여자란 말이죠

그녀는 조계안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녀를 키웠었다. 설사 그녀가 조계안이 자기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도 노인에게서 확인을 받아야 했다. 노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노인이 죽을죄를 지은 것으로 단정 짓고 일방적으로 절교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녀는 자기가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이 시기에 서 선생에게 편지를 써서 확인을 받는 것은 서 선생의 손을 빌려 노인에게 고자질하려는 것이었다. 노인더러 조계안을 혼내 주라는 속셈이었다!

편지를 보내자 걱정거리 반이 사라졌다. 월령안은 마음을 짓누르던 바위가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영감님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면 내 머리가 안 아프지."

월령안은 절대 자기가 이토록 옹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다른 사람도 기분이 좋을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다!

노인 쪽에는 확인을 요구하는 편지 한 통이면 되었지만 육장봉 쪽은 편지 한 통으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었다.

"언제 오려는지 모르겠네. 늦게 돌아오는 것도 좋겠어. 내가 지금 그를 보면 참지 못하고 칼로 찌를 수도 있으니까."

월령안은 초점 없는 두 눈으로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온통 오싹한 한기뿐이었다.

'내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그때 영감님의 명령으로 돌아가 그들을 구한 것을 지금까지 육장봉이 몰랐던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육장봉이 나한테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는 거잖아. 이 일은 절대 육장봉을 한번 찌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 * *

이때, 돌아오던 육장봉 일행은 해적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너희들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너희들의 배가 이렇게 무겁게 내려앉은 것으로 보아서는 금은보화가 많겠는걸. 물건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지!"

해적들은 육장봉 일행이 향혈해를 토벌할 때부터 노리고 있었다. 육장봉 일행이 금은보화, 옷감, 양식을 얼마나 옮기는지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

물론, 그들은 육장봉 일행의 전투력도 직접 보았다. 그래서 비록 보물들을 꿀꺽하고 싶었지만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몰래 다른 해적들을 연락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이제서야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 사람들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종씨는 해적 떼를 척, 보자마자 짐작을 했다.

며칠 전에 그들은 이미 따라오는 해적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향혈해의 남은 세력인 줄 알아 추격해 보았지만 바다 위가 너무 큰데다 상대도 교활하여 놓치고 말았다.

사람을 놓쳤지만 위험은 없어지지 않았다.

천 일 동안 도둑질을 할 수는 있어도 천 일 동안 도둑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이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그들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이 사람들은 역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속도를 늦춘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손을 썼다.

바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선한 부류가 없었다. 종씨 이들도 원래는 해적 출신인데 해적을 무서워할 리가 있겠는가? 이 해적들의 수가 그들보다 곱절 많았지만 종씨 일행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적의 인수는 많았지만 대장군이 지휘하고 있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들의 물건을 빼앗고 싶다면 혼내 주면 되는 법이다!

해적들이 손을 쓰기 전에 흉터는 사람을 데리고 뛰쳐나갔다.

"흉터 이 녀석, 너무 충동적이야."

종씨는 육장봉의 뒤에 서 있어 흉터보다 한 걸음 늦었다. 그는 투덜거렸다.

"콜록콜록……."

육장봉의 기침은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심해졌다. 입만 열면 기침부터 나왔다. 종씨 등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대장군, 바닷바람이 세니 먼저 선실로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음."

목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데다 해적들이 흉터의 공격하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을 보고 육장봉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종씨에게 한마디만 했다.

"잘 지켜보라고."

해전으로 친다면 종씨가 그보다 경험이 풍부했다. 그도 계속해서 수군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종씨와 흉터 그들에게 자신을 뽐낼 기회를 줘야 했다.

종씨의 처사 방식은 침착하고 노련했다. 종씨가 있자 육장봉은 걱정할 것이 없어 바로 선실로 돌아가 쉬었다.

강남까지는 아직 이틀 정도가 남았다. 육일이 말한 것처럼 월령안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몸을 잘 추슬러야 했다.

종씨 그들은 바다 작전에서 경험이 풍부했다. 그들에게는 해적을 상대할 수단이 있었다. 육장봉이 자리를 지키며 지휘하지 않아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변이 없이 해적은 그들에게 참패하여 황급히 달아났다.

그러나 종씨는 죽고 말았다!

흉터를 구하기 위해 한 해적에게 망치로 맞아 바다에 떨어져 가라앉았다.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흉터가 종씨를 찾으려고 미친 것처럼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숨을 쉬지 못해 강제적으로 끌려서 나왔다.

깨나자마자 흉터는 또 발버둥 치며 바다로 뛰어들어 사람을 찾겠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육장봉이 어두운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흉터를 발로 차서 엎어뜨렸다.

"됐다!"

"대장군, 종씨는…… 절 구하려다가 그런 거예요."

흉터는 바닥에 엎드린 채, 통곡했다.

"알면 됐다!"

검은 피풍의를 두른 육장봉은 마치 소나무처럼 갑판에 서 있었다. 차갑고 도도한 것이 감히 직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육장봉은 흉터를 위로하지도 않고 질책하지도 않았다. 다만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끌고 가서 곤장 오십 대를 쳐라!"

군영에서는 규칙과 군령이 곧 법이다.

흉터가 군령을 어겼기에 규칙대로 벌하면 되었다.

그러나 종씨는…….

바다를 바라보는 육장봉의 깊은 눈매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종씨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종씨에게서 뭍으로 돌아가면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 둘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종씨의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육장봉은 바로 시선을 거두고 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육일에게 넘겨주었다.

"종씨의 공로를 기록하거라. 돌아가서 규칙대로 행하거라."

전쟁터에서 그는 너무너무 많은 생사를 봐 왔다. 그는 종씨의 죽음에도 조금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해적의 습격을 당한 탓에 배는 작지 않게 파손되었다. 뱃사람들도 적지 않게 다쳐서 길을 재촉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육장봉 일행은 사람 없는 섬을 찾아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얼마나 쉴지는 뱃사람들이 회복하는 정도를 봐야 했다. 육장봉은 비록 급히 돌아가고 싶었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강남.

조계안은 육장봉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받고 나서부터 줄곧 육장봉이 오기를 기다렸다. 월령안이 어떻게 그를 혼내 주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월령안이 연회를 다 열 때까지 육장봉은 돌아오지 않았다.

"육장봉은 일부러 이러는 것일 거야!"

조계안이 남은 이유가 바로 월령안의 연회 때문이었는데 지금 연회도 끝났으니 조계안도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다만 최일이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데다가 금군 통령 두위가 사람을 데리고 조계안을 데리러 왔다. 최일은 두말하지 않고 조계안을 두위에게 던져 주고 자기는 강남의 재난을 틈타 돈을 번 상인들을 처리하러 갔다.

예로부터 관가와 상인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고 했다. 조계안이 강남의 관가를 숙청하고 그가 이어받은 것이니 아무리 잘해도 남의 공로였다. 공을 세우자면 자기만의 공적을 쌓아야 했다.

월령안이 증거까지 그에게 넘겼는데 그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바보였다.

* * *

월령안이 개최한 이번 연회는 '잔치에 즐거운 잔치가 없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연회 당일, 술이 세 순배 돌아 분위기가 마침 좋았다.

그중 스스로 나름 좀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대상인 하나가 연회 동안 최일이 줄곧 월령안하고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자 심기가 불편해했다.

그자는 최일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월령안을 밟아 주려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최 대인께서는 강남에 부임한 뒤로 오직 공적인 사무와 강남 백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이번 강남 물난리 때, 최 대인께서 진을 치고 계셨기에 강남 백성들이 재해를 무사하게 넘기고,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정말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월 가주와 최 대인께서는 변경에서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월 가주께서 우리 강남 상인들을 대표해 최 대인께 춤을 한번 추어 드리면 어떨까요?"

"춤을 추라고요?"

월령안은 최일과 함께 주 연회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그 상인의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지금 저더러 춤을 추라고 하셨나요?"

"왜요? 월 가주께서는 최 대인께 춤을 추어 드리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니면 최 대인께서 당신의 춤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가요?"

그 상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끝마다 최 대인을 부르며 마치 월령안이 춤을 추지 않으면 최일을 안중에 두지 않은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월령안은 생글생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너그러운 성격인 듯한, 마치 그자가 자신을 난감하게 하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그 상인은 이 모습에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아니라면, 월 가주께서 우리 강남 모든 상인들을 대표해 최 대인을 위해 춤 한번 추시죠."

"네. 네. 좋군요!"

월령안을 탐탁해 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곧 누군가 손뼉을 치며 크게 외쳤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월 가주, 거절하면 안 되죠. 저희는 최 대인이 강남에서 저희 모두를 위해 한 일들을 직접 보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저희가 모두 거친 데다가 몸이 뻣뻣해 춤이라고는 출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희도 직접 최 대인께 춤을 춰 드리고 싶네요."

"저희가 최 대인 덕분에 오늘은 월 가주의 춤으로 눈요기할 수 있겠군요."

기타 상인들은 월령안이 화내지 않자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월령안을 강요해 많은 이들 앞에서 춤추게 할 모양새였다.

월령안과 최일의 아래쪽에 앉아 있던 늙은 여우들은 영리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눈빛에는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 듯한 즐거움이 가득한 것이 분명 월령안의 난처함을 구경하려는 심산이었다.

무릇 소식이 빠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월령안과 최일 사이가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일이 강남에서 득세했다. 월씨 가문 상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용해 반드시 강남에서 장사를 크게 벌일 것이다.

하지만 장사의 양이 정해진 만큼, 월씨 상사가 큰 몫을 차지하게 되면 그들의 이익이 손해 볼 게 뻔했다. 그들이 월령안을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그래서 누군가 월령안을 난감하게 하자, 자리에 있던 뭇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고소해 하며 이 기회를 빌려 한 번 더 밟아 주려고 했다.

맨 처음 월령안더러 한번 춤춰 달라고 제안했던 상인은 대다수 상인들이 맞장구를 쳐 주자 더욱 기고만장해 뭇사람들에게 공수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자고로 여자란 말이죠,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노래하고 춤추며 남자들을 즐겁게 해 주면 되는 거예요. 다른 건 우리 같은 남자들이 나서서 하면 되는 거고요. 여러분, 제 말이 맞나요, 틀리나요?"

앞서 맞장구치던 이들이 너도나도 맞는 말이라며 갈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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