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13)화 (913/1,004)

913화 도망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월령안은 차를 홀짝홀짝 들이키며 도도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녀는 범씨 가문 대공자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밖에서…… 울고 불면서 장례를 치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강호 마을은 범씨 가문 대공자가 홀로 주최한 것이었다.

비록 범씨 가문에서는 그 정도 돈을 손해 보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사업을 망친 그는 형제들 사이에서 망신을 당했다. 만약 월령안이 그만둔다고 하면 그는 무척 기쁠 것이다.

"당신네 범씨 가문은 상업계의 황성사인가요? 오지랖도 넓네요! 제가 산 가게로 장사를 하는 것도 당신네 범씨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월녕안 얼굴에 화난 기색을 띠며 손에 든 찻잔을 탁자 위로 거세게 내려놓았다.

찻잔의 뚜껑이 부딪히면서 쨍 소리를 냈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물렸다. 그가 반응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겁을 먹고 일어섰을 것이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한낱 어린 여자애에게 겁을 먹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자리에 앉았더라도 범씨 가문 대공자는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월 가주는 손을 뗄 생각이 없으시다는 건가요?"

"손을 떼고 안 떼고 할 것이라도 있나요? 범 공자의 이 말씀은 듣기 거북하네요."

월령안은 방금 전에 범씨 가문 대공자에게 눈치를 주고서는 또 눈 깜짝할 새에 미소 띤 얼굴로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장사는요, 사람들 능력에 따라 하는 거죠. 범 공자의 말씀을 들어 보니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은 운영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파실 건가요?"

"당신…… 꿈도 크네요!"

'월령안은 이것을 노리고 있었구나!'

"정말 안 파실 건가요? 지금 파신다면 좋은 가격에 쳐 줄 수 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확신을 드릴 수 없어요."

월령안은 화를 내지도 않고 여전히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상업계에서 금상첨화는 적어도, 불 난 틈을 타서 도둑질하려는 경우는 많죠. 범 공자, 아니에요?"

범씨 가문은 퍼레진 얼굴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우리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은 손에 썩혀 두더라도 팔지 않겠어요. 그러나 월 가주께서 참여하실 수는 있으십니다. 우리 범씨 가문에서는 이 할 꺼내 드릴 수 있어요."

"정말 안 파시려고요?"

월령안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더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안 팔아요!"

그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했다. 월령안은 장사하는 데 안목이 매우 좋았다. 그녀가 찍은 장사 중에서 돈을 못 버는 장사는 없었다.

월령안이 강호 마을을 원할수록 강호 마을의 장사는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너그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럼 그러죠. 이 대 팔이면 이 대 팔이지. 그러나…… 당신들이 이고 제가 팔이에요!"

범씨 가문 대공자는 화가 나다 못해 실소가 나왔다. 그는 탁자를 치며 벌떡, 일어났다.

"허! 월 가주, 꿈을 꾸는 거지요?"

"사흘 뒤, 월씨 가문 별원에서 연회를 열 거예요. 최 대인도 오실 거고요."

월령안은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가 되면, 범 공자께서 계약서를 들고 오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범씨 가문 대공자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밑천까지 다 까발려졌는데 무슨 얘기를 한다는 말인가?

* * *

월령안이 연회를 열겠다고 말한 것은 문득 생각이 나서 대충 해 보는 말이 아니었다.

관리인들에게서 강남 상사의 사람들이 불 난 틈을 타 도둑질을 하는 격으로 양식과 옷감 가격을 올렸다는 말을 들은 월령안은 연회를 열 계획을 세웠다.

재해가 일어났는데 돈 있는 상인들이 돈과 힘을 써서 구제하는 것은 도의적인 것이었고 구제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월령안은 비록 자신이 돈과 힘을 써서 구제한다 해서 다른 상인들까지 그녀처럼 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제하지 않는 것은 괜찮으나 재해를 틈타 돈을 벌다 못해 그녀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안 되었다!

그 상인들은 이미 그런 일을 했으니 그녀가 그들의 체면을 짓밟는다고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령안은 행동파였다. 연회를 열겠다고 말하자마자 그날 오후로 초대장을 다 써서 이튿날 아침에 상사의 심부름꾼을 시켜 강남의 상인들에게 돌리게 했다.

초대장을 모두 보내고 나서 월령안은 또 사람을 시켜 몰래 소문을 내게 했다. 사흘 뒤의 월씨 가문의 연회에 최 대인이 올 것이라고!

강남 관가가 흔들리면서 최일에게 잘 보인 관리들만 살아남았다. 최일은 비록 강녕지부지만 그보다 관급이 높은 강남의 관리들은 전부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최일은 강남에서 총독만큼의 명성은 없으나 총독만큼이나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흠차 대신의 일도 도맡았고 여 총독 그들의 사건도 나중에는 최일의 손을 거치게 된다.

최일은 지금 강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리였다. 상인들은 물론, 현지 호족들도 최일과 친분을 맺으려고 갖은 방법을 썼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최일에게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친분을 맺기는커녕 한 번 만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월령안이 연회를 열면서 사람들에게 그날, 최일이 올 것이라고 암시하자 강남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전부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오겠다고 했고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방법을 대서 초대장을 구하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따라 들어오려고 했다.

최일이 초대장을 받을 때, 밖에서 떠도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이 그를 가지고 술수를 부린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두 눈은 반짝거렸다.

그가 월령안이 자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월령안을 도울 수만 있다면 그는 무척 기뻤다.

조계안은 원래 오늘 강남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사흘 뒤에 연회를 연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떠나지 않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최일의 눈에 드리운 웃음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전하, 식언(食言 - 약속한 말대로 지키지 않음)으로 배를 불리시려는 건가요!"

"응."

조계안은 건성건성 의자에 앉아서 발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최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초대장은? 나한테 보여 줘."

최일은 당연히 주지 않으려고 했다.

"폐하께서 변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계안은 고개를 돌려 사위에게 말했다.

"가서 월령안에게 말을 전해. 사흘 뒤의 연회에 나도 참가할 것이라고!"

최일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전하, 조방에는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도 있습니다. 전하께서 강남의 관리들의 상황을 헤아려 주세요."

'조계안은 자기가 강남에서 얼마나 미움을 받는지 모르는 건가? 조계안이 월령안의 연회에 참가하겠다고 소문을 냈다가 살수라도 꼬이면 누구 책임이라는 건가?'

조계안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돌아와!"

사위가 돌아오자 조계안은 어두운 얼굴로 불쾌하게 최일을 힐끗 스쳐보았다.

"이러면, 최 대인께서는 만족하시는가?"

"전하, 변경으로 돌아가셔야죠."

물론 만족하지 않았다!

"최일, 난 말야…… 성격이 좋지 않아!"

조계안은 두 다리를 바닥에 떨구고 훌쩍, 일어나더니 최일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손가락으로 최일의 오른쪽 가슴을 쿡쿡 찔렀다.

"선을, 넘지 마."

최일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화가 나서 변한 것이 아니고 아파서 변한 것이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였다!

조계안은 비록 상처가 덜 낫긴 했지만 힘은 작지 않았다.

조계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 얼굴 좀 풀어. 난 단지 너와 장난을 친 것이니."

조계안은 망나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최일의 옷매무새를 장난스레 정리해 주었다.

최일은 싫은 내색을 하며 조계안의 손을 뿌리쳤다.

"전하께서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화청을 나선 최일은 조계안이 바로 뒤에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물을 준비하거라. 목욕을 해야겠다!"

조계안은 화가 나 웃음을 터뜨렸다.

"내 앞에서 싫은 티를 내는 건가?"

최일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떠났다.

* * *

월령안이 초대장을 보낸 뒤, 사람을 시켜 장부책을 가져오게 했다.

바빠져서 육장봉과 노인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도록 하기 위해 월령안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 며칠간 구제 비용을 적은 장부책을 작성했다. 그리고 구제를 시작한 시기에 맞춰 가격을 올린 상사들의 원래 판매가격과 현재 판매가격을 표시했다.

심지어 월령안은 그들의 매입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상사들이 수재를 틈타 가격을 올려서 얼마나 벌었는지 계산까지 해 주었다.

숫자가 한데 모여 있어 보기 불편할까 봐, 월령안은 특별히 빨간 먹을 써서 그 몇몇 양심 없는 상사들이 수재를 틈타 얼마나 벌었는지 한눈에 알아보게 했다.

"나대는 것들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나 월령안의 돈을 버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월령안은 하루의 시간을 들여 모든 장부책을 정리한 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하인더러 그 장부책을 백 권 베끼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초대장을 육십 장 발급했으나 연회에 올 사람들이 반드시 백 명이 넘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넉넉히 준비하는 것은 항상 잘못되지 않았다.

장부 정리를 마친 월령안은 할 일이 또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상사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았다. 연회를 개최하는 데도 그녀의 결정이 필요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수하들이 지나치게 유능한데다 또 그녀가 금방 병이 나았다고 배려하여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일을 빼앗아 했다. 심지어 그녀가 일을 돕겠다고 말하자 관리인들에게 저지당했다.

"큰아가씨, 아가씨의 몸이 가장 중요하죠."

"돈을 벌고 구제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아가씨께서 하실 일은 몸조리를 잘하시며 연회가 열리는 걸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큰아가씨, 이런 잡다한 일을 어찌 직접 신경 쓰시겠습니까? 마음 편히 조정과의 관계를 처리하셔서 우리 월씨 가문 상사가 단번에 조운을 가질 수 있게 힘써 주십시오!"

상사의 관리인, 가게 주인들은 창백한 월령안을 바라보며 하나같이 월령안을 도자기 취급했다. 월령안이 병들어서 행여나 그들 월씨 상사가 조운을 가질 수 있는 큰 사업에 지장을 줄까 두려워했다.

그렇다!

월령안의 건강보다 관리인들과 가게 주인들은 월씨 상사가 조운을 가질 수 있는지에 더 신경 쓰였다.

월령안이 다른 걱정 없이 조운을 쟁취할 수 있게 하려고 관리인들은 다른 일을 모두 도맡아 버렸다. 그러자 월령안은 바쁘고 싶어도 바쁠 수가 없었다.

한가해지자 월령안의 머릿속에서는 또 저도 모르게 조계안이 산굴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월령안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됐어.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없어!"

그녀는 잠깐 도망칠 수는 있어도 평생 도망칠 수는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월령안은 붓을 들고 책상 위의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손에 든 붓이 천 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거운 것은 무거운 것이고, 월령안은 전혀 망설임 없이 먹을 묻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