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화 난 좀 바쁜 게 좋겠어
이때, 조계안과 육장봉의 관심을 받고 있는 월령안은 한창 상사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그날 산굴을 떠난 뒤, 월령안은 바로 상사의 사람과 연락하여 몰래 상사로 돌아왔다.
상사로 돌아오자마자 월령안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계속 고열이 내리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호전되었다.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관리인이 허겁지겁 와서 보고했다.
"큰아가씨, 이번 구제에서 우리가 저장했던 양식을 전부 써 버렸어요. 겨우 이틀 버틸 양의 식량만 남았습니다."
"솜옷, 조포도 전부 써 버렸어요. 다른 상사들에서 우리가 전력으로 구제하는 물품들을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고 있어요. 이번 수재는 조운도 영향 주었지요. 우리는 지금 돈이 있어도 양식과 천을 살 수 없습니다."
"이번 폭우에서 서른여 개 마을이 홍수에 잠겼어요. 지금까지 서른여 개 마을에서는 물이 빠지지 않고 있는데 이재민들이 하루에 소모하는 물품과 양식들은 천문학적인 숫자예요. 관부에서도 계속 소식이 없어서 우리들의 물자나 돈 모두 며칠 버틸 수 없어요."
"큰아가씨, 구제는 조정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보통 상인일 뿐인데 능력대로 일을 해야지요. 앞으로 구제 규모에 대해서는 부디 신중히 생각해 주십시오."
"큰아가씨……."
월령안은 깨어나자마자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관리인들이 너 한마디, 나 한마디씩 하는 것을 들은 월령안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구제하세요. 다른 문제는 제가 생각해 볼게요!"
"큰아가씨……."
강남의 관리인들은 바로 일어났다. 그들의 목소리는 많이 날카로워졌다.
"우리 상사는……."
"조방 방주가 잡혔다!"
월령안이 단호하게 소리를 내 관리인의 말을 잘랐다.
"조방에서 사사를 파견해 조왕을 죽이려고 했고 조왕은 중상을 입었어요. 그 사사들은 이번에 죽었어요!"
"어……."
관리인들은 하나같이 멍해졌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는 아니겠지?'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운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자리에 계시는 다들 다 잘 아실 거예요. 조운이 끝장났는데 이런 시기에 조정에 아부하지 않고 언제 할 건가요?"
만약 돈을 잘 벌지 못한다면 한낱 조방 방주가 강남 전체의 관리들을 모두 끌어들일 수 없었다.
관리인들은 눈앞이 환해졌다.
"큰아가씨, 우리…… 가능할까요?"
무려 조운이었다! 항상 조방 그 깡패들의 통제를 받았었다. 만약 그들이 조운을 인수하여 관할할 수 있다면 앞으로 주나라 경내의 남북 화물을 어떻게 운반하든, 얼마나 운반하든, 누구의 것을 먼저 운반하든……. 모두 그들의 뜻대로 할 수 있었다!
화물의 운반량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화물의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앞으로 강남의 상사들 중 어느 누가 그들 월씨 상사와 견줄 수 있겠는가?
관리인들은 생각할수록 흥분되었다. 그들은 지금 바로 월령안의 입에서 확답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일은 끝까지 가지 않으면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칠 할의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성공 여부는 사람의 노력에 달렸죠!"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성공 여부는 사람의 노력에 달렸죠."
관리인들은 흥분하여 손을 문지르면서 더 이상 구제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큰아가씨, 걱정하지 마시지요. 구제의 일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반드시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주(朱)씨 가문 천 가게의 작은 주인과 잘 아는 사이예요. 그들의 수중에 색을 잘못 들인 천이 있다고 들었는데 찾아가 보겠습니다."
"정(程)씨 쌀 가게에 아마도 저장해둔 양식이 있을 거예요. 전 정씨 가문의 주인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예요. 제가 그를 찾아가 술을 마시겠어요."
"제가 가서 상사의 돈을 계산해 볼게요. 어디 돈을 좀 짜낼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어요."
"제가 보니 조정에서는 실업자들에게 일을 주어 구제하더라고요. 우리도 뒤에 가서 시도해 봐요. 구제하는 데는 죽을 사용하고 일을 줄 때는 현미밥을 사용하고요. 이렇게 하면 쌀을 절약할 수도 있고 틈을 타 상사를 정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월령안이 분부할 필요가 없이 관리인들이 하나같이 흥분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이재민들을 구제할 계획을 세웠다.
"큰아가씨, 저희는 먼저 가서 일을 보겠습니다."
"좋아요!"
월령안은 고개를 살짝 들고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관리인들은 질세라 앞을 다투며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은 줄곧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가버리자 월령안의 미소는 차가워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책상을 세게 세 번 두드렸다.
"나와!"
"큰아가씨!"
회색 옷을 입은 노복이 천천히 걸어 나와 월령안에게 읍했다.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병이 채 낫지 않은 월령안은 안색이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새카맣고 고요했다.
"시체를 모두 상자에 담았습니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그들을 바다로 던져 넣고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회색 옷의 노복은 무기력한 것이 온몸에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입을 열자 살기를 풍겼다.
회색 옷의 노복은 월령안의 아버지가 남긴 사람이었다.
그는 상사의 관리인들과 달리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죽여 입을 막고 시체를 없애 흔적을 지우는 일을 했다.
장사를 크게 하다 보면 항상 밝은 데서 처리하지 못할 일들이 생기는 법이다. 마치 월씨 가문 오보의 사람들은 밝은 데서 해결하지 못하고 반드시 몰래 없애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회색 옷의 노복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가 직접 손을 쓴 것이라면 월령안은 몹시 안심되었다.
"조계안과 그의 앞잡이를 잘 지켜보라고 하거라. 그 어떤 기척이 들려도 바로 나한테 보고하라고 하거라. 일단 그들이 강남을 떠난다면 사람을 찾아 황성사 사위가 강남에서 세력을 믿고 포악하게 굴고 제멋대로 형을 집행했으며 자백을 유도하고 강요했다고 탄핵하거라. 여 총독 그들 배후의 사람은 분명 기꺼이 나서 줄 것이다. 손을 쓰기 전에 미리 그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거라."
"네, 큰아가씨!"
회색 옷의 노복은 허리를 살짝 구부리고 물러났다.
급한 일을 모두 해결하자 월령안은 온몸의 힘이 풀렸다.
머리를 비우자 저도 모르게 조계안이 산굴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사실, 아픈 것도 좋은데."
월령안은 한숨을 쉬고 무기력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흐리멍덩했다.
열이 나서 머리가 무거운 탓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육장봉이 지금 강남에 없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지금 조금도 육장봉을 보고 싶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이 월령안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어쩌면 난 좀 바쁜 게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야겠어."
월령안이 말을 마치자마자 서재 밖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아가씨, 범씨 가문의 대공자께서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
"아니……."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상사의 사람은 범씨 가문 대공자가 그녀를 여러 번 찾아왔었다고 보고했었다. 그러나 밖에 있는 것은 대역일 뿐이라 범씨 가문 대공자를 접대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복잡한 일들을 떠올리기 싫어서 바빠지고 싶은 월령안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화청으로 모시거라. 잠시 뒤에 가겠다."
범씨 대공자가 월령안을 찾아온 것은 조운의 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 때문이었다.
범씨 가문에서는 그녀의 무림맹 경영 계획을 가로채 자기들이 먼저 강호 마을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무림맹의 경영을 포기하고 귀시의 사업을 빼앗아야만 무림맹을 키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도 그녀 때문에 이득을 보지 못했다.
전에 그녀는 강남에 없어 범씨 가문을 겨냥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남에 오자 그녀는 겸사겸사 보복까지 한바탕 했다.
그녀가 세운 장례 거리가 열리자 범씨 가문의 강호 마을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이 있더라도 거리에서 떠들썩하게 종이를 태우고, 관을 옮기는 등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채, 도망갔다.
손님이 없으니 돈도 벌 수 없었다. 강호 마을은 육안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스산해졌다.
그러나 이런 작은 손해로는 범씨 가문의 기근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범씨 가문도 강호 마을 때문에 와서 화해를 청할 필요가 없었다.
범씨 가문의 대공자가 그녀에게 한 번, 또 한 번 거절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뻔뻔스럽게 찾아온 것은 최일 쪽에서 문전박대를 당해 그녀를 통해 최일과 연을 닿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찾아와 사정할 것이라면 냉대를 당하고 남의 눈치를 볼 준비를 해야 했다.
월령안은 비록 범씨 가문의 대공자를 만나기로 허락하기는 했지만 바로 건너가지 않았다. 그녀는 범씨 가문의 대공자를 이각 정도 기다리게 한 뒤에야 천천히 걸어갔다.
이 몇 년간, 월씨 가문의 세력이 약해짐에 따라 범씨 가문은 상업계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또 범씨 가문은 해상 운수를 움켜쥐고 있었다.
강남의 많은 상인들은 해상 운수를 통해 돈을 벌기를 바란지라 돈이 많고 기세가 강한 소금 상인을 제외하고 강남의 상인들은 점차 범씨 가문을 위수로 하는 추세를 이루고 있었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강남의 상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받드는 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떠받들리는 데 익숙해진 범씨 가문 대공자는 이런 찬밥 신세를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줄곧 거절당하다가 이번에 월령안이 드디어 만나겠다고 허락했지만 그를 무려 이각이나 기다리게 했다. 범씨 가문 대공자는 시퍼런 낯빛을 하고 온몸으로 불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월령안이 걸어오는 모습을 본 그는 월령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월 가주, 드디어 오셨군요! 월 가주의 모습을 한 번 보는 것은 폐하를 뵙는 것보다 더 어렵네요!"
"범 공자께서 기다리기 싫으시면 문이 저기에 있으니 가시면 됩니다.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른 생각을 하기 싫어 시간을 때우려는 것뿐이었는데 정말 자기가 무슨 인물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
"너……."
범씨 가문 대공자는 화가 나 얼굴이 퍼레졌다.
"교양이 없……."
월령안은 방글방글 웃으면서 그의 말을 잘랐다.
"말씀 잘하세요. 저한테 당신을 차 버릴 이유를 주지 말고요."
"너……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범씨 가문 대공자는 화가 나 씩씩거리면서도 입가까지 올라온 악담을 꾹 눌러 삼켰다.
월령안은 비웃으며 옆의 차를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범 공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제 시간은 매우 소중해요."
"강호 마을의 일에서…… 월 가주는 언제 손을 떼실 생각인가요?"
월령안의 예상대로 범씨 가문 대공자는 바로 찾아온 의도를 밝히지 않고 강호 마을의 일을 빌려 월령안을 떠보았다.
거래를 할 때, 한 걸음 양보한다면 여러 걸음 양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