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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8)화 (908/1,004)

908화 버틸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빠른 속도로 빙침을 쏘았다.

푹푹푹…….

연속 세 대였다. 동시에 비수를 움켜쥐고 흑의인을 찌르려고 뛰어갔다.

조계안은 죽을 수 없었다.

적어도 강남에서,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죽어서는 안 되었다!

챙!

푸슉!

흑의인의 칼이 조계안의 목 뒤에 거의 닿으려 하는 그때, 은침이 흑의인에게 적중했다. 그 칼은 엇나가 조계안의 가면 위를 때렸다.

퍽!

소리와 함께, 조계안 얼굴의 가면에 금이 생기더니 조계안의 얼굴에서 미끄러졌다.

조계안이 바닥에 쓰러지자 선혈이 그의 이마에서 흘러나왔다. 황제와 무척이나 닮은 얼굴이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월령안은 비수를 들고 뛰어왔다. 흑의인이 빙침의 영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비수를 휘둘러 상대의 목을 베었다.

대량의 피가 솟구치더니 월령안의 온몸을 붉게 물들였다.

선혈은 월령안의 시선을 흐릿하게 했다. 그녀는 발로 흑의인을 차 버리고 돌아서서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조계안의 숨을 확인해 보았다. 조계안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팽팽했던 월령안의 신경이 느슨해졌다. 그녀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뒤로 젖힌 채, 땅에 드러누웠다.

그녀는 기운이 다 빠졌다!

그녀는 너무 지쳤다!

월령안은 이렇게 땅에 누워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게 내버려 둔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힘겹게 조계안을 부축했다.

이때, 조계안 얼굴의 피는 이미 빗물에 씻겨 없어졌다. 황제와 몹시나 닮았으나 흉터가 더 많은 얼굴만이 드러나 있었다.

조계안의 얼굴을 본 월령안은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이 얼굴은…….

'어쩐지 조계안이 가면을 하고 다닌다 했어. 이 얼굴은 용모가 망가져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이 보게 해서는 안 돼. 어떡하지?'

그녀는 왠지 알지 말아야 할 비밀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조계안의 얼굴을 가려도 될까?'

월령안은 땅에서 둘로 갈라진 가면을 들고 보았다가 한숨을 쉬고 또 버렸다.

'됐어.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얼굴의 빗물을 훔친 월령안은 곧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들을 쫓던 자객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번이 마지막이고, 더 이상 살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살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계안 온몸의 상처 때문에라도, 그녀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 그가 비를 피하고 쉴 수 있게 해야 했다.

월령안은 자기의 체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부상당한 조계안을 업고 뛸 수 없었다. 그녀가 만약 조계안을 데려가고 싶다면 도구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푹 쉬고 난 뒤, 월령안은 비수를 들고 옆의 가시나무로 걸어가 나뭇가지 몇 대를 베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로 조계안이 누울 수 있게 엮었다. 그리고 또 긴 나뭇가지 두 대를 베어 앞쪽에 고정했다. 이러면 끌기 편했다.

월령안은 힘겹게 조계안을 위로 옮긴 뒤, 나뭇가지로 고정해 길에서 흔들려 떨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조계안을 고정한 월령안은 또 흑의인의 옆으로 가서 비수를 들고 흑의인의 옷을 잘라내고 벗겨서 전부 조계안의 몸을 덮었다.

비가 이렇게 크게 오니 조계안의 몸에 뭘 덮어도 소용이 없었지만 그녀가 몸을 숨길 곳을 찾았을 때, 이 옷들을 모두 말린다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마친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그 둘로 쪼개진 가면도 주워서 조계안 옆에 두었다.

"우리가 구원병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기를 바라요."

월령안은 나뭇가지를 몸에 걸치고 조계안을 질질 끌며, 빗길을 걸었다.

하루 꼬박 비를 맞은 월령안은 춥고 배고프고 지쳐 있었다. 신발도 언제 잃어버렸는지 맨발이어서, 발바닥이 돌에 찍혀 피로 가득했다. 걸을 때마다 피로 물든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나뭇가지를 멘 어깨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월령안에게는 고통이었고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월령안은 입술을 꽉 악물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앞으로 두어 걸음만 더 가면 쉴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월령안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도 자기가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하루 밤낮 걸은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몸은 지쳐서 한 걸음도 더 갈 수 없었지만 여전히 몸을 누일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순간, 월령안은 포기하고 싶어졌다. 누워서 아무것도 상관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저 이렇게 죽어 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포기하려는 순간, 옆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월령안은 잠깐 멈췄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사람 허리 높이의 산굴이 보였다!

풀더미에 가려진 산굴이었다.

"드디어…… 죽지는 않겠구나."

월령안은 다리가 나른해져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잠깐 꿇은 뒤, 그녀는 몸으로 땅을 지탱하여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운이 너무 없어 그러기도 힘들었다.

월령안도 억지로 버티지 않고 이렇게 꿇어앉아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들고 동굴 입구를 가린 가시덤불을 베고 또 비교적 긴 나무막대기를 잘랐다. 그리고 그것으로 살펴보니 산굴 안에는 짐승이나 뱀, 벌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월령안은 또 돌을 집어 던져 보았다.

돌은 산굴에서 한참 굴러가다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산굴이 깊지는 않은 것 같네. 별 위험은 없겠어."

산굴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월령안은 더 이상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못하고 기다시피 조계안을 끌고 굴로 기어 들어갔다.

산굴의 위치는 매우 좋아서 빗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매우 어두웠다. 오직 굴 입구에만 빛이 약간 들어와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볼 수 없었다.

월령안도 자세하게 살펴볼 인내심이 없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산굴은 사람 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허리를 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깊지 않아 나뭇가지로 엮은 틀을 다 끌고 들어갈 수 없었다. 월령안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조계안의 몸에 묶은 덤불을 베어 버리고 끌고 들어갔다.

조계안을 산굴 안에 넣은 뒤, 월령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눕고만 싶은 마음을 겨우 참고 기어 나왔다.

그리고 동굴 입구 부근에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긁어모아 동굴 입구에 펼쳐 놓았다. 이것들을 말려 저녁에 불을 피울 계획이었다.

나뭇가지와 잎을 펼친 뒤, 월령안은 잠깐 숨을 돌렸다가 또 일어나서 나뭇가지로 엮은 판을 세워 동굴 입구를 막았다.

동굴 입구가 막히자 비바람이 들어오지 못했다. 월령안은 몸이 많이 따뜻해진 감이 들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그녀는 꾸벅꾸벅, 졸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조금씩, 말을 듣지 않고…….

갑자기 월령안은 몸을 흠칫, 떨더니 머리가 순간 맑아졌다.

"안 돼! 이렇게 자면 안 돼!"

그녀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렇게 잠이 든다면 깨어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월령안은 비수를 쥐고 이를 악문 채,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칼을 따라 떨어지자 월령안은 아파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동시에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옷의 안감에서 천을 베어내 손의 상처를 감았다. 그리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젖고 무거우며 더러운 겉옷을 벗어서 물을 짠 뒤, 머리와 몸의 물기를 닦았다.

몸을 좀 닦은 뒤, 월령안은 불을 피우는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월령안은 허리춤의 염낭에서 항시 가지고 다니는 불쏘시개와 자잘한 약병, 연고 등을 꺼냈다.

염낭이 방수 작용이 있어 불쏘시개는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너무 젖어서 불을 붙일 수 없었다. 월령안은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되지 않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역시, 조계안을 만나면 잘 되는 일이 없군. 됐어, 사람을 구하는 일은 반만 할 수 없지. 먼저 조계안을 간단하게 처리해야겠어."

월령안은 불을 피우는 것을 포기하고 조계안의 옆으로 기어가 조계안을 누른 채, 그의 젖은 옷을 벗겨냈다. 그리고 옷의 물기를 짠 뒤, 조계안을 닦아 주었다.

다 닦자 월령안이 기운이 빠졌다. 그녀는 젖은 옷을 휙, 던지고 더는 버틸 수 없어 뒤로 누웠다.

달그락.

"앗."

무엇을 눌렀는지 등이 아팠다. 월령안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일어날 힘이 없어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눈에 보인 것은…….

"백, 백…… 백골?"

가깝게 다가가서야 월령안은 방금 전에 누른 것이 백골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뼈가 크고 작은 것을 보니 짐승 뼈였다.

"운도 없지."

월령안은 길게 숨을 내쉬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옆에 있는 백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땅을 짚고 이를 악문 채, 기어 일어났다.

땅을 짚은 월령안은 백골 주변의 건초를 발견했다.

월령안은 건초를 잡고 잠깐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설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월령안이 한 웅큼 쥐고 눈앞으로 가져가 보니 정말 건초였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월령안은 건초를 쥐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건초가 있으면 불을 피울 수 있었다. 그녀는 살아났다!

월령안은 건초로 바로 불을 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모닥불에 젖은 나뭇가지를 많이 걸쳐 두어 불의 열기로 말렸다. 건초가 다 타면 땔감으로 쓸 것이 없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모닥불의 빛에 의지해 산굴 안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산굴은 크지 않았으나 두 사람을 용납하기에는 충분했다. 산굴의 맨 안쪽에는 백골이 가득 있었는데 그녀에 부딪혀 흐트러진 동물 뼈였다.

월령안은 그것들이 무슨 동물의 해골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뼈의 색과 산굴의 건조함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동안 줄곧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들어오지 않았던 거로 보았을 때, 이 산굴은 매우 안전했다.

월령안은 안심했다. 그녀는 조계안을 모닥불 옆으로 옮기고 또 검은 옷 두 개를 골라 물기를 짠 뒤, 나뭇가지에 걸쳤다. 그렇게 발을 만들어 그녀와 조계안 사이를 막아 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어서 속옷만 입고 모닥불 옆에서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옷을 말렸더니 온몸이 상쾌해진 월령안은 순간 기운이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지금 매우 배가 고픈 상황이었지만…….

숨을 들이쉰 월령안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계안 옆으로 가서 조계안의 옷을 풀었다. 그리고 안쪽의 옷을 벗겨서 한 조각, 한 조각 찢은 뒤, 나뭇가지에 걸쳐서 말렸다.

조계안의 몸에는 치명상이 여러 곳 있었다!

가슴팍, 어깨, 그리고 복부에도 상처가 있었고 상처마다 매우 깊었다. 비록 지금 계속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상처는 빗물에 퍼져 허옇게 되었다. 상처 위에는 더러운 오물과 흙이 가득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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