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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7)화 (907/1,004)

907화 멍청한 계집애

처음 함정에서 흑의 살수는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령안이 설치한 함정이 너무 조촐하여 두 사람이 쇠사슬에 부딪혀 중독된 후, 다른 사람은 피했다.

이 함정을 마주친 살수들은 많이 신중해졌다. 이렇게 되자 그들의 속도는 느려졌고 월령안과 조계안은 도망칠 시간을 충분히 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수림에서 반 시진이나 넘게 걸었지만 흑의인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도 몸을 숨길 만한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은 숲에서 비틀거리다가 얼마나 여러 번 넘어졌는지 모른다. 옷에는 온통 물과 흙이어서 몹시 무거웠다. 월령안은 배고프고 지쳐서 수없이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가 멈춰도 뒤에 따라오는 살수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안전한 곳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야 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꼭 붙잡고 오기로 이를 악문 채, 앞으로 갔다.

두 사람은 또 수림에서 이각 정도 걸었지만 여전히 몸을 숨길 데를 찾지 못했다. 바로 이때, 뒤에서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따라왔어!”

조계안의 귀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들었어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계속해서 가요!”

이렇게 큰비가 내리는데도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함정을 설치하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

“너 먼저 가!”

길 가는 내내 조계안은 수없이 월령안을 떠밀고 없었으나 항상 머뭇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월령안을 떠밀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월령안을 조계안을 꽉 잡고 있어 조계안이 그를 떠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전 물소리를 들었어요. 우리가 살수들이 쫓아오기 전에 먼저 강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들을 벗어날 수 있어요.”

“물소리는 개뿔. 내가 무공을 연마해 눈과 귀가 밝은데도 듣지 못한 물소리를 네가 들었다고?”

조계안은 퉁명스럽게 비꼬고 다시 한번 월령안을 떠밀었다.

“넌 정말 비가 많은 곳으로 가면 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가려면 전하나 먼저 가세요. 아니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절 따르시든지요!”

그녀는 조계안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힘껏 조계안을 잡았다.

“제 앞에서 멋있는 척하지 마세요. 당신이 폐하의 동생만 아니었어도, 주나라의 조왕만 아니었어도 전 당신을 진작에 버렸어요!”

조계안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 날 버리라고!’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조계안을 잡아끌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둘 중 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전 반드시 전하를 떠밀어 칼을 막을 테니까요.”

“기다리마!”

조계안도 퉁명스럽게 코웃음을 쳤지만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아직 궁지에 몰린 것도 아닌데 혹시 도망에 성공한다면?

“저한테 아직 암기가 열 대, 수전이 다섯 대 있어요. 전하는 어때요?”

월령안을 걸으면서 뒤의 기척에 신경을 썼다. 뒤에서 들리는 기척이 점점 커지자 월령안은 속으로 조급해졌다.

조계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넌 도대체 암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이냐? 네가 이런데도…… 우리 황형은 널 궁에 들여보내다니. 황형도 참 무심한걸!”

이번에 그는 월령안이 허리, 머리, 손, 옷에서 끊임없이 암기를 꺼내 함정을 설치하는 것을 보았다.

길에서 월령안은 적어도 열 곳의 함정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래도 월령안에게는 암기가 남아 있었다.

‘월령안은 뭘 하려는 것이지?’

월령안은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조왕 전하! 우리는 지금 도망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앞에 있다. 어서, 그들을 막아라!”

“나…….”

월령안은 욕을 하고 조계안을 밀쳤다. 그리고 손목의 수전을 들어 뒤의 숲에서 뛰쳐나오는 흑의인을 조준했다.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수전은 흑의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흑의인은 미리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칼을 들고 수전을 물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칼로 수전을 물리치려는 순간, 은색 빛이 월령안의 손가락 틈에서 날아와 ‘푹’하고 흑의인의 눈썹 사이에 파고들었다.

“조심…….”

흑의인은 멍해졌다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의 손에 아직도 암기가 있다. 흩어져. 너희 여덟 명은 양측에서 포위하거라. 그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금방 따라온 다른 흑의인들은 신속이 흩어져 양측에서 쳐들어갔다.

이번에 그들의 목표는 월령안이었다!

흑의 살수의 목표가 변하자마자 조계안이 눈치챘다.

그는 허약한 몸을 신경 쓰지 않고 억지로 검을 뽑아서 월령안을 자기 뒤로 보호했다.

“멍청한 계집애, 얼른 도망가지 않고 뭐해!”

‘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날 떠밀어서 칼을 막을 것이라며? 이 여인이 한 말 중에 왜 사실이 한 마디도 없어!’

“이걸 가지세요!”

월령안은 빠른 속도로 수전을 풀어 조계안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조계안이 수전을 받기 전에 흑의인이 앞으로 쳐들어왔다. 조계안은 월령안을 밀치고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

조계안은 검을 들고 흑의 살수와 붙었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부딪히며 빗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귀를 찌르는 소리도 들렸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의 시선에는 모두 상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섬뜩한 빛이 가득했다. 곧이어 조계안은 흑의 살수에 의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조계안의 시선에 독기가 서리더니 이를 악물고 반격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양측의 흑의인도 쳐들어왔다.

조계안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퍼붓고 혀끝을 깨물었다. 그리고 발을 들어 앞의 흑의인을 차버렸다. 그는 힘겹게 옆에서 오는 흑의인을 상대했다. 그러나 그가 손에 든 검을 휘두르기 전에 월령안이 손을 들어 옆의 흑의 살수에게 은색 빛을 쏘았다.

은색 빛은 반짝하더니 흑의인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흑의인이 몸이 정지되더니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의 동공은 순식간에 커졌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푸슉!

흑의인이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조계안은 단칼에 흑의인을 끝장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넌 좀 쓸모가 있는걸!”

“허튼소리가 참 많으시네요!”

월령안은 다시 한번 손가락 끝의 빙침으로 한 흑의 살수를 쓰러뜨렸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손에 든 수전을 조계안에게 넘겨주었다.

“여기를 누르세요!”

“응, 너 뒤로 가!”

수전을 받은 조계안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는 엄숙해지고 음산해졌다.

월령안은 잠깐 멈칫하다가 빠른 속도로 안전지대에 갔다.

슉!

슉!

수전은 조계안의 손에 들어가자 기습해야만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암기가 아니게 되었다.

조계안의 손에서 손바닥만 한 수전은 목숨을 노리는 무기로 되고 말았다.

조계안은 연속 두 발 쏘았다. 두 화살은 모두 흑의인의 요해처를 명중했다. 그중 하나는 한 흑의인의 목을 스쳐지나가 그의 뒤에 있는 흑의인의 목에 파고들었다.

두 번 쏜 뒤, 조계안은 또다시 두 번 연속 화살을 쏘아 오른쪽에서 월령안을 습격하는 두 흑의인을 쓰러뜨렸다.

수전은 화살이 네 대밖에 없었다. 다 쏘고 난 뒤, 조계안은 수전을 한쪽에 버리고 또다시 혀끝을 악물고 검을 들어 적을 맞이했다.

‘나 조계안은 여인인 월령안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죽더라도 필요하지 않아!’

월령안은 뒤에 떨어져서 손에 비수를 움켜쥔 채, 조심스럽게 주변을 경계했다.

그녀는 줄곧 암기를 놓을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전의 나약함과 무력감 대신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미친 듯이 칼을 들고 흑의인들에게 휘둘렀다. 그 행동이 빠르고 맹렬하여 그녀는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그들을 쫓아온 흑의인은 무려 열여덟 명이었다. 일곱 명을 쓰러뜨렸으니 아직 열한 명이 남았다.

평소라면 조계안은 이런 사람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극도로 허약한 상황이라 혀를 물어뜯으면서도 혼자서 열한 명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곧, 조계안의 몸에는 상처가 여러 곳 생겼다.

선혈이 끊임없이 그의 몸에서 솟구쳐 나와 그의 옷을 빨갛게 물들였다. 줄곧 끊이지 않고 내리는 폭우도 일순간 그의 몸의 피를 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감각이 없었다. 마치 감각을 잃어버린 야수처럼 흑의인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푸슉!

흑의인의 칼이 조계안의 어깨에 떨어졌다. 조계안의 어깨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났다. 그러나 조계안은 피하지 않고 칼을 들어 상대의 머리를 베었다.

옆에서, 또 다른 흑의인이 칼을 쳐들었다. 조계안은 여전히 상대방의 칼이 그의 가슴팍의 옷을 꿰뚫고 아문 상처 위에 새 상처를 더하게 내버려 두었다.

흑의인이 그를 다치게 할 때, 그도 검을 휘둘러 흑의인을 둘로 베어버렸다.

검을 휘두르자마자 또 빠른 속도로 거두어들이고 손을 돌려 뒤에서 습격하는 흑의인을 무찔렀다.

검을 뺀 조계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앞의 흑의인을 상대했다.

폭우 속에서 조계안은 몹시 낭패스러웠다. 온몸에 피라서 언제든지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공격했다!

휘청거리면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더라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든 칼로 한 번, 또 한번, 흑의인을 향해 휘둘렀다.

흑의인들은 하나하나 쓰러져 곧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의 표정은 점차 무거워졌다.

그녀는 뚫어질 것처럼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그녀의 시선을 흐리게 했지만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조계안은 아주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감히 입을 열지도 못했다. 심지어 조계안을 놀라게 해서 조계안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까 봐 약간의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조계안의 목숨을 내건 공격으로 흑의인 두 명은 또 쓰러졌다. 지금, 마지막 남은 흑의인만이 조계안과 접전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그러나 곧이어 월령안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조계안이 기운이 빠져 버린 것이었다!

거의 눈 깜박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중에 과도기도 전혀 없었다. 전까지 잔혹하게 검을 휘두르며 적을 무찌르던 조계안이 갑자기 멈춰 섰다. 손에 든 검도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고 그도 픽, 쓰러졌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흑의인은 여전히 살기등등했다.

흑의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들어 조계안의 머리를 찌르려고 했다.

“위험해!”

월령안은 두 눈이 빨개져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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