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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6)화 (906/1,004)

906화 여기는 주나라예요

폭우가 내릴 때, 사람을 죽이다!

갑자기 나타난 흑의인들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비의 장막을 뚫고 월령안 일행을 향해 뛰어왔다.

“자객이다!”

“전하를 보호하거라!”

휘몰아치는 살기에 주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월령안을 제압하고 있던 사위는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가장 먼저 월령안을 풀어 주고 칼을 뽑은 채, 앞으로 나갔다.

빗방울이 칼날에 부딪혀 ‘챙챙’ 소리를 냈다. 빗속에 선 채로 홀딱 젖은 월령안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싸움에 강한 조계안이 중상을 입었고 그녀도 반쯤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살수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그들…… 아니, 그녀는 위험했다!

정말 이기지 못해 도망친다면 버려지는 그 사람은 반드시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방법을 대서 조계안과 함께 있어야 했다. 그들에게 자기를 버려둘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월 낭자, 우리와 함께 가시지요.”

사위는 흑의인의 수가 그들의 몇 배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맞서지 않았다. 그들은 두 사람을 남겨 밖에서 자객과 저항하게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가기 전에 월령안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객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비록 피곤하여 지친 정도는 아니었지만 춥고 배고픈 상태였다. 그들 네 명은 자객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또 폭우가 내리고 있어 신호를 보낼 수도, 구원병이 제때 도착할 리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는 것밖에 없었다!

“감사해요.”

월령안은 머뭇거리지 않고 사위와 함께 돌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조계안이 옷차림을 단정히 한 뒤, 손에 장검을 들고 온몸으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보였다.

“몇 사람이나 왔느냐?”

그는 방안에서 이미 소리를 들었다.

“서른 명은 족히 됩니다.”

사위는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리고 잠깐 멈칫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보아하니, 사사 같았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바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밖에서 이미 격투 소리가 들렸다.

격렬한 격투 소리는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소리와 뒤섞여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참 나를 대단하게 보는군.”

조계안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는 홀딱 젖은 채,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는 월령안을 보고서는 오만하게 턱을 쳐들었다.

“그녀도 데려가. 함께 간다!”

“전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빠른 걸음으로 조계안을 따라갔다. 그리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조계안에게 자기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알렸다.

밖의 살수들은 조계안을 죽이러 온 것이었으나 그녀를 놔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래도 내막을 아는 사람이었다. 살수를 보내 현재 조정의 왕, 황제의 친동생을 죽이려고 한다면 반드시 철저하게 약간의 변수도 남겨 놓지 않을 것이다.

퍽!

말하는 새에 흑의 살수가 사위의 방어선을 뚫고 방안으로 쳐들어왔다.

“전하, 어서 가세요!”

둘밖에 남지 않은 사위가 칼을 들고 앞으로 다가가 살수들을 물리치며 조계안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조계안은 지체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중상이 채 낫지 않은 탓에 나가자마자 몸이 비틀거렸다. 만약 월령안이 제대에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쓰러졌을 것이다.

조계안은 월령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마치 월령안이 왜 그를 부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가 방금 전까지 사위더러 그녀를 나무에 묶어서 비를 맞고 정신 차리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요, 전하!”

큰비가 몸을 두드리자 몹시 아팠다. 월령안의 얼굴은 온통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속눈썹의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새까만 속눈썹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만 보일 뿐이었다.

조계안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월령안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조계안의 팔을 잡고 날 듯한 속도로 산 위의 수림으로 뛰어갔다.

조계안은 고개를 돌리고 흑의 살수와 뒤엉켜 싸우고 있는 사위를 바라보았다.

사위들이 힘겹게 막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잘 아는 사람이 흑의 살수의 칼 아래에 쓰러진 것을 본 그는 살짝 벌려졌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애써 기운을 차리고 월령안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안전해진 다음에 말해도 되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끌고 빠른 걸음으로 산 위를 향해 걸어갔다. 남은 네 사위 중에서 한 명은 이미 쓰러졌다. 남은 세 사람 중, 한 명은 따라가 조계안을 보호해야 하나 흑의 살수의 실력이 나쁘지 않아 그들은 몸을 뺄 수 없었다

월령안은 뭔가를 느낀 듯, 수백 미터 걸은 뒤, 고개를 돌려 높게 소리를 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목숨으로 당신네 전하를 지킬게요!”

‘그러니 당신들은 최선을 다해 자객을 잡고 있으면 돼요. 절대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월령안은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위는 알아들었다!

사위는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놀라운 전투력을 불태웠다.

“그들을 막거라!”

“절대 그들이 전하를 쫓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월령안의 그 말을 들은 그들은 걱정할 것이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이 살수들을 잡아 두어서 월령안과 조계안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갈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었다. 또 폭우가 그들의 숨결과 흔적을 지울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었다.

사위는 목숨을 내놓은 듯이 흑의 살수와 격투를 벌였다. 분명 세 사람뿐이었지만 서른 명의 살수를 막아냈다.

세 사람의 몸에는 온통 상처였고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억수 같은 폭우라도 일순간 그들 발밑의 선혈을 씻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세 사람은 누구도 물러서는 사람 없이 굳게 이 흑의 살수들을 막아냈다. 그들은 목숨으로 조계안과 월령안에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부축한 채, 점점 빨리, 점점 급하게 걸었다. 폭우가 그녀의 시선을 흐렸지만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걸었다. 발바닥이 날카로운 데 찔려 피가 흘러도 월령안은 멈추지 않고 조계안을 꽉 잡은 채, 힘껏 앞으로 걸어갔다.

몇 번이나 조계안은 월령안에게 자기를 내버리라고, 혼자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굳센 옆모습을 보고 팔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자 조계안은 또 침묵했다.

그는 이 온기가 몹시 그리웠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흑의 살수가 쫓아오기만 한다면 월령안더러 놔달라고 하여 그가 후방을 엄호하고 월령안을 보내려고 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채, 점점 멀리 갔다. 뒤에서 들리던 격투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두 사람은 수림과 점점 가까워졌다.

월령안을 조계안을 잡아끌고 수림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공지를 찾아서 조계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생각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후추를 조계안에게 넘겨주었다.

“먼저 좀 쉬세요. 제가 가서 바깥의 흔적을 지우고 올게요.”

“넌 가도…… 된다.”

조계안은 멈칫하다가 결국 내뱉었다.

그는 월령안이 일반적인 여자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충분한 야외 생존능력이 있어 짐 덩어리인 그를 버린다면 월령안은 절대적으로 저 흑의 사사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전하, 여기는 주나라예요! 전 주나라의 백성이고요!”

폭우는 월령안의 가벼운 코웃음 소리를 지워 주었다.

‘간다고? 조계안을 버려 두고 내가 어디를 갈 수 있다는 말이야?’

월령안은 조계안을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밖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커다란 나뭇잎 두 잎을 떼고 옷을 베어 실을 꺼냈다. 그리고 나뭇잎으로 발을 감쌌다. 길에 피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한 월령안은 또 커다란 나뭇잎 두 잎을 떼어서 실을 꿴 뒤, 돌아와 공지에서 쉬고 있는 조계안에게 건네주었다.

“발에 피가 있어요. 이 나뭇잎은 뒷면에 가시가 있어 산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여 쉽게 넘어지지 않아요.”

사실, 가장 좋기는 짚신 두 켤레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예상대로면 조계안의 사위는 기껏해야 이각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미 그 정도 지난 것 같으니 그들은 최대한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둘 모두 죽을 것이다.

그녀와 조계안은 한 명은 중상을 입은 상태고 다른 한 명은 전투력이 거의 없는 연약한 여인이었다. 아무리 빨리,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흑의 살수들은 반드시 쫓아올 것이다.

일단 따라잡힌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싸우겠는가?

조계안은 지금 자기가 얼마나 약한지 알고 있었다. 그는 협조적으로 두 발을 묶은 뒤, 일어섰다.

“됐다, 가자.”

“잠시만요.”

월령안은 제자리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훔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기는 안전하지 않아!”

조계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촉했다.

“알아요.”

월령안은 조계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공에 손짓을 한 뒤, 손목의 팔찌를 풀었다. 그리고 안에서 약한 쇠사슬을 꺼내 나무에 둘렀다.

‘월령안은 함정을 설치하는 건가? 무슨 자신감으로 적이 반드시 이 방향으로 올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조계안이 월령안더러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저지하려는 순간, 월령안은 빗속을 누비며 나무 네 그루를 찾아 하산하는 방향을 제외하고 매 방향마다 약한 쇠사슬을 설치해 두었다.

이곳에는 그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 살수들은 반드시 이 방향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살수들이 이곳에 오기만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든 모두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조계안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이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생각하는데 그라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걸로도 부족했다!

쇠사슬을 설치한 뒤, 월령안은 또 몸에서 약봉지를 꺼내 약을 쇠사슬에 발랐다.

약을 바르자 쇠사슬은 이상한 푸른빛을 띠었다. 비록 잠깐 스쳐 지난 것이었지만 조계안은 결국 보고 말았다.

“너라는 여인은 정말 악독하군!”

‘약에, 독에, 월령안의 몸에는 뭐든 다 있는 건가?’

독을 바르던 월령안의 손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잘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세요.”

조계안이 황제의 친동생이 아니었다면 이 입으로 그는 백 번이고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계안보다 더 얄미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천성적으로 팔자가 좋은걸. 질투해도 소용없어.”

조계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을 흘겨보고 신속히 나머지 쇠사슬도 묶어 두었다. 그리고 남은 약봉지를 거두었다.

비가 너무 세게 내려서 그녀도 이 독약이 소용 있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녀도 이렇게 조촐한 함정으로 흑의 살수들을 모조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들의 발걸음을 잡아 두고 싶었다. 그들에게 이 길 모두 함정이라는 착각을 주어 감히 빠른 속도로 앞을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계안을 부축한 채로 수림의 깊은 곳에 들어갈 때, 월령안은 적당한 곳을 보고 멈춰서 조촐한 함정을 설치한 것이었다.

역시 그 말이었다. 그녀는 이 함정들로 흑의 살수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람들이 이 함정을 보고 경계심을 품어 감히 빠른 속도로 전진하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계안은 길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가끔 월령안을 바라볼 때도 시선은 침울하고 표정은 무거웠다.

두 사람은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빗속을 뛰어다니며 몸을 숨길 곳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위를 죽이고 그들을 쫓아오던 흑의 살수들은 이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월령안이 설치한 함정이 소용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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