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화 넌 준비가 참 철저하구나
조계안은 자꾸 눈앞의 모든 것이 진실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꼭 마치 꿈 같았다.
이 꿈은 좀 아름다웠다.
조계안의 음침한 눈동자에 온기가 드리웠다.
월령안은 조용히 불 앞에 마주 앉아 손에 나무 숟가락을 든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은 인간 세상의 평범한 기운으로 가득해 이상하게 따뜻함이 느껴졌다.
“죽 다 되었어요.”
죽을 다 끓은 월령안은 나무 그릇을 들고 자기 몫을 한 그릇 뜬 후, 호호 불어서 사람들 앞에서 먹었다.
“걱정 마세요. 독을 넣지 않았으니까요!”
팍!
월령안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조계안의 모든 환상을 깨뜨렸다. 조계안은 반쯤 뻗은 손을 억지로 거두어들였다.
그는 꿈에서라도 월령안 이 여인은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그에게 죽을 떠 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전하, 따뜻한 죽을 드시고 몸 좀 녹이세요.”
월령안이 조계안에게 죽을 떠 주지 않는다고 사위도 조계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출출해도 그는 조계안에게 죽을 떠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금방 끓은 죽은 몹시 뜨거웠다. 조계안은 아무런 준비 없이 손을 뻗다가 사위의 손과 부딪혔다. 뜨거운 죽이 손등에 떨어지자 그는 손을 재빨리 거두었다. 또 정신도 차리게 되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꿈이 아닌데 월령안 이 여인이 나한테 죽을 끓여 주다니. 월령안은 양심에 걸리는 짓을 한 게 아닐까?’
조계안은 월령안을 훑어보며 음침한 시선으로 물었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냐?”
사위가 대답했다.
“전하께 아룁니다. 전하께서는 하루 밤낮 기절해 계셨습니다.”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조계안은 사위와 말을 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월령안에게 쏠려 있었다.
월령안은 발견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뜨거운 죽을 들고 구석에 앉아 조금씩 들이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녀는 건강한 몸이 필요했다.
그녀는 병이 나서 쓰러지면 안 되었다. 배고파 쓰러져서는 더더욱 안 되었다.
“전하, 전하께서 쓰러지셨을 때…….”
사위는 감히 숨기지 못하고 월령안이 화초, 후추, 심지어 약을 꺼내 조계안을 살린 일까지 하나하나 보고했다.
조계안은 냉소를 하며 괴상야릇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니 내 목숨은 월령안이 살린 것이네!”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그릇을 내려놓고 조계안의 말에 대답했다.
“전하, 과언이십니다. 전하를 구하는 것은 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지요.”
그녀가 조계안과 함께 있다가 조계안이 죽는다면 황제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의 보호가 있더라도 그녀는 편치 못할 것이다.
“너는 실무에 밝군.”
조계안은 조롱조로 코웃음을 쳤다.
“화초, 후추, 목숨을 살리는 약까지 전부 몸에 지니고 다니고. 또 미리 종이에 감싸서 준비해 뒀다니. 월령안…… 넌 준비가 참 철저하구나!”
“강남은 습기가 강하고 비가 많아서 저희처럼 밖에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은 몸에 모두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다녀요. 사전에 준비하면 우환이 없는 법이지요.”
그녀가 뭘 해도 조계안은 의심할 것이다.
화초와 후추를 꺼낼 때, 월령안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조계안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꺼내지 않았더라도 조계안은 그녀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든, 하지 않든, 같은 결과라면 자기가 편한 대로 하는 것이 더 나았다.
“넌 이번 폭우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지? 네가 그곳에 간 것도 순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미리 시간을 계산한 것이지? 넌 이번 폭우를 이용해 너희 월씨 가문이…… 그 산골짜기에 남긴 흔적을 지우려고 했던 것이지?”
조계안은 급히 죽을 먹지 않고 월령안에게 캐물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쉬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전하, 저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에요. 일어나려는 일은 인력으로 막을 수 없어요. 하늘에서 언제 비가 내리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 죽을 마실 수가 없겠네.
조왕 전하는 좀 사람다운 짓을 할 수는 없는 건가? 할 말이 있으면 배불리 먹고 난 뒤, 물으면 안 되는 건가?’
“모른다면 잘 생각해 보거라. 여봐라…….”
조계안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방 밖을 가리키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인을 밖의 나무에 묶거라. 언제 알겠다고 하면 그때 다시 풀어 주거라!”
“전하…….”
사위는 멈칫하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조계안이 재촉했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사위는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월령안을 잡으러 일어났다.
“월 낭자, 죄송합니다.”
쿵!
월령안은 손에 든 나무 그릇을 거칠게 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시선은 갑자기 차가워졌다.
“조왕 전하! 황성사가 일을 한다고 해도 증거가 있어야지요. 조정의 대신들은 황성사가 일을 이렇게 하는 것을 알고 있나요?”
‘조계안은 내가 물러터진 홍시로 보이는 건가?’
사위는 머뭇거리며 손을 쓰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약으로 사람을 살렸고 곧 그녀가 손수 끓인 죽을 먹게 될 것인데 도저히 월령안을 거칠게 다룰 수 없었다.
“왜? 나한테 일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냐?”
조계안은 피식, 웃었다. 그는 옆에서 적당하게 식은 죽을 들고 느긋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 자세는 정말 얄미웠다.
월령안은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두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계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조왕 전하! 황성사가 재가동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폐지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아닌가요?”
‘조정의 대신들이 황제가 황성사를 재가동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고?’
하나가 있으면 두 번째가 있는 법. 그 대신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황제를 핍박해 황성사를 다시 폐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려고 해도 이번 큰비를 버틸 수 있는 운이 너한테 있는지 봐야지.”
조계안은 그릇 안의 죽을 다 먹고 사위에게 건네주었다.
“맛이 좋구나. 한 그릇 더 뜨거라.”
“네, 전하.”
사위는 조계안이 더 이상 월령안을 잡으라고 재촉하지 않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급히 조계안에게 한 그릇 떠 주었다. 사위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월령안의 편에 서서 말을 했다.
“전하, 이 죽은 월 낭자께서 친히 전하를 위해 끓이신 것입니다. 전하께서 피를 많이 흘리셔서 보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위는 이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사위의 말을 들은 조계안은 더욱 화가 났다.
“무슨 날 위해 끓이기는. 쟤는 내가 죽으면 황형에게 할 말이 없을까 봐 그런 거야.”
‘내가 괜히 감동했네. 이 여인이 날 위해 손수 음식을 끓이는 것을 보고 따뜻하고 사람다우며, 가정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잖아. 나는 하마터면 또 이 여인에게 속을 뻔했어!’
조계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가식적인 여인에 속지 마라. 그녀는 마음이라는 게 없다! 말로는 육장봉을 좋아한다면서 실은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한 거야. 육장봉을 구슬려서 자기를 위해 군자까지 기만하게 만들잖아!”
조계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나무 그릇을 쥐고 있던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월령안, 난 육장봉이 아니다. 강남의 일은 절대 널 위해 숨기지 않을 것이다. 넌 내 황형이 널 혼내 주기를 기다리거라!”
“좋아요, 기다릴게요.”
월령안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황제는 더더욱 제멋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황제가 어떻게 증거도 없이 입으로만 그녀를 혼내 주는지 보고 싶었다.
“넌 증거가 없으면 내 황형이 널 어찌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월령안이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을 보고 조계안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챘다.
나무 그릇을 쥔 조계안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마저 하얗게 될 지경이었다.
“월령안, 육장봉을 잊지 마! 넌 황형이 널 혼내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육장봉은? 육장봉이 강남에서 널 위해 한 일들을 보면 황제는 더 이상 전처럼 그를 믿을 수 없어. 알겠어?”
“저와 무슨 상관인데요?”
‘조계안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그렇게 고상한 사람이 아니야.’
“넌…… 넌 미안하지도 않아? 자책감이 들지도 않아?’
조계안은 월령안처럼 뻔뻔스럽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모르는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월령안은 우리 황형이 원래부터 육장봉이 그녀를 좋아하는 일로 육장봉에게 얼마나 불만인지 모르는 것인가? 만약 육장봉이 강남에서 수중의 권리를 이용해 월령안의 뒷수습을 해 준 것을 안다면 육장봉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더 이상 그를 쓰지 않을 거야. 황제의 마음을 잃은 육장봉은 마치 그의 생부 육속처럼 초라하게 죽을 거야…….’
“제가 왜 미안하고 자책해야 하는데요? 육장봉이 절 좋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제가 골칫덩어리라는 것을 알았을 거잖아요? 이건 육장봉의 선택이에요. 그가 애도 아니고 제가 그의 선택에 책임져야 하나요?”
그녀는 육장봉이 몰래 그녀를 위해 뒷수습을 해 주는 것을 알고 육장봉을 말리고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강남에 오기로 선택했을 때부터, 아니, 육장봉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부터 그는 이미 몸을 뺄 수 없게 되었다.
육장봉은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결국 했다. 그녀가 거절한다면 그것은 앙탈에 불과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화가 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제가 그때 육장봉에게 시집갔을 때도 육장봉은 골칫거리가 가득했어요. 그래도 전 그를 싫어하지 않았는걸요. 감정이라는 것은 서로 원하는 것이죠. 오직 저 월령안만이 희생하고 베풀고, 육장봉은 가만히 앉아서 그 성과만 누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어요?”
“난 너와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조계안은 화가 나 이미 월령안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조계안은 손에 든 나무 그릇을 으깨고는 파편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사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여인을 끌어내서 나무에 묶어 두거라. 비를 맞고 정신을 좀 차리게 하거라!”
사위는 이번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했다. 그들은 신속히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제압했다.
“월 낭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조왕 전하,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요.”
월령안은 이번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애를 쓰지 않았다. 다만 나가기 전에 차가운 시선으로 조계안을 힐끗 바라보았다.
‘난 장담해! 이번이 황성사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변경으로 돌아간 뒤, 황성사가 폐지되게 하지 않는다면 난 성을 갈 거야!’
월령안은 사위에 끌려 나갔다. 빗방울이 그녀의 몸에 떨어졌고 곧 월령안이 입은 옷은 푹 젖었다. 바람이 불자,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조계안은 고개를 돌려 이 모습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됐…….”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갑자기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손에 칼을 든 흑의인들이 갑자기 돌집 밖에 나타났다. 사위에 묶인 월령안을 보자 흑의인들은 속도를 냈다.
“한 명도 남기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