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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4)화 (904/1,004)

904화 참수

쿵!

굉음과 함께, 화물을 가득 실은 큰 화물선이 향혈해가 있는 전선과 부딪혔다.

화물선은 무겁고 거대하여 전선의 체적과 무게로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화물선에 부딪히자 향혈해가 있던 전선은 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배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화물선은 귀퉁이만 한쪽 떨어져 나간 채, 바다 위에서 흔들릴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떻게 된 일이야?”

전선 위의 사람은 부딪혀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싸우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어지러웠다.

운이 없는 사람은 갑판 위에 서 있었는데 부딪히자 바다로 떨어졌다.

“갑옷을 벗어라!”

두 배가 부딪힌 뒤, 육장봉의 명령도 전해졌다.

흉터 등 몇몇은 부딪혀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있었다. 육장봉의 명령을 듣자 비록 의아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불편함을 참고 몸에 걸친 전갑을 벗어던졌다.

대장군의 명령은 틀릴 리가 없었다!

향혈해의 가슴팍에는 상처가 있었고 손에는 또 신비궁을 들고 있었다. 두 배가 서로 부딪힐 때, 그는 신비궁을 든 채로 갑판에 나동그라지면서 신비궁이 상처에 부딪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아팠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육장봉의 명령이 들렸다. 큰일이 생겼다고 직감이 말해 주었다. 그는 기를 쓰며 기어 일어났다. 그러자 눈에 보인 것은…….

그의 화물선이 그의 전함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사람이 배신했나? 그럴 리 없어!’

향혈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거대한 화물선이 또 한 번 그들의 전선을 향해 부딪혀 오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쿵!

이미 한번 부딪힌 전선은 두 번째 충격을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부딪혀지자 배 전체가 부서졌다. 그러나 화물선은 전혀 다친 곳 없이 전선의 파편을 즈려밟으며 지나갔다.

“뛰어…… 얼른, 뛰어내려, 물에 뛰어내려!”

“살, 살려 줘!”

전함은 산산조각이 났다. 배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바다에 빠졌다. 다행히 흉터 그들은 물질을 잘하는 데다 미리 전갑까지 벗어서 바다에 떨어지자마자 금방 떠올랐다. 대장군이 명령할 필요도 없이 하나같이 의식적으로 주선을 향해 헤엄쳤다.

향혈해의 전선은 산산조각이 나서 침몰되었다!

“소주, 얼른 도망가요!”

향혈해의 호위는 그래도 충성스러운 편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향혈해를 보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향혈해와 호위는 동시에 물에 빠졌다. 호위는 애써 나무 판자를 구해 와 향혈해를 그 위로 떠밀었다.

“소주, 꼭 살아남으셔서 노주인의 대업을 이루셔야 해요!”

향혈해는 나무 판자 위에 엎드린 채, 즈려밟고 지나가는 화물선을 바라보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배! 육장봉, 그자가 내 배를 빼앗았다!”

쿵!

향혈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화물선이 호위의 전선에 돌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화물선은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두 배가 부딪힌 뒤, 동시에 뒤로 수백 미터 튕겨 나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튕겨 나간 화물선이 또다시 호위의 전선과 부딪혔다.

쿵!

두 배는 다시 한번 바다에서 부딪힌 뒤, 동시에 부서졌다.

전선은 산산조각이 났고 바다 위에서는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화물선 위의 화물도 모두 흩어져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비단?”

“세상에나. 방금 전에는…… 보석이었나?”

“세면!”

“옷감이 정말 많은데!”

화물이 바다에 떨어지면서 상자가 산산조각 나고 안에 담긴 비단 등 천들이 전부 바다에 빠졌다. 시커먼 바다가 이상하게 눈에 띠었다.

“으악, 으악…… 내 비단! 내 자수! 내 찻잎! 내 향료!”

바다 위에서 누군가 통곡하면서 필사적으로 바다 위에 흩어진 화물을 주워 담았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 위에 떨어진 화물들이 전부 값비싼 물품인 것을 보자 도망치는 것도 잊고 바다 위에 떠다니는 천을 미친 듯이 빼앗았다.

바다 위는 캄캄했다. 거대한 빗방울이 바다 위에 쏟아져 몸을 두드렸지만 재물 때문에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신차리게 하지는 못했다.

“육장봉, 죽여 버리겠어!”

향혈해는 시뻘건 두 눈을 한 채, 피를 토하려고 했다. 차가운 빗물이 그의 얼굴을 두드려도 마음속의 울화를 끄지 못했다.

육장봉은 이미 주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갑판에 서서 미친 듯이 빼앗고 있는 바다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중에는 향혈해의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데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육장봉의 시선에 미세하게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바로 그는 또 원래대로 회복하였다.

그는 덤덤하게 전갑을 벗어던지고 안에 입은 은색 장포를 드러냈다. 그리고 장검을 육사에게 던져 주고 비수를 움켜쥔 채, 바다 위의 부목들을 밟으며 마치 빛처럼 향혈해를 향해 뛰어갔다.

육장봉이 전갑을 벗어던지고 향혈해를 향해 뛰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에게로 쏠렸다.

설령 물에 잠긴 채, 미친 듯이 화물을 빼앗던 도망자들도 하나같이 행동을 멈춘 채, 멍한 시선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중에서 향혈해가 가장 멍하게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움직이자마자 그는 육장봉이 자기를 향해 뛰어오는 것을 알아챘다.

전에 육장봉의 화살에 멍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향혈해는 육장봉의 위압감에 떨고 있었다. 지금 도망쳐야 한다고 이성이 말해 주었으나 손발은 말을 듣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육장봉을 바라보며 향혈해는 마음속의 두려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 너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나는 네 목숨을 거두겠다!”

육장봉은 손에 든 비수로 향혈해에게 휘둘렀다.

“나…… 투항…….”

향혈해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더니 본능적으로 반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쳐든 손은 더 이상 휘두를 기회가 없었다.

푸슉!

육장봉은 손에 든 비수로 향혈해의 머리를 잘랐다.

그는 향혈해에게 투항할 기회도, 조계안과 황제를 만날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더더욱 향혈해가 월령안을 해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향혈해의 머리를 들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나무에 세워 두었다. 그리고 냉혹하고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솩”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이 향혈해의 수급을 든 순간, 폭우가 갑자기 멈췄다. 순간 검은 구름이 물러나고 하늘이 밝아졌다. 햇빛은 구름을 뚫고 육장봉의 몸에 쏟아졌다.

이 순간…….

파란만장한 바다 위에서 그는 유일한 빛이었다!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서 그는 유일한 초점이었다!

거칠고 사나운 바다 위에서 그는 유일한 지배자였다!

거의 반항이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항복했다.

그들은 죽고 싶지 않았다!

“전리품을 세어 보거라!”

육장봉은 주선으로 돌아가 향혈해의 머리를 육사에게 던져 주었다.

“잘 담아서 황성사에 넘기거라!”

“네, 대장군!”

육사는 높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희열이 담겨 있었다.

“대장군, 용맹하십니다!”

누가 소리를 질렀는지 배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라서 소리쳤다.

“대장군, 용맹하십니다!”

육장봉은 마치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은 낯설면서도 도도했다.

배 위의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그들이 숭배하는 대장군은 절대 작은 승리 때문에 우쭐거리지 않았다. 승리를 거두는 것은 대장군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대장군은 냉혹하고 도도하며 그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용기가 있었다.

* * *

육지의 날씨는 바다의 날씨와 달랐다.

바다의 폭우는 하루 밤낮 내린 뒤, 그쳤으나 강남 일대는 여전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전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조계안은 월령안이 준 약을 먹고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깨지도 못했다. 월령안 일행은 돌집에 갇힌 채,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사위는 조계안의 병이 다시 재발할까 두려워 폭우를 뚫고 의원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밖은 온통 물바다일 뿐이었다. 의원은커녕 산 사람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겨우 이불과 물에 떠밀려 온 현미만 찾았다.

현미를 들고 사위는 어찌할 바를 몰라 월령안이 후추를 씹는 모습을 따라서 한 웅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좀 씹다가 꿀꺽 삼키며 배를 채우려고 했다.

이런 시기에 따질 수는 없었다. 먹을 것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월령안은 관여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녀는 배가 고팠다!

후추 몇 알을 씹는 것은 괜찮으나 현미를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정말 할 수 없었다.

시중을 드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사냥꾼 방안의 도자기로 빗물을 좀 받아 끓이고 그 안에 현미를 넣어 불렸다.

쌀을 불리는 새에 또 다른 도자기에 물을 받아 끓였다. 그리고 불린 현미를 쏟아 넣고 인내심 있게 끓이면서 저었다.

곧, 도자기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현미를 생으로 삼키던 사위는 갑자기 먹던 현미가 맛이 없게 느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월령안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들의 얼굴에는 온통 ‘먹고 싶다’는 표정으로 가득했다.

월령안은 현미죽을 젓던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는 사위가 현미를 찾아온 것이라는 게 떠오르자 그래도 양보하며 말했다.

“제가 좀 많이 끓였지만 멀건 죽뿐이에요. 당신네 전하는 몸에 상처까지 있어 고기로 보충을 좀 하면 더 빨리 나을 것 같네요.”

‘내가 끓인 죽을 먹으려면 힘 좀 써야겠지? 내가 황성사의 주방 어멈도 아니고 말이야.’

“제가 밖에 나가 찾아볼게요!”

돌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림이 있었다. 거기는 지세가 높고 나무도 많아 잠기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아까 의원을 찾으러 나간 사위는 주변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주요하게 사람을 찾는 것이라 수림으로 가지 않았다.

“만약 생강을 발견한다면 파 오세요.”

월령안은 ‘사양’이라는 두 글자가 뭔지 모르는 것처럼 전혀 내외하지 않고 분부했다. 그러나 사위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답한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 일행은 비록 한참 걸었으나 여전히 성 밖에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으나 사냥감을 찾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었다.

사위는 운이 좋았다. 곧 그는 닭 한 마리와 생강 하나를 가져왔다.

월령안은 눈앞이 훤해졌다. 그녀는 닭을 깨끗이 씻고 썬 뒤, 고개를 찢어 죽에 넣었다. 또 생강을 수십 조각으로 썰어 손에 있는 후추와 함께 가루를 낸 뒤, 죽에 넣었다.

후추는 몹시 비쌌다. 사위는 월령안의 처사 방식이 대담한데다 대립하는 상황에도 여전히 그들을 배려하는 것을 보고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우리 전하께서 월 낭자를 좋아하신다 했어. 우리였어도 안 좋아할 수가 없는걸.’

곧 닭고기와 쌀이 함께 끓는 향기는 퍼졌다. 금방 현미를 여러 줌 삼켰던 사위들은 또 배고픈 감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도자기를 바라보았다.

만약 월령안과 익숙한 사이였더라면 그들은 분명 앞으로 다가가 바로 도자기를 꺼내 음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사위들이 배가 고팠을 뿐만 아니라 조계안도 몹시 배가 고팠다.

꼬박 하루 밤낮 기절해 있었던 조계안은 죽 냄새를 맡고 깨어났다. 깨어나서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배고파!”

“전하, 깨셨어요?”

사위들은 호시탐탐, 월령안 수중의 도자기를 노리는 중이었다. 조계안이 깨어나 두어 번 부르고 나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조계안 옆으로 다가가 살뜰하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못 들은 척했다. 그는 반쯤 기대앉아서 수증기 속에서 나무 숟가락을 들고 새하얀 손목을 드러낸 채, 죽을 가볍게 젓고 있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멍해졌다.

“월령안?”

‘월령안이 직접 날 위해 음식을 해 주는 건가?’

불빛과 수증기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광막(光幕)처럼 월령안의 모습을 부드럽게 했다. 마치 몽환적인 빛을 감싼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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