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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1)화 (901/1,004)

901화 전하, 제발 깨어나세요

그리고 비가 이렇게 크게 내리는데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이 무슨 봉변을 당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자기의 목숨을 생각해서도 그녀는 제멋대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조계안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처음 왔다. 그러나 조계안과 다른 점은 그녀가 오기 전에 날짜를 잘 골랐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형도를 살펴보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부러 폭우가 내리는 날을 골라서 온 것이었다. 다만 천기각에서 날씨를 살피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느 날에 비가 올지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했다. 그는 이 삼사 일 안에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만 했다.

혹시나 해서 월령안은 오기 전에 미리 사람을 시켜 주변에 비를 피할 곳이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이번 폭우는 월령안이 예상했던 것보다 사흘 늦었다. 만약 조계안에게 잡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진작에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폭우는 무덤을 깨끗이 씻어 버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월령안은 이렇게 큰비는 충분히 모든 증거를 깨끗이 씻어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월령안은 이곳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비록 지도를 외워 두었지만 밖은 새까만데다 비까지 세게 내려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도중에 두 번이나 잘못 갔지만 그것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길을 잘못 가도 월령안은 여전히 꿋꿋하게 앞으로 자신 있게 걸어갔다. 아무튼 사위조차도 월령안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큰비를 무릅쓰고 반 시진 넘게 걸은 일행은 드디어 지세가 좀 높은 산비탈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한 월령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지도를 보고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는 그녀가 맞게 왔다는 것을 뜻했다.

“앞쪽에 사냥하는 사람들의 돌집이 있는데 들어가 비를 피할 수 있어요. 우리 가서 보죠.”

빗속에서 한 시진 넘게 걸은 월령안은 춥고 지쳐 있었다. 그녀는 자기를 따르는 사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기를 북돋기 위해 월령안은 멈춰 서서 특별히 알려 주었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언제 멈출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걷다 보면 자신감을 잃기 쉬웠다.

“좋아요.”

사위들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상냥해졌다.

폭우 속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반 시진이나 걸었지만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는 꼴이었다. 그들은 월령안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목표가 생겼다. 그들은 곧 숨을 돌릴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월령안이 말한 돌집은 이 산비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일행이 일각 동안 걷자 폭우 속에 꿋꿋이 자리잡고 있는 돌집이 보였다.

“월 가주, 우리 전하께서 열이 나시니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돌집에 도착하자 사위 우두머리는 월령안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급히 한마디 한 뒤, 조계안을 업은 채, 돌집으로 뛰어갔다. 다른 몇몇 사위들도 좌우를 지키며 함께 뛰어갔다.

그들 일행은 월령안을 홀로 두었다.

월령안은 제자리에 앉아 그녀를 버리고 간 사위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해졌다.

‘다 썼다고 버리는 건가? 이 사람들은 내가 도망치지 못한다고 확신하는 건가? 너무하잖아!’

월령안은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의 빗물을 훔치고 또다시 애써 따라갔다.

천기각의 천문 관측자가 말하기로 이번 폭우는 적어도 이틀 연속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곳을 잘 알지 못했다. 제멋대로 도망치다가 홍수나 산사태를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연재해 앞에서 개인의 힘이 얼마나 하찮은지.

목숨을 생각해서라도 그녀는 비굴하게 따라갔다.

늦게 도착하니 늦게 간 좋은 점도 있었다. 월령안이 돌집으로 들어갔을 때, 사위는 이미 돌집을 간단하게 거두고 구석에 놓은 마른 나뭇가지로 불을 지폈다.

이때, 밖에서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기승을 부렸으나 방안에서는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병이 날 것 같았다.

젖은 옷이 몸에 감겨져 그 무거움에 그녀는 다리를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머리가 흐리멍덩한 것이 그녀는 제자리에 누워 있고 싶었다.

이것들은 모두 감기 증상이었다.

월령안은 억지로 두어 걸음 더 간 뒤, 사위와 사양하지 않고 모닥불 옆의 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곳에는 그녀의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아파서도, 쓰러져서도 안 되었다.

“뜨거운 물이나…… 먹을 것 좀 없는지 찾아보세요.”

월령안은 입술을 달달 떨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은 찾지 못했는데 현미와 도자기는 발견했어요.”

사위의 몸은 월령안보다 훨씬 강했다. 폭우 속에서 한 시진 넘게 있어도 아주 기운이 넘쳤다. 다만 몰골이 약간 초라할 뿐이었다.

“물을 좀 받아 오세요. 제 배낭 안에 화초(驱寒)와 후추가 있어요. 물로 끓여 추위를 쫓을 수 있어요.”

화초와 후추는 월령안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닌 것이었다. 가능한 한, 그녀는 조계안 앞에서 화초와 후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조계안은 여우였다. 만약 그녀가 화초와 후추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녀가 이번 폭우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정말 다른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폭우 속에서 길을 갈 때만 해도 그나마 괜찮았다. 그녀는 비록 괴로웠으나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불을 쬐니 겉은 덥고 속은 차고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자 한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머리는 어지러워 버티기 힘들었다. 만약 제때 추위를 쫓지 못한다면 그녀는 분명 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사위가 물을 받아오기 전에 월령안은 몇 알을 꺼내 입에 물었다.

코를 찌르는 매운맛이 입안 가득 풍기자 월령안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입안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너무 아리고 매워서 혀가 감각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나 효과도 아주 좋았다. 흐리멍덩하던 머리가 이 자극에 갑자기 맑아졌다. 목청도 화끈거렸고 위에서도 온기가 느껴졌다. 뼈를 파고들던 한기도 점차 흩어졌다.

이때, 월령안은 미리 준비한 것을 더없이 다행으로 여겼다. 그게 아니면 이번에 어떤 고생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사위는 월령안이 바로 씹어 먹는 것을 보고 따라서 씹었다. 결국 화초, 후추 물을 한 그릇만 끓여서 조계안에게 먹였다.

고생을 한 것으로 치자면 조계안은 이번에 아주 큰 고생을 했다.

조계안의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사위는 조계안 몸의 젖은 옷을 풀었다. 그러자 빗물에 푹 젖어 허옇게 된 상처가 드러났다.

상처는 빗물에 퍼져 부어 있었다. 온몸도 창백한 것이 약간의 온기도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의 움직임이 없었더라면 월령안은 조계안이 죽은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을 것이다.

사위는 몸에 약을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조계안의 상처는 외상약만 조금 뿌리는 정도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계안은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났다. 온몸이 뻘겋고 떨리며 학질에 걸렸다. 입으로는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사위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계안에게 끊임없이 화초와 후추를 넣고 우린 물을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열이 심하게 끓어 뱉어내는 것이 삼킨 것보다 많았다. 그리고 호흡도 점차 약해졌다.

사위는 급해져서 눈물이 나왔다. 끊임없이 조계안의 귓가에 울부짖었다.

“전하, 얼른 깨어나세요! 잠드시면 안 됩니다!”

“전하, 제발 깨어나세요!”

“전하, 절대 아무 일도 생기시면 안 됩니다.”

“전하…….”

사위는 한번,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조계안이 감각을 잃을 정도로 열이 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월령안은 불 옆에 웅크리고 앉아 옷이 거의 말라 가고 있었다. 조계안이 열이 심하게 나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약을 숨긴 팔찌를 꺼내 사위에게 던져 주었다.

“안에 약 한 알이 있어요. 그에게 먹이세요.”

이 약은 손불사가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비록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지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닌 이상, 마지막 숨을 지키는 데는 소용이 있었다.

이 약은 그녀도 세 알밖에 없었다. 한 알은 바다에 가는 육장봉에게 주었고 다른 한 알은 장평이를 청주로 호송하는 추수에게 주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이 약을 그녀는 원래 남겨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계안의 상황은 그녀가 이 약을 남길 수도, 남겨서도 안 되게 만들었다.

황제가 조계안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약 조계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사위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그녀도 끝이 좋지 못할 것이다.

팔찌가 날아오자 사위는 본능적으로 받았다가 하마터면 던질 뻔했다. 그러나 월령안의 말을 듣고 그는 순순히 손을 거두었다.

“월 가주, 감사합니다. 이 일을 제가 반드시 사실대로 전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월령안은 얼굴을 홱, 돌렸다. 조계안을 보기 싫어졌다.

‘고집부리는 멍청이 같으니라고. 아까운 내 약만 낭비했잖아!’

손불사가 월령안에게 준 목숨 살리는 약은 확실히 소용이 있었다. 약을 먹자마자 조계안은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 또 몸을 떨거나 학질을 하지도 않았다. 비록 열이 내리지는 않았으나 심장도 훨씬 힘차게 뛰었다. 일시적으로 목숨은 건진 셈이었다.

날이 밝을 무렵, 조계안은 비록 깨어나지 못했으나 열은 내렸다.

“전하를 잘 모시거라. 내가 나가서 먹을 것 좀 찾아오겠다.”

밤새 내린 폭우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사위 우두머리는 조계안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고는 비를 뚫고 먹을 것을 찾으러 떠났다.

월령안은 잠깐 스쳐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밖의 폭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에 있는 육장봉은 이 폭우를 맞이했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큰 폭우는 평지에서 맞이해도 안전하지 못한데 바다는 더 말할 것도 없지. 다만 육장봉이 있는 바다는 날씨가 화창하고 비바람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것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이다.

육장봉은 바다에서 이 폭풍우를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하필이면 비바람이 가장 강할 때, 향혈해의 무리를 만났다.

* * *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흔적이 없었다. 방향을 알고 있다 해도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장봉은 선대를 거느리고 바다에서 대엿새 동안 길을 갔으나 향혈해 선대의 코빼기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한참 더 찾아야 할 줄 알았으나 폭우가 내리는 날에 향혈해 일행을 따라잡았다.

따라잡았으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 설령 지금 날씨가 열악하여 격투를 벌이기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전속으로 추격한다. 절대 그들의 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종씨 일행은 향혈해의 선대를 보자 눈에 불을 켰다.

벼슬을 하고 작위를 올리며, 조상을 빛내고 자손을 행복하게 하는 데는 향혈해에게 달렸다!

향혈해는 이번에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지지하는 강남 호족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세 좋게 서른여 개의 배로 나누어 탔는데 얼핏 보기에는 위풍당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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