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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00)화 (900/1,004)

900화 절 따르세요!

‘분명 내가 곱사등이 요승의 손에 패배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명 곱사등이 요승이 있는 한, 내가 그 무덤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나더러 조사하라는 거지?’

“저도 여쭙고 싶네요. 조왕 전하,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

‘난 당연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런데 내가 왜 시인해야 하지?’

월령안은 고개를 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강남 양식 창고의 이상함은 제가 발견했어요! 육장봉이 바다로 가서 비적을 토벌했을 때 쓴 사람은 제 사람들이에요! 전하께서 조방 방주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직접 미끼로 되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조왕 전하께서는 근거도 없는 의심으로 저를 가두고 계시잖아요. 조왕 전하,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

“너는 해적을 키우고 강남 수군 군영에 불을 질러 놓고 당당하다는 것이냐?”

조계안은 거세게 책상을 두드렸다. 힘을 과하게 쓴 탓에 상처가 벌어졌다. 조계안은 가슴팍을 움켜잡고 신음을 흘렸다.

기침 소리와 함께 조계안은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으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릿한 것을 삼켰다.

‘얼어 죽을 곱사등이 요승 같으니라고! 그 늙은 괴물만 아니었다면 난 분명 월씨 가문의 내막을 조사해냈을 테고 월씨 가문이 가장 믿는 구석을 없앴을 텐데.’

“증거는요?”

월령안의 시선은 조계안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차가운 목소리로 비꼬았다.

“증거도 없으면서 저한테 죄명을 뒤집어씌우시다니요. 왜요? 황성사는 해적이 되기로 한 건가요? 공로가 있는 사람을 이따위로 대하는 건가요?”

‘조계안이 크게 상해 보이니 두어 번 더 화나게 하면 그가 뒤로 넘어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왕 전하께서는 혹시 육장봉이 바다로 비적을 토벌하러 갔으니 제가 뒷배가 없어졌다고 마음껏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월령안은 난폭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조계안을 발로 차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이 의자는 정말 너무 불편했다. 특히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으니 그녀의 허리는 곧 자기의 것이 아니게 될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여기 앉아 있다가는 허리가 망가질 것 같았다.

“네가 육장봉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난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전에 육장봉이 왜 너의 사람만 데리고 바다로 가서 향혈해를 잡는지 궁금했었거든. 또 내가 어떻게 장담하든 향혈해가 사간 그 양식을 조정에 바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게 이상했지.”

“난 줄곧 육장봉은 조정의 문관들을 믿지 못해 그런다고 여겼어. 그들이 그 양식을 다른 데 쓸까 봐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보니…… 그는 널 위해 뒤처리를 해 주는 것이었어.”

조계안은 말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점점 더 화가 났다.

“너희 둘 대단하구나. 감히 내 코앞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너희들은 나를 멍청이로 여기는 것이냐!”

조계안은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책상을 꾹 눌러서야 앞으로 뛰쳐나가 월령안의 멱살을 잡은 채, 캐묻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이 둘은 너무하잖아! 감히 손을 잡고 나를 놀리다니! 내가 생각해냈기에 망정이지 생각하지 못했더라면 이 둘은 이렇게 날 속일 생각이었던 건가?

월령안은 그렇다고 쳐.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니까. 내가 월령안을 조사한 게 먼저여서 월령안을 뭐라고 할 수 없다지만 육장봉은? 육장봉은 너무 실망스러운데! 이게 무슨 얼어 죽을 형제야. 여인 하나를 위해 나까지도 속이다니. 심지어 날 이용까지 하다니!’

그는 전에 육장봉이 강경하게 강남 총독을 잡아들이고 또 풀어 주어 아무 이유 없이 수사를 어렵게 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육장봉은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일부러 강남의 관가를 어지럽혀 강남 총독의 경계를 불러일으켜 그를 잡아 두려는 속셈이었다.

“월령안! 육장봉!”

조계안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너희 둘…….”

조계안은 지나치게 화가 난 탓에 심장을 자극해 입을 벌리고 피를 왈칵, 토했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에 쓰러졌다.

“전하!”

“주인님!”

조계안이 이렇게 쓰러지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사위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미처 부축하지 못했다. 조계안이 책상에 부딪혀서야 그들은 다급히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놀라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아직까지도 조계안이 그들 앞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월령안도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로 있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조계안이 많이 다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계안을 화나게 해서 기절시키고 싶기도 했다. 그런다면 조계안은 끝도 없이 캐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만 했을 뿐, 정말 조계안의 화를 돋우어 뒤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조계안이 어떤 인물인가?

황성사의 우두머리이고 노인이 훈련시킨 암황이었다. 이런 사람은 육장봉보다 못한 구석이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이 가는 길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놀란 것이고 조계안이 화나서 쓰러진 것을 보자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계안은 그녀를 심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을 오래 끌수록 흔적을 더욱 깨끗이 지울 수 있었다. 조계안은 더더욱 그녀에게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관문은 통과한 셈이었다!

* * *

조계안은 이번에 원기를 크게 다쳤다.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깨날 수 있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밖이 어둑어둑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데다가 공기 중에는 무거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언제든지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조계안이 깨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사위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사위더러 그의 영패를 들고 군대를 움직여 무덤을 파내게 했다. 그러나 그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비가 내렸다.

쏴아아…….

마치 하늘이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하는 사이에 폭우가 내렸다.

사위는 영패를 들고 돌아섰다가 이 장면을 보고 또 묵묵히 돌아섰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전하, 이래도…… 가야 하나요?”

이렇게 큰비가 내릴 때는 산에 들어가는 것조차 위험했다. 만약 산이 무너진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야 했다.

“그녀는 운이 참 좋구나! 비가 그친 뒤에 다시 얘기하자!”

조계안은 화가 나 또 피를 토할 뻔했다.

“내 눈앞에서 그녀가 어떻게 하늘을 뒤엎겠느냐!”

사위에 의해 방에 갇혀 있던 월령안은 옆방에서 들리는 조계안의 화난 고함 소리를 듣자 밖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하늘을 뒤엎을 수는 없었지만 땅을 뒤엎을 수는 있었다!

* * *

폭우는 갈수록 심해졌고 집 밖은 캄캄해졌다. 비의 장막이 이어져서 시야를 가렸다. 산으로 들어가 무덤을 파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 더없이 힘들었다. 조계안이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큰소리가 들리더니 산 홍수가 터졌다!

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의 산이 무너지면서 홍수가 쏟아져 별장으로 쳐들어왔다. 조계안 일행은 별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계안은 월령안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월령안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사위가 그녀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녀는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한 뒤였다. 미리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잘 지켜보도록 해라!”

조계안은 포악하게 월령안을 노려보고 빗속으로 들어갔다.

월령안은 어깨를 으쓱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사위의 보호를 받으며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폭우가 내리는 밤길은 위험하기도 하고 걷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무너진 별장의 지세도 높지 않아 바로 홍수에 잠겼다. 그들은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조계안이 앞에서 길을 터 주는 데다 뒤에는 사위가 보호하고 있어 월령안은 비록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따라가고 있어도 안전한 편이었다.

폭우는 그칠 줄 몰랐다. 그들이 있는 곳은 또 외딴 데다가 가파르기까지 하여 일행은 반 시진 넘어 걸어도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했다. 도리어 도처에 물이 넘쳐 갈수록 힘들어졌다.

조계안은 몸에 상처가 있었다. 비에 젖자 상처가 또 벌어졌다. 피는 빗물을 타고 그의 발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는 비틀거리는 것이 언제든지 넘어질 것만 같았다.

물론, 이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월령안은 조계안이 넘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조계안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었다!

조계안이 가는 방향이라면 그들은 밤을 새워도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은 비가 내리는 밤에 조계안과 함께 빗속에서 헛걸음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폭우를 뚫고 조계안을 쫓아간 뒤, 높게 소리를 질렀다.

“사위더러 전하를 업으라고 하세요. 제가 길을 안내할게요!”

“꺼져!”

빗줄기가 너무 세서 온몸에 열이 나 머리가 흐리멍덩한 조계안은 월령안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듣지 못했다. 그는 힘껏 월령안을 밀치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월령안과 육장봉이 손잡고 그를 놀린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금 월령안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월령안을 두드려 패지 않은 것만 봐도 월령안이 여인인 것을 헤아린 것이었다.

물론, 그는 절대 가슴이 아파서 그러지 못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최일처럼 체면 때문에 여인에게 손을 대지 않는 가식덩어리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고 강하고 약하다는 구분만 있을 뿐이었다.

“고집부리기는. 자기가 어떤 몰골인지 스스로 모르는 것인가?”

월령안은 조계안과 티격태격하지 않고 바로 암기를 쏘아 조계안을 쓰러뜨렸다. 지금은 허약하기 그지없는 조계안은 월령안의 행동을 발견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내키지 않는 대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의 전하를 업고 절 따르세요!”

사위가 손을 쓰기 전에 월령안은 조계안을 떠밀었다.

“무엄하다!”

조계안을 부축하고 있던 사위를 제외하고 다른 사위들은 바로 칼을 뽑고 월령안을 포위했다.

“전 더 무엄할 수도 있어요!”

비가 내리는 밤, 살수들, 포위당한 여인 하나.

어찌 보아도 월령안은 열세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기세가 강했으며 사위들의 협박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당신들의 전하가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면 절 따르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자기를 향한 사위들의 칼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칼을 들고 오른쪽을 막고 있던 사위는 월령안이 걸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칼을 잡은 손도 움츠러들었다. 월령안이 다칠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월령안의 기세에 놀라서인지 알 수 없었다.

월령안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사위에게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뭐 하세요? 어서 따라오지 않고! 당신네 전하의 몸에는 상처가 있어요. 비가 이렇게 거세게 내리고 있는 상황에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네 전하는 죽지 않으면 열 때문에 바보로 될 거예요.”

“갈까요?”

사위는 조계안을 부축하고 있는 사위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사위 우두머리는 조계안의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상처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따라가! 잘 지켜봐. 그녀는 전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빗소리가 너무 커서 월령안은 사위 우두머리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하는지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월령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뛰어봤자 벼룩이었다. 그녀가 지금 도망친다고 한들 어떡하리?

조계안이 그녀를 잡으려면 말 한마디로 해결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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