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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99)화 (899/1,004)

899화 조계안의 심문

“선배, 이만 맡길게요.”

말을 마치자 검은 그림자가 날아왔다.

슉…….

소리와 함께, 세 장로의 눈앞에 뿌연 피 안개가 끼더니 그들의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 안개로 되었다.

“아…… 안 돼…….”

“가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우리는 평생 자유 없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잘못인가요?”

세 장로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월령안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덤덤한 얼굴로 나갔다.

자유로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도 평생 황실에 지배된 채, 자유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를 얻는 대가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어야 했다.

쿵……. 쿵…….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뒤에 있던 오보는 조금씩 무너졌다.

“안 돼…… 안 돼…….”

“살려 줘!”

“구해 줘!”

오보 안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오보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비명 소리는 오보가 무너지는 속도에 따르지 못했다. 월령안이 오보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는 사람 한 줄이 서 있었다.

조계안을 위수로 한 황성사의 사위들이었다!

* * *

월령안은 조계안의 사람들에게 연행되어 연속 사흘 동안 갇혀 지냈다.

이 사흘간 누구도 월령안을 심문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것 말고는 별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이것이 폭풍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계안이 월씨 가문의 오보 밖에 나타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를 따라간 것이 아니면 오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흘 동안, 조계안의 사람이 그녀를 심문하지 않은 것은 십중팔구는 손에 든 것이 부족해 그녀의 입을 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속을까 봐 아예 그녀를 이곳에 가둔 채, 증거를 찾아와 다시 심문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조계안은 실망할 것이다.

오보는 이미 사라졌고 천궁각 각주를 모시지 않는 이상, 단기간 안에 조계안은 절대로 오보의 잔해를 파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늦는다면 더더욱 파내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셋째 날 저녁, 조계안은 별장에 나타나 사위더러 그녀를 심문하게 했다.

가면을 사이에 두고 있어 월령안은 조계안의 안색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짙은 피비린내를 맡았을 뿐이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매우 심하게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눈을 내리깔고 시선에 드리운 깊은 생각을 숨겼다. 그녀는 조용히 중앙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계안이 그녀를 위해 마련한 의자는 범인을 심문하는 전용 의자였다. 이 의자는 곳곳이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조계안은 또 사위를 시켜 그녀의 두 손을 뒤로 가져가 의자 등받이에 묵게 하여 그녀가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앉아 있게 했다.

잠시뿐이었지만 월령안은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에서 통증을 느꼈다. 다리도 구부려져서 괴로웠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조계안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월령안도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사흘의 시간 동안, 조계안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도 말할 것을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녀의 말을 조계안이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조계안이 트집을 잡을 수 없고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를 내놓을 수 없기만 하면 되었다.

월령안의 인내심은 아주 좋았다. 그녀는 급히 입을 열지 않았다. 조계안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의 맞은편에 털털하게 앉아 책상 위에 발을 걸치고 음침한 시선으로 월령안을 꼿꼿하게 바라보았다.

월령안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조계안의 이런 시선에 거리낄 것이 없어도 속이 허해지고 불안해질 것이다.

월령안을 한참 지켜보았지만 그녀가 자기의 기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보자 조계안은 내키지 않아도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월령안, 사흘 전에 네가 육삼을 보내 버리고 산골짜기 아래에 나타난 것은 무슨 영문이냐?”

“저는 육삼을 보내 버린 적이 없어요. 저는 다만 육삼의 신분을 빌려 그더러…… 소금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월령안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조왕 전하께서 아시다시피 다른 사람들은 그 소금을 청주로, 서남으로 운반할 수 없어요. 오직 육삼 장군만이 가능하지요.”

월령안이 말한 소금은 당연히 관염(官鹽)이 아니라 밀매한 사염(私鹽)이었다.

조방의 가장 큰 사업이 바로 소금 밀매였다. 지금 조방이 시끄럽게 들끓어 소금을 운반할 수 없었다. 이런 시기에 소금을 밀매한다면 큰돈을 버는 것이었다.

물론, 월령안의 이번 행위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소금을 서남으로 운반한 것은 그녀와 서남 양씨 일가의 합작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염을 운반하기 위해서였다는 이 이유는 정말 괜찮아. 그런데 넌……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해?”

조계안은 책상에 걸친 발을 거두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책상을 두드렸다.

그의 동작으로 옆에 놓였던 촛불이 일렁거리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 그 불빛은 조계안의 가면에 드리워지자 그의 시뻘건 눈동자와 어우러져 더욱 음산하고 무서워 보이게 했다.

이 사흘 동안, 조계안은 잘 지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월령안은 눈까풀을 살짝 감고 새카만 속눈썹을 살짝 떨면서 반짝거리는 눈을 숨겼다.

“사실이 이래요. 전하께서 못 믿으셔도 전 하는 수 없어요.”

“흥…….”

조계안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연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넌 왜 산골짜기에서 나타난 것이냐?”

“무덤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월씨 가문 오보에서 나왔을 때, 조계안이 사위를 데리고 나타난 것을 보고 월령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녀는 월씨 가문의 오보는 이미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배신자들을 묻은 무덤이 있었다.

“그 무덤에는 뭐가 있느냐?”

조계안은 날카롭게 캐물었다.

“입구는 어디 있느냐? 너는 들어갔었지?”

“조왕 전하께서는 그 무덤을 파셨을 테니 안에 뭐가 있는지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무덤을 파지 않았더라면 조계안에게 피비린내가 날 리도 없었다.

조계안의 무공은 약하지 않았다. 조계안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문제를 바꾸지. 무덤을 지키는 그 사람은 누구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너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조계안은 그 무덤을 팠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계속해서 파려고 하는데 무공이 아주 높은 곱사등이 스님을 만났다.

그의 반응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요승 주오칠(朱五七)입니다.”

조계안 앞에서 월령안은 쉽게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후환을 남겨 놓는다는 것이고 언젠가 들통난다는 것을 뜻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이 조사해낼 수 있는 것은 전혀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고했다.

하는 수 없었다.

황실은 월씨 가문을 믿지 않았다. 황제가 그녀를 믿지 않으니 조계안도 당연히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조계안에게 들킬 거짓말을 하여 위태롭다 못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그녀와 황제 사이의 믿음을 깨뜨릴 수 없었다.

“곱사등이 요승 주오칠? 그가 어떻게 너희 월씨 가문을 위해 무덤을 지켜 주고 있느냐?”

주나라 정보를 파악하는 암황으로서 곱사등이 요승의 이름은 조계안도 알고 있었다. 다만 만난 적이 없었다.

자기가 곱사등이 요승의 손에 졌다는 것을 알자 조계안은 바로 침착해졌다.

그는 억울하게 진 것이 아니었다.

“그 무덤 아래에는 한빙옥수(寒冰玉髓)가 있는데 그의 아내는 한빙옥수로 몸 안의 사공을 억제해야 해요.”

조계안은 깊이 파지 못했다. 만약 더 깊게 판다면 그곳의 특이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때, 월씨 가문에서 그곳을 골라 오보를 지은 것도 한빙옥수 때문이었다.

한빙옥수가 있다면 양식을 백 년 동안 썩지 않게 보존할 수 있었다. 난세에서도 오보에 기거한다면 백 년 머문다 해도 그들 월씨 가문은 굶어 죽을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월씨 가문은 결국 난세를 피하지 못했다.

“겨우 그게 이유냐?”

조계안은 월령안이 그를 속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이 그한테 숨기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었다.

“이것 말고 곱사등이 요승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가 또 뭐가 있겠어요?”

월령안이 반문했다.

“너희 월씨 가문에서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며 곱사등이 요승더러 지키라고 한 것이 겨우 빈 무덤이라는 말이냐? 월령안, 넌 내가 세 살배기 어린애로 보이는 것이냐? 내가 이런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동안 그는 줄곧 월씨 가문에서 정탐꾼과 사사들을 키우는 곳을 조사했다. 바다 위의 해적이 남긴 단서로 그는 어렵사리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강남 관가도 모른 척한 채, 다급히 왔지만 결국 한발 늦고 말았다.

그 무덤 아래에 뭔가가 있다고 직감이 말해 주었지만 곱사등이 요승이 있으니 그는 그곳을 더 파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는 곱사등이 요승을 이길 수 없었다.

대군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월령안의 입에서 단서를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조왕 전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월씨 가문은 곱사등이 요승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곳에 그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지키고 있는 거지요.”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제가 이번에 간 것은 요승 선배가 죽었나 보기 위해서였어요. 만약 그가 죽었다면 우리 월씨 가문의 후손을 그곳에 묻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거기에는 한빙옥수가 있어서 시신을 백 년 보존해도 상하지 않죠.”

월령안은 조계안이 쉽사리 자기의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계안이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를 조사해내지 못한다면 의심해도 소용없었다.

황제도 일만 생기면 그녀를 의심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계속해서 꾸며내 봐!”

조계안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조롱하는 의미가 다분했다.

“조왕 전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스스로 알아보세요. 제가 여기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손을 쓰겠어요?”

그녀는 그곳을 이미 곱사등이 요승에게 줘 버렸다. 조계안이 재주가 있다면 곱사등이 요승과 대적하면 될 것이다.

삼십 년 전, 무림 전체의 힘을 모아서도 백발요녀와 곱사등이 요승 부부를 죽이지 못했다. 그녀는 조계안이 그 부부와 대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월! 령! 안!”

조계안은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탁자를 지탱했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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