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97)화 (897/1,004)

897화 백발요녀(白發妖女)

삼장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오보예요. 밖의 곱사등이 중을 잊지 말라고요. 그녀가 만약 오보에서 죽는다면 우리는 모두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대장로는 끈질기게 물었다.

“다른 사람의 칼이 우리 머리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는 건가?”

“그것 말고 다른 수가 있어요? 애초에 제가 말했었잖아요. 그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고, 그 사람들의 허튼소리에 넘어가지 말라고요. 그런데 형님들은 어떻게 하셨어요?”

“애초에 너도 허락한 거잖아? 왜 지금은 우리 둘만의 잘못이 된 것인데?”

“전 형님이 잘못했다고 한 적 없어요. 하지만 형님이 신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어떻게 찾아왔겠어요?”

“이게 나 혼자만의…….”

이장로는 두 사람이 이런 시기에 다투는 것을 보고 난폭하게 말을 잘랐다.

“됐어요, 다투지 마세요! 그녀가 뭘 바라고 왔는지 우리는 아직 모르잖아요.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먼저 겁을 먹지 마세요.”

“우리가 지레 겁을 먹은 것이기를 바랄 뿐이지.”

대장로와 삼장로는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서로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바보가 아니었다. 월씨 가문의 가주가 이 시기에 뭘 바라고 왔는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들도 갖은 수단을 동원해 월령안 신변의 호위를 매수하여 그녀가 오보로 들어오기 전에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보 밖에서 죽으면 그들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 * *

오보에는 본채가 있었다. 가주만이 묵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안에는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보의 다른 사람들은 세 장로를 포함해 들어갈 수 없었다.

회색 옷의 노인은 월령안을 문 입구로 데려갔으나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들어갈 자격도 없었다.

월령안이 문을 밀고 들어가자 한 노부인이 걸어와 문을 닫고 회색 옷 노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차단했다.

“큰아가씨!”

노부인이 입은 파란색 옷은 씻어서 색이 바래졌고 서리가 내려앉은 듯 희끗희끗한 머리와 몹시 노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그녀의 두 눈에는 정기가 넘쳤다.

“내가 어렸을 때, 널 본 적이 있다.”

월령안의 머릿속에는 십 년 전, 청주의 월씨 저택에서 이 노부인과 어깨를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비록 한눈이었지만 월령안은 이 노부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바라보는 이 노부인의 눈에는 혐오와 살기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월씨 저택에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노부인은 유일하게 증오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그때의 그녀는 살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겁을 먹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돌아간 뒤, 그녀는 병으로 몸져누웠다.

“그때, 소인은 큰아가씨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노부인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월령안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인이 맞았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아가씨를 죽였다면 월씨 가문은 전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월씨 가문의 전멸은 나와 상관이 없어. 월씨 가문은 모든 월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망한 것이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그녀는 이 때문에 자책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고, 자기가 태어나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모험하게 만들고 월씨 가문이 전멸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오직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만약 아가씨가 없었다면 뒤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가씨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가씨가 태어나서 월씨 가문이 전멸한 것입니다.”

파란색 옷을 입은 노부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십 년 전처럼 증오로 가득했고 살기를 띠고 있었다.

월령안은 상대를 힐끗 보고 조소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모든 잘못을 고작 여덟 살 된 여자애에게 떠밀면 너희들이 월씨 가문을 지킬 수 없었던 무능함이 가려지는 것이냐?”

“너…….”

노부인은 손을 들어 월령안을 가리켰다. 그러나 손을 들자마자 월령안에게 손을 찰싹, 맞았다.

“월씨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도 나는 죽이기를 개의치 않을 것이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가주께서 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부인은 잠깐 멍해졌다가 뒤로 한걸음 물러서더니 꿇어앉았다. 심지어 호칭도 바꿔 불렀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부인의 옆을 지나 본채 서재로 들어갔다.

노부인은 제자리에 꿇어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

본채, 서재 안.

월령안은 서재로 들어가 서재 뒤에 있는 책장을 밀어 밀실로 들어갔다.

밀실 안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월령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고개를 들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왔느냐?”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월령안입니다.”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상대가 젊어 보인다고 하여 낮잡아 보는 기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곱사등이에게서 들었다. 네가 아주 대단하다고.”

아름다운 여인은 맞은편의 책상에 산을 이루고 있는 책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왔으니 보거라…….”

“네, 어머님.”

월령안은 아름다운 여인의 맞은편에 앉아 책상 위의 책자들을 한 장, 한 장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그녀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월씨 가문의 오보는 더 이상 남길 수 없겠구나!’

월령안은 오보의 사건을 기록한 책자들을 다 읽고는 월씨 가문의 오보를 더 이상 남기면 안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록으로 보면 십여 년 전부터 월씨 가문 오보의 입출금 장부에는 선명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월씨 가문의 가주는 그들을 너무 믿은 탓에 줄곧 장부를 살피러 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월씨 가문에 가주가 없게 되면서 이 사람들은 더더욱 방자해졌다.

그들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기대 장부가 맞지 않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내버려두었다. 그들의 방자함은 치가 떨릴 정도였다.

자시에 가까워질 때쯤, 월령안은 모든 기록을 다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님, 내일 현(賢) 부부께 부탁드려야겠어요.”

“결정했느냐?”

미모의 여인은 기록하던 붓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윽한 눈동자를 굴렸다.

“다시 한번 조사해 보지 않을래? 우리가 널 속이는 것이면 어떡하려고?”

“당신들은 여기에 삼십 년이나 계셨어요. 절 속일 거라면 지금까지 기다리지도 않았겠죠. 아버지께서 선배 부부 두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응한 일은 반드시 행하신다면서요.”

월령안은 이 기록이 가짜일 것이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숫자에 민감했다. 이 기록에서 많아진 양식 수량은 마침 강남 양식 창고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양식 수량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변이 없이, 그 양식들은 월씨 가문의 오보에 들어왔다.

“약속을 지킨다는 게 무엇이냐?”

미모의 여인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눈은 한없이 그윽했다.

“난 요녀(妖女)고 우리 그이는 요승(妖僧)이지. 우리는 신용이라고 할 것이 없어. 너희 월씨 가문 사람들이 멍청해서 우리를 믿는 것이지.”

“어머님은 곱사등이 스님 선배님을 위하셔서 만 마리 벌레가 심장을 파고드는 고통을 기꺼이 견디셨고 곱사등이 스님께서는 어머님을 위하셔서 사도에 빠지셨죠. 만약 두 분도 믿을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이 두 사람의 신분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월령안은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이 미모의 여인은 젊어 보이나 실은 나이가 쉰에 가까웠다. 그녀는 삼십 년 전에 이름을 날렸으며 그때의 마교(魔教) 교주의 딸이었다. 이름하여 백발요녀(白發妖女)였다.

만약 그저 마교 교주의 딸이었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미모의 여인은 사공(邪功)을 잔뜩 수련하여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죽이고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내력(內力)까지 흡수하여 무림 제일 고수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내력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정통적인 무공이 아니었다. 속성할 수 있는 무공은 모두 폐단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내력을 흡수한 뒤, 멈출 수가 없었다. 매일 반드시 다른 사람의 내력을 흡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만 마리 벌레가 뼈를 갉아 먹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녀가 이름을 날릴 때, 강호에서는 거의 매일이 그녀의 손에 죽고 내력을 흡수당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때, 백발요녀의 이름은 무림인들 모두가 무서워하는 이름이었다.

무림인들은 위험을 느껴 살기 위해 손을 잡고 그녀를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손을 잡고 그녀를 공격하던 사람들은 그녀를 죽이기는커녕 도리어 그녀에게 내력을 제공하여 그녀의 실력을 키워 주고 말았다. 그녀의 무공은 점차 강해졌다.

무림인들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소림사에 있는 속가(俗家) 자제의 무공이 아주 뛰어나 금강불괴의 몸을 수련했으니 반드시 요녀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죽일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무림 전체가 절망에 빠져 있었고 그 속가 자제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었다. 되든, 안 되든 그들은 시도를 한 번 해 보아야 했다.

무림의 각 명문들이 손을 잡고 그 속가 자제에게 부탁하러 갔다.

말이 좋아 부탁이지 사실은 핍박이었다.

도덕적 심판의 위치에 서서 그 속가 자제가 요녀를 죽이게 핍박했다.

그 속가 자제는 하는 수 없이 무림인들의 요구에 응하고 요녀를 죽이러 떠났다.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속가 자제는 요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속가 자제는 요녀를 데리고 소림사로 돌아와 사부에게 죄를 청했다. 동시에 무림인들에게 앞으로 무림에서는 백발요녀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낮잡아 보았다.

무림인들은 백발요녀가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백발요녀가 그들에게 가져온 위협이 너무 커서 그녀를 죽이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속가 자제를 생포하여 백발요녀가 와서 그를 구하게 했다.

백발요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홀로 왔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내력을 흡수하지 않았다. 내력을 흡수하지 않는 백발요녀는 다른 사람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속가 자제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를 위해 사람들에게 모질게 맞고 몸이 부서져라 내팽개쳐지면서도 사공을 써 내력을 흡수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속가 자제는 당장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사도로 들어갔다!

사도로 들어간 이 속가 자제가 바로 월씨 가문 오보 밖을 지키는 곱사등이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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