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94)화 (894/1,004)

894화 왜 화를 내면 안 되지?

"낭자!"

"령안!"

제운이 데려온 사람은 적지 않았다. 제운은 비록 잡혔지만 그가 데려온 수족들은 아직 있었다.

최일은 그 수족들에게 가로막혀 밖에 있었다. 육삼은 황성사 사위와 함께 나머지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멀리서 조계안과 월령안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자 두 사람은 수중의 일도 버려두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낭자, 괜찮으세요?"

육삼은 월령안 옆에 서 있었다. 최일이 끼어들어 조계안과 월령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조왕 전하, 사람을 잡아들였으니 전하께서는 가셔도 됩니다."

"꺼져! 여기는 네가 상관할 일이 없어."

조계안은 최일을 와락 밀쳤다.

서생인 최일이 어찌 조계안의 상대가 되겠는가? 그는 조계안에게 밀쳐져 비틀거렸다. 다행히 육삼이 잡아 주어 초라하게 넘어지지 않았다.

"최일, 괜찮으세요?"

월령안의 반응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급히 최일을 잡았다. 최일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왕 전하,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 것처럼 다 써먹었으니 버리겠다는 건가요?"

"월령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조계안은 화가 나 펄쩍, 뛰어오를 지경이었다.

'분명 월령안이 날 먼저 욕했는데 왜 내 잘못이 된 거지?'

"패배자가 미친 듯이 짖는 것뿐이죠. 다시 말해…… 제가 누구를 욕하는 건지 말한 적 있었어요? 조왕 전하께서 불쾌하시면 다시 욕하시면 되겠네요."

월령안은 제운에게 음담패설로 욕을 듣고는 화가 나지 않았으나 조계안의 태도가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욕을 들었는데 왜 화를 내면 안 되지? 나라고 사람들에게 천한 것, 잡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난 사람이 아닌 건가?'

"천한……."

조계안은 월령안을 손가락질했지만 어떻게 해도 욕할 수가 없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손을 거두었다.

"이번에는 내가 널 봐준다!"

조계안이 화를 내며 돌아서서 급히 걷다가 시체에 부딪혔다. 그는 난폭하게 시체를 차서 날려 보냈다. 멍하니 서 있는 황성사 사위를 본 조계안은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뭘 하는 것이냐? 얼른 사람을 데려가서 잘 심문하지 않고?"

"네, 네. 전하."

황성사 사위는 조계안의 화를 돋울까 두려워 하나같이 재빨리 뛰어갔다.

이 전하는 화가 많았다. 그들은 건드릴 수 없지만 도망칠 수는 있었다.

조계안은 인사도 건네지 않고 황성사 사람들과 함께 떠나갔다.

최일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월령안만 신경 썼다.

"령안,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잠깐 제가 참지 못하고 천한 것이라고 욕했어요."

월령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욕하자마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 너무 화가 난 탓에 마음속의 말할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그녀는 이성적이지 못한 행위를 했다.

"조왕 전하가 천하게 굴기는 하죠."

최일은 월령안의 기분이 썩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일부러 슬픈 척, 그녀를 달랬다.

"저의 청렴한 명성이 전부 그 때문에 망가졌어요."

최일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주나라 역사상, 처음 황성사 사위에게 협조한 문관으로서 얼마나 많은 탄핵이 절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이 가요. 이변이 없는 한, 전 강남의 사건이 종결되는 대로 변경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할 거예요."

월령안을 달래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최일은 또 아주 진지하게 덧붙였다.

"전 정말 너무 불쌍해요!"

월령안이 최일로 인해 웃음이 터졌다.

"너무 불쌍해요! 너무 비참해요! 제가 당신을 동정해요!"

최일이 먼저 돕겠다고 말을 꺼냈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녀는 정말 사실로 알았을 것이다.

부자가 함께 조정 관리로 있고 최 승상이 여야에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최일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황성사와 협력하여 문관들의 배척, 탄핵을 받고 틈을 타 먼 곳으로 발령 나 몇 년간 몸을 사리고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황제가 새 승상을 찾았을 때, 최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최일은 월령안이 웃는 것을 보자 농담을 건네듯 말했다.

"제가 이렇게 불쌍하고 비참한 것을 봐서라도 강녕부에 며칠 머물렀다 가실래요?"

육삼이 금방 최일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최일의 말을 듣자 순간 적을 만난 것처럼 윗사람인 것도 따지지 않고 끼어들었다.

"월 낭자, 조방……. 조방에서 아직 우리가 넘겨받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령안, 가지 마시오!"

최일이 갑자기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들은 조왕을 어찌할 수 없어서 분노를 당신한테 쏟을 거예요. 지금은 돌아가기 좋은 시기가 아니에요."

제운이 잡혔다는 소식은 기껏해야 이틀 정도 숨길 수 있었다. 이틀 뒤, 강남의 관리들은 제운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를 보전하거나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라도 무슨 짓이든지 벌일 수 있었다.

조계안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남의 관리들은 황성사가 위엄을 세우는 도구였다. 제운을 잡아들여서 돌파구가 생겼으니 앞으로 그의 칼은 반드시 강남의 관리들을 겨눌 것이다.

강남 관가 전체는 황성사에 의해 피로 씻길 것이다. 월령안은 생각하지 않아도 강남에 대란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일이 귀띔을 해 주지 않아도 그녀는 지금 시기에 별원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도 수고스럽게 조계안더러 강녕부에서 제운을 체포하라고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강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월령안은 강녕부에 머무르고도 싶지 않았다.

그녀는 최일과 그래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지우지 못한 거대한 복병이 있었다.

육장봉이 바다에, 조계안이 정력을 강남 관가에 몰두한 지금 얼른 복병을 치우지 못한다면 또 언제까지 기다리겠는가?

월령안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강남에는 월씨 가문의 많은 사업들이 있어요. 전 상사들을 순찰해야 해요."

최일은 비록 아쉬웠으나 억지로 잡지 않았다. 그는 애써 웃는 얼굴을 하고 월령안과 육삼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월령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야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강녕부로 돌아갔다.

* * *

월령안은 육삼을 데리고 강녕부의 관할 범위에 있는 마을의 상사로 왔다. 상사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시켜 육삼에게 말과 배를 준비하게 했다.

"여기는 청주와 멀지도 않으니 가서 추수를 데리고 오세요."

육삼이 말했다.

"낭자, 소인의 직책은 낭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의 명령에 따르시나요?"

월령안은 강요하지 않고 발걸음을 멈춘 뒤, 그를 바라보았다.

육삼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소인은 낭자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는 곧 끝장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장군이 돌아온다면 그는 분명 크게 혼날 것이다.

"그럼 됐어요."

월령안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상사의 관리인에게 분부했다.

"노잣돈을 충분히 챙기거라. 지금 바로 떠날 수 있도록."

말을 마친 월령안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육삼은 본능적으로 따라갔으나 상사의 관리인에 의해 가로막혔다.

"육삼 장군, 말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표사(鏢師)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물선은 한 시진 뒤에 출발하고요."

"화물선이라고요?"

'월 낭자는 날 떨구려는 것인가?'

상사의 관리인이 헤벌쭉 웃었다. 그는 약간 아부하듯 말했다.

"중요한 화물을 청주로 보내는 이 일은 육삼 장군만 하실 수 있습니다."

"무슨 화물인지 알 수 있나요?"

육삼은 자기가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됐어, 더는 생각할 수 없어. 더 생각하다가는 월 낭자가 키운 병사들이 반역하는 데까지 생각하겠어.'

비록 월령안은 종씨, 흉터 등 사람들을 내놓았지만 그들은 모두 월령안이 어려서부터 키운 사람들이었다. 월령안이 내놓은 사람들은 이미 작전할 수 있는 해적들이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은 그도 알고 있었고 대장군도 알고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아주 중요한 화물이에요."

관리인은 한 글자도 더 알려 주지 않았다. 육삼은 스스로 이 늙은 여우들에게서 뭔가를 알아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순순히 표사대를 따라 부두로 갔다.

수하가 되어서 주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생각을 반드시 명령에 따른 뒤에 해야 했다.

육삼은 아주 협조적으로 표사대를 따라 떠나갔다. 월령안은 육삼이 이미 떠났다는 관리인의 보고를 듣고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가자."

뒤에 있던 호위들이 바로 뒤따랐다.

상사의 후방에는 아주 큰 정원이 있었는데 손님을 접대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지금, 커다란 정원에는 하인도 보이지 않았다.

월령안은 호위를 데리고 정원 가산(假山), 폭포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녀가 다다르자 끊임없이 아래로 물이 흐르던 폭포가 바로 멈췄다. 그녀가 앞으로 가서 가볍게 누르자 돌문이 열리면서 가산 아래에 돌 동굴이 나타났다. 돌 동굴 뒤편에는 칠흑같이 어두컴컴하고 좁은 길이 드러났다.

월령안은 동굴로 들어갔다. 호위도 바짝 뒤쫓았다. 세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돌문이 천천히 닫히면서 가산 위의 폭포가 다시 쏟아져 모든 흔적들을 깨끗이 씻어냈다.

월령안을 호위를 데리고 어두컴컴하며 긴 오솔길을 지나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무덤 앞에 왔다.

무덤은 깊은 산 밑에 있었는데 사방이 모두 높은 산이었다. 무덤 주위의 큰 나무가 수십 미터에 달하여 하늘을 가리고 위쪽에는 안개가 겹겹이 끼어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지금도 이곳은 음산한 기운을 풍겼는데 사람들에게 불길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월령안은 무덤 앞에 서서 조용히 눈앞의 이름 없는 묘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이 굽은 노인이 천천히 무덤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고 혼탁한 시선으로 음산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제자리에 서서 그가 훑어보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전혀 없었다.

잠시 뒤, 등이 굽은 노인은 백옥으로 만든 십자 자물쇠 고리를 월령안 앞에 건네주었다.

월령안은 비수를 꺼내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백옥 십자 자물쇠 고리에 떨어지자 백옥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백옥 전체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월령안은 그제서야 손을 거두었다.

등 굽은 노인은 더 이상 월령안을 바라보지 않고 이름 없는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묘비 앞에서 손으로 털어내니 묘비에 십자 모양의 파인 흔적이 드러났다.

등 굽은 노인은 자물쇠 고리를 꽂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십자 자물쇠 고리와 묘비의 파인 흔적이 딱 들어맞았다.

곧이어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묘비 중간에 갈라진 틈이 생기더니 묘비로부터 무덤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점차 커져 무덤을 갈라놓았다.

무덤이 갈라지자 투명한 수정석을 깐 길이 월령안 앞에 펼쳐졌다. 수정석 길 앞에는 조각달을 새긴 철문이 있었고 수정길 아래에는 파란 섬광이 번뜩이는 칼날이었다.

길이 나오자 등 굽은 노인은 월령안을 상관하지 않고 유령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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